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성장을 위한 나의 목표는 일어나는 분노를 즉시 알아차리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완화시키는 것으로, 매일 10회 이상 거울을 보고 호탕하게 웃으며, 항상 눈을 크게 뜨고 미소를 지으며,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즉각 알아차리며, 우리 각자의 몸과 마음이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CPE 성찰 과정을 통해 성장과 변화를 얻기 위해 교육기간 동안 주로 운전을 하면서 의식적으로 크게 웃는 연습을 했는데, 처음에는 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으며 내가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어색했다. “웃으면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지만 개인 성장을 위한 첫 번째 목표로 웃는 것을 정했으므로 웃어서 좋아질 것으로 믿기로 했다. 처음에는 일부러 웃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웃음을 만들기 위해 주로 출퇴근 하면서 또는 마하보디교육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운전 중에 다양한 종류의 소리를 내면서 또 고함을 지르면서 크게 웃으려고 노력했다.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허벅지나 운전대 선반을 치면서 흥을 돋우었다. 또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하면서 소리를 좀 낮추어 웃는 연습을 했으며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거울을 보면서 소리를 내지 않고 입을 활짝 벌리어 웃거나 미소를 짓는 연습을 했다. CPE교육이 끝나가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나의 얼굴이 매우 밝아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고 나 자신 얼굴을 직접 보지 않고도 어느 강도의 표정으로 웃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아침에 공원을 산책 중에도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흐뭇해하기도 하며, 집에서 염불을 하거나 참선을 하거나 절을 할 때마다 벽지의 무늬를 보면서 자주 미소를 띤다. 벽지 속의 그림이 연꽃과 흡사하기도 하고 손발이 아주 많은 벌레와 같기도 한데 전체 모습은 눈과 입을 크게 벌리고 활짝 웃는 것 같은 형상으로 그것을 볼 때 마다 나의 입은 벌어지고 기분이 매우 좋다. 먼저 웃어야 뒤에 웃을 일이 생기고 또한 마음이 편해진다는 항간의 이야기를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인간관계에서 변한 것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화를 내거나 내 주장을 세우는 일이 없어진 것 같다. 오히려 아내가 인상을 써도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음을 보고 있다. 또 내가 미소 띤 얼굴을 자주하니 아내도 마음이 편해졌는지 나에게 가까이 오는 횟수가 늘고 있다. 나의 의견을 낼 때도 명령하는 식이 아닌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보는 방식으로 조금 바뀌었다. 예를 들면, 전에는 ‘본가에 먼저 가라. 내가 나중에 갈게.’ 였는데 요즘은 ‘어쩔래? 갈래?’ 하고 물었을 때 ‘오늘은 집에 있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하라.’는 식이다.

한편, 오랜 기간(약 10년) 매우 불편하게 지내던 같은과 동료 교수에게 일주일 동안 모두 여섯 번을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결국에는 전화를 걸어 “저는 지난 일을 다 흘러 보내고 서로 편안하게 지내고 싶은데 교수님의 의사는 어떠하십니까?” 하고 물어 지금은 서로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이전보다는 훨씬 많이(?) 형성되었다. 예를 들면, 2학기 교육대학원 수업이 있는 첫날, 학생들이 모두 책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1학기의 연속이고 또 나의 평상시의 강의 방침을 알고 있는 학생들의 이러한 행동은 일종의 계획된 집단 반항의 표시이다. 학생들의 이런 행동에 대해 CPE 교육을 받기 전과는 달리 나의 표정은 웃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왜 책을 준비하지 않았느냐?” 하는 나의 질문에 학생들은 긴장된 얼굴을 하면서도 가벼운 미소를 띠고 말이 없다. “좋다. 그렇다면 수업을 하는 대신에 1학기에 나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하고 제안을 하였다. 내가 제안을 하자마자 6명의 학생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실을 적나라하게 이야기를 했다.

 

여학생 1 : 제가 문제를 풀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바로 제 뒤에서 “이기 바보가?” 하고 말씀 하셨어요. 마음이 좀 그랬어요.

나의 즉답 : 아이고 그랬나? 내가 지금 사과할게. 미안하다.

남학생 1 : 저는 4학년 총대할 때 한 번, 그리고 교수님 연구실에 문제 푼 것을 질문하러 갔을 때 한 번, 칠판에 문제를 잘못 풀었을 때 한 번, 모두 세 번에 걸쳐 교수님께서 고함을 치시고 꾸중을 심하게 하셔서 가슴이 많이 아팠어요.

나의 답 : 어짜노? 내가 진짜 잘못했다. 미안하다. 그런데 너 지금은 장족의 발전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제?

남학생 1 : (웃으면서) 예. 그것은 그렇습니다. 사실 꾸중을 들은 후에야 열심히 했습니다.

