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이었다. 네팔지진으로 히말라야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작은 진료소가 무너져서 주변 지역 6개면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연락이 왔었다. 소식을 들은 그 길로 정토마을 사무국장님과 종무 팀장을 데리고 네팔로 날아갔고, 그때 정토마을에서 무너진 진료소 복구비를 지원한 인연이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차츰 잊어가던 중, 올봄에 진료소 운영비 마련을 위해 빵 만드는 시설을 마련하신다 하여 시설비를 지원해드렸었다. 그리고 4월쯤인가 페이스북을 통해 진료소를 운영하는 티벳 스님이 교통사고로 많이 다쳐서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지만, 딱히 깊이 사정을 알아볼 처지가 못 되어서 차츰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으로만 대신했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어느 날, 때아닌 비가 언양 간월산에 억수같이 쏟아졌다. 며칠 내내 내린 비로 인해 기온이 많이 떨어진 어느 날, 네팔에서 티벳 비구스님 한 분이 오셨다. 네팔 히말라야 산 중턱에서 진료소를 운영하는 그 비구스님이셨다.

건강이 많이 걱정되었는데 만나 뵈니 반가운 마음이 먼저 일어났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는지 당황스럽고 놀라웠다.

 

영어를 하는 정토마을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왕복 8시간 거리의 도시로 약을 사러 갔다가 벼랑에 굴러떨어져서 복부에 구멍이 나고, 오른팔과 손을 심하게 다쳐 사용하지 못하고, 두통이 심하다 하셨다.

사실상 진료소 운영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정토마을에 오신 날부터 나는 우리 자재요양병원에서 침 치료, 물리치료, 약물치료 등을 제공하면서 스님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도했다. 음식도 잘 드시게 하고, 따스한 옷도 마련해드리면서 스님을 돌보기 시작했다. 여권 비자 기간도 1개월 연장하여 정토마을에 조금 더 머무실 수 있도록 하였다.

 

스님과 나는 부처님 사리각에서 함께 기도했다. 나는 한국어로, 스님은 네팔어로...

그날 밤에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아픈 몸을 구부리고 내 곁에 앉아 경전을 독송하는 39살 비구스님 모습에서 나는 나의 39살을 보았다. 죽어가는 암 환자들과 함께 천지도 모르고 살던 그때, 너무나 외롭고 막막했으며 암담했던 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눈물이 났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스님이 진료소를 운영하지 않으면 네팔 그 산속에 살는 3만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아플 때 어떻게 하느냐고, 힘을 내셔야 한다고...

자재요양병원 문채경 선생님의 통역을 도움받아 밤이 깊도록 법당에 앉아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어가면서 나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산을 넘고 보니 또다시 바다였고, 바다를 건넜다 싶어지면 어느새 또 다른 길 없는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절대 쉽지 않은 길, 누구나 갈 수 있을지언정 아무나 갈 수는 없는 길임을 말했다.

 

스님은 다친 팔과 손, 심한 두통은 차츰 좋아져 갔지만, 그동안 네팔에서는 언제 오시는지, 진료소 문은 언제 여시는지, 스님을 찾는 전화가 시간이 갈수록 많아져 갔다.

 

12월 7일, 스님은 네팔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나는 스님에게로 마음이 계속 쓰였다. 병원이 다시 운영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나는 스리랑카 의료봉사를 떠났고, 내가 의료봉사를 다녀올 동안 스님은 부처님 진신사리각에서 혼자 기도를 이어가셨다.

 

12월 6일, 정토마을 종무소에서 네팔스님 가방싸기 운력을 하였다. 아기들 옷과 사탕, 연고, 회충약, 파스, 라면, 커피, 아동 영양제 등등... 그리고 정토마을 국경없는 민들레에서 모금된 1천만 원과, 정토마을 직원 두 분이 마음 내어주신 2천만 원을 가지고 스님은 용기를 내서 진료소 운영을 다시 해보겠다며 네팔 산골 진료소로 돌아가셨다.

대형가방 세 개를 빌려 가면서, 내년에 또 오시겠다며 활짝 웃는 스님의 모습에 나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가슴은 또 왜 이리 시린지 모르겠다.

발덴라마 따시델레 기도하리다.

 

산골진료소 지원협약 체결 (발덴라마 따시델레 스님과 능행스님)

 

해가 지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요란한 정토마을에서 오늘은 개구리가 먼저 예불을 한다.

 

나 오늘 기도하기 싫어~”

스님아, 어여 하시소

못해~!”

 

봉사자랑 이야기가 길어져 예불시간을 10분 놓치신 스님께서는 늦은 것이 마음에 걸려 투정을 하시는 게다.

 

그럼 개구리보고 저녁 예불하라고 할까요?”

내 말에 우리 스님 웃으신다.

아이고 개구리가 어떻게...?”

그럼 어여 가서 예불 하세요.”

몰라~! 싫어 나 못 해 못 해~!”

 

그럼 오늘 예불은 하지 말지 뭐...”

...?”

