‘무릎딱지’라는 상실의 여정을 잘 표현한 그림책이 있다. 그림책의 주인공인 아이는 엄마를 잃고 아빠와 단둘이 살아 가는 과정에서 우리를 두고 간 엄마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 엄마 냄새가 새어 나가지 않게 집 안의 창문을 다 닫아 놓고, 엄마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귀를 막고 입을 다문다. 엄마 목소리를 듣기 위해 무릎에 난 상처를 자꾸 뜯는다. 그러다 할머니가 오셔서 엄마는 네 가슴 오목한 곳에 영원히 있다고 가르쳐 준다. 비로소 아이는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게 되고 무릎딱지엔 새 살이 돋아나 매끈해진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한 죽음을 맞는 환자의 5단계(부정, 분노, 우울, 타협, 수용)가 상실의 과정을 겪는 아이에게서도 거의 그대로 나타난다. 아이의 눈을 빌려 쓴 그림책 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감동이다.
죽음은 어찌 보면 남은 사람의 몫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별가족의 모임인 ‘별아람’이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다시 오고 싶지 않을 장소이기도 하겠지만, 어느 분에겐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할 것이고 비슷한 상처를 서로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할 것이다.
제11회 ‘별아람’모임에서 이 책을 읽어 드렸다. 모두의 마음이 먹먹해졌고 사별가족은 눈물을 흘리셨다. 눈물을 시작으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저녁에 내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없는 것이 제일 쓸쓸해요.’ ‘지금도 어디 여행 가신 것 같아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릅니다.’ ‘부모보다 남편을 잃었을 때가 더 힘든 것 같아요.’ 등등 이 곳에서 자신의 상실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내 소중한 사람을 위해 같이 기도해 주고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곳.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편안한 곳.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따뜻한 곳. 그래서 ‘별아람’ 사별가족모임은 참 소중하다. 그리고 그 곳에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
윤정숙 독서치유사
독서치유사 윤정숙님은 정기적으로 호스피스병동 환자 및 보호자들에게 책과 시를 통해 당신들의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시는 호스피스전문봉사자이자 요법치료사입니다. 윤정숙님처럼 환자와 보호자들의 상실감을 어루만지고 삶의 의미를 함께 찾아가는 역할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정토마을호스피스병동에선 연2회 호스피스전문자원봉사자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나의 시간과 재능을 다른 이와 나누는 경험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의 의미를 가져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봄인가 싶더니 벌써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사계절은 삶이란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선물과도 같다. 나에게 있어 사계절은 계절마다 만나는 환자분들이 다르다는 것이다.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환자분들과의 추억도 지나가고 슬픔도 상실도 지나간다. 그러나 지나간 자리에 언제나 흔적이 남는다. 그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간직한 채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게 된다. 사별가족 마음 안에 상실과 슬픔의 여정이 있듯이 나에게도 환자와의 만남에서 슬픔과 상실의 여정이 있다. 일상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임상영적돌봄가라는 역할이 때로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어느 날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부터 흥미로움을 유발하게 되었고 얇은 책 두께가 마음에 들었다. 책 내용에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내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스승이 말하기를, 기억하시오.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말이오. 왜 지금이 가장 중요하겠소? 우린는 오직 '지금'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오. 오직 지금 이순간만이 우리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말이지요. 또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오. 앞으로 그 어떤 상황에서 그 누구와 자신이 인간관계를 맺을지 모르므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하는 사람이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있는 그 사람에게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이지요. 그를 위해 이 세상에 인간이 보내졌고 오직 이를 위해 인간이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위 세가지 질문은 삶의 회고와 용서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다. 죽음이 임박해져 왔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혼돈 속에서 살다가 급작스럽게 마무리를 한다.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듯이 매일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삶을 살아간다면 마지막 여정 또한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행복한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호스피스 관계로 잘 알고 지내는 수녀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짐을 보면 스님 같은데 가족이 없고 임 종이 임박한 상태라면서 한번 다녀가길 원했다.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나는 서울로 향했다.
