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텃밭과 함께 씨름하고 땀을 흘리며 산 획기적인 한해였다. 농사짓는 것에 익숙지 못한 만큼 에피소드도 많았다. 특히 나를 만나 너무 고생스러웠을 무시(무)의 삶을 생각하니 비죽이 웃음이 난다. 하기야 그도 내 생각이다. 내가 고생스러웠고 간이 조마조마했고 부끄러워서 쥐구멍에 숨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김장을 하려보니 무시가 얼마나 잘되었는지 부끄러웠던 일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만 북태산만큼 커진 때문이다.
지난여름에 겨울 김장 준비로 무씨를 젊은 스님들과 함께 뿌렸다. 삼십 센티 간격으로 무씨를 두서너 개씩 넣고 새싹이 나길 아무리 기다려도 새싹이 올라오질 않았다. 나는 씨를 너무 깊이 넣었거나 아니면, 너무 얕게 넣어서 새가 다 물어간 것 같다면서 스님들과 함께 앉아서 걱정을 하였다. 그래서 다시 씨를 뿌리기로 마음먹고 있는데, 마침 어떤 분이 오시더니 “비닐을 씌우고 씨를 뿌려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젊은 스님들을 데리고 나가서 비닐을 씌우고 구멍을 뚫어 씨를 넣었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누군가 오더니 “무밭에 비닐 씌운 것은 생전 처음 봤다.”고 하면서 “북(흙을 북돋움)은 어떻게 주려고 하느냐?”고 물으며 허허 웃는 것이 아닌가. 저녁에 다시 젊은 스님들을 데리고 나가서 비닐을 벗기느라 그날은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부끄러워서 “무” 소리만 들어도 경기(驚氣)를 할 지경이었다. 손님이 와도 밭에 갈까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손님이 오는 소리만 나면 밭에 올까 무서워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거기 계세요. 내 나갈 테니…….” 하고는 정신없이 밭에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할 짓이 아니다 싶어서 곰곰이 생각을 하였다. 무를 어떻게든 크게 만들어서 밭이 시퍼렇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나의 화두였다.
결국 고민 끝에 무를 모종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또 젊은 스님들을 데리고 나가서 삼십 센티 간격으로 퍼져 있는 사이사이에 무를 모종해서 심었다. 심고 나니 푸릇푸릇한 것이 풍성해 보여서 왠지 안심이 되었다. 그랬는데, 이번엔 누군가가, “스님, 무는 모종하는 게 아니래요. 모종하면 죽는 다네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절망했고 이젠 정말로 무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밭에 가지 않기만을 부처님 전에 기도했다.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원장스님께서 가끔 무밭에 물을 주시며 나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소가 뒷걸음질 치다 뭐를 밟는다더니……. 공을 들인 것이 없는데 무가 저 혼자서 그냥 쑥 커버린 것이었다. 원장스님이 밭에 갔다 오시더니 깜짝 놀라며 나를 찾으셨다. 단지 삼십 센티 간격을 준 것밖에 없는데 무가 사람 넓적다리보다 더 크게 자라 있었다.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무시야! 잘 자라줘서 고맙다."
그렇게 잘 자라준 무를 뽑아서 크기별로 분류해 놓았다. 넓적다리만한 것은 저장도 해놓고 오그락지(무말랭이)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중간치는 동치미를 담으려고 한다. 크기가 얼마나 적당한지 동치미에 맞춤형 무시가 되었다. 그리고 제일 작은 것은 다싯물 내는 용으로 쓰려고 금강지 보살님과 의논 중이다.
“스님, 시장에 가보니 우리 무시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디더.”
금강지 보살의 말에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 같았다.
“무시야!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맙다."
(2008. 겨울 정토마을 계간지)
도운 │정토마을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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