여학생 2 : 저희들 1학기에 수업하는 날 거의 밥을 먹지 못했어요. 긴장이 되어서……. 하도 고함을 치시고 숙제도 많이 내시고 꾸중도 많이 하셔서…….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모든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다. 마지막에는 서로 함께 웃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다 씻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사실, 고의로 고함을 지르고 꾸중 일변도의 수업을 하는 이유는 있다.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그룹을 지어서 수학문제를 풀고 발표를 하여 점검을 받아야만 학습의 효율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학습을 느슨하게 하는 것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부드럽게 하면서 학습 효과를 올릴 수 있는 교수법이 제일 좋겠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것은 거의 불가능했었다. 하지만 이번 CPE교육을 통해서 지혜로운 방법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부드럽게 웃으면서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도 학생들을 격려하면서 최대한의 학 습효과를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 기대가 된다.

CPE그룹 안에서나 임상의 현장에서 또는 공동체 안에서 서운한 감정이나 분노가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 뛴 얼굴이 자연스럽게 유지되었지만,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의 비언어적 행동을 관찰하고 역동성을 읽는 것에는 소홀히 하였다. 특히 자식들에 대한 나의 욕심이 제거되지 않아 나의 삼업(三業)을 미리 보고 방지하는 능력은 만족할 만큼 발달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아직 딸아이에게는 욕심과 절망이 교차해서 그런지 맑은 미소가 나오지 않는다. 그 애에게 자연스럽게 편안한 웃음이 나오는 그날이 나의 목표가 완성되는 날일 것 같다. 또한 아직까지도 그룹원들의 비언어적 행동을 관찰하여 그들의 역동성을 읽고 표현하는 것에 매우 서툴다. 어떤 물건이나 혹은 상황[色]에 대해 서운한 감정이나 분노[受]가 일 어나면 그것을 즉시 알아차리고[싸띠, sati] 생각[想]이 아닌 감정[受, 느 낌]을 솔직하게 부드럽게 그리고 이성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려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지금부터 그 점을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하여 관찰력과 표현력을 상승시킬 것이다.(2009. CPE 여름학기 참여후기)

 

이병수|경성대학교 수학과 교수

 

불교계에서는 유일한 호스피스 병동인 울산 ‘자재요양병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능행 스님이 휠체어를 타고 있는 말기 암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요양병원 운영하는 능행 스님

 

“스님도 죽음이 두려우신가요?”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스님이다. 평균 사흘에 한 번씩 죽음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가 지켜본 죽음은 대부분 ‘비참한 죽음’이다. 행려병자들이나 말기 암환자들의 죽음이다. 누구의 따뜻한 위로도 없이 홀로 고독하게 죽어가는 행려병자, ‘혼절’할 만큼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 죽어가는 말기 암환자들의 죽음이 일상사였다. 그러면 죽음에 익숙할까? 익숙하다면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지는 않을까? 오랫동안 수행했기에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스스로 근원으로 돌아갈 수행력을 갖춘 스님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세상 들여놓았던 몸 떠나는데
어찌 아프고 힘들지 않을 수 있나

 

엄마 뱃속 태아도 7달째면
자궁 밖 삶을 준비하듯

 

그 너머의 또 다른 삶 위해
일상 속에서 죽음을
얘기하고 배우고
사랑해야

 

한 해 15만㎞씩 돌아다니며 모금
108개 병상 ‘자재병원’ 짓고
해마다 120여명 죽음 함께 살아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31살에 출가

스님의 얼굴에 언뜻 어둠이 비친다. “처음엔 엄청 두려웠어요. 때때로 죽음이 너무나 낯설고 허망하게 느껴졌어요. 두렵고 막막해서 죽음으로부터 멀리 떠나버리고 싶었어요.” 스님은 “고통의 한계에서 이를 꽉 물고 마지막 생을 버티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하면 저들의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나 하는 고민만 남아요”라고 말한다.

 

능행 스님은 불교계에서는 유일한 호스피스 병동을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31살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법정 스님처럼 살고 싶어 출가했다고 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불교는 책을 통해 접했다. 그냥 법정 스님이 좋았다. 하지만 그는 출가 후에 한 번도 법정 스님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 조용한 산사에서 수행을 하기보다는 행려병자가 나뒹구는 병원에서 그들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5~6년 하니 그런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2004년 인도에 가서 달라이 라마의 강연을 듣고 ‘발심’이 생겼다. 출가한 뒤 처음이었다. “일체중생의 죽음과 고통을 두려움 없이 바라보고 도와주겠다고 결심했어요.”

 

남편 품에서 맞은 아름다운 이별

 

자재병원 마당에서 가을을 명상하는 능행 스님.

스님은 1999년부터 정토마을 호스피스 센터를 지어 운영하고 있었다. 한 해 15만㎞를 돌아다니며 병원을 짓기 위해 일반인들과 불자들에게 호소를 했다. 지난해까지 쉼 없이 모금하고 후원받아서 울산에 새로 땅을 사고, 현대식 병원을 지었다. 108개 병상이 있는 ‘자재병원’은 7천여명의 후원자가 매달 1만~3만원씩 내는 후원금으로 운영한다.

 

한 해 스님이 보는 임종은 120명 정도. 그들의 임종만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스런 마지막 이승에서의 삶도 함께한다. “응급환자를 위해 개발된 첨단 의료기술이 응급환자가 아닌 임종단계에 있는 환자들에게 사용되면서,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기가 힘들어졌어요. 온갖 기계와 호스에 의지한 채 생명을 유지하니, 기계가 인간의 장기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죠. 결국 마지막 단계에서 대부분 환자들이 제대로 된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숨을 거둬요.”