수녀님의 안내로 잠시 작은 방에서 여러 가지 기본적인 임상 자료를 브리핑 받고 호스피스 병실로 들어갔다. 날이 너무 더워 병실 공기가 탁하고 습했다. 창 옆 침상에는 뼈만 남은 남자분이 누워 있었는데, 수녀님이 저 분이라고 눈짓으로 말해주었다. 살포시 다가가 깡마른 손을 살며시 잡아드려도 환자는 눈도 뜨지 않았다. 느낌이 스님 같았다. 그래서 귓전에 대고 “스님!” 하고 불렀더니 그제야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셨다. 웬 비구니가 비구 손을 잡고서 있으니 ‘누구?’ 하며 놀라면서도 반가운 눈빛이었다.
스님이라는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 억장이 무너져 할 말을 잃어버렸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제멋대로 길어 엉망이고, 목욕은 언제 했는지 옷 속에 비늘이 뚝뚝 떨어지고, 손톱과 발톱은 길어 살을 파고들어갈 정도였다 차마 바라볼 수 없는 그 모습, 대명천지 밝은 하늘 아래 어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하나 막막한 심정이었다. 밖에 나가 속옷, 바리깡, 면도기, 수건 등을 사왔다. 휠체어로 모시고 간신히 병실 목욕탕에서 삭발 면도하고 깨끗한 새 속옷으로 갈아입혔더니 병원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타 종교 봉사자가 나를 찾아와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저희는 스님인 줄도 모르고, 기독교인 천주교인 할 것 없이 찾아와 찬송가 부르고 성경 읽어드리고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왜 그렇게 해야 했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에…….’
나는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다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자리에 눕혀 놓고 바라보니 얼마나 거룩하고 맑으신지……. 옛말에 한 다리가 천리라고 그래도 부처님의 한 제자로, 비구니에게 당신 몸을 맡기시는게 덜 서글프고 덜 비참했으리라.
"스님! 제가 이제 곁에 있을 거예요. 아무 염려 마세요."
우리는 서로 마주 눕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법랍法臘 24년 출가 이후 지금까지 선방에서만 정진하느라 토굴 하나 장만하지 못 한 구도자였다. 지난 겨울 결제結制때 자주 잔 기침이 나서 해제하면 병원에 한 번 가봐야지 하다가 해제 후 주위에서 병원은 서울로 가야 한다고 해서 도반들이랑 함께 이곳을 왔는데 진찰 결과 폐암 말기로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도반 스님들이 해제비를 털어 입원했고, 도반들이 오가곤 했는데, 몸이 그저 그래서 모두 결제 들어가라고 했지. 그런데 이렇게 빨리 병이 깊어질 줄이야……."
올해 세속 나이가 47세. 속가에는 여동생 하나 달랑 살아 있어 가끔 왔다 가곤 했는데, 어렵게 살다 보니 요즘에는 통 못 온다고 말씀하셨다. 커다란 키에 뼈만 남은 육체의 고통……. 숨이 가빠 온몸의 땀구멍 마다 식은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전신은 산소 부족으로 청색증이 와서 피부는 파랗게 죽어가고 물 한 모금 제대로 떠 넣어주는 이가 없어 혀는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었다. 거즈에 물을 묻혀 입속에 넣어드리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나를 찾았다. 병원비 문제로 직원이 올라온 것이다.
"450만원인데 스님 병원비는 어디로 구하면 되나요?"
대답이 퍼뜩 떠오르지 않았지만 "걱정 마세요. 해결할 테니……." 한 칸 토굴 형편에 이렇게 대답을 했다.
450만원. 시간은 없고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할까? 생각나는 대로 전화를 돌렸다. 차마 스님 병원비가 없어 그런다는 사정 이야기는 체면상 빼놓고 일곱 군데 전화를 해서 돈을 마련했다. 그리고 착한 어느 보살님께 스님 떠날 때 입혀줄 수의 한 벌 값까지……. 이 모든게 스님의 청정한 수행공덕이었으리라.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님. 왜 저 사람들이 와서 무례하게 굴면 나무라시지 가만히 계셨어요?"