기도하기 싫은 거 부처님께서 다 아시고 계실 테니까...”

오늘은 쉬세요.”

안돼~!”

큰소리로 말씀하시며 일어나시더니 가만 가만 법당으로 가신다. 그리고는 목탁 소리가 난다.

또르륵- 또르륵 똑 똑...

 

죽음 속에서 죽음을 돌보시는 분, 우리 성오스님, 당신은 환자가 아니란다.

 

우리 성오 스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4년 전으로 올라가야 한다.

스님께서는 아주 특별한 불치질환 판정을 받으셨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제방을 두루 다니시면서 공부를 하시었다. 그러다가 어느 여름안거를 들어가시었는데, 공양시간에 뇌혈관과 심장판막이 터져서 바루를 손에 든 채 대중방에서 쓰러지셨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얼마 동안 계셨는데, 의료진들이 `살릴 수가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어른 스님들께 전하셨다고 한다.

'카타야수 동맥염' 우리나라에 500명밖에 없는 생존기간 5년 선고형 불치병이다. 혈관이 이유 없이 뚝뚝 끓어지는 질병이다. 안거 중인 선방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정토마을로 오시었다.

 

그때 진단서에는, 1주 정도의 생존가능성이 기재되어 있었다. 식사로는 멀건 물죽을 호스를 통해 코로 주입되었고, 소변, 대변, 의식, 기억력, 인지능력, 사지불능, 신체적 정신적 모든 기능이 상실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스님의 임종 맞을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 일주일, 보름, 한달... 스님께서는 기적처럼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하시었다. 혈관이 터지는 병이라서 주사 한 대를 놓을 수가 없는 처지였다. 사그라지는 잿더미 속에 빨딱거리는 작은 불씨 하나 부채로 부치고 또 부치며 불꽃을 살려내기 시작하였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6개월 만에 코에서 줄을 빼고 입으로 식사를 드시는 연습을 하시기 시작하였다.

깨어나고 보니 막막한 것은 오른쪽 팔다리가 기능을 다 상실한 것이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것은 기억력 상실과 인지능력 상실이었다. 모든 기억력이 담긴 뇌신경 세포가 뇌혈관 출혈로 몽땅 제 기능을 상실한 것이었다. 오른쪽 전신마비로 더욱 불편하고 수시로 발작을 하시고 부정맥 등 심장판막도 터지고 상태는 늘 벼랑 끝이었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이파리가 되어 하루하루 그렇게 생명을 이어갔다. 말씀도 못 하시고 글자도 다 잊어버리시고 팔다리고 못 쓰시고, 기억력도 반 이상 상실된 채 또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차츰, 차츰, 차츰.... 인지능력이 살아나면서(분별심) 우울증과 조울증에 수시로 시달리면서 정신적인 고통까지 겸하게 되었다. 자신의 모습에서 사람으로서 그리고 승려로서 모든 역할과 관계가 상실되고 존재의 의미마저 퇴색되어가고 있음을 아시고는 비참한 당신의 처지가 너무나 서글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죽고 싶다. 죽어야 한다는 절망 속에서 우울증에 시달리시던 우리 성오 스님께서는 그래도 늘 나의 의지처였다. 상의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그래도 우리 둘은 참 좋은 도반이었다. 눈으로 말했고 마음으로 통했다. 생각과 튀어나오는 어설픈 말들은 늘 따로따로이지만 우리는 다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날 홀로 두시지 않으시고 좋은 스승을 곁에 두어 주시었다.

 

성오 스님~!

당신을 통하여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새로운 소임이 있음을 알게 하시었습니다. 스님의 모습을 통하여 장기적으로 투병이 필요한 스님들의 고통과 그들의 삶의 질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성오 스님이 내 곁에 계시지 않았다면 요양병원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기획, 시설방안, 심리적 정신적 이해, 운영에 대한 대책, 열정과 의무감, 이런 것들이 강하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장기적으로 긴 투병이 필요한 스님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구도자로서의 삶으로 끝까지 이어질 수 있는 대책과 방안으로 고심하게 되는 나를 봅니다.

"성오스님! 당신은 나에게 보살로 오시었구려." 스님의 여윈 몸을 감싸 안아봅니다.

 

여러 스님들의 장기 투병모습을 여기저기서 자주 보고 느끼면서 고심고심 끝에 '그래 천일기도를 해보자' 마음 먹었다.

그러나 천일기도 해주실 스님 오실까?’ 하고 1년을 기다려 보았지만 스님들께서는 오시면 떠나실 뿐이었다. 봉사를 오신 스님들도 사나흘만에 모두 바랑을 메고 떠나기 바빴고, 성오스님과 나는 그런 스님들의 뒷모습에 떠날 수 있음에, 부러운 눈길을 던지곤 했다.

어느 날 나는 성오스님께 매달렸다.

병원을 잘 건립해 보겠으니 스님께서 천일기도를 해달라고 말이다. 투정 반, 억지 반 그렇게 거듭 실랑이를 했다.

