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에서는 유일한 호스피스 병동인 울산 ‘자재요양병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능행 스님이 휠체어를 타고 있는 말기 암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요양병원 운영하는 능행 스님

 

“스님도 죽음이 두려우신가요?”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스님이다. 평균 사흘에 한 번씩 죽음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가 지켜본 죽음은 대부분 ‘비참한 죽음’이다. 행려병자들이나 말기 암환자들의 죽음이다. 누구의 따뜻한 위로도 없이 홀로 고독하게 죽어가는 행려병자, ‘혼절’할 만큼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 죽어가는 말기 암환자들의 죽음이 일상사였다. 그러면 죽음에 익숙할까? 익숙하다면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지는 않을까? 오랫동안 수행했기에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스스로 근원으로 돌아갈 수행력을 갖춘 스님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세상 들여놓았던 몸 떠나는데
어찌 아프고 힘들지 않을 수 있나

 

엄마 뱃속 태아도 7달째면
자궁 밖 삶을 준비하듯

 

그 너머의 또 다른 삶 위해
일상 속에서 죽음을
얘기하고 배우고
사랑해야

 

한 해 15만㎞씩 돌아다니며 모금
108개 병상 ‘자재병원’ 짓고
해마다 120여명 죽음 함께 살아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31살에 출가

스님의 얼굴에 언뜻 어둠이 비친다. “처음엔 엄청 두려웠어요. 때때로 죽음이 너무나 낯설고 허망하게 느껴졌어요. 두렵고 막막해서 죽음으로부터 멀리 떠나버리고 싶었어요.” 스님은 “고통의 한계에서 이를 꽉 물고 마지막 생을 버티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하면 저들의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나 하는 고민만 남아요”라고 말한다.

 

능행 스님은 불교계에서는 유일한 호스피스 병동을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31살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법정 스님처럼 살고 싶어 출가했다고 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불교는 책을 통해 접했다. 그냥 법정 스님이 좋았다. 하지만 그는 출가 후에 한 번도 법정 스님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 조용한 산사에서 수행을 하기보다는 행려병자가 나뒹구는 병원에서 그들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5~6년 하니 그런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2004년 인도에 가서 달라이 라마의 강연을 듣고 ‘발심’이 생겼다. 출가한 뒤 처음이었다. “일체중생의 죽음과 고통을 두려움 없이 바라보고 도와주겠다고 결심했어요.”

 

남편 품에서 맞은 아름다운 이별

 

자재병원 마당에서 가을을 명상하는 능행 스님.

스님은 1999년부터 정토마을 호스피스 센터를 지어 운영하고 있었다. 한 해 15만㎞를 돌아다니며 병원을 짓기 위해 일반인들과 불자들에게 호소를 했다. 지난해까지 쉼 없이 모금하고 후원받아서 울산에 새로 땅을 사고, 현대식 병원을 지었다. 108개 병상이 있는 ‘자재병원’은 7천여명의 후원자가 매달 1만~3만원씩 내는 후원금으로 운영한다.

 

한 해 스님이 보는 임종은 120명 정도. 그들의 임종만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스런 마지막 이승에서의 삶도 함께한다. “응급환자를 위해 개발된 첨단 의료기술이 응급환자가 아닌 임종단계에 있는 환자들에게 사용되면서,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기가 힘들어졌어요. 온갖 기계와 호스에 의지한 채 생명을 유지하니, 기계가 인간의 장기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죠. 결국 마지막 단계에서 대부분 환자들이 제대로 된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숨을 거둬요.”

 

스님에게 “혹시 아름다웠던 죽음은 없었나?” 물었다. 스님은 한 부부의 이별 장면을 이야기해줬다. 7년 전이다. 부부는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소박한 삶을 살고 있었다. 아내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3년간의 투병생활을 하다가 마지막 삶을 정리하려고 정토마을로 왔다. 아내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 몸을 놓고 훌훌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날마다 “아프더라도 같이 살자. 떠나지 마라”고 속삭이는 남편을 두고 갈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내는 꿈을 꾸었다. 아름다운 소녀가 다가와 같이 가자고 해서 뒤를 따라갔더니, 깨끗한 물이 흐르고 수많은 꽃이 피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곳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문득 남편에게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꿈에서 깨어났다. 아내는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여보, 그곳은 너무너무 아름다웠어. 몸이 하나도 안 아팠어. 아마 그곳이 극락세계인 것 같아. 나중에 당신도 와. 우리 그때 다시 만나자.”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그렇게 좋으면 가야지.” 남편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내에게 떠나도 좋다고 허락을 했다. 부인은 남편 품에 안겨서 잠자듯 떠났다.

 

스님은 이제는 ‘품격있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에만 전략과 계획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도 전략과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스님은 “태어날 때도 7개월 정도 되면 태아가 자궁 안에서 자궁 밖의 독립된 삶을 준비합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그렇게 또 다른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태아가 자궁 밖에 존재하는 밝은 빛과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서 모르듯이 누구도 죽음 너머에 대해 모르지만 분명히 밝은 빛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저 그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90%가 주민증 사진을 영정으로

스님은 품격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죽음을 이야기하고 배우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는 첫번째 방법은 죽음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안에 담아두면 더 큰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오니까요.”

 

스님은 죽음을 당하지 말고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세상에 들여놓았던 몸이 떠나는데 어찌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을 수 있나요. 그것조차 견뎌야 하는 것이 이생을 받는 대가입니다.”

 

스님은 영정사진을 주민등록증에 있는 사진을 확대해 사용하는 이들이 아직도 90%가 넘는다고 한다. 그만큼 죽음에 대해 준비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한 해를 넘길 때마다 사진과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훌쩍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본인이나 가족이 당황을 하지 않아요. 죽음에 대해 학교에서도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곳에서 죽고 싶은지, 어떤 모습으로 삶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지’에 대해 확실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 부를지라도 선뜻

 

스님은 최근 말기 침샘암으로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선생님에게 내일은 없어요. 살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요. 단 하루만 잘 살자고 다짐해봐요.”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그대로 수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인과 자식들과 하루하루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다고 한다. 의사들은 한 달을 못 버틸 것이라고 했는데. 이미 석 달이 지났고, 병세도 크게 좋아졌다고 한다.

