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어여삐 보아 당신 며느리로 받아주신 시아버님을 폐암이라는 무서운 병으로 아무 준비 없이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허전하고 슬픈 마음을 달래기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능행스님을 만나 병원 중환자실 봉사도 하고 독거노인도 돕고 결식아동도 도우며 다른 사람을 위해 마음과 시간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꽃동네로 실습과 견학을 가서 만난 호스피스병동의 환자가 반가워하며 자주 오라는 말과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빨리 호스피스병동을 마련하여 스님과 헤어지기 싫어하시는 환자를 모시고 살아야지.’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그해 초파일 컵등(cup燈)을 만들어 법주사, 동학사 입구에서 불자들에게 나누어주면서 호스피스요양원 필요성을 홍보하던 일, 호스피스환자를 위한 바자회에서 미역과 다시마 김 젓갈을 팔아 기금을 마련하던 일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어렵사리 부지 매입하고, 차가운 초겨울 날씨에 물도 전기도 없는 산자락에서 스님은 어디서 용케 컨테이너 한대 끌어다 놓으시고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나이는 거꾸로 먹었는지……, 아직도 철이 덜 든 저는 눈물이 핑 돌도록 스님이 안쓰러워도 철야기도 한번 동참할 마음을 내지 못했습니다. 십여 년 능행스님과 함께한 세월 가운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고 후회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스님의 기도 원력과 피나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정토마을, 지금이 있기까지의 어려웠던 사연을 어떻게 제 짧은 글재주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조립식으로 대충 건물이 세워지고 첫 환자가 입소할 때만 해도 우리는 해냈다는 환희로움에 가슴이 떨렸습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환희로움이 공포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을 마감하는 환자 들과의 생활은 정말 내 마음을 삭막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죽음, 저런 죽음, 또 죽음……,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뛰쳐나가고 싶었습니다. 활기와 희망이 넘치는 사람 속에서 나도 생동감 있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 갈등 속에 괴로워하던 어느 날이었습니 다. 능행스님께서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부장님, 시내를 다 돌아도 석류가 없대요. 도공스님이 석류가 잡숫고 싶다는데 국산은 철이 아니라 없고, 수입은 과수농가 시위로 중지되었다네요. 어쩌면 좋아요?
먼 곳에서 세미나 참석에 지치시고 하루 종일 운전하시고 힘드실 텐데도 불구하고 편찬으신 도공스님 드릴 석류를 사신다고 시내를 헤매고 계실 스님을 생각하니 정신이 번뜩 났습니다. ‘내가 너무 나만 생각했구나. 나만 이곳에서 탈출하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정말로 어려워도 참고 묵묵히 견디는 정토식구들과 능행스님이 눈에 안 밟히고 살 수 있을까?’ 이러한 자책감과 번뇌와 갈등이 저를 보이지 않는 사슬로 얽어매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정토의 환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스님을 두고 떠난다 하더라도 정토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제일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래, 여기서 행복을 찾자. 이곳에 몸과 마음을 의지하는 환자들에게 내가 조그마한 힘이 되어보자.'
건강한 이가 죽음을 기다리는 이의 하루하루를 생각하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마음도 몸도 지치고 힘든 환자들의 안식처가 되어보고자 하는 의지는 저에게 큰 버팀목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는 행복하길 추구하고 죽을 때는 아름답게 죽기를 희망할 것입니다. 사랑 속에 살면서도 행복을 모르고 자신이 하는 일을 스스로 낮게 만들어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행복하게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밝고 따뜻한 기운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즐겁고 재미있게 하면서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행복주머니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행복의 진리는 지극히 단순한데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제 자신을 사랑하고 저를 아는 모든 이가 저를 사랑해 주는 것 같다고 느낄 때 행복합니다. 지금 저는 매우 행복합니다. 언제든지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는 도량 안에서 생활할 수 있어 감사하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환자를 보면 나 스스로 호흡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봄․여름․가을․겨울 변화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정토를 아끼는 많은 후원가족 여러분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이 많아 너무너무 행복합니다.(2008년 겨울, 정토마을 계간지)
김희자(무량심) │청주 정토마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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