한글도 다 잊어버리고, 반야심경 한 구절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우리스님, 두돌박이 아기 말 배우듯이 더듬거리는 스님, “못해~”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성오 스님께 말씀드렸다.

이제 법당은 스님께서 맡아서 천 일 기도를 올려주세요.”

 

스님께서는 천일기도에 대한 부담감과 할 수 없다는 포기심리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한참을 괴로워하셨다. 나는 모르는 체 천일기도 입재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천일기도는 성오스님께서 하실거라고 발표하였다. “몰라~! 몰라~!” 아이처럼 왼쪽 손만 흔드셨다.

모두들 무리라고 했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커다란 좌목탁 하나를 샀다. 법당에 놓아드리고 어설픈 왼손에 목탁체를 쥐어드리면서 말했다.

나는 이제 법당에 천일 동안 들어오지 않을 테니 그리 아셔요.”

가슴이 저려오는 걸 참으면서 법당을 나왔다.

절도 못 하시고, 합장도 안 되고, 다리도 말 안 듣고, 말도 제대로 안 나오고, 글도 모르는데 어찌 기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왜 나라고 무리인 줄을 몰랐을까. 그러나 억지를 부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성오스님에게는 환자로서의 생존보다는 승려로서의 생존에 대한 의미가 더욱 크기에, 나는 그 이후로부터 특별한 날이 아니면 법당에 들어가지 않았다. 힘없는 손에 목탁을 들려놓고 처음에는 사시기도 때마다 문 뒤에 숨어 서서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부모나 형제였더라면, 그 가슴은 더욱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아픔이 되었으리라. 문 뒤에 숨어 혼자 눈물을 눌러 닦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흩어져 버린 쪼가리 기억들, 오만가지 문구들이 더듬거리는 소리에 튀어나왔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지만 그래도 목탁소리는 똑딱 똑딱 흘러나왔다.

 

환자복으로 법당에 가시어 그 목탁 채 몇 번이고 집어던지시며 울며불며 기억을 찾아 헤매시던 우리 스님, 정토마을 가족들은 성오 스님께서 기도하고 나오시면 아낌없는 격려와 칭찬을 해드렸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스님과 함께 기도 동행에 나서주시는 순주 보살님...

 

성오 스님과 순주 보살님 두 분은 신체 증상이 비슷하시다.

그래도 순주보살님은 기도하시는 스님 뒷등에 눕기도 하시고 벽을 기대고 앉기도 하시며 기도 동행이 되어주신다. 그 이후로 우리 스님은 할 수 없이 많은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기도 끝나시면 천수경 반야심경 사경 하시고 ----부터 읽고 쓰기 공부를 시작하였다. 한 마디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도 스님 기도에 우리는 만족스러웠다. 세월이 흘러갔다. 눈물과 고통들 속에서 어느새 800일 기도 천도의식 날짜를 함께 의논할 수 있게 된 우리는 서로 너무 행복하다.

 

이제 성오스님께서는 법당에 가시면 가사를 걸치시고 기도할 수 있으며, 천수경 반야심경 그리고 영단에 법성계까지 치신다. 제사를 지내야 할 때는 곁에서 한쪽 손으로 목탁을 쳐주시며, 하루 두 번 기도시간은 꼭 법당에 계신다.. 초도 갈고, 자원봉사자들에게 법당청소 지시도 하시는 스님이시다.

 

혜란씨- 청수물 주세요-” 이렇게 말씀도 하신다.

이제는 천수경 소리도 제법 옛 소리를 찾아가고, 아랫방에 내려오시어 옛날, 차 우려내시던 솜씨로 차도 한 잔 만들어 건네주시며 살포시 웃어주시는 그 미소에 나는 너무 큰 행복을 느낀다.

 

우리는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태산이다. 늦은 밤 귀가하게 되면 스님 방에는 불이 밝혀져 있다. 내 차 소리가 들려야 비로소 불을 끄시고 잠자리에 드시는 고마운 도반 성오스님! 기도 중에도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시면서 목탁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엊그제는 늦은 밤 내 방으로 내려오시었다.

빨간 봉투 2매에 십만 원씩을 담아서, 삐뚤삐뚤 글씨로 이렇게 쓰시어 보관하라신다.

1) 성오 스님 입관할 때 수고하시는 분께 보시해 주세요.

2) 해동사문 비구니 성오, 아미타 부처님 전에 불전 올립니다.

 

이러실 때마다 나는 슬펐다.

`왜 저렇게 서두르실까?'

이렇게 쓴 글씨봉투가 벌써 3개째다.

`날 혼자 이렇게 버려두시고 당신 혼자 먼저 가시면 알아서 하라'고 협박도 하지만, 그때마다 웃음을 허공으로 날리신다. `관자재병원 다 지을 때까지 내 곁에 있어 달라'고 늘 애원한다.

 

이 산중에 이라곤 당신과 나 둘뿐인데...

다른 스님들께서는 오고 싶을 때 왔다가 가고 싶을 때 언제라도 떠나가시지만 우리 둘은 이 모든 것 버리고 떠날 길이 없다.