스님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서 말씀하셨다.
"우리나라에서 땅을 제일 많이 가진 종교가 불교인데, 중이 지 죽을 자리 하나 없어 남의 병원에 와서, 그것도 이렇게 큰 십자가 아래 누워 죽는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겠노? 허! 허! 내가 이래 큰 십자가 아래서 죽어나갈 줄 우예 알았노? 내가 중이믄 뭐 하겠노? 부끄러바서 눈도 뜰 수가 없었제."
스님의 부끄러운 마음이나 지금 내가 부끄러운 이 마음이나 같을까?
"스님! 제가 저 바랑 열어봐도 되지요?"
눈으로 그러라고 허락하셨다. 바랑을 열어 보니 가사, 장삼, 지갑, 승려증, 8만원, 통장 (120만원 들어 있었음)이 스님의 생활을 반영하듯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스님! 그동안 살아오신 짐들은요?"
내 물음에 고개를 흔든다. 20년 세월을 수행자로 살아온 마지막 모습이 이토록 비참할 수가……. 숨이 차서 좌불안석인 스님이 푹 꺼진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시더니, 붉은 눈 속에서 눈물을 토해내셨다. 닦아도 닦아도 흘러내리던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스님을 모시고 내 토굴로 내려오고 싶었지만 형편이 그러질 못해서 더욱 죄송스럽고 안쓰러웠다. 하필이면 그 병원 십자가가 유독 컸다. 게다가 스님 머리 바로 위에 걸려 있어 마음이 더욱 불편했으리라. 침대 위로 올라가 한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스님을 끌어안아 무릎에 누이고 작은 소리로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가는 혼자 남아……." 노래를 들려주었더니 힘없는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주시며,
"시님! 내 부탁 하나 들어주소, 꼭!"
"네~ 말씀하세요."
"나는 이렇게 십자가 아래 누워 죽지만, 우리 시님들 늙거나 병들면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 하나 지어주소. 시님은 할 수 있어."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나는 너무 놀랐다.
"스님, 난 못해요. 내가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안돼요! 스님! 병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닐 거예요."
그러자, 스님은 내 손을 더욱 힘주어 잡으시며,
"원願을 세워요, 부처님이 계시니까. 내가 죽어서라도 도와줄게. 원만 세워! 원만 세우면 다 돼."
스님의 눈물이 내 승복 바지에 젖어들었다. 스님은 공부 중에 있는 도반들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알리지 말기를 당부하며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 후 뿌려주길 당부하셨다.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던 오후 4시에 스님은 내 체온에 의지한 채 병든 육신을 여의고 그렇게 떠나셨다.
스님! 저 하늘에 뜬 저 별이 스님 아니신가요?
스님! 스님의 영전에 맑은 향 사루어 공양 올리오니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사바를 밝혀주소서! 나무아미타불.
민들레는 바람을 타고 벽을 넘어 어디든 정착해 꽃을 피운다. ‘국경없는민들레’는 민들레처럼 국경을 넘어 의료봉사로 부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창립됐다. 국경없는민들레는 울산 정토마을이 운영하는 해외의료구호사업단으로 의료지원이 절실한 오지마을을 방문, 지원하고 있다.
라다크 심장재단 병원서 활동 전문 봉사인력 40명 의료지원 의료물품과 생활용품도 전달 11월에는 9박10일 스리랑카로
울산 정토마을(이사장 능행) 국경없는민들레가 오는 7월 8~17일 인도 라다크(Ladakh) 레(Leh) 지역으로 의료봉사를 떠난다.
레는 해발고도 3,520m 고산 지대로 4개월의 여름(6월~9월)과 8개월의 긴 겨울(10월~5월)이 있다.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며 눈으로 인해 주요 도로가 통제된다. 작은 티베트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지만 의료시설 및 환경은 열악해 지원이 필요하다.
