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호스피스협, 10월25일
창립 10주년 기념식 개최
세미나·봉사자 시상식 등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가 지난 10년의 여정을 조명하고 앞으로 불교호스피스의 나아갈 길에 마음을 모으는 법석을 마련했다.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협회장 능행 스님)는 10월25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창립 10주년 기념식 및 호스피스 세미나 삶, 사람’<사진>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전국에서 활동하는 불교호스피스 봉사자들을 격려하고 불교호스피스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높이기 위한 토대로 마련됐다.

협회장 능행 스님은 “호스피스를 실천하는 우리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누군가의 종착역에서 삶을 놓고 떠나가는 이의 차가워지는 손을 잡아주며 식어가는 그의 마음을 품어안고 저녁마다 서쪽바다에서 피어나는 불꽃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며 “여러분이 실천하는 이 보살행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의 길이다. 누구나 갈수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이 길을 기꺼이 가고 있는 여러분의 고귀한 선행에 찬탄한다”고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스님은 이어 “불교호스피스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많은 스님들과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호스피스협회 10주년이라는 오늘을 맞이하게 됐다”며 “사회적 고통과 특히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질병으로 발생하는 다차원적인 영적고통을 완화하고 보다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불교호스피스협회의 노력에 격려와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협회 고문 지현 스님은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두려워하는 임종환자들 곁에서 그분들을 행복한 세계로 인도하는 호스피스 봉사자, 관계자 모두가 이 시대의 보살이자 꽃이며 생명의 희망”이라고 치하했다.

최윤선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이사장은 “불교호스피스는 우리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돌봄을 제공하고 있는 곳”이라며 “앞으로도 자비심과 사랑으로 환자를 돌보고 용기와 지혜로 모든 일들을 헤쳐나가 달라. 완화의료학회도 제도나 각종 세미나 등과 관련해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념식에 앞서 진행된 세미나 ‘삶, 사람’은 공연을 통해 불교호스피스를 이해하고 삶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백문 김기종의 찻잎, 대금, 소연주 등을 시작으로 살풀이춤(조현화), 연극하는사람들의 장작극 ‘무제-생으로부터의 침몰’ 등이 감동을 선사했다.

이어 진행된 시상식에서는 영적돌봄가팀이 조계종 포교원장상을, 부산지부 환희호스피스봉사단 부산대병원팀이 The아름다운사람 봉사상 단체부문을, 울산지부 최정순 봉사자가 개인부문에 선정돼 수상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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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자비와 지혜를 바탕으로 행복한 삶과 평온한 죽음을 돌봅니다.동행,돌봄,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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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돌봄가팀 포교원장상…부산지부 부산대병원팀 봉사상 단체부문 수상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10주년 기념식에서 포교원장 지홍스님이 협회 영적돌봄가팀으로 활동하는 능인스님 등 9명에게 포교원장상을 수여하고 있다.

말기암 환자들과 함께 해 온 불교호스피스협회 10주년을 자축하고 향후 협회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협회장 능행스님)는 10월2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공연장에서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조계종 포교원장 지홍스님, 초대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장 지현스님을 비롯해 전국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는 스님과 자원봉사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에서 포교원장 지홍스님은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영적돌봄가팀으로 활동 중인 능인스님 등 9명에게 포교원장상을 수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당부했다. 협회장 능행스님은 호스피스 현장에서 헌신한 부산지부 환희호스피스봉사단 부산대병원팀에 ‘The 아름다운 사람 봉사상’ 단체부문상을, 울산지부 최정순 봉사자와 부산지부 김명자 봉사자에 개인부문상을 수여하며 노고를 치하했다.

기념식에서 앞서 ‘삶, 사람’ 호스피스 세미나는 10주년을 축하하는 공연과 연극 등 문화행사로 펼쳐졌다. 대금연주와 살품이춤에 이어 호스피스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무대에 올라 연극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와 함께 한마음선원 한마음합창단도 음성공양을 선보이며 협회 10주년을 축하했다.

