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여름 능행 스님에게 급한 연락이 왔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온 전화였다. 임종 직전의 환자 한 분을 돌봐줬으면 한다는 전갈이었다. 많은 종교인이 찾아와도 도통 반응이 없는 묘한 분이라는 얘기와 함께….

■ 능행 스님, 법당 겸 병동 세워 봉사

세상에나. 머리가 헝클어지고 뼈만 남은 환자를 씻겨놓고 보니 스님이었다. 출가 뒤 24년 선방에서 정진하느라 토굴 하나 장만 못했다는 얘기와 함께 그는 비구니 능행 스님의 손목을 부여잡고 간곡한 부탁을 했다.

"비구니 스님. 나는 이렇게 죽어가지만 나중에 병원 하나 세워주소. 내가 죽어서라도 도와줄게…."

이틀 뒤 스님 시신을 벽제 화장터에서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능행 스님은 서원 하나를 세웠다. "그래. 진정 수행다운 수행, 부처님 가르침에 합당한 보살행에 전념하리라. 죽어가는 이들과 함께 수행을 하는 호스피스(임종을 앞둔 환자의 평화로운 죽음을 돕는 봉사)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병동을 세우리라."

충북 청원군 미원면 구녀산 기슭의 정토마을. 밤이 되면 쏟아지는 별빛이 유난이 고운 이곳이 바로 그런 내력을 안고 2000년에 세워진 법당 겸 병동이다. 물론 3년 모금활동이 큰 보탬이 됐다.

89년 이후 충북 음성군 꽃동네 등을 돌며 봉사했던 능인 스님의 호스피스운동이 자기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린 곳이기도하다. 또한 불교계 최초의, 또한 유일한 독립 호스피스 센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동안 정토마을은 '아미타호스피스 운동'의 센터로 자리 잡았다.

아미타 호스피스란 기존 호스피스운동에 불교 아미타 신앙(중생을 건지려는 아미타부처와 정토를 믿는 타력신앙)을 결부한 현대적 봉사수행을 말한다.

실제로 이곳에선 한 해 두 차례 스님.불자 대상으로 호스피스 교육이 이뤄진다. 20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불교호스피스연합'을 결성한 데도 정토마을의 역할이 컸다.

그러면 삶과 죽음이 무시로 오가는 공간 정토마을의 실제는 어떨까. 의외로 소박하다. 크지않은 아미타 법당 한 채와 그 옆의 팬션처럼 보이는 병동이 전부다. 의사 두 명, 간호사 네 명, 병상은 15개 규모다.

"우리네 삶은 빗방울처럼 한차례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산다고 하는 것은 죽음 이전의 한시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요즘 품위 있는 죽음을 의미하는 웰다잉(Well-Dying), 웰엔딩(Well-Ending)이 자주 거론되지만, 호스피스 운동이야말로 그런 취지를 현실에 옮기는 가장 훌륭한 봉사이자 수행입니다. 질병과 죽음을 경험하면서 인간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보살피고 돕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호스피스야말로 '수행의 꽃'이라고 봅니다."

스님은 거듭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한다'(上求菩堤, 下化衆生)는 불교의 대승 정신에 호스피스운동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스님의 활동은 아직은 사회봉사에 소극적인 불교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크게 시사적이다. 불교계도 80년대 이후 질병.빈곤 등 사회복지에 눈을 많이 돌리고 있으나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하긴 아직 이른 편이다.

스님은 자신의 이런 신앙관과 정토마을 활동은 담은 단행본 '섭섭하지 않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도솔)를 다음주 초 펴낸다. 몸이 크게 아파 병석에 누웠던 2년 전 문득 '누군가 이런 수행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하나 둘 메모해둔 원고가 바탕이 됐다. 그간의 활동을 일기체 형식으로 적어 얘기가 생생하고, 그런 만큼 설득력도 크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출처: 중앙일보] 호스피스로 피어난 '수행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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