국경없는민들레는 레 지역에 위치한 ‘라다크 심장재단’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의료봉사를 진행한다. 라다크 심장재단은 이사장 초겔 스님이 라다크 고산지대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운 의료재단이다.
라다크를 비롯한 히말라야 지역은 고산지대로 기압이 낮아 심장 기능이 중요하다. 몸에 피를 보내야하는 심장의 기능과 역할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요구된다. 라다크 지역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심장 판막이 닫히지 않는 병에 걸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기도 하며, 특히 어린이들의 심장병 발병율이 높다.
국경없는민들레 의료봉사팀은 승가 10여 명을 포함해 양방과 한방 전문의료진, 홍보 봉사팀 등 40명이 동참한다. 전문 의료장비를 직접 가져가 체계적으로 진찰하고 문진으로 예방 및 치료에 집중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마련한 의료 물품 및 생활품도 지원한다. 의료물품은 어린이종합영양제, 칼슘제, 영양제, 철분제, 오메가3, 파스, 구충제 등이며 생활용품은 겨울 보온에 필요한 털장갑, 모자, 양말, 겨울점퍼, 넥워머 등이다.
국경없는민들레는 미얀마, 보드가야를 비롯해 해외 오지를 중심으로 의료활동을 펼쳐왔으며 이번 라다크는 의료구호 활동 4회째를 맞는다. 1년에 한 번씩 구호활동을 진행했지만 올해부터는 두 번으로 횟수는 늘리고 다가올 11월 11일에는 9박10일 일정으로 스리랑카로 떠난다. 국경없는민들레는 구체적인 의료구호사업을 위해 서비스뿐 아니라 진료소를 세우고 의료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토마을 사무국 김현아 팀장은 “정토마을 비전이 ‘인류와 일체 생명의 평화적 공존에 기여한다’이다”며 “국경없는민들레는 해외 의료 구호 사업으로 이타행을 실천하고 평화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국경없는민들레는 해외 구호사업 후원 동참도 독려했다. 후원은 의료약품 및 각 나라특성에 맞는 생활 용품 등으로 하면 된다. (052)255-8588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물질문명 시대에 정작 우리 인간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교수, 총장, 국회의원, 큰 기업 사장, 큰스님, 작은스님, 아이, 어른 등 수천수만 가지 사연을 안고 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그런 현상적인 요소들과 상관없이 각각 달랐습니다. 제가 본 많은 죽음들은 제게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주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꿈에서 꿈을 꾸면서 꿈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꿈은 죽음이 목전에 와서야 비로소 깨어지게 됩니다. 그 이전에는 꿈을 깰 수가 없어요. 내가 죽을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면서 살아요. 그렇지만 실제로 내가 죽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내가 오늘밤에 죽을 수 있어.’라고 인식하고 사는 분들은 과연 몇 분이나 있을까요?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인식해서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만약 우리가 ‘오늘 밤에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생활하는 관점이 달라지고, 나에게 주어지는 한순간을 대면하는 나의 의도가 달라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꿈속에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시간을 한정 없이 주면서 언제까지 살 것이라고 최면을 겁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같이 죽을 수 있습니다. 오늘밤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죽어지면 대우주는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도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욕망에 끄달려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원망하고, 애정으로 애욕으로 뒤범벅이 된 삶을 살다가 결국 죽을병에 걸리고, 병에 걸렸다 해도 죽을 거라는 걸 인식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죽음이 목전에 와서 숨을 헐떡이면서 사대가 무너질 때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꿈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그때는 우리 인생이 너무 늦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꿈을 꾸게 되다가 종착역에 가서야 만나게 되는데 그때는 너무나 조급하고 초라하고 비참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 앞에는 대기업의 회장도 소용없어요. 저는 돈이 많으면 죽을 때도 잘 죽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걸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죽음은 너무나 냉혹하고 정직하고 진실합니다. 죽음은 여러분이 죽어가는 3개월, 6개월, 1년 안에 여러분들이 살아온 일생의 결과를 오롯이 다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것은 내가 심어놓은 농작물과 같습니다. 돈이 많고, 권력이 있고, 명예가 있을수록 그 죽음은 더 외롭고 처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자식이 열 명이 있어도 죽음 앞에서는 소용없습니다.