 

“법정 스님은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밀려오는 거대한 죽음의 파도를 벗어날 수 없으며 삶이라는 배를 뒤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죠.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서툰 항해사들입니다.” 스님은 최근 자신의 호스피스 경험을 통해 겪은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담은 <숨>(마음의숲)을 펴냈다.

 

 

울산/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well/718941.html#csidxd5a08408aea97b585043254f138d010 

 

라제시 다사|원네스 유니버스티

원네스란 다양한 차원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여러 차원에서 의 분리심과 경계심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분리심으로부터 언어별, 국가별 분리 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분리심이 없어지고 통합되면 하나됨이 이루 어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의 하나됨이란 내면적 인 경험이고 변화라고 보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바깥세상이 아니라, 내면의 상 태에서 세상을 어떠한 관점으로 보느냐 경험하느냐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됨이란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자신의 여러 가지 면을 수용하게 되면 그것이 하나됨으로 이루어질 때 다른 것을 보는 것이 달라집니다.
저는 12년간 수천 명의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고 또한 더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아 왔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싸우지 않게 되었으며, 더 이상 갈등 안에서 애쓰고 있지 않고, 갑작스럽게 자기 주변의 사람들과 세상과의 연결성을 맺는 것에 수월함을 느끼게 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원네스의 목표 중 하나는 인류에게 어떠한 조건도 없는 자유로움을 얻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모두가 그 자유를 향 해서 달려갑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 명상, 혹은 경전을 통해서, 또는 남을 도와주면서 우리는 달려왔습니다. 저 역시도……
자유라는 과정을 향해서 가게 되면 늘 시작은 고통의 시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 다. 그리고 우리는 고통에 친숙합니다.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인가요?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내 자신에 대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고 우리 삶에서 그것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를 다양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아가 있다면, 모든 사물을 그대로 봐줄 수 있는 것이 자유이며, 자신의 욕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도 자유입니다. 불교는 아싸바스(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철학적인 자아로부 터 해방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다시 말해 자유란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 니다. 그렇지만 공통적으로는 —자유로움을 얻게 된다면— 누구든지 모든 것들과의 연 결성이 깊어집니다. 자신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주변 사람들이나 세상과도 깊은 관계가 이루어지고, 자연과의 관계도 그리고 고차원의 의식과의 관계도 깊어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어떠한 길을 선택해서 그 행로를 갈 때 우리는 죄악의 성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마음으 로부터 해방을 얻어 간섭받지 않고 작용받지 않는 단계로 가기 위해서 그 행로를 진행 합니다.
마음이 중단되는 고요함까지 어떻게 가며, 또한 그 고요함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요? 자유로워지는 것은 누구나 중요하다고 느끼며 가능하다고도 여깁니다. 그런데 무 엇이 그것을 가로막나요? 가로막는 것은 바로 무지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에 주의를 기 울인다면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가능합니다. 자유로움을 성취하기 위한 핵심은 주시입 니다. 그리고 주시를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은 특정된 감정의 집착입니다.
감정의 집착을 원네스에서는 ‘충전’이라고 말합니다. 경험에 의한 집착에 충전이 남 아있으면 그것이 고통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주시하고 자각하게 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예를 들면 증오심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저 사람이 저렇게 하기 때문이야.”라고요. 그런데 상대방이 어떻게 해서 내가 화가 나는 것이 사실입니까?


고통은 관점에 있다.
자유라는 것을 향해가는 과정의 첫 출발은 고통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고통의 챔피언들입니다. 그 의미는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해 공부를 해왔다는 얘기입니 다. 고통은 무엇인가요? 육체적 심리적으로 아는 경험이며 불편한 경험들입니다. 그리 고 둑카라는 존재성의 고통이고 영적인 고통도 있습니다. 고통은 아주 아픕니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 방해를 주고 불편함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고통을 겪습니까? 고통을 겪는 이유는 무지에 빠져있기 때문입니 다. 가정하고 있는 무지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가정 중의 하나는 상대방이 책임요소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통이란 남 탓을 하는 과정입니다. 내면에 일어나는 ‘기분 나쁨’에 대해 남 탓을 하며 부연 설명하는 과정이 바로 고통입니다. 남에 대해서는 지배 하거나 해명하려 들고, 자신에게는 변명이라는 부연 설명들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고통을 멈추게 합니까? 그러한 과정 자체가 모두 고통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고통의 핵심은 아예 들여다보지도 못합니다. 그저 그 과정 속에 빠져 있게 됩니다.
고통이란 것은 끝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통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고통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상대방과 상황이 고통의 원인이라고 믿는 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상대방과 상황에게 주의가 묶여서 주의가 밖으로 빠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황을 바꾸고 사람을 끊임없이 바꾼다 고 우리의 고통이 종료됩니까?
바가완께서는 고통이란 ‘관점’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통은 ‘상대방이나 상황이 고통의 책임요소’라고 보는 무지 때문이며, 상대방이 책임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고통을 들여다보고 주시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상대는 고통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어떤 분에게 “당신은 매우 똑똑하시고 영리하십니다. 진리에 가까우십니다.”라고 했는데 그분은 그 말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 면 그분은 그 자신이 똑똑하고 진리에 맞다고 믿은 적이 없기 때문에 제 말을 놀린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 분의 고통은 저와 무관합니다. 고통이 사실 에 있다면 모든 사람에게 사실은 고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넌 바보 같다.”라고 말해도 기분이 좋은 사람도 있거든요. 고통이란 ‘바보 같다’라 는 말과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이란 우리가 그 상황과 사람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의해 일어납니 다. 이것을 자각하고 알아차리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습니 다.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순간 모든 외부요소가 잘라지듯이 주의가 더 이상 그리로 가 지 않습니다. 더 이상 밖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통이란 우리의 관점에 있으 니까요. 그런데 좋은 관점에 있다고 자유로운가요? 좋은 관점은 나쁜 관점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진실이 아닙니다. 관점 자체가 바로 고통입니다. 어떠한 관점이든 이것 은 주장이며, 주장을 하게 되는 순간 당신이 그것이 됩니다. 그것에 당신이 묶이고 당신 이 그 관점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고통이 됩니다.

