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누워 있는 어미에게 어린 딸이 꽃을 꺾어 손에 쥐여 준다.어린 딸을 홀로 이 땅에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어미. 그 어미의 식어가는 가슴에 어린 딸은 슬며시 함께 드러눕는다. 뼈만 앙상한 어미의 가슴을 만지며 식어가는 어미에게 자신의 따뜻한 체온을 나누어주고 있나보다. 강물 처럼 출렁이며 아이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있으니 나 역시 눈물 이 흐른다.

 

한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어미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죽어 누워있는 어미의 가슴팍에 온몸을 묻고 나란히 누워 있다. 아버지는 뜰에서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나뭇가지를 붙잡은 채 쪼그려 앉아 있다. 이 세상에 남은 가족은 이제남편과 딸 둘 뿐이다.

 

엄마 이제 그만 보내드리자고,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어린 저 딸에게 어떻게 이야기할까 망설이는데, 새들은 눈치도 없이 맑은 목소리로 지저귀고 산사의 풍경소리는 왜 이리도 청명한 것인지…….

 

"엄마, 엄마~."

 

아이는 조그마한 손으로 어미의 가슴을 만지며 흐느꼈다.

 

"울지 마라. 제발 울지 마라, 아가야! 너는 나의 그림 자요, 너는 내 삶의 의미요, 너는 나의 기쁨이요, 너는 나의 사랑이란다."

 

아내를 살리려고 애쓰던 남편이 아이에게 말했다.

서로의 그림자처럼 함께 살던 비둘기 부부가 정토에 온 것은 지난 늦은 가을이었다. 남편은 오직 아내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였고, 아내 역시 그런 남편을 홀로 두고 갈 수 없어 꼭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정토에서 추운 겨울을 보냈다. 어쩌면 그렇게도 두사람이 서로에게 지극 정성 일 수 있을까.

구녀산 자락에 참꽃이 붉게 타오르고 매화 향기 가득한 봄날, 보살님께서는 창문 너머 저만치 피어있는 대문지기 참꽃 두 그루를 보고 기뻐하셨다. 몸은 야윌대로 야위어 뼈와 가죽만 덮인 앙상한 모습이었지만 소녀처럼 아름다웠다. 기력이 떨어져 점점 처지는 두 손을 힘들게 모으고, "스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얼마 후, 볼 일이 있어 남편이 잠시 아내 곁을 비울 일이 생겼다. 남편은 영 불안했는지 가는 도중에도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결국 핏기 하나 없는 아내가 남편에게, 나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며 젖먹은 힘까지 다 해 힘겹게 말했다. 모처럼 남편이 자리를 비운 잠깐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스님, 저 안 울어요. 저 절대로 안 울어요."

 

마음속으로는 피보다 더 깊은 오열을 쏟아내면서도, “스님, 저 절대로 울지 않아요. 울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 울지 마요!"

"스님, 결혼생활 20여 년 동안 내 자신의 삶은 없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그냥 딸아이를 믿고, 그리고 아빠도 잘 살것이라 믿고 이젠 가렵니다. 이렇게 가도 되겠지요……? 전 요즘 꿈만 꾸면 웃고있는 제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잠이 들면 정말 행복 하답니다."

 

꿈 속에서 세 사람의 고운 소녀가 당신을 시봉하고, 당신이 걸어 다니는 곳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너무나 친절히 맞아주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보살님. 아마도 목숨이 다하면 그런 곳으로 갈 것 같다며 무척 행복해했다. 나는 부디 정신을 맑게 하시고, 떠나시면서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염송하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날 늦은 저녁 에 남편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수화기를 들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남편이 아내를 불러놓고 하염없이 우나 보다. 혹 당신 없는 사이에 아내가 저 세상으로 떠날까봐 무척 두려운가 보다. 밤이 새고 나면 부리나케 달려올 남편. 전화를 끊고나서 아내가 내게 말했다.

 

"남편과 딸아이가 너무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어서 저를 죽게 해주세요. 제발……."

 

부처님, 이럴 땐 정말 어찌해야 좋습니까? 부처님! 굽어 살펴주소서. 남편과 딸아이가 자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빨리 죽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저 보살님을 제발 도와주소서.

 

며칠 후 나는 남편을 불러 차분하게 말했다. 부인께서 어느 날 혼수상태에 빠지면, 그땐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 부인 마음 편히 가시도록 이야기 하시라고. ‘여보! 잘 가거라. 나도 때가 되면 당신 곁으로 가마. 나 잘 살거다. 건강하게 아이랑 잘 살다가 당신 간 곳으로 나도 갈게. 그러니 아무 걱정 마라’하며 서로 행복을 빌어주는 작별인사를 해 주시길 부탁드렸다. 남편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네, 스님 올라가서 이야기 좀 해볼께요."

 

그분이 앉아 있던 바닥에는 눈물자국이 흥건했다.

사랑하는 어린 딸과 남편을 두고 세상을 떠날 것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짐에 피눈물을 흘리던 보살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울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몸이 앙상하게 야위어가는 죽음 앞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보살님. 엄마품에 매달려 그렁그렁 맺히던 아이의 눈물과, 헤어짐에 고통스러워 하던 남편의 눈물……. 이생에서의 이별과 슬픔은 얼마나 깊고 질기고 아픈 것일까.

 

저 대문 곁에 핀 참꽃이 제 아무리 예뻐도 열흘을 못 간다 하니, 우리 인생이라고 별수 있으리. '만나지 말아야지, 만나지 말아야지, 애달픈 인연일랑 만나지 말아야지.'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곱고도 아린 가족들의 눈물이 자꾸만 내 눈 속에 후두둑 참꽃으로 피었다가 진다.

 

[능행스님 저서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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