 

어젯밤에는 둘이서 차 한 잔 하면서 감사드렸다. 성오 스님께서도 자신의 기도 원력으로 모든 것이 잘 되어가노라고 좋아하신다.

이제는 내가 없어도, 병실 환자를 위해 힘없이 아래로 처지는 오른손을 잡아 쥐고 기도해 주신다.

매일 힘들어 하시는 환자 곁에 가시어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기도하실 때 축원도 잘 해주신다. 사지 말짱한 어느 스님 못지않게 당신의 자리를 이렇게 채워 가신다.

 

출가 승려는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수행자로서의 역할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병중에 있을 때라도 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하시면서(이것이 정진이다) 존재하는 것(생명의 존엄성을 상실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에는 혼자 살살 산책도 하시고 봉사자들하고 담소도 나누어 주신다.

 

성오스님.

그는 역시 구도자였다. 언제까지나...

800, 우리 성오스님 기도하시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항상 경상 옆에는 커다란 손수건 하나가 놓여 있다.

그래도 나는 늘 모르는 척 지나쳐 나온다.

아무리 힘들어 해도 기도품을 덜어주지 않는 내가 미울 때도 있겠지만 환자이기 이전에 당신은 승려이기에...

 

요번 800일 기도 축제 때는 우리 성오 스님께서 아마도 4년 만에 처음으로 장삼에 가사를 수하시고 여러분을 반겨 맞아 주실 겁니다. 너무나 장하시고 거룩하시지요.

당신께서는 `한 오년 더 살아 병원 다 짓는 것 보시고 떠나시겠다'고 하시지만 여러분 기도해 주세요. 스님이 성오 스님을 정말 편안히 모시고 오늘의 고생스러움에 보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서둘러 준비하시는 모습에... 늘 걱정입니다.

그래도 천진한 웃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천도재에서 성오 스님을 만나는 분들께서는 붓다를 만나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죽음을 돌보아 주시는 분...

 

 

성오 스님!

당신께 정례를 올립니다.

금생에 모두 성불하옵소서.

오늘 저녁에는 성오스님과 둘이서 따뜻한 차 한 잔 나누어야지...

 

-2004, 어느 날 능행 합장

입보리행론 제1장 보리심 공덕 찬탄품

보리심을 일으키면 성불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원력만이 아닌 진실된 마음으로 보리심을 일으키면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짐은 물론 인생 자체가 의미 있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고통이라는 이름마저도 소멸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보리심은 궁극적으로 성불의 일체종지를 증득할 수 있는 인과의 종자가 되는 것입니다. 무량한 세월 동안 깊은 사유를 행하신 모든 부처님들께서 이 보리심의 유익함을 보시고, 이것으로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아주 쉽게 궁극의 안락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중생들은 고통을 여의기를 바라지만 오히려 고통 자체로 내달리고, 안락을 원하지만 무지로 인해 스스로 자기 안락을 원수처럼 부수어 버립니다.

축생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중생들은 고통을 싫어하고, 행복을 바라며 불행은 누구도 원치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번뇌의 힘에 의해 이끌려 다니기 때문에 한 가지 번뇌를 간신히 조복 받고 나면 그 다음에 또 다른 번뇌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노력을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고통 속으로 내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탐욕을 내고 화를 내게 되면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화를 냄으로써 새로운 마음이 일어나 더욱 더 용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를 내는 원인 때문에 또 다른 업을 짓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탐욕과 욕심을 내다보면 이것쯤이야 내가 취해도 되지 않는가, 욕심을 좀 내도 되지 않겠는가 하고 자기 자신에게 자비로워지고 자신을 합리화 시킵니다. 탐욕으로 인해 또 다른 업을 짓게 되는 그런 원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도는 내가 자만을 가져도 된다는 자만심과 이 정도라면 괜찮지 않나 하는 자신을 북돋아 주는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질투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질투심을 내게 되면 누가 뒤에서 등을 떠미는 것처럼 더욱 더 질투의 힘이 커지고, 더욱더 그 마음을 크게 일으켜주는 번뇌의 도우미가 반드시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경쟁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경쟁하는 라이벌 의식을 가지게 되면 더 정진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들은 번뇌가 번뇌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고통을 원하지 않지만 악업에 의해 고통으로 내달리게 되는데 그런 악업의 힘에 의해 번뇌가 번뇌를 낳아 오히려 우리를 더 고통 자체로 내달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단 보리심을 일으키고 난 후 자신이 악업과 번뇌로 인해서 고통 받은 경험들을 잘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아집이 오히려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업의 뿌리는 바로 아집과 악연이라고 했습니다.

 

입보리행론 제1장 보리심 공덕 찬탄품12

보리심이란 무량한 허공과 같이 무한한 중생들을 그 중생들 모두 나의 부모처럼 보고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해줘야 되겠다는 마음을 내기 때문에 그 생각 자체는 한계가 없고, 선업은 끝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간에 한계가 있는 선업의 마음을 가지고 선행을 쌓게 되면 그 과보가 한 번으로 끝이 나지만, 보리심의 나무는 항상 푸르러 끊임없이 열매를 맺고 시들지 않으며 잘 커나갑니다.