 

스님에게 “혹시 아름다웠던 죽음은 없었나?” 물었다. 스님은 한 부부의 이별 장면을 이야기해줬다. 7년 전이다. 부부는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소박한 삶을 살고 있었다. 아내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3년간의 투병생활을 하다가 마지막 삶을 정리하려고 정토마을로 왔다. 아내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 몸을 놓고 훌훌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날마다 “아프더라도 같이 살자. 떠나지 마라”고 속삭이는 남편을 두고 갈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내는 꿈을 꾸었다. 아름다운 소녀가 다가와 같이 가자고 해서 뒤를 따라갔더니, 깨끗한 물이 흐르고 수많은 꽃이 피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곳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문득 남편에게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꿈에서 깨어났다. 아내는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여보, 그곳은 너무너무 아름다웠어. 몸이 하나도 안 아팠어. 아마 그곳이 극락세계인 것 같아. 나중에 당신도 와. 우리 그때 다시 만나자.”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그렇게 좋으면 가야지.” 남편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내에게 떠나도 좋다고 허락을 했다. 부인은 남편 품에 안겨서 잠자듯 떠났다.

 

스님은 이제는 ‘품격있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에만 전략과 계획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도 전략과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스님은 “태어날 때도 7개월 정도 되면 태아가 자궁 안에서 자궁 밖의 독립된 삶을 준비합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그렇게 또 다른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태아가 자궁 밖에 존재하는 밝은 빛과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서 모르듯이 누구도 죽음 너머에 대해 모르지만 분명히 밝은 빛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저 그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90%가 주민증 사진을 영정으로

스님은 품격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죽음을 이야기하고 배우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는 첫번째 방법은 죽음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안에 담아두면 더 큰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오니까요.”

 

스님은 죽음을 당하지 말고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세상에 들여놓았던 몸이 떠나는데 어찌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을 수 있나요. 그것조차 견뎌야 하는 것이 이생을 받는 대가입니다.”

 

스님은 영정사진을 주민등록증에 있는 사진을 확대해 사용하는 이들이 아직도 90%가 넘는다고 한다. 그만큼 죽음에 대해 준비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한 해를 넘길 때마다 사진과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훌쩍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본인이나 가족이 당황을 하지 않아요. 죽음에 대해 학교에서도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곳에서 죽고 싶은지, 어떤 모습으로 삶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지’에 대해 확실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 부를지라도 선뜻

 

스님은 최근 말기 침샘암으로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선생님에게 내일은 없어요. 살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요. 단 하루만 잘 살자고 다짐해봐요.”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그대로 수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인과 자식들과 하루하루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다고 한다. 의사들은 한 달을 못 버틸 것이라고 했는데. 이미 석 달이 지났고, 병세도 크게 좋아졌다고 한다.

 

“법정 스님은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밀려오는 거대한 죽음의 파도를 벗어날 수 없으며 삶이라는 배를 뒤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죠.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서툰 항해사들입니다.” 스님은 최근 자신의 호스피스 경험을 통해 겪은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담은 <숨>(마음의숲)을 펴냈다.

 

 

울산/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well/718941.html#csidxd5a08408aea97b585043254f138d010 

 

죽음에는 노소가 따로 있지 않다.
날짜가 한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차별도 없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65억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함께 있음을 자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죽음의 주인공이 나임을 인식하며, 삶 속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오늘날 죽음의 원인 중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암이다. 암 투병 중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평상시에 보험을 포함하여 많은 돈을 저축하는 이유 중에는 병이 나면 쓰기 위한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정작 죽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할까?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요소

 

심해지는 빈부의 격차
우리의 생활수준은 몇 년 전만 해도 몇 개의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격차가 더욱 심해져서 극부와 극빈의 상태로 나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빈부의 격차는 과도한 경쟁 심리를 유발시키고, 우리의 마음에서 풍요로움을 빼앗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정신은 더욱 황폐해지고 감정은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 더구나 불안한 현실은 사람들에게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마음 상태를 갖게 하고 있으며, 점점 더 돈에 의존하게 한다. 심지어는 자식도 믿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극도의 경쟁 심리와 그에 따른 압박감, 불신과 불안은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바쁠수록 수명이 단축된다
현대인들은 정말 바쁘게 살아간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정작 왜 바쁜지는 모르는 채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정말 바쁜 것이 아니고, 마음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외부의 경계에 끄들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왜 바쁜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살다보면 어느새 죽음이 눈앞에 와 있다. 마음이 바쁘고 불안해서 자신을 혹사시키고 괴롭히면서 몰아치다 보면, 자살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빨리 죽을 수도 있다.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은 육체적인 질병뿐만이 아니라, 바쁜 마음 때문에 몸과 마음의 균형이 깨지는 것도 큰 몫을 차지한다. 