포교원장 지홍스님은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창립이 벌써 10년이 됐다. 1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지금은 연간 600여 명이 넘는 회원들이 호스피스 봉사를 하거나 협회를 지원하는 다양한 역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죽음을 앞둔 불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 뿐만 아니라 완화의료와 관련된 법과 제도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협회장 능행스님은 “호스피스를 실천하는 우리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누군가의 종착역에서 삶을 놓고 떠나가는 이의 차가워지는 그 손을 잡아주며 불꽃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10년의 여정을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사회적 고통과 더 이상 치유될 수 없는 질병으로 발생하는 다차원적인 영적고통을 완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협회장 능행스님이 부산지역 환희호스피스봉사단 부산대병원팀에 'The 아름다운 사람 봉사상' 단체부문상을 수상하고 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연극을 선보인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한마음선원 한마음합창단의 음성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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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규 기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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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떠올리며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 정념회에 관한 원고를 쓰려니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다.

2005년도이었을 것이다. 큰 태풍과 폭우로 뒷산이 무너져 토사가 건물 안까지 밀려들어온 적이 있다. 지금은 병원 새 건물인데 당시에는 공장건물의 사무동이 있어서 일층은 호스피스 교육장과 숙소로 사용하고 2층은 법당과 집무실 그리고 공양간이 있었다. 그때 거사들이 모여 들어 토사를 며칠에 걸쳐 치웠던 기억이 난다.

 

대만의자제공덕회를 모델로 한 정념회

정념회는 2005930일 발족되었다.

원장스님이 당시 늘 다니던 봉사자들을 차 한 잔 하자고하여 많은 분이 저녁에 모여 들었다. 차를 마시다가 모임의 필요성을 말씀하시며 모임을 만들고 회칙을 정하게 되었다. 원장스님은 대만의자제공덕회를 잘 알고 있었고, ‘자제공덕회를 롤모델로 삼아 그런 봉사단체가 필요하다면서 단체를 만들게 된 것이다.

 

지금의 정념회가 있기까지

그때 모였던 사람들은 충북 청원의 정토마을까지 달려가서도 봉사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부산, 마산, 대구, 울산, 포항 등 각기 사는 곳이 달랐지만 정토마을 홈페이지에서 서로 만나 일이 생기면 달려가고는 하였다.

원장스님이 지금의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이 들어선 울산 언양의 병원부지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매입을 하였다 보니 늘 힘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멤버들은 청국장이나 메주 등을 만들어 팔아서 이익금을 보태기도 하고, 원장스님은 전국의 큰 행사가 있으면 다른 스님들과 함께 병원 건축에 대한 홍보를 위해 다녔다. 그럴때는 우리 회원들이 동참하여 스님이 쓰신 책도 판매하고 병원홍보 전단지도 돌리는 방법 등으로 후원자 발굴을 하기도 하였다. 그 회원들이 모여 지금의 정념회가 만들어졌고, 지금까지도 정토마을 병원의 각종 행사 등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정토마을의 모든 건물들이 난방이 되지만 그때는 드럼통에 나무를 넣어 난방을 하였다.

그래서 봄에는 공양간 앞의 텃밭을 일구고, 여름이면 비 피해가 있지 않도록 배수로를 정비하였고, 가을이면 뒷산에 올라가 땔감을 구해다가 장작을 만들어 쌓아 놓고, 겨울이면 김장을 하고, 장을 담그고……

한 해에 두 번 정도는 행사가 있었다. 산사음악회며 기공식 등등. 그때마다 밤을 새워가며 음식을 준비하고 다음날 배식과 정리정돈까지 하였다. 매월 둘째 일요일에는 법회를 보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원장스님이 직접 법문을 하였다. 모임 초기에는 회원이 60~70여명 정도 되어서 지금의 교육관이 꽉 찼었는데, 병원 건물의 건축이 시작되면서 공사기금을 마련하고자 원장스님은 차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전국을 다니시다 보니 법회를 챙기지 못하게 되었고, 그때의 회원들도 이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다 보니 지금의 활동인원은 크게 많지가 않다.