 

보리심 기도문

 

지극한 마음으로

··승 삼보에 귀의하오며,

무지무명으로 지었던 지난 과거의 모든 잘못들을 진정으로 참회하오며,

앞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반야의 지혜와 자비의 방편으로,

보리심을 일구며, 세세생생 보살도의 삶을 살겠습니다.

참회진언 :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3)

발보리심 진언 : 옴 보디지땀 우뜨 빠다야미 (3)

원하옵나니,

이러한 공덕이 일체에 두루 하여

나와 모든 중생들이 극락세계에 왕생하고,

무량수 무량광 아미타 부처님을 뵈어,

다 함께 성불하여 지이다.

 

정토마을 후원 가족들과 저희들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귀의하여 배우고 선업을 닦아서

나의 생각 가는대로 착각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이며, 나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을 것이며, 나의 양심을 속이고 다른 사람이 상처받는 나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비록 가진 것이 많지 않다 하더라도 마음을 가난하고 인색하게 내지 않을 것이며, 내가 바르게 노력한 만큼 필요한 것을 적절히 취할 것입니다.

이러한 서원의 기도를 부처님 전에 올립니다.

 

-능행 합장

 

뜰에 앉은 나뭇잎 하나가 일깨워준다. 여름은 지난밤 꿈처럼 흘러 버리고 가을이 또 이렇게 지나가고 있음을... 

정토마을 후원 가족님들께 안부 전합니다. 안녕하신지요? 
아침이슬에 익어가는 정토마을 뒷산 숲을 걸어봅니다. 지난여름에 만나 함께 울고 웃으며 5박 6일을 보낸 생사의장 학생들과 올가을엔 숲에서 도토리를 줍기로 했습니다. 어느 떡갈나무의 도토리인지, 산 주인이 누구인지도 따져 묻지 않고, 무심히 도토리를 주워 보기로 했지요. 자연이 무심히 자신의 것을 우리에게 내어주듯 우리도 우리들의 삶에서 거두어지는 소소한 의미와 가치들 을 세상에 그렇게 내어주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지요. 


삶은 매 순간으로 이어져 흐르고, 우리의 목숨도 그 매 순간 사이로 흐르고 있기에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가을 낙엽처럼 그렇게 이 세상에서의 모든 것들을 남겨두고, 지금의 내 모습은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은 채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도토리를 줍듯이 삶을 밀밀하게 살아내면서 떡갈나무가 도토리를 내어주듯 우리도 자연과 더불어 이웃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주고 돌보아주는 가슴에 가을의 단풍처럼 붉은 열정이 담기기를 소망해 보는 것이지요.

 

7월 초에는 인도 라다크 3,500고지 고산지역에 정토마을 국경없는민들레가 약 40여 명의 후원자들과 함께 의료봉사를 다녀왔습니다.

 

2017년부터 정토마을은 후원자님들께 국경없는민들레라는 이름을 붙여 드렸습니다. 그것은 정토마을이 자재요양병원을 건립한 이후 후원자님들과 함께 이제는 조금 더 힘을 내서 국내외 교육 환경과 현대의학이 미처 가 닿지 못하는 곳에 민들레 홀씨 하나라도 더 떨구어 보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후원의 힘은 정토마을재단 운영 및 (교육.의료)구호활동사업에 동력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정토마을과 호흡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올해 11월 11일부터는 또다시 스리랑카 자연재해 지역에 의료봉사를 떠납니다. 우리나라 1950년대 모습과 닮은 그곳에서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영양지원과 위생 교육 그리고 자연재해로 질병에 노출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민들레 홀씨가 되어보려고 합니다. 이번 스리랑카 의료봉사에는 약 60명 정도의 민들레 대원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의료봉사와 함 께 스리랑카 성지순례도 겸하여 다녀오려고 합니다.  의사 및 간호사분들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지원해 주시면 참으로 많은 분께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민들레 한 송이가 피어나면 많은 홀씨들은 한계 없이 차별 없이 어디든지 날아가서 아무리 척박 한 땅이라 하여도 꽃을 피워내지요. 정토마을과 함께 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삶에서 소박하고 강 인한 민들레가 되어 자신의 생명의 힘을 건강하게 길러 가면 참 좋겠습니다. 한 개인의 건강한 삶 이 곧 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우리도 물들어 가겠지요. 아프지 않게 살 수 있도록 몸을 잘 보살펴주시고, 틈틈이 이 세상 살다가 마지막 소풍도 아름답고 멋질 수 있도록 준비해가시면서 지금의 삶을 살아 내시면 더욱더 좋겠습니다. 