죽음에 도달하는 지름길은 욕망과 집착
욕망이란 끝없이 얻으려 하고 움켜쥐려고 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욕망이 적당할 때에는 우리의 삶을 발전시키는 방편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칠 때에는 우리의 삶을 망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욕망을 잘 조절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활기차고 풍요로울 수 있을 것이다.
집착이란 한번 움켜잡으면 놓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다. 좋은 것은 좋기 때문에 놓치지 않으려고 움켜잡을 것이고, 싫은것은 그것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움켜 잡을 것이다. 이러한 욕망과 집착을 갈구하는 마음의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의 몸은 화장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타죽고 만다.
IMF의 경제위기를 넘기고 난 몇 년 뒤에 우리나라에는 암환자가 급증을 했었다. 이런 현상은 경제적인 위기상황에서 겪은 마음의 고통과 스트레스가 육체의 질병을 유발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통해 우리는 올해의 경제 위기가 2, 3년 뒤 암환자의 급증을 가져올 거란 예측을 할 수 있다. 즉 마음의 고통이 몸의 질병을 가져오는 것이다. 지금의 사회현상은 가까운 미래에 나타날 현상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럴 때 우리는 마음을 어떻게 내야 할 것인가?

 

내가 원하는 대로 죽기 위해 필요한 요소

 

돈을 운용하는 지혜
우리나라는 아직은 혈연을 중요시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랑 아니면 돈 때문에 병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죽음은 비참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 맑을 때 돈을 제대로 운용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우린 평생 돈을 벌어서 저축을 하기도 하고, 많은 보험을 들기도 한다. 그 이유는 늙어서 병이라도 들면 자식들에게 신세 지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돈에 모든 것을 의지하며 움켜쥐고 놓을 줄을 모른다. 그러나 병이 들면 내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 제대로 치료도 할 수 없게 되며, 중단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다. 거기에 보험금 마저도 보호자인 자식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돈은 언제 어떻게 없어지는지도 모르게 없어지고 남는 것은 질병과 외로움, 서러움과 원망, 죽음뿐이다. 그리고 죽은 뒤에는 자식들간의 의리마저도 끊어놓게 된다. 이렇게 봤을 때 돈은 가족과 나를 망치는 주범인 셈이다. 돈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인간성과 윤리마저도 상실하게 한다. 돈은 휘발유와 같다. 휘발유는 불이 나게도 하지만 자동차를 움직이게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돈에 대한 정치를 잘 해야 하며, 적절하게 운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당신의 삶, 죽음이 말한다
“죽을 때 보자.” 
이 말은 죽음이란 사건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재판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즉 죽은 뒤에 염라대왕 앞에 가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가 염라대왕인 것이며, 죽어가는 과정에서 현상으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면 그 미워하는 과보로 인해 죽을 때 깨끗한 눈으로 죽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남을 비난하고 욕하면, 죽음이 오기 전에 혓바닥이 마른 논바닥 갈라지듯 쭉쭉 갈라지고 부풀어 올라 움직일 수 없는 고통을 받는다. 여기에 물을 부어주면 아프지만, 혀가 입안에 꽉 차서 의사를 표현할 수가 없어 그 고통을 그대로 겪으며 죽게 된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지은 죄의 모습이 현상으로 눈앞에 떠올라 몸부림치기 때문에 온몸을 묶어놓아야 한다. 심한 잘못을 한 사람 은 죽을 때 자신이 저지른 현상을 그대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선하고 어질게 산 사람은 선하고 어진 과보를 받고, 악하고 모질고 나만 아는 이기적인 삶을 산 사람은 죽음의 여정에서 자신이 뿌린 그대로 겪게 된다.
병이 드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부처님도 생로병사를 여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몸은 물질이기 때문에 병들고 아프면서 죽는 것은 모두가 겪는 여정인 것이다. 그러나 병들고 죽어가는 여정,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 의 현상은 각각 살아온 모습으로 결정된다. 다시 말해 죽어가는 사람이 겪는 고통 과 외로움, 괴로움, 아픔, 서러움은 그 사람이 살아온 모습을 말해주는 것이다. 돈, 가족, 명예, 지위, 권위는 죽음의 여정 앞에서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 고,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것은 내 죽음의 질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은 그러한 현상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내 죽음의 모습이 어떻게 되길 원하는지 그 모습이 확정된다면 삶에 대한 대답 은 저절로 나오게 된다. 그 모습대로 삶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지고, 삶의 모습이 당당하게 되며 자유로워지고 아름다워진 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으면 삶이란 드라마도 혼란스런 모습 을 보이게 되고 제대로 된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의 드라마가, 극 본이 구체적으로 설정되면 삶의 드라마도 변하게 된다. 삶의 목표와 역할에 따라 극본과 시나리오 등이 제대로 정해지고 변하게 되며, 그 변화는 개인의 삶뿐만 18 보디사트바_겨울 아니라 사회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마음의 치유는 죽음의 질을 높인다
평상시에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을 보면 죽음도 잘 맞이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에 보이는 모습은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몸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속의 질병을 치유 해야 죽음의 질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갖가지의 돌덩어리를 올려놓고 살고 있다. 감정표현, 심정표현을 제대로 못하고 살고 있으며, 그것은 고스란히 가슴속에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대로 질병이 되고 악취가 되어 밖으로 표출된다. 따라서 가슴에 올려놓은 돌덩어리를 제거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것을 제거해야만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랑, 보살핌, 관심이 없는 삶, 아내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삶, 자식과의 불통의 삶이 노년을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게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의 병이 육신의 병이 되게 한다. 내가 타인에게 그러한 행위를 했다면 그 과보는 고스란히 내가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내가 행복하고 풍요로운 노년과 죽음을 맞고 싶다면 그러한 공덕을 쌓아야 함을 의미한다. 