십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까닭

십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힘은 남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우리병원을 짓는다는 생각을 하였기에 꾸준히 이어져온 것이란 생각이 든다. 병원 준공과 개원이란 감격도 잠시 잠깐, 환자가 채워지지 않아 빈 병실이 많다는 소리에 안타까웠는데, 이제는 병실이 부족하다는 말에 안도하면서도 병실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분들이 시설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토마을은 앞으로 병원도 증축해야 하고 법당불사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다시 팔을 걷어붙여야 되겠다. 하지만 스님은 더 넓은 시야를 가지신 것 같다. “이제는 병원도 좋지만 아프리카나 물 없는 나라에 우물을 한 개라도 파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니 부응을 하도록 해야겠다.(2015.여름)

 

송봉관(현묵) 초대 정념회 간사, 현 부회장

얼마 전 정토마을에 상담을 받으러 온 환자분이 있었다. 그 환자분의 허탈한 웃음 소리가 아직까지 내 귓가에 맴돌며 지워지지 않고 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상담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너무 젊고 생생했다. 게다가 잘 생기고 총명해 보였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신가요?"

물음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아픕니다."

"아니, 어디가요?"

"아……. 저, 그게……. 지난 금요일 날에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적잖게 놀랐지만 본인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 레절레 흔들었다.

"어디가 많이 아프세요?"

"아~ 얼마 전부터 만사가 피곤하고 소화도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병원에 갔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의뢰서를 써주었어요."

"저기, 올해 몇 살이세요?"

"경자생이에요, 마흔다섯 됐어요."

‘어이구,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노.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난 속으로 큰 한숨을 쉬었다.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니, 글쎄 췌장암 말기라네요. 그는 ‘허허’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혹시 암이 다른 데로 전이됐나요?"

"간도 이상이 있다고 하네요. 지금은 수술, 방사선, 항암제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합니다."

 

"가족은요?"

"아내와 아들 둘에 딸 하나가 있고, 부모님을 모시고 삽니다. 제가 외동아들이거 든요."

외동아들이란 말에 나의 가슴은 더욱 아팠다.

 

"가족 중에는 누가 알지요?"

"아직 아무도 몰라요. 특히 아내는 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이제 겨우 서른일곱밖에 안 됐어요."

 

"제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사실은, 제가 무작정 찾아왔습니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어서요. 휴가를 냈습니다. 여기서 좀 있으면서 계획을 잡아보려고요."

 

"생존 기간은 얼마나 되시는지요?"

"의사가 오래가면 6개월이고 아니면 3개월 정도라고 하네요. 저는 아직 그 누구도 죽는 것을 실제로 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을 계획하시려고요?"

"글쎄요, 아직 아무것도. 제가 무엇을 계획해야 하나요?"

 

입술이 하얗게 말라서 타들어가던 환자는 뜨거운 차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나서 중얼거렸다.

 

"이럴 경우엔 어떻게 하면 되나요?"

"가족들에게 말씀드려야지요."

"스님, 아직은 안 됩니다. 정말 이런 병 걸리면 죽기는 죽는 겁니까? 정말 고칠 수 없나요? 3일 동안 인터넷을 다 찾아봤는데 모르겠어요.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전 어떻게 하면 되나요, 네? 죽는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돼요. 안 그래요 스님?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몇 살인가요?"

"제가 공부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하나는 초등학생, 또 하나는 유치원생입니다. 여기서 좀 머물면 안 될까요?"