고통의 회피
어떻게 관점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우리 과거의 경험에 충전이 있는 한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충전은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일어납니다. 이 해결되지 않은 경험은 끊임없이 마무리 지으 려고 계속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부족하고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닌 사람은 그 지닌 상태로 삶을 이어가며, 색안경을 끼고 그것을 투사하게 됩니다. 그러면 서 그 색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리고 살면서 어떠한 이유를 들이대서라도 사랑을 못 느끼고 거부당했다고 호소합니다. 과거의 경험이 완전하게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어떠한 것이든 완전하게 완성되게 경험하면 그것은 아이처럼 깡충깡충 뛰고 싶을 정도의 기쁨과 환희로움을 줍니다. 상대방이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통을 지속 시킵니다. 그러나 어떠한 변화를 주려하지 않고 남의 탓도 하지 않고 부연 설명하지 않으면 그것이 고통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고통도 완전하게 경험하면 기쁨과 환희로 전환됩니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마음은 절대로 이렇게 해내기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부연 설명을 계속합니다. ‘분석하면 안 돼’도 분석이며 ‘비교하면 안 돼’도 비교입니다. 그리 고 ‘생각을 없애야 해’도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마음을 끝낼 수 있을까요? 고통을 온전히 경험하기 위해서는 도망하고 있는 그 자체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마음 의 성품은 ‘도망치기’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은 절대적으로 아픔을 경험하 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픔을 경험하면 그것이 환희를 주는 것이 사실입니 다. 고통이 다가오는 순간 즉각적인 반응은 회피입니다. 육체적 물리적 방법으로도 회 피하고, 영화과 음악 그리고 일로도 회피하고, 뿐만 아니라 철학을 사용하기까지 합니 다. ‘그래, 어차피 삶이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 모든 것을 똑같이 경험해야지. 고통이란 삶의 일부분이야. 고통이 있어야 성장하는 것이니까 더 많은 고통이 있어야 해.’라고 하면서요. 마인드가 하고 있는 것은 끊임없는 회피입니다. 주의를 몰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면 고통을 끝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회피함을 자각하면 고통 속에 있으면서 고통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통이다. 고통이다.’ 하면서 고통을 경험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회피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한마디 던지면 상처를 받고 가슴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이와 비슷한 배움을 통 해 ‘고통을 경험하면 환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마인드는 ‘경험해야 해.’라고 하며 마인드가 그 경험을 경험하려고 노력합니다. 마인드는 생각이 흐르고 있는 과정입니다. 다른 생각이 들어오면 마인드는 ‘지금 올 때가 아니야. 나는 고통을 경험해야 해.’라고 편집부 특집_라제시 다사 39 집착하고 놓질 않습니다.
아픔을 진정 경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픔은 육체적 아픔을 온전하게 일어나도록 허용하고 자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인드가 작용하여 ‘물 한잔을 경험해야 해.’라 고 생각하면 물이 경험이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애씀입니다. 온전히 마인드가 작용하 면 애씀이 일어나고 애씀은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멀어지게 합니다. 만약에 진실이 개념 으로 사용되고 철학으로 활용되면 그것은 아픔으로부터 멀어지는 수단인 동시에 회피 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인드는 아주 똑똑하기 때문에 회피를 잘합니다.
또한 마인드는 수용의 개념을 이용해서 회피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인도에서는 갠지스강을 향해서 여행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거기에 가서 자기의 성품을 바치는 것이 행사의 일부입니다. 
어떤 사람이 참여하고 와서 말합니다. “나는 분노를 버리고 왔어.”라고요. 그런데 사 람들이 자꾸 와서 묻습니다. “너 정말 분노를 버리고 왔니?” 그런데 그렇게 같은 질문이 계속되고 마침내 다섯 번째의 사람이 질문했을 때, 그 사람은 화를 내면서 말합니다. “내가 이미 말을 했잖아. 내가 분노를 버리고 왔다고!”

고통의 수용
수용이 개념으로 있는 한 마인드는 그것을 활용합니다. 이것이 회피가 아닌지 회피인 지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진정한 수용이 일어나면 어떠한 설명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삶은 그냥 흐르는 것이야.’라고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수용이 진정 일어나면 그때는 그 말 자체도 언급이 안 됩니다. 오로지 있는 것은 아픔뿐 어떠한 생각 이 붙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어나려면 자각의 힘이 엄청 강력해야 합니다.
고통으로부터 회피하는 과정이 고통입니다. 정당화시키고 틀에 맞추어 편안함을 받 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진정한 고통이 아니라 도망치는 과정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에 호랑이가 있다고 합시다.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그렇죠. 당연히 도망치는 거죠. 제가 제일 먼저 도망칠 겁니다. 호랑이가 쫒아오면 맨발로 옷도 챙겨 입지 못하고 30분, 40분, 엄청나게 뜁니다. 그때 누군가 “너 지금 어떠냐?”고 묻습니다. “나는 고통스럽 다.”고 대답하죠. 그가 또 묻습니다. “무엇이 고통스럽냐?” 나는 “저 호랑이 때문에 고 통스럽다.”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호랑이가 저를 건드렸습니까? 저를 먹었습니까? 때렸습니까? 한 번도 그런 사실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입니다. 호랑이는 언젠가 저를 먹을 것입니다. 어차피 먹힘을 당할 바에는 지금 먹히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고통은 우리 안에 있는 무엇이 무너질 때입니다. 그것을 직면하지 못하니까 방어하고 보호하려고 애씁니다. 호랑이가 당신을 바로 먹으면 당신은 죽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죽으면 그것이 당신 삶의 시작입니다. 우리 안에서 죽는 것은 아나만입니다. 아나만은 자신의 왜곡된 관점, 즉 가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자아의 일부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 면 자유로워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일부가 죽는 것을 허용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어적이고 공격적으로 나갑니다. 먹어버리게 허용한다면 호랑이는 제 할 일을 했기 때문에 없어집니다.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란 고통으로부터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경험하면 기쁨으로 전환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먹힘을 당하는 순간 완전히 끝납니다. 고통의 관점 자체가 끝납니다. 자신이 고통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자신을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도망가는 것을 자각 하십시오. 자각하는 순간 더 이상 뛰지 않습니다. 자각 자체가 고통을 경험하는 것입니 다. 그것이 온전한 경험입니다. 고통의 관점이 고통 경험을 가로막을 뿐입니다. 딱 한 번 먹힘을 당하면 호랑이가 올 때마다 가만히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경험 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것이든 온전히 경험하면 남는 여유는 환희와 기쁨입니다. 고통으로부터 성공 적으로 도망치면 한숨은 쉬지만 그것은 잠시 동안 잘 도망친 것입니다. 물론, 처음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려움 극복의 두 가지 방법은 첫째, 이 두려움이 마인드가 사용하는 회피 방법임을 통찰하는 것입니 다. 그리고 둘째, 이 과정에서 나는 홀로가 아니며, 나는 부처님의 가피를 받고 갈 수 있다는 용기와 가피를 경험하면서 극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마치 아이들이 엄마 뒤에 숨어서 강아지를 만지듯이 말입니다.