타인의 죽음을 돌보는 행위
죽어가는 사람에게 다가가 잘 봉양하고 보살피며 도와주는 인연을 짓지 않으면, 내가 죽을 때 그러한 인연이 없기 때문에 나의 죽음자리도 지켜주는 이가 없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어떤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죽을 때 사랑받고 극진한 돌봄을 받으려면 그러한 종자를 심어놓아야만 한다. 아무리 자식이 많고 친척이 많아도 죽는 그 순간엔 모두 자리를 비우게 되는데, 그러한 종자를 심지 않은 인과의 법칙에 의한 것이다.
내 주변에 임상의 대상은 많다. 부모, 친척, 형제 등 그러한 사람들을 향해 죽는 그 순간만이 아니라 끝까지 도움을 줘야 한다. 내가 간호 받고 싶은대로 타인을 간호해야만 한다. 내가 죽은 뒤에 장지까지 오길 바란다면 타인에게 그렇게 베 어야 한다. 타인의 죽음을 돌보는 것은 바로 나의 죽음을 돌보는 행위인 것이다.

준비없는 죽음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다
죽음의 모습은 마음으로, 생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어느 날 죽음이 왔을 때, 비참하게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같은 신세가 된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모습은 눈을 부릅뜨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뒷걸음질을 친다. 안 끌려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그러나 결국엔 끌려가고 만다. 돌아설 수 없는 그 길을 돌아서려 하고 몸부림친다면 몸부림치는만큼 괴롭고 비참하며 고통만이 있게 된다. 이런 모습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현대인의 조급증을 반영이라도 한 듯, 요즘은 갑자기 발병하고 진행속도도 빠른 암이 많아지고 있다. 췌장암, 담도암, 폐암 등은 진행 속도도 빠르고, 발견한다 해도 치료할 시간도 없다. 그렇다면 언제 삶을 정리할 것인가. 돈이 많은 경우 그 돈을 정리하지 못했으면 자식들이 죽지도 못하게 한다. 치료라는 명분을 내세 워 현대 의학에 의존해서 목숨을 연장시키며 돈을 정리하도록 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할 때 해당되는 사람들 모두에게 돈이 있고 없음을 분명히 말해서 죽음을 준비해야만 때가 되었을 때 편안히 죽을 수 있다.
또한 마음의 돌덩이를 모두 내려놓고, 정말 가볍게 갈 수 있어야 한다. 미움도 원망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용서한다면 아주 가벼운 몸으로 가게 된다. 시신이 바짝 말랐어도 태산같이 무거운 경우가 있고, 뚱뚱해도 깃털처럼 가벼운 경우가 있다. 이것은 우리 삶의 모습인 것이다. 죽음만큼 살아온 모습을 정직하게 대변해 주는 것은 없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모습을 직면한다면 함부로 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지금 같아선 죽음의 길을 누구나 잘 갈수 있고,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죽음이 앞에 와 있으면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병이 들었을 때 원망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그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자식 낳고 농사짓고 하는 것은 내 삶이 아니다. 이러한 삶을 90살을 살았더라도 그것은 산 것이 아니다. “얼마나 살았다고…….” 이 말은 아무리 긴 시간을 살았 더라도 내 삶을 산 것은 얼마 안 되었다는 말이다. 자식을 위한 삶은 내 삶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80이 되어서도 ‘얼마나 살았다구.’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앞에 와서 가자고 하기 전에 내 삶과 내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죽음을 상실한 삶 자체는 죽음이다
오늘날 우리는 죽음을 상실해 가고 있다. 우리의 문화가 죽음을 외면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집에서 죽은 사람도 병원으로 실려 가게 하며, 시신에 대한 부가가 치까지 생겨나서 시신 쟁탈이 일어나기도 한다. 병원에서 죽게 되면 숨 떨어지자마자 실려 나가 냉동고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는 평생 쌓아온 공덕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정신을 안 차리고 죽으면 누구나 그러한 처지가 될 것이다.
죽음이란 지(地)․수(水)․화(火)․풍(風) 순서대로 무너지는 과정이다. 사대가 차례로 무너질 때는 의식을 온전히 집중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문소리나 발자국소리 하나도 없이 절대적인 적정의 상태에서 염불소리와 화두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혼식이 고요하고 적정한 상태에서 염불소리를 들으며 화두만 잡고 육체를 빠져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혼식이 모두 빠져 나간 뒤에도 5~6시간 정도는 조용하게 시신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그 순간은 다음 생을 결정짓는 절대 절명의 순간이며,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사후의 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원은 건강하게 살다가 남의 신세 지지 않고 자듯 죽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임상의 현장에서 직면한 진실은 수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제대로 죽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수행을 했어도 현상적인 수행은 했을지언정 실제적 으로 영적인 성장을 이룬 수행이 되지 못했기에 잘 죽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삶 속에 죽음이 함께 있음을 자각하면서 순간순간을 살아가야 할 이유이 기도하다.