하나, 사랑하면서 살아가기 우리나라에서 일 년에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8만 명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암으로 판명되는 사람은 12만 명입니다. 남성 환자의 3명에 한 사람, 여성 환자의 5명에 한 사람이 암환자입니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는지에 따라서 내가 고통스러울 때, 위기에 있을 때, 죽어갈 때에 삶을 마무리하는 결과가 달라지게 됩니다. 너무 잘살려고 애쓰지 마세요. 대충사세요. 좀 둥글둥글하고 소통이 가능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 되세요. 여러분 모두가 여러분의 자식도 품어주지만 남의 자식도 품어줄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살아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년에 100여 명의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인간 존재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말 한 마디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정직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내 자신을 사랑할 때 남도 사랑할 수 있습니 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가 없어요. 죽음의 순간에 많은 이들이 가장 후회스러워했던 것은 돈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야 할 수 있는 안타까운 그 말 한마디, “내가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다.” 였습니다. 온 가슴으로 나와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세상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 가장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머리로 사랑하지 말고 가슴으로 사랑하세요. 머리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에요. 그것은 그저 생각하는 거예요. 사랑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에요. 온 가슴으로 사랑을 하게 되면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고, 화해하지 못할 것이 없고, 꼴을 봐주지 못할 것이 없고, 감사하지 않을 것이 없고, 사랑하지 못하는 존재가 결코 없답니다. 가슴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세요. 그래서 죽을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 마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둘, 나누면서 살아가기 여러분들이 소유하고 공유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을, 그 중에서 1%만 세상으로 되돌려주세요. 왜냐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산소, 땅, 이 모든 현상이 공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티끌 하나도 공짜가 아니에요. 여러분은 여러분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천지만물이 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면서 천지만물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편안히 살고, 나 혼자만 생각하고, 내 가족만 생각하고, 내 인생만 생각하는 삶은 참 재미없고 빡빡한 삶이면서 동시에 여러분이 언젠가는 갚아야 할 많은 빚들이 그 속에 녹아 있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대가없는 사랑을 받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 못 갚으면 다음 생, 그 다음 생까지도 갚아야 되겠지요. 그렇다면 차라리 살면서 건강할 때 이 세상과 함께 공유하고, 여러분도 대가 없이 조건 없이 나눠줄 줄 아는 큰 가슴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에게 인색한 사람은 다른 이에게도 인색합니다.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건강할 때 이 세상과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살다가 죽음을 맞을 때 고통 없이 죽어가는 죽음은 겸허하기까지 합니다.
셋, 돌보면서 살아가기 지금 이 시대는 죽음의 문화가 상실되어 가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삶의 가치도 생명의 존엄성도 상실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부모가 밖에서 돌아가시고 하면 업고 집으로 뛰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서 죽고 싶어도 병원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어떻게 죽어야 하고, 죽은 사람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봅시다. 적어도 죽음은 안전해야 합니다. 죽음이 안전하게 보호받는 사회가 삶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입니다. 내 죽음이 안전하지 못한 것은 우리가 죽음을 안전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죽어가는 사람을 돌볼 때 죽어가는 사람이 온전히 깨어서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에 산파가 돕는 것보다 100배 이상 더 깊이, 더 섬세하게 죽어가는 사람을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을 전혀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의 부모나 누구라도 죽음이 안전하도록 깨어서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가르치는 선생님도 어른들도 없습니다. 죽음이 안전하도록 죽음을 바로 알고 나와 내 주변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죽음의 가치가 바로서야 삶의 가치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봅니다. 살 가능성보다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많은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사랑하지 못해서 후회하면서 죽지 않도록 지금부터 가슴으로 사랑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이 세상에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아주 조금이라도 나누면서 살아가면 참 아름다운 삶이 될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 모든 이들의 안전한 죽음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 계간지 정토마을 2009.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