※2008년 5월 23~24일 마하보디교육원 주관으로 이루어진 ‘스님들을 위한 의식과 영성교육’의 내용을 게재합니다.

죽음에는 노소가 따로 있지 않다.
날짜가 한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차별도 없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65억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함께 있음을 자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죽음의 주인공이 나임을 인식하며, 삶 속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오늘날 죽음의 원인 중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암이다. 암 투병 중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평상시에 보험을 포함하여 많은 돈을 저축하는 이유 중에는 병이 나면 쓰기 위한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정작 죽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할까?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요소

 

심해지는 빈부의 격차
우리의 생활수준은 몇 년 전만 해도 몇 개의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격차가 더욱 심해져서 극부와 극빈의 상태로 나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빈부의 격차는 과도한 경쟁 심리를 유발시키고, 우리의 마음에서 풍요로움을 빼앗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정신은 더욱 황폐해지고 감정은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 더구나 불안한 현실은 사람들에게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마음 상태를 갖게 하고 있으며, 점점 더 돈에 의존하게 한다. 심지어는 자식도 믿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극도의 경쟁 심리와 그에 따른 압박감, 불신과 불안은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바쁠수록 수명이 단축된다
현대인들은 정말 바쁘게 살아간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정작 왜 바쁜지는 모르는 채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정말 바쁜 것이 아니고, 마음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외부의 경계에 끄들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왜 바쁜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살다보면 어느새 죽음이 눈앞에 와 있다. 마음이 바쁘고 불안해서 자신을 혹사시키고 괴롭히면서 몰아치다 보면, 자살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빨리 죽을 수도 있다.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은 육체적인 질병뿐만이 아니라, 바쁜 마음 때문에 몸과 마음의 균형이 깨지는 것도 큰 몫을 차지한다. 

죽음에 도달하는 지름길은 욕망과 집착
욕망이란 끝없이 얻으려 하고 움켜쥐려고 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욕망이 적당할 때에는 우리의 삶을 발전시키는 방편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칠 때에는 우리의 삶을 망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욕망을 잘 조절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활기차고 풍요로울 수 있을 것이다.
집착이란 한번 움켜잡으면 놓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다. 좋은 것은 좋기 때문에 놓치지 않으려고 움켜잡을 것이고, 싫은것은 그것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움켜 잡을 것이다. 이러한 욕망과 집착을 갈구하는 마음의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의 몸은 화장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타죽고 만다.
IMF의 경제위기를 넘기고 난 몇 년 뒤에 우리나라에는 암환자가 급증을 했었다. 이런 현상은 경제적인 위기상황에서 겪은 마음의 고통과 스트레스가 육체의 질병을 유발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통해 우리는 올해의 경제 위기가 2, 3년 뒤 암환자의 급증을 가져올 거란 예측을 할 수 있다. 즉 마음의 고통이 몸의 질병을 가져오는 것이다. 지금의 사회현상은 가까운 미래에 나타날 현상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럴 때 우리는 마음을 어떻게 내야 할 것인가?

 

내가 원하는 대로 죽기 위해 필요한 요소

 

돈을 운용하는 지혜
우리나라는 아직은 혈연을 중요시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랑 아니면 돈 때문에 병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죽음은 비참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 맑을 때 돈을 제대로 운용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우린 평생 돈을 벌어서 저축을 하기도 하고, 많은 보험을 들기도 한다. 그 이유는 늙어서 병이라도 들면 자식들에게 신세 지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돈에 모든 것을 의지하며 움켜쥐고 놓을 줄을 모른다. 그러나 병이 들면 내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 제대로 치료도 할 수 없게 되며, 중단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다. 거기에 보험금 마저도 보호자인 자식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돈은 언제 어떻게 없어지는지도 모르게 없어지고 남는 것은 질병과 외로움, 서러움과 원망, 죽음뿐이다. 그리고 죽은 뒤에는 자식들간의 의리마저도 끊어놓게 된다. 이렇게 봤을 때 돈은 가족과 나를 망치는 주범인 셈이다. 돈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인간성과 윤리마저도 상실하게 한다. 돈은 휘발유와 같다. 휘발유는 불이 나게도 하지만 자동차를 움직이게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돈에 대한 정치를 잘 해야 하며, 적절하게 운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당신의 삶, 죽음이 말한다
“죽을 때 보자.” 
이 말은 죽음이란 사건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재판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즉 죽은 뒤에 염라대왕 앞에 가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가 염라대왕인 것이며, 죽어가는 과정에서 현상으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면 그 미워하는 과보로 인해 죽을 때 깨끗한 눈으로 죽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남을 비난하고 욕하면, 죽음이 오기 전에 혓바닥이 마른 논바닥 갈라지듯 쭉쭉 갈라지고 부풀어 올라 움직일 수 없는 고통을 받는다. 여기에 물을 부어주면 아프지만, 혀가 입안에 꽉 차서 의사를 표현할 수가 없어 그 고통을 그대로 겪으며 죽게 된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지은 죄의 모습이 현상으로 눈앞에 떠올라 몸부림치기 때문에 온몸을 묶어놓아야 한다. 심한 잘못을 한 사람 은 죽을 때 자신이 저지른 현상을 그대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선하고 어질게 산 사람은 선하고 어진 과보를 받고, 악하고 모질고 나만 아는 이기적인 삶을 산 사람은 죽음의 여정에서 자신이 뿌린 그대로 겪게 된다.
병이 드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부처님도 생로병사를 여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몸은 물질이기 때문에 병들고 아프면서 죽는 것은 모두가 겪는 여정인 것이다. 그러나 병들고 죽어가는 여정,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 의 현상은 각각 살아온 모습으로 결정된다. 다시 말해 죽어가는 사람이 겪는 고통 과 외로움, 괴로움, 아픔, 서러움은 그 사람이 살아온 모습을 말해주는 것이다. 돈, 가족, 명예, 지위, 권위는 죽음의 여정 앞에서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 고,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것은 내 죽음의 질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은 그러한 현상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내 죽음의 모습이 어떻게 되길 원하는지 그 모습이 확정된다면 삶에 대한 대답 은 저절로 나오게 된다. 그 모습대로 삶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지고, 삶의 모습이 당당하게 되며 자유로워지고 아름다워진 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으면 삶이란 드라마도 혼란스런 모습 을 보이게 되고 제대로 된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의 드라마가, 극 본이 구체적으로 설정되면 삶의 드라마도 변하게 된다. 삶의 목표와 역할에 따라 극본과 시나리오 등이 제대로 정해지고 변하게 되며, 그 변화는 개인의 삶뿐만 18 보디사트바_겨울 아니라 사회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마음의 치유는 죽음의 질을 높인다
평상시에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을 보면 죽음도 잘 맞이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에 보이는 모습은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몸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속의 질병을 치유 해야 죽음의 질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갖가지의 돌덩어리를 올려놓고 살고 있다. 감정표현, 심정표현을 제대로 못하고 살고 있으며, 그것은 고스란히 가슴속에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대로 질병이 되고 악취가 되어 밖으로 표출된다. 따라서 가슴에 올려놓은 돌덩어리를 제거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것을 제거해야만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랑, 보살핌, 관심이 없는 삶, 아내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삶, 자식과의 불통의 삶이 노년을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게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의 병이 육신의 병이 되게 한다. 내가 타인에게 그러한 행위를 했다면 그 과보는 고스란히 내가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내가 행복하고 풍요로운 노년과 죽음을 맞고 싶다면 그러한 공덕을 쌓아야 함을 의미한다. 