능행스님 │재단법인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
(채록자|변은숙, 24기 호스피스)
출처 :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 계간지 ‘정토마을’ 2018.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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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 능행스님 : 네이버 포스트

행복한 삶이란? 온전한 죽음이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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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감스님

올해는 텃밭과 함께 씨름하고 땀을 흘리며 산 획기적인 한해였다. 농사짓는 것에 익숙지 못한 만큼 에피소드도 많았다. 특히 나를 만나 너무 고생스러웠을 무시(무)의 삶을 생각하니 비죽이 웃음이 난다. 하기야 그도 내 생각이다. 내가 고생스러웠고 간이 조마조마했고 부끄러워서 쥐구멍에 숨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김장을 하려보니 무시가 얼마나 잘되었는지 부끄러웠던 일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만 북태산만큼 커진 때문이다.

 

지난여름에 겨울 김장 준비로 무씨를 젊은 스님들과 함께 뿌렸다. 삼십 센티 간격으로 무씨를 두서너 개씩 넣고 새싹이 나길 아무리 기다려도 새싹이 올라오질 않았다. 나는 씨를 너무 깊이 넣었거나 아니면, 너무 얕게 넣어서 새가 다 물어간 것 같다면서 스님들과 함께 앉아서 걱정을 하였다. 그래서 다시 씨를 뿌리기로 마음먹고 있는데, 마침 어떤 분이 오시더니 “비닐을 씌우고 씨를 뿌려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젊은 스님들을 데리고 나가서 비닐을 씌우고 구멍을 뚫어 씨를 넣었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누군가 오더니 “무밭에 비닐 씌운 것은 생전 처음 봤다.”고 하면서 “북(흙을 북돋움)은 어떻게 주려고 하느냐?”고 물으며 허허 웃는 것이 아닌가. 저녁에 다시 젊은 스님들을 데리고 나가서 비닐을 벗기느라 그날은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부끄러워서 “무” 소리만 들어도 경기(驚氣)를 할 지경이었다. 손님이 와도 밭에 갈까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손님이 오는 소리만 나면 밭에 올까 무서워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거기 계세요. 내 나갈 테니…….” 하고는 정신없이 밭에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할 짓이 아니다 싶어서 곰곰이 생각을 하였다. 무를 어떻게든 크게 만들어서 밭이 시퍼렇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나의 화두였다.

결국 고민 끝에 무를 모종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또 젊은 스님들을 데리고 나가서 삼십 센티 간격으로 퍼져 있는 사이사이에 무를 모종해서 심었다. 심고 나니 푸릇푸릇한 것이 풍성해 보여서 왠지 안심이 되었다. 그랬는데, 이번엔 누군가가, “스님, 무는 모종하는 게 아니래요. 모종하면 죽는 다네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절망했고 이젠 정말로 무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밭에 가지 않기만을 부처님 전에 기도했다.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원장스님께서 가끔 무밭에 물을 주시며 나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소가 뒷걸음질 치다 뭐를 밟는다더니……. 공을 들인 것이 없는데 무가 저 혼자서 그냥 쑥 커버린 것이었다. 원장스님이 밭에 갔다 오시더니 깜짝 놀라며 나를 찾으셨다. 단지 삼십 센티 간격을 준 것밖에 없는데 무가 사람 넓적다리보다 더 크게 자라 있었다.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무시야! 잘 자라줘서 고맙다."

 

그렇게 잘 자라준 무를 뽑아서 크기별로 분류해 놓았다. 넓적다리만한 것은 저장도 해놓고 오그락지(무말랭이)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중간치는 동치미를 담으려고 한다. 크기가 얼마나 적당한지 동치미에 맞춤형 무시가 되었다. 그리고 제일 작은 것은 다싯물 내는 용으로 쓰려고 금강지 보살님과 의논 중이다.

“스님, 시장에 가보니 우리 무시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디더.”

금강지 보살의 말에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 같았다.

“무시야!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맙다."

(2008. 겨울 정토마을 계간지)

 

도운 │정토마을 도감

1998년 12월 28일, 청주 정토마을 기공식을 시작으로 1999년 1월,조립식 60평의 독립형 호스피스 시설이 마련되었다.