 

 

능행│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이사장

 


https://forms.gle/KQV3FaYFLuhePP4a9

 

국경없는 민들레 스리랑카 의료봉사 후원 신청

"몸이 아픈 이들을 돌보는 것은 붓다인 나를 돌보는 것이며 몸이 아픈 이들에게 약을 공양을 올리는 것은 나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 중에서 정토마을 능행스님과 함께하는 국경없는 민들레 스리랑카 의료봉사 스리랑카 의료봉사는 2003년과 2017년 두차례의 쓰나미로인한 산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한 마타라 데니야야 지역으로 갑니다. 함께해주세요. 많은 분들의 동참은 어려운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또

docs.google.com

 

매미가 새벽부터 어둠이 내릴 때 까지 운다.

 

매미의 일생은 며칠이지만 그 며칠의 여정에 존재로서 해야 하는 일을 마치고 7년 동안 숙면을 위하는 것 같다.

 

작은 곤충도 그러한데 하물며 인간, 특히 출가한 사문의 길을 가는 내 입장은 가장 어두운 곳, 그 곳에 작은 등불이라도 되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20세기가 저무는 그때 "정토"맑고 깨끗한 땅, 정토마을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정토마을은 붓다의 자비실천을 원력으로 삼아 질병과 죽음 그 사이에서 발생되는 고통들을 돌보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죽음에 그 가치를 두면서 인류가 공존과 공생을 통하여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정토를 구현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정토마을은 위와 같은 목적을 실천하기 위해 '의료'와, '임상교육'이라는 두 가지의 방법을 선택하였고, 인간이 겪어 내야하는 영적고통완화에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 나가기로 했다.

 

2000년 1월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시설을 청주에 준비하여 매년 100여 명이 넘는 호스피스환자의 죽음을 13년간 돌보았고, 그 시작은 현재 울산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측면의 임상교육이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과 마하보디교육원에서 이루어지고, 그 자원들은 또 다시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기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정토마을 공동체의 가치이며 영성이다.

 

1997년부터 이루어진 기부와 모금이 정토마을 공동체가 수행하는 모든 분야의 밀알이 되어 주었다.

조건없는 헌신이 담겨진 기부와 자원봉사는 현재 국경없는 민들레가 되어 해외의료봉사로 이어지고 있고, 그렇게 정토마을은 의료적 측면과 교육적 측면으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조금씩 확장되어가고 있다.

 

붓다께서 2700년 전 인도 기원정사라는 사찰 안에 열반당이라는 호스피스시설을 지어 죽어가는 환자를 직접 보살펴드렸고, 21세기에는 정토마을공동체 사람들이 붓다의 유지를 받들어 죽어가는 이들을 보살펴주고 있다.

 

지금 정토마을은 좀 더 많은 이들, 가난한 나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질병과 죽음에 관여하여 그들의 마지막 삶의 질과 죽음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정토마을 공동체에서 함께 일하는 모두는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가치를 가지며, 그 의미를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진 않았지만, 풍요를 잃지 않는 지혜로 살아감에 만족할 줄 아는 삶을 배우고 있다.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정토마을 공동체 가족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 전하며 특히 호스피스에 마음 기우려 주시는 모든 분들께 더욱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함께 우산을 쓰고 가는 이 길에 폭우가 내려도 나는 당신이 곁에 있어 더욱 힘이 납니다.

 

-능행 합장

세상을 떠난 랜디 포쉬(Randy Pausch) 교수는 건강문제로 대학을 떠나면서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행한 <마지막 강의>에서 아주 감동적인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행한 강의 내용 전부가 감동적이었지만, 저는 그 중에서도 특히 '벽 이론(The Brick Walls Theory)'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가 언급한 '벽 이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But remember, the brick walls are there for a reason. The brick wallsare not there to keep us out. The brick walls are there to give us achance to show how badly we want something. Because the brick wallsare there to stop the people who don't want it badly enough. They'rethere to stop the other people.”
“벽돌담은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 벽돌담은 우리를 안으로 못들어가게 하기 위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벽돌담은 우리가 그 어떤 것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를 보여줄 기회를 주기 위해 그곳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벽돌담은 그것을 아주 간절히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벽돌담은 다른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 그곳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Remember brick walls let us show our dedication. They are there to seperate us from the people who don't really want to achieve their childhood dreams. Don't bail. The best of the gold's at the bottom of barrels of crap.”
“벽돌담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전심전력을 보여주도록 시킨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것은 우리들을 어린 시절의 꿈을 달성하기를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키기 위해 그곳에 존재합니다. 결코 중단하지 마십시오. 가장 좋은 황금은 쓰레기더미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합니다.”

결국 오래 전에 꾸었던 까마득한 높이의 성벽(城 壁)은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언젠가는 넘어야할 장애물인 것이며, 이러한 장애물이 존재하는 것은 꿈을 달성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자를 테스트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모두들 망연자실(茫然自失) 주저앉아 좌절하고 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연(憤然)히 앞장서 떨치고 일어나 벽을 타고 오르며 희망(希望)을 노래 하는 자그만 담쟁이 잎 하나...