타인의 죽음을 돌보는 행위
죽어가는 사람에게 다가가 잘 봉양하고 보살피며 도와주는 인연을 짓지 않으면, 내가 죽을 때 그러한 인연이 없기 때문에 나의 죽음자리도 지켜주는 이가 없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어떤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죽을 때 사랑받고 극진한 돌봄을 받으려면 그러한 종자를 심어놓아야만 한다. 아무리 자식이 많고 친척이 많아도 죽는 그 순간엔 모두 자리를 비우게 되는데, 그러한 종자를 심지 않은 인과의 법칙에 의한 것이다.
내 주변에 임상의 대상은 많다. 부모, 친척, 형제 등 그러한 사람들을 향해 죽는 그 순간만이 아니라 끝까지 도움을 줘야 한다. 내가 간호 받고 싶은대로 타인을 간호해야만 한다. 내가 죽은 뒤에 장지까지 오길 바란다면 타인에게 그렇게 베 어야 한다. 타인의 죽음을 돌보는 것은 바로 나의 죽음을 돌보는 행위인 것이다.

준비없는 죽음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다
죽음의 모습은 마음으로, 생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어느 날 죽음이 왔을 때, 비참하게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같은 신세가 된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모습은 눈을 부릅뜨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뒷걸음질을 친다. 안 끌려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그러나 결국엔 끌려가고 만다. 돌아설 수 없는 그 길을 돌아서려 하고 몸부림친다면 몸부림치는만큼 괴롭고 비참하며 고통만이 있게 된다. 이런 모습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현대인의 조급증을 반영이라도 한 듯, 요즘은 갑자기 발병하고 진행속도도 빠른 암이 많아지고 있다. 췌장암, 담도암, 폐암 등은 진행 속도도 빠르고, 발견한다 해도 치료할 시간도 없다. 그렇다면 언제 삶을 정리할 것인가. 돈이 많은 경우 그 돈을 정리하지 못했으면 자식들이 죽지도 못하게 한다. 치료라는 명분을 내세 워 현대 의학에 의존해서 목숨을 연장시키며 돈을 정리하도록 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할 때 해당되는 사람들 모두에게 돈이 있고 없음을 분명히 말해서 죽음을 준비해야만 때가 되었을 때 편안히 죽을 수 있다.
또한 마음의 돌덩이를 모두 내려놓고, 정말 가볍게 갈 수 있어야 한다. 미움도 원망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용서한다면 아주 가벼운 몸으로 가게 된다. 시신이 바짝 말랐어도 태산같이 무거운 경우가 있고, 뚱뚱해도 깃털처럼 가벼운 경우가 있다. 이것은 우리 삶의 모습인 것이다. 죽음만큼 살아온 모습을 정직하게 대변해 주는 것은 없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모습을 직면한다면 함부로 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지금 같아선 죽음의 길을 누구나 잘 갈수 있고,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죽음이 앞에 와 있으면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병이 들었을 때 원망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그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자식 낳고 농사짓고 하는 것은 내 삶이 아니다. 이러한 삶을 90살을 살았더라도 그것은 산 것이 아니다. “얼마나 살았다고…….” 이 말은 아무리 긴 시간을 살았 더라도 내 삶을 산 것은 얼마 안 되었다는 말이다. 자식을 위한 삶은 내 삶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80이 되어서도 ‘얼마나 살았다구.’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앞에 와서 가자고 하기 전에 내 삶과 내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죽음을 상실한 삶 자체는 죽음이다
오늘날 우리는 죽음을 상실해 가고 있다. 우리의 문화가 죽음을 외면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집에서 죽은 사람도 병원으로 실려 가게 하며, 시신에 대한 부가가 치까지 생겨나서 시신 쟁탈이 일어나기도 한다. 병원에서 죽게 되면 숨 떨어지자마자 실려 나가 냉동고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는 평생 쌓아온 공덕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정신을 안 차리고 죽으면 누구나 그러한 처지가 될 것이다.
죽음이란 지(地)․수(水)․화(火)․풍(風) 순서대로 무너지는 과정이다. 사대가 차례로 무너질 때는 의식을 온전히 집중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문소리나 발자국소리 하나도 없이 절대적인 적정의 상태에서 염불소리와 화두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혼식이 고요하고 적정한 상태에서 염불소리를 들으며 화두만 잡고 육체를 빠져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혼식이 모두 빠져 나간 뒤에도 5~6시간 정도는 조용하게 시신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그 순간은 다음 생을 결정짓는 절대 절명의 순간이며,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사후의 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원은 건강하게 살다가 남의 신세 지지 않고 자듯 죽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임상의 현장에서 직면한 진실은 수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제대로 죽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수행을 했어도 현상적인 수행은 했을지언정 실제적 으로 영적인 성장을 이룬 수행이 되지 못했기에 잘 죽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삶 속에 죽음이 함께 있음을 자각하면서 순간순간을 살아가야 할 이유이 기도하다.