나를 어여삐 보아 당신 며느리로 받아주신 시아버님을 폐암이라는 무서운 병으로 아무 준비 없이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허전하고 슬픈 마음을 달래기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능행스님을 만나 병원 중환자실 봉사도 하고 독거노인도 돕고 결식아동도 도우며 다른 사람을 위해 마음과 시간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꽃동네로 실습과 견학을 가서 만난 호스피스병동의 환자가 반가워하며 자주 오라는 말과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빨리 호스피스병동을 마련하여 스님과 헤어지기 싫어하시는 환자를 모시고 살아야지.’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그해 초파일 컵등(cup燈)을 만들어 법주사, 동학사 입구에서 불자들에게 나누어주면서 호스피스요양원 필요성을 홍보하던 일, 호스피스환자를 위한 바자회에서 미역과 다시마 김 젓갈을 팔아 기금을 마련하던 일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어렵사리 부지 매입하고, 차가운 초겨울 날씨에 물도 전기도 없는 산자락에서 스님은 어디서 용케 컨테이너 한대 끌어다 놓으시고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나이는 거꾸로 먹었는지……, 아직도 철이 덜 든 저는 눈물이 핑 돌도록 스님이 안쓰러워도 철야기도 한번 동참할 마음을 내지 못했습니다. 십여 년 능행스님과 함께한 세월 가운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고 후회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스님의 기도 원력과 피나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정토마을, 지금이 있기까지의 어려웠던 사연을 어떻게 제 짧은 글재주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조립식으로 대충 건물이 세워지고 첫 환자가 입소할 때만 해도 우리는 해냈다는 환희로움에 가슴이 떨렸습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환희로움이 공포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을 마감하는 환자 들과의 생활은 정말 내 마음을 삭막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죽음, 저런 죽음, 또 죽음……,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뛰쳐나가고 싶었습니다. 활기와 희망이 넘치는 사람 속에서 나도 생동감 있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 갈등 속에 괴로워하던 어느 날이었습니 다. 능행스님께서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부장님, 시내를 다 돌아도 석류가 없대요. 도공스님이 석류가 잡숫고 싶다는데 국산은 철이 아니라 없고, 수입은 과수농가 시위로 중지되었다네요. 어쩌면 좋아요?

먼 곳에서 세미나 참석에 지치시고 하루 종일 운전하시고 힘드실 텐데도 불구하고 편찬으신 도공스님 드릴 석류를 사신다고 시내를 헤매고 계실 스님을 생각하니 정신이 번뜩 났습니다. ‘내가 너무 나만 생각했구나. 나만 이곳에서 탈출하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정말로 어려워도 참고 묵묵히 견디는 정토식구들과 능행스님이 눈에 안 밟히고 살 수 있을까?’ 이러한 자책감과 번뇌와 갈등이 저를 보이지 않는 사슬로 얽어매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정토의 환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스님을 두고 떠난다 하더라도 정토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제일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1993년, 호스피스교육이 시작되었고, 교육수료생들과 독거노인과 결식아동을 돕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래, 여기서 행복을 찾자. 이곳에 몸과 마음을 의지하는 환자들에게 내가 조그마한 힘이 되어보자.'

건강한 이가 죽음을 기다리는 이의 하루하루를 생각하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마음도 몸도 지치고 힘든 환자들의 안식처가 되어보고자 하는 의지는 저에게 큰 버팀목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는 행복하길 추구하고 죽을 때는 아름답게 죽기를 희망할 것입니다. 사랑 속에 살면서도 행복을 모르고 자신이 하는 일을 스스로 낮게 만들어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행복하게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밝고 따뜻한 기운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즐겁고 재미있게 하면서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행복주머니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행복의 진리는 지극히 단순한데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제 자신을 사랑하고 저를 아는 모든 이가 저를 사랑해 주는 것 같다고 느낄 때 행복합니다. 지금 저는 매우 행복합니다. 언제든지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는 도량 안에서 생활할 수 있어 감사하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환자를 보면 나 스스로 호흡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봄․여름․가을․겨울 변화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정토를 아끼는 많은 후원가족 여러분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이 많아 너무너무 행복합니다.(2008년 겨울, 정토마을 계간지)

 

김희자(무량심) │청주 정토마을 팀장

 

사는 것은 무엇이며, 죽는 것은 무엇인가?
일찍이 붓다께서는 사는 것도 고통[生苦]이고 죽는 것도 고통[死苦]이라고 하셨다.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반이 있고, 열반으로 가기 위한 수행이 있는 것이다. 삶은 연기법에 의해 인연의 조건과 환경에 영향을 받으면서 그 무엇을 학습하는 여정이다. 그 학습 결과에 따라서 맞이하는 죽음의 질이 다르고, 시작하는 죽음의 질이 다르다.
사람들은 흔히 죽음이란 나이가 들거나 심각한 병이 들었을 때 찾아오는 손님 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2008년 이 시점에서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죽음이나 질병은 연령과 성별을 구별하지 않고 다가온다. 그래서 아주 두렵고 공포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손님이긴 하지만 반갑지 않은 손님임에는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애써 회피하고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재수 없거나, 마음 상하게 하는’ 부정적인 주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죽음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미리 준비하고 극복해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다면 삶의 여정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죽음이 찾아왔을 때, 두 손 들어 환영은 못할지라도 당황하지 않고 허둥대지도 않으면서 담담히 맞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죽음에 대한 인식의 부족
요즘 젊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나 지식,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매일의 생활 가운데 죽음을 염두에 둔다거나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한 생각을 하는 일은 결코 없다고 할 정도이다. 더구나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부분을 부모에게 의지하기 때문에 갑자기 병이 들거나 죽음에 임박해서도 부모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때로 젊은이들에게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어떻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지요?’ 라고 질문을 하면 그런 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는 대답을 들을 때 막막함을 느낀다. 이런 인식과 무지와는 달리 현실적으로 죽음은 우리와 훨씬 가까이에서 삶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반영하듯,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청소년, 소아를 위한 암병동은 서울대병원 등 대형 병원 몇 개에만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각 대학병원마다 소아암병동이 생겨났다.
더 이상 젊은이들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직면해야 하며,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