 

정말 사형 선고를 받고 곧바로 달려온 환자 같지 않은 환자. 우리는 두 시간 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가족들에게도 보내드릴 수 있는 준비가 필요했기에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도록 서울에 있는 대체의학 전문 시설로 보내드렸다. 침착하게 투병하기로 약속하고 그는 서둘러 서울로 떠났다. 그 잘 생긴 눈에 눈물을 흘리며 웃는 웃음소리.

 

"허~허~허~허~허~"

"거사님, 우리 만나지 맙시다. 꼭 성공하세요. 그리고 제가 필요할 때엔 언제든 전화 주세요. 거사님은 이제 혼자가 아니랍니다. 아시죠?"

 

나는 그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했다. 어디까지 함께 가주어야 할까. 그를 보내고 났는데도 자꾸만 그의 씁쓸하고도 허허로운 웃음이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 그 친구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결혼을 몇 달 앞둔 26세의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정토마을에 찾아왔다. 애인의 손을 잡고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 온 그녀. 며칠 전 친구랑 회를 먹고 급체한 것 같아 병원에 갔다가 급성 위암 말기라는 진단에 그것도 생존기간이 불과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았다.

 

"돈이면 다 되는 이 세상에 왜 돈을 준다고해도 저 아이를 못 살리는 거예요. 말도안 돼요. 이럴 순 없어요. 살려야 해요. 스님,제발 살려주세요."

 

며칠 후 검은 색 가방에 현금을 가득 넣고 찾아 온 어머니가 돈을 내 앞에 패대기치면서 두다리를 뻗고 통곡했다.

하루 이틀 환자의 몸은 점점 말라가고 물 한 모금 삼킬 수 없는 고통을 밤낮으로 겪으면서도, 죽음이 무엇이며 어떻게 죽는 것인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 듯했다. 부모는 아이를 살려보려고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었고,더욱이 아버지는 곡기마저 끊어버렸다. 자식의 병이 자기 잘못이라는 죄책감과 아버지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는 더 괴로워했다. 그리고 전국을 뒤지며 약과 의사를 찾아 헤매다가 어디서 구했는지 불로초란 것을 가지고 와서는 한 모금의 물도 넘기지 못하는 자식에게 조금만 삼켜보라며 빌고 또 빌었다.

 

"스님! 나는 병원 앞을 하루 두 번씩 매일같이 출퇴근하며 지나치면서 저 병원에 누가 있고 어떤사람이 입원해 있는지 한번도 관심을 가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시장 바닥에서 돈 버는 일에만 미치다 보니 병원 병실의 불이 왜 밤새 켜져 있는지 몰랐습니다. 뭐하느라 저렇게 불을 켜놓았나? 하는 생각만 했을 뿐, 세상에 암 환자가 병원에서 이토록 많이 죽어가고 있는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더욱이 내 새끼가 이렇게 죽을거라고는……."

 

정원에 서 있는 작은 나무를 붙들고 주저 앉아 아버지는 아이가 들을까 소리 죽여 몸부림치며 통곡했다.

 

"실려야 해요. 꼭 살릴 겁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곁에 앉아 휴지를 잘라주다가도 몇 번씩이나 쓰러졌다.

 

"엄마! 아프지 마. 나는 어떻게 해? 선생님, 우리 엄마 주사 좀 놔주세요."

 

아무 것도 먹지 못하면서도 딸아이는 늘 밝게 웃었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죽음을 준비시키는 일보다 곤혹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어느 조용한 오후,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사랑하는 저 사람은 어쩔래?"

 

그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떳다가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스님! 나 못 살아?"

"최선은 다해보겠지만... 너는 요즘 너의 증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네, 저도 조금 알 것 같아요. 어렵다는 것...."

"그렇게 생각했어?"

"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빠 그리고 엄마, 동생, 또 네가 사랑하는 저 사람들 말이야.

"모르겠어요. 그런데 스님!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이예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엄마는 절에 다니시지만 저는 종교에 대해 잘 몰라요. 하지만 난 요즘 내가 정말 살 수 없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 되나요?"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은데?"