능행스님 │재단법인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
(채록자|변은숙, 24기 호스피스)
출처 :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 계간지 ‘정토마을’ 2018.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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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 능행스님 : 네이버 포스트

행복한 삶이란? 온전한 죽음이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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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한편에 약 봉지가 수북했다. "웬 약이 이렇게 많으냐"고 묻자 능행(能行·49)스님이 말했다.

"2003년에 말기 암환자를 돌보다 감염됐어요. 환자가 뽑아놓은 주삿바늘에 찔렸거든요. 더러 있는 일이에요."

이 비구니는 작년 8월 급성 저혈압으로 쓰러져 심장이 멎을 뻔 했다. 올 5월까지 병원을 들락거렸다.

그는 "과로로 죽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느꼈다.

무슨 일을 하기에 스님이 과로사까지 생각했을까?

환자들은 그를 살아있는 '약사보살'이라 부른다. 1999년 그가 지은 호스피스 '정토마을'에서 1000명이 넘는 말기 암환자들이 생을 마쳤다. 11일 창단되는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의 2000여 호스피스 중 1500명이 그를 거쳐갔다.

"누가 시킨 일이었다면 그이와 원수가 됐을 거야. 일이 힘드니 중이 이렇게 늙었지." 그런데도 호스피스 일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나도 궁금해. 아마 전생(前生)에서부터 이 일을 해왔나 봐."

10년 전 충북 청원군 미원면에 정토마을이 생길 때 20가구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시설을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입구에 개 70마리를 키우고 트랙터로 길을 막기도 했다. 나중에는 군 주민들까지 확성기를 들고 쳐들어와 스님을 고소했다. 시위는 그 뒤로도 3년간 계속됐다. 스님은 30여 차례 경찰과 검찰에 불려갔다.

"혐오시설이라고 무조건 반대할 땐 화도 났지만 나중엔 '아,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죽음을 두려워 하는구나'하고 오히려 이해하게 됐어요." 1993년 서른셋의 나이로 출가한 그 역시 죽음이 두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이듬해 한 신도 남편을 병문안 갔다. 췌장암에 걸린 환자는 그 후 닷새 만에 사망했다. "복수(腹水)가 차 배만 불러 있고 새까맣게 타 있던 모습이 너무 무서웠어요.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본 거예요."

그때 그는 '세상은 고통의 바다(苦海)'라는 부처님 말씀을 이해했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암 환자들을 보며 그는 "'저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죽음의 질을 좀 더 나아지게 할 수 없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부처가 세상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었듯 그때부터 능행도 절 밖으로 나갔다. 첫 방문지는 소록도였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코가 으깨진 사람들도 웃더라고요. 이 안에서도 미소가 있고 행복이 있구나, 느낀 거예요."

알코올 중독자, 지체장애자, 불치병 환자를 찾아 오웅진 신부의 음성 꽃동네에 갔다. 그곳을 찾은 스님은 능행이 처음이었다. 더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찾아 부산 의료원 행려 병동까지 내려가 먹고 자며 환자들을 돌봤다.

얇디얇은 이불이라지만 말기 환자들에게는 그 무게감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진다. 스님은“세탁을 자주 하다보니 이불도 금세 헐어버린다”며 쌀쌀해지는 날씨를 걱정한다.

능행은 가난한 사람들은 편안하게 죽을 곳도 없다는 걸 알았다. 1997년 한 천주교 병원에서 폐암으로 숨져 가던 스님이 "스님들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 하나 세워달라"고 유언을 남기자 호스피스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한 편의 소설이었다"는 탁발(托鉢)이 그때 시작됐다. 동냥을 하러 혈혈단신 전국을 떠돈 것이다. "절에서 수행은 언제 하느냐"고 묻자 "동냥 다니는 게 나에게는 수행이었다"고 했다.

1년에 15만㎞씩 전국의 절과 기업인, 시장 바닥까지 가리지 않고 뛰었다. 1000원을 내놓는 상인들부터 100만원씩 도움을 주는 큰 스님들까지 우선 2200만원을 모아 지금의 땅 계약부터 했다. 2년에 한 대씩, 지금까지 5대를 폐차시켰다. 2000년 10월 조립식 건물로 정토마을을 개원할 때까지 들어간 3억원을 그렇게 모았다. 현재 15개 병상에 직원 10여명이 있는 정토마을은 환자 가족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1년이면 100여명의 말기 환자들이 이곳에서 마지막을 보낸다. 그 많은 죽음을 지켜보면 어떤 깨달음이 올까? 스님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모든 죽음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80이 돼도 난 아직 아니라고 하지 '그래, 나 이제 갈 때 됐다'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왜 지금 죽어야 하는지 모르고 조금만 더 살고 싶다고 울부짖을 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 아파요."

그는 돌이켜 보기도 싫을 만큼 '힘든 죽음' 뒤에는 모두 돈이라는 욕망을 놓지 못한 공통점이 있다고도 했다. 스님은 "15년간 여유롭고 흔쾌하게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채 20명이 안 됐다"고 했다.

"평생 화장실 청소와 바느질로 자식을 키운 70대 할머니가 있었어요. 아름다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는지 손 흔들고 가시더라고요. 자제분들과 같이 손 흔들어 드렸어요. 경이로웠어요."

4년 전엔 40대 남자가 위암 3기 때 들어왔다. 치료비 부담으로 남은 가족에 누가 될까 아무 치료도 않고 마지막을 보내러 왔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수능을 앞둔 고3 딸에게 문병도 못 오게 하며 전화로 응원했다.