변화된 죽음의 환경
예전에는 집에서 태어나 집에서 죽는 것이 다반사였다. 심지어는 안방에서 죽지 않으면 객사(客死)라고 하여 그 시신을 집안에 들이지 않을 정도로 죽음을 존중하였다.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보더라도, 잘못 행해졌을 때 다시 고칠 수 없는 일이 장례에 대한 일이기 때문에 정성을 다하여 실수하지 않고자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태어나는 것도 병원이고 죽는 곳도 병원이다. 대개 병이 들거나 죽음에 임박해서는 집에 있다가도 죽을 때는 다시 병원으로 가서 죽는다. 이는 죽는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 위주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아파트라는 주거환경은 사람의 주검조차도 물건으로 치부해 버리곤 한다. 주변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극도의 이기주의에서 죽음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즉 죽음이 상실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이나 친지, 친구 등 주변의 사람들이 죽어도 그 여정을 함께하지 못하고 죽음 뒤에도 충분히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 
죽음을 상실한다는 것은, 죽음이 결핍된다는 것은, 죽음을 외면하는 것은 온전한 삶이라 할 수 없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죽음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죽음을 외면하게 한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회피는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면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며, 부모는 자녀들에게 이러한 환경을 제공하는 주인공이다.
어른들은, 부모들은 젊은이들이 죽음에 대해 직면하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젊은이가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삶의 요소보다 훨씬 많은 죽음의 요소
우리 주변에는 삶을 영위하게 하는 요인보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요소가 훨씬 많다. 정신 차리고 보면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 만큼 위험 요소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죽을 일이 많다.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는 매일 매일의 사건 사고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어제까지도 웃던 사람이 오늘 생사가 나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는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온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그 많은 죽음의 요소를 견뎌내고 살아온 사람들이 맞이하는 죽음의 여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죽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무지에 대해서도 별 의식이 없다. 평소에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기며 그 이후의 경과에 대해서는 경시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우리의 마음은 목마르고 영혼은 메말라 있다. 죽음을 보는 시각이나 사후 처리 과정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죽음이 경시되는 결핍된 사회에서의 삶은 정신적인 황폐함이 난무한다. 정신의 황폐함은 물질적인 욕구만을 채우기 위한 살게 한다. 그것만이 성공된 삶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삶에 있어서 양적인 극대는 있을지 몰라도 질적인 풍요는 존재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이 동반하지 않는 삶은 온전한 삶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토에 오는 사람 누구에게나 묻는다. ‘지금 이 순간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지금 이 순간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거의 모든 사람의 첫 번째 대답은 ‘해도 될까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말 해도 될까요?’이다. 
그리곤 이어 말한다. “죽음이 이렇게 오는 것이라면, 삶이란 것이 이렇게 끝나는 것이라면 내게 죽음에 대해 왜 이야기해주지 않았나요? 왜 가르쳐주지 않았나요? 죽음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라고 왜 미리 가르쳐주지 않았나요? 너무나 중요한 죽음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 당혹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 자신의 삶과 죽음에 세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호스피스교육이란 무엇인가
삶 가운데 죽어가는 과정을 공부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공부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스피스 교육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도와주는 봉사가 아니라,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죽음을 바라보고 준비하는 수행의 여정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죽음인 임상체험을 통해 평생 살아오면서 잘 살아왔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 죽음의 진실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공부할 수 있다.
호스피스는 수행이다.
우리는 생과 멸의 사이에 서서 직면하고 싶지 않은 사실들에 직면하게 된다. 탐진치에서 비롯되는 형상 없는 생각과 감정들이 고통, 두려움, 이별, 아픔, 상실 의 질을 바탕으로 윤회를 창조하게 하는 사실에 깨어있도록 우리의 의식을 흔든 다. 팔정도를 통해서 실상을 알 수 있는 사실적인 통찰이 온다. 떠나는 자와 떠나 려는 자들이 서로의 모습을 통해 진실에 면하게 되면서 서로에게 높은 의식의 성장과 빛이 된다. 이 수행은 죽음과 삶을 통해 얻는 바른 경험이 있을 뿐이다.
죽음에 끌려가지 않는 죽음, 죽음을 통해 더 높은 의식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현상적인 풍요보다 영적인 풍요가 더욱 중요하다. 시선을 내면으로 거두고 달리 기를 멈추라. 그리고 지금 여기에 깨어 있으라.

능행스님 │재단법인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
2008년 마하보디교육원 호스피스교육 중 능행스님의 법문을 채록하여 싣습니다.
(채록자|변은숙, 24기 호스피스) 

https://youtu.be/wFgX-RfCOTs

 

https://youtu.be/AaGuDqJrC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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