"네, 다시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리고 여섯 살이 되면 스님에게 와서 스님 제자 될래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는 그녀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웠다.

 

"저 정토마을에 와도 되죠?"

"그럼"

"스님, 제가 어떻게 해야 다시 태어날 수 있죠?"

"자, 봐라. 극락이라는 세계. 들어봤지? 그 세계의 부처님이시지. 우리 같은 중생들을 죽음이 없는 극락세계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셔. 그곳에는 아미타불 부처님이 계시고 관세음보살님도 계시지. 아름다운 연꽃 속에서 태어난단다. 지금부터 네가 부처님께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고 극락에 태어난다는 지극한 믿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계속부른다면 고통 없이 부처님의 자비로운 품에 안겨 극락에 태어났다가 네가 원하면 다시 이 땅에 태어날 수 있단다. 우리 한번 부처님 불러 볼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삼귀오계三歸五戒를 주고 염주도 하나 선물로 손에 쥐어주었다.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는 딸아이에게 새로운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면서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가 날 찾는다는 전화가 왔다. 부랴부랴 서둘러 갔더니 어느 중국 한의사가 그녀의 병을 낫게 해준다고 아버지에게 약속했다며 그녀의 온몸에 뜸을 뜨고 한 뼘이나 되는 침을 놓는 바람에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방의 온도는 35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딸아이를 살려보고 싶은 아비의 마지막 몸부림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녀가 날 보자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나 극락으로 가야 하는데,스님이 곁에 없어서 너무 걱정했어요 스님이 아미타불 노래를 불러줘야 제가 따라 부르죠."

 

나는 그녀를 무릎에 누이고 아미타불 노래를 들려주었다. 온 식구가 초주검 상태였고, 어머니는 애를 죽인다며 펄펄 뛰었다, 오! 지옥이 어찌 죽어서만 있으랴...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구급차를 부른 후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입원한지 나흘째 되던 날,그녀는 비로소 나와 함께 삶의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다. 예쁜 발찌도 빼고 옷이랑 그림, 그리고 종이학 천 마리 등등... 하지만 예쁜 백금 귀고리는 여전히 걸고 있었다.

 

"귀고리는?"

"스님, 귀고리는 빼지 마세요."

"왜?"

"다음에 제가 정토에 찾아오면 스님이 날 어떻게 알아봐요. 귀고리를 하고 와야 저인 줄 알지요."

"그래, 그게 좋겠구나!"

"우리 그때 다시 만나요."

"그래, 이놈아! 아미타부처님 만나서 극락에 가거든 잘 갔다고 꼭 전해줘야 해. 알았지?"

 

그녀는 오후부터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무릎에 누이고 함께 아미타불 노래를 불렀다. 의식은 초롱초롱 맑았지만 어느새 혀는 점점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미타불을 부르는 모습이 안타까워 나지막이 그녀의 귀에대고 말했다.

 

"마음 속으로 해도 된단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극락세계에 가고싶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부처님! 어서 이 곳으로 강림하소서! 당신의 나라에 태어나기를 이토록 서원하는 이 아이를 당신의 감미로운 능라로 감싸 안아 주시옵고, 당신의 품에 편히 안기어 정토에 태어날 수 있도록 대자비를 베푸소서. 이 맑은 영혼을 당신의 손에맡기나이다. 거룩한 님이시여! 사십팔원四十八願 원력願力 바다로 돌아가 당신의 자비를 구하오며 이 몸 던져 비옵니다. 나무아미타불"

 

그녀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부처님 오셨니?"

 

그녀는 아주 아름다운 모습으로 웃었다. 잠시 병실을 비웠던 어머니가 들어오자, 두 손을 벌려 제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았다.

 

"엄마!"

"여기 있어."

 

나무아미타불 염불과 함께 조금 후 숨소리가 멈추었다.

 

"잘 가거라"

 

어미는 한참동안 죽은 딸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울다 지쳐 쓰러진 어머니의 꿈에 그녀가 나타났다.