"우리 딸 파이팅! 우리 딸 잘할 수 있어! 아빠는 잘 있으니까 수능 끝나고 보자." 수능 당일 그는 죽어가면서도 사력(死力)을 다해 전화기를 붙잡았다. "우리 딸 오늘 힘내야 돼? 아빠는 괜찮으니까 수능 끝나면 바로 내려와."

내색하지 않고 딸을 응원한 그는 시험이 끝나갈 무렵 "스님, 제가 할 일은 이제 다 끝났네요"란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능행은 "자식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임을 다했기 때문인지 표정도 평온했다"고 했다.

스님의 바람은 한 가지다. 고통과 아픔으로 범벅된 죽음이 아닌 맑고 여유로운 죽음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2005년 베스트셀러가 된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라는 호스피스 사례집도 그래서 펴냈다.

청각 장애인 아버지를 뒀던 능행은 의사가 되려 했다. 아버지처럼 몸이 불편하고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을 가진 사람을 고쳐주고 싶었다. 그는 "의사는 아니지만 치유할 수 없는 환자를 돌봐주고 있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에서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다. 호스피스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과 함께 정토마을에서 수용할 수 없었던 더 많은 환자를 위해 병원을 지으려 한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09/2009100901302.html

1997년 여름 능행 스님에게 급한 연락이 왔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온 전화였다. 임종 직전의 환자 한 분을 돌봐줬으면 한다는 전갈이었다. 많은 종교인이 찾아와도 도통 반응이 없는 묘한 분이라는 얘기와 함께….

■ 능행 스님, 법당 겸 병동 세워 봉사

세상에나. 머리가 헝클어지고 뼈만 남은 환자를 씻겨놓고 보니 스님이었다. 출가 뒤 24년 선방에서 정진하느라 토굴 하나 장만 못했다는 얘기와 함께 그는 비구니 능행 스님의 손목을 부여잡고 간곡한 부탁을 했다.

"비구니 스님. 나는 이렇게 죽어가지만 나중에 병원 하나 세워주소. 내가 죽어서라도 도와줄게…."

이틀 뒤 스님 시신을 벽제 화장터에서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능행 스님은 서원 하나를 세웠다. "그래. 진정 수행다운 수행, 부처님 가르침에 합당한 보살행에 전념하리라. 죽어가는 이들과 함께 수행을 하는 호스피스(임종을 앞둔 환자의 평화로운 죽음을 돕는 봉사)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병동을 세우리라."

충북 청원군 미원면 구녀산 기슭의 정토마을. 밤이 되면 쏟아지는 별빛이 유난이 고운 이곳이 바로 그런 내력을 안고 2000년에 세워진 법당 겸 병동이다. 물론 3년 모금활동이 큰 보탬이 됐다.

89년 이후 충북 음성군 꽃동네 등을 돌며 봉사했던 능인 스님의 호스피스운동이 자기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린 곳이기도하다. 또한 불교계 최초의, 또한 유일한 독립 호스피스 센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동안 정토마을은 '아미타호스피스 운동'의 센터로 자리 잡았다.

아미타 호스피스란 기존 호스피스운동에 불교 아미타 신앙(중생을 건지려는 아미타부처와 정토를 믿는 타력신앙)을 결부한 현대적 봉사수행을 말한다.

실제로 이곳에선 한 해 두 차례 스님.불자 대상으로 호스피스 교육이 이뤄진다. 20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불교호스피스연합'을 결성한 데도 정토마을의 역할이 컸다.

그러면 삶과 죽음이 무시로 오가는 공간 정토마을의 실제는 어떨까. 의외로 소박하다. 크지않은 아미타 법당 한 채와 그 옆의 팬션처럼 보이는 병동이 전부다. 의사 두 명, 간호사 네 명, 병상은 15개 규모다.

"우리네 삶은 빗방울처럼 한차례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산다고 하는 것은 죽음 이전의 한시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요즘 품위 있는 죽음을 의미하는 웰다잉(Well-Dying), 웰엔딩(Well-Ending)이 자주 거론되지만, 호스피스 운동이야말로 그런 취지를 현실에 옮기는 가장 훌륭한 봉사이자 수행입니다. 질병과 죽음을 경험하면서 인간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보살피고 돕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호스피스야말로 '수행의 꽃'이라고 봅니다."

스님은 거듭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한다'(上求菩堤, 下化衆生)는 불교의 대승 정신에 호스피스운동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스님의 활동은 아직은 사회봉사에 소극적인 불교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크게 시사적이다. 불교계도 80년대 이후 질병.빈곤 등 사회복지에 눈을 많이 돌리고 있으나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하긴 아직 이른 편이다.

스님은 자신의 이런 신앙관과 정토마을 활동은 담은 단행본 '섭섭하지 않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도솔)를 다음주 초 펴낸다. 몸이 크게 아파 병석에 누웠던 2년 전 문득 '누군가 이런 수행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하나 둘 메모해둔 원고가 바탕이 됐다. 그간의 활동을 일기체 형식으로 적어 얘기가 생생하고, 그런 만큼 설득력도 크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출처: 중앙일보] 호스피스로 피어난 '수행의 꽃'

시린 계절이 아무리 머물고 싶어 해도
계절의 순환에 손들고 떠나듯,
여기저기 색색의 꽃들이 마음에 훈풍을 불어 넣습니다.
정토마을 가족과 민들레 후원가족 모두의 가정에
봄기운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_사전답사팀에서 송인영 올림

세계평화를 위하여 오체투지를 하며 기도하는 일행을 만나 발원이 꼭 성취되기를 기원드렸습니다.
정토마을 이사장 능행스님께서 라다크의 수행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학교를 방문하여 그들을 격려하고 물품을 전달하였습니다.

높은 고도와 추위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약간의 설레임 속에 불편함 없는 본진 의료봉사를 위한 답사보고서 작성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서 인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십여 시간의 비행에 이어 국내선 라다크 행으로 갈아타고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시선을 창 밖으로 향하니 온통 설국이다.

매스컴에서만 보던 히말라야 그대로의 모습이다.