그런 담쟁이 잎들이 존재했기에 인류의 역사는 그나마 발전하는 방향으로 면면(綿綿)히 이어져 내려 왔을 것입니다.

 

담쟁이 

도종환詩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2014년 자재병원을 건립하고 푹 삶긴 풀처럼 땅을 베고 누워있을 때 저는 이 시를 만났습니다.

저는 어느 날 병원을 완공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놀려버린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병원 앞 길목에 살고 있는 담쟁이를 만나 그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아~하

담쟁이 넝쿨은 벽을 결코 뛰어 넘으려 하지 않고 천천히- 기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저 담쟁이는 벽에 살면서도 저렇게 푸른 잎을 피우는구나 생각 하니 담쟁이의 인욕과 정진의 힘에 한없이 고마운 마음이 흘러갔습니다. 어린 담쟁이의 삶의 터전은 흙 한 톨도 없고 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메마른 벽, 그 벽을 의지하여 푸른 잎을 피우며 서로 힘을 내고 있었습니다. 서로 함께 힘을 모아 의지하며 배려하고 힘이 되어주면서 벽을 넘는 모습에서 저도 또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정토마을을 위해 기도하는 후원 가족들이 곁에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담쟁이는 뿌리로 벽을 뚫고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벽을 붙들고 포기하지 않았던 거죠.

혼자만 살 길 찾겠다고 달려가지 않고, 천개의 이파리가 손에 손을 잡고 한 발짝씩 나아가느라 저렇게 느리게 가면서도 어느 견딜 수 없이 뜨거운 날에도 말없이 벽을 오르는 담쟁이처럼 저 또한 모든 일에서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 하지 않으면서 삶의 벽을 오르고 있는 듯 합니다.

메마르고 거친 회색 벽의 환경을 푸른 잎으로 덮어 주는 담쟁이처럼 정토마을을 일구는 사람들과 함께 저도 질병으로 갈라진 마른 벽을 푸른 사랑으로 덮어 가 보려합니다. 담쟁이처럼 걸어 보려합니다.

 

정토마을을 사랑하는 그대와 함께 손잡고 벽을 넘어 저 푸른 초원으로 나가보려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때때로 벽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권력과 물질 그리고 권위로서 벽을 파괴 할 수도 있지만, 누구나 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길, 타인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되는 길, 길 없는 길에선 사람들에게 희망의 길이 되어주길 그 길을 담을 넘는 담쟁이처럼 그렇게 걸어가 보려합니다.

정토마을 국경없는 민들레 홀씨되어 그대와 나는 지금 담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계간지 정토마을. 2019 봄호)

 

기해년 오월 능행 합장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물질문명 시대에 정작 우리 인간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교수, 총장, 국회의원, 큰 기업 사장, 큰스님, 작은스님, 아이, 어른 등 수천수만 가지 사연을 안고 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그런 현상적인 요소들과 상관없이 각각 달랐습니다. 제가 본 많은 죽음들은 제게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주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꿈에서 꿈을 꾸면서 꿈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꿈은 죽음이 목전에 와서야 비로소 깨어지게 됩니다. 그 이전에는 꿈을 깰 수가 없어요. 내가 죽을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면서 살아요. 그렇지만 실제로 내가 죽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내가 오늘밤에 죽을 수 있어.’라고 인식하고 사는 분들은 과연 몇 분이나 있을까요?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인식해서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만약 우리가 ‘오늘 밤에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생활하는 관점이 달라지고, 나에게 주어지는 한순간을 대면하는 나의 의도가 달라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꿈속에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시간을 한정 없이 주면서 언제까지 살 것이라고 최면을 겁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같이 죽을 수 있습니다. 오늘밤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죽어지면 대우주는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도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욕망에 끄달려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원망하고, 애정으로 애욕으로 뒤범벅이 된 삶을 살다가 결국 죽을병에 걸리고, 병에 걸렸다 해도 죽을 거라는 걸 인식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죽음이 목전에 와서 숨을 헐떡이면서 사대가 무너질 때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꿈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그때는 우리 인생이 너무 늦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꿈을 꾸게 되다가 종착역에 가서야 만나게 되는데 그때는 너무나 조급하고 초라하고 비참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 앞에는 대기업의 회장도 소용없어요. 저는 돈이 많으면 죽을 때도 잘 죽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걸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죽음은 너무나 냉혹하고 정직하고 진실합니다. 죽음은 여러분이 죽어가는 3개월, 6개월, 1년 안에 여러분들이 살아온 일생의 결과를 오롯이 다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것은 내가 심어놓은 농작물과 같습니다. 돈이 많고, 권력이 있고, 명예가 있을수록 그 죽음은 더 외롭고 처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자식이 열 명이 있어도 죽음 앞에서는 소용없습니다.