영토의 대부분이 해발 3,500이상의 고산지대에 위치한 북인도 라다크 지방은 인도에 병합되기 전까진 티벳의 영토였기에 인도의 어느 한 지방이라기 보다는 티벳 본고장에 와있는 느낌을 다분히 받았다. 주민들의 사는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의 70년대와 비슷해 보였으나 해발이 높고 대부분이 척박한 땅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며 일년 중 7개월이 겨울로 그 기간 동안은 항공을 제외한 다른 교통수단이 두절되는 지역이어서 다소 한가롭기까지 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행복의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물질이나 부가 아닌 마음으로부터 받는 위안, 즉 정해진 기준이 아닌 자신의 잣대로 바라보는 세상이 가장 행복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하여 일정을 시작했다. 처처 부처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건 위대한 종교의 힘이었다. 온통 희디 흰 양털 솜을 뒤덮고 있는 히말라야산맥의 웅장함 언저리엔 험한 고행을 일상으로 삼고 사는 지역민들의 삶에 적지만 힘이 되어드리고 주민들은 물론 현지의 열악한 환경에서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시는 스님들께도 잠시나마 건강을 챙겨볼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자 한다.

 

우리의 이런 자그마한 봉사가 우리 자신의 삶과 무관하지 않고 그 결과 자신의 삶은 물론 생각이 건강해진다는 진실이 우리 가슴속에 자리를 잡아가지 않나 생각한다. 라다크 의료봉사를 진행하면서 우리에게 큰 힘이 됨은 물론 현지에서 오로지 봉사정신 하나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초겔스님을 통해 진정한 자비심과 봉사를 보았으며 불심으로 이루어진 삶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사람존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의료현실은 말 그대로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었다. 병원의 숫자도 열악하지만 1년에 7개월 정도가 눈 덮인 겨울인 관계로 이동이 힘들며 거주지가 밀집하지 않고 산개해있어서 병원을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이 힘들어 보였다.

주민들이 밀집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그나마 기본적인 의료가 유지되는 듯 보였으나 여타 지역은 교통이나 이동거리를 감안 하고 발생하는 진료비용을 생각하면 질병이나 상해로 병원을 찾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어 보였다. 이번에 이루어지는 우리 정토마을의 국제의료봉사가 라다크의 낙후된 의료환경과 진료당사자는 물론 의료현실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을 가져보게 된다.

일정은 7월 8일부터 9박 10일에 걸쳐 이루어지게 되며 그 기간은 라다크 지방의 여름절기에 해당되어 그나마 일년 중 가장 생활이 활기찬 시기라고 한다.

의료봉사를 진행하면서 현지주민 및 진료환자에게 전할 수 있는 정토마을 가족님들의 정성어린 후원을 기다리며 정토마을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끝으로 마무리가 아름다운 의료봉사가 되기를 처처에 늘 같이 계시는 부처님께 기도한다.

 

‘사람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 살아야 하나보다’ 라는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단순히 시 한 줄의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은 다 세상이구나 라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했으며 늘 자신만의 잣대로 정한 이상을 추구하는 우리네 삶을 다시 한 번 성찰하고 행복의 기준을 새롭게 각인한 답사였습니다.

 

출처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 정토마을 계간지 2019년 봄호

매일매일 뿌연 서울하늘의 미세먼지와 겨울의 마지막의 아쉬움을 시기 하듯 매섭게 몰아치는 여분의 추위를 뒤로 하고 남쪽으로 달려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으로 향했다. 학인시절 능행스님께서 불교호스피스 병원 건립을 하시겠다고 운문사에 오셔서 홍보를 하시고, 많은 스님들이 마음을 모으던 그 시절의 회상이 내 앞을 지나가고 기대 이상으로 반듯하게 우뚝 자리잡은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의 전경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7년간의 외국생활을 하고 너무나 빨리 변해버리는 한국이라는 사회에 적응도 못한 채 지난 늦여름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나는 병원 법당 소임을 맡았다. 소임을 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터 마주하게 된 세상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분의 처절함과 쓸쓸함을 바 라보면서 난 가슴이 턱 하니 막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어떤 마음과 말이 그분의 절망을 돌려 편안함을 줄 수 있을지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느껴온 모든 것을 동원해도 얻을 수 없는 그 해답에 난 죄스러웠다. 나의 무력함과 무능함에 좌절하고 그분들의 슬픔에 동화되어 한없는 우울함으로 퇴근 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그날 이후 난 병원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꼭 받아야겠다는 간절함이 생겼고 승려연수라는 형식을 빌려 호스피스교육에 동참했다. 

 

2박 3일이라는 승려연수 교육과정으로의 호스피스교육, 사람들의 죽음을 준비하는 호스피스라는 과정이 어찌 그 짧은 시간으로 충분하겠는가? 수없는 반문도 하였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내가 만나는 많은 분들은 목숨이 끊어지는 임종기도의 순간에도 생의 집착을 놓지 못하고 간절하게 마지막까지 스님의 기도에 의지하여 삶의 동아줄을 부여잡는 사람들인데 난 무엇을 배워야 할까?

 

하지만, 이번 교육의 인연으로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웠다. 이 호스피스교육은 내가 배워서 누군가를 위해서, 어떤 소임을 살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임을 깨달았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고통, 모든 이는 죽음에 이른다는 문제에 대하여 난 과연 어떻게 죽어갈 것이고, 수행자로서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배우는 것이 이 교육이었다. 부처님께서 그리고 수많은 선지식들께서 고구정녕하게 제시하신 그 최후의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이 교육이고 나뿐만이 아니라 불자의 수행으로서 이생에서의 마지막 수행으로서 그 회향의 순간을 직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되새기고 정리하게 되는 시간이 되었음에 감사하다. 인간의 삶에서 생노병사라는 가장 기본적인 과정에서 불제자로서 어떻게 바라보고 다스리고 정진해 갈 것인지에 대한 공부를 그 동안 잊고 있었음을 반성했다. 

 

우리 불자들, 아니 우리들 모두 잘 살고자 기도에 매달리지만 잘 죽는 것에는 기도의 마음을 내지 못한다. 모두가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으로 많은 종교적 가치관과 관념들이 생겼고 사람들은 그것에 의지해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죽음에 대한 준비로써 이 교육은 절대로 간과되어서는 안 될 교육이라고 모든 분들에게 최대한 많이 알리고 싶다. 

난 오늘도 겨울을 지나 또 다른 봄으로 죽을 날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선봉 │ 승려연수교육 불교호스피스 영적돌봄 2기 교육을 수료하신 선봉스님의 후기 글을 옮겨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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