하나, 사랑하면서 살아가기
우리나라에서 일 년에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8만 명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암으로 판명되는 사람은 12만 명입니다. 남성 환자의 3명에 한 사람, 여성 환자의 5명에 한 사람이 암환자입니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는지에 따라서 내가 고통스러울 때, 위기에 있을 때, 죽어갈 때에 삶을 마무리하는 결과가 달라지게 됩니다.
너무 잘살려고 애쓰지 마세요. 대충사세요. 좀 둥글둥글하고 소통이 가능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 되세요. 여러분 모두가 여러분의 자식도 품어주지만 남의 자식도 품어줄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살아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년에 100여 명의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인간 존재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말 한 마디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정직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내 자신을 사랑할 때 남도 사랑할 수 있습니 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가 없어요. 죽음의 순간에 많은 이들이 가장 후회스러워했던 것은 돈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야 할 수 있는 안타까운 그 말 한마디, “내가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다.” 였습니다. 온 가슴으로 나와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세상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 가장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머리로 사랑하지 말고 가슴으로 사랑하세요. 머리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에요. 그것은 그저 생각하는 거예요. 사랑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에요. 온 가슴으로 사랑을 하게 되면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고, 화해하지 못할 것이 없고, 꼴을 봐주지 못할 것이 없고, 감사하지 않을 것이 없고, 사랑하지 못하는 존재가 결코 없답니다. 가슴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세요. 그래서 죽을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 마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둘, 나누면서 살아가기
여러분들이 소유하고 공유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을, 그 중에서 1%만 세상으로 되돌려주세요. 왜냐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산소, 땅, 이 모든 현상이 공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티끌 하나도 공짜가 아니에요. 여러분은 여러분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천지만물이 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면서 천지만물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편안히 살고, 나 혼자만 생각하고, 내 가족만 생각하고, 내 인생만 생각하는 삶은 참 재미없고 빡빡한 삶이면서 동시에 여러분이 언젠가는 갚아야 할 많은 빚들이 그 속에 녹아 있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대가없는 사랑을 받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 못 갚으면 다음 생, 그 다음 생까지도 갚아야 되겠지요. 그렇다면 차라리 살면서 건강할 때 이 세상과 함께 공유하고, 여러분도 대가 없이 조건 없이 나눠줄 줄 아는 큰 가슴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에게 인색한 사람은 다른 이에게도 인색합니다.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건강할 때 이 세상과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살다가 죽음을 맞을 때 고통 없이 죽어가는 죽음은 겸허하기까지 합니다.

셋, 돌보면서 살아가기
지금 이 시대는 죽음의 문화가 상실되어 가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삶의 가치도 생명의 존엄성도 상실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부모가 밖에서 돌아가시고 하면 업고 집으로 뛰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서 죽고 싶어도 병원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어떻게 죽어야 하고, 죽은 사람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봅시다.
적어도 죽음은 안전해야 합니다. 죽음이 안전하게 보호받는 사회가 삶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입니다. 내 죽음이 안전하지 못한 것은 우리가 죽음을 안전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죽어가는 사람을 돌볼 때 죽어가는 사람이 온전히 깨어서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에 산파가 돕는 것보다 100배 이상 더 깊이, 더 섬세하게 죽어가는 사람을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을 전혀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의 부모나 누구라도 죽음이 안전하도록 깨어서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가르치는 선생님도 어른들도 없습니다. 죽음이 안전하도록 죽음을 바로 알고 나와 내 주변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죽음의 가치가 바로서야 삶의 가치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봅니다.
살 가능성보다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많은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사랑하지 못해서 후회하면서 죽지 않도록 지금부터 가슴으로 사랑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이 세상에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아주 조금이라도 나누면서 살아가면 참 아름다운 삶이 될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 모든 이들의 안전한 죽음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 계간지 정토마을 2009.겨울호)

2014년 2월 24일부터 BBS불교방송에서 방영된 능행스님의 법문 입니다.

 

1-죽음의 중심에 서다-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25557

 

2-가슴 설레는 또 다른 삶을 위하여-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25943

 

3-죽음의 여정에서 이 순간의 의미-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26145

 

4-괴로움의 원인은 갈애-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26470

 

5- 영적 돌봄의 필요성 -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26722

 

6-삶에서의 또 다른 삶을 위하여-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27007

 

7난치병 어린이들-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27338

 

8-흔들리는 신심 그리고 개종-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27597

 

9-전통죽음문화의 상실 그리고 회복-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27916

 

10-삶이주는 기회와 희망(종착역에서)-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28423

 

11-임종간호의 필요성-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28755

 

12-죽음에 대한 표상-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29016

 

13임종의식에 대하여-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29836

 

14-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대화 환자를 힘들게 하는 대화-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29839

 

15-임종의식에 대한 재정리-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30237

 

16-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정토수행의 필요성>-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30613

 

17삶의 종착역-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31836

 

18바르도-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31837

 

19-정토세계에 대한 믿음이 담긴 수행의 필요성-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31838

 

20-죽어감에 대한 의식-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33825

 

21-죽음을 이용한 영원의 길-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33826

 

22재생-

http://www.bbsi.co.kr/HOME/BBS_PLAYER/?PG_TYPE=VOD&ProgramCode=174&IDX=13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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