 

"엄마! 나 부처님이 안고 갔다. 병원에 올 때는 걸어서 왔는데 부처님이 날 안고 극락으로 가셨다. (뜸 뜬자리를 보여주며) 엄마, 이것 봐. 부처님이 다 없어지게 해주셨어. 나 이제 하나도 안 아프고 흉터도 없어. 아빠 용서해 주고 잘 살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나는 너무너무 좋아! 스님께도 꼭 말해줘. 나 극락세계 갔다고. 그리고 부처님이 날 안고 있다고. 엄마 가게 장부 저기 있는데, 불쌍한 사람들 것은 받지 마. 응? 내 차로 운전 배우고. 엄마! 나 이제 간다" 

 

미친 사람처럼 허둥대던 어머니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내 새끼야,잘가거라."

 

 

‘무릎딱지’라는 상실의 여정을 잘 표현한 그림책이 있다. 그림책의 주인공인 아이는 엄마를 잃고 아빠와 단둘이 살아 가는 과정에서 우리를 두고 간 엄마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 엄마 냄새가 새어 나가지 않게 집 안의 창문을 다 닫아 놓고, 엄마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귀를 막고 입을 다문다. 엄마 목소리를 듣기 위해 무릎에 난 상처를 자꾸 뜯는다. 그러다 할머니가 오셔서 엄마는 네 가슴 오목한 곳에 영원히 있다고 가르쳐 준다. 비로소 아이는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게 되고 무릎딱지엔 새 살이 돋아나 매끈해진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한 죽음을 맞는 환자의 5단계(부정, 분노, 우울, 타협, 수용)가 상실의 과정을 겪는 아이에게서도 거의 그대로 나타난다. 아이의 눈을 빌려 쓴 그림책 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감동이다.

죽음은 어찌 보면 남은 사람의 몫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별가족의 모임인 ‘별아람’이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다시 오고 싶지 않을 장소이기도 하겠지만, 어느 분에겐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할 것이고 비슷한 상처를 서로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할 것이다.

제11회 ‘별아람’모임에서 이 책을 읽어 드렸다. 모두의 마음이 먹먹해졌고 사별가족은 눈물을 흘리셨다. 눈물을 시작으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저녁에 내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없는 것이 제일 쓸쓸해요.’ ‘지금도 어디 여행 가신 것 같아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릅니다.’ ‘부모보다 남편을 잃었을 때가 더 힘든 것 같아요.’ 등등 이 곳에서 자신의 상실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내 소중한 사람을 위해 같이 기도해 주고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곳.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편안한 곳.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따뜻한 곳. 그래서 ‘별아람’ 사별가족모임은 참 소중하다. 그리고 그 곳에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

윤정숙 독서치유사


독서치유사 윤정숙님은 정기적으로 호스피스병동 환자 및 보호자들에게 책과 시를 통해 당신들의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시는 호스피스전문봉사자이자 요법치료사입니다. 윤정숙님처럼 환자와 보호자들의 상실감을 어루만지고 삶의 의미를 함께 찾아가는 역할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정토마을호스피스병동에선 연2회 호스피스전문자원봉사자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나의 시간과 재능을 다른 이와 나누는 경험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의 의미를 가져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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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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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시 다사|원네스 유니버스티

척하기
자신의 내면 안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면 고통이 사실과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며, 그때 우리의 주의는 내면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고통은 오로지 우리의 관점에 의해서 있습니다. 내면 안으로 들어오면 뭔가를 숨기려고 하는 과정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누가 나를 방문했다고 칩시다. 나는 일 때문에 바쁘고 그 방문한 사람은 직설적이고 말 많은 사람입니다. 게다가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나가라고 얘기할 수도 없어서 그분이 방문하면 어쨌든 초대하고 들어오라고 하고 예의가 바르게 차도 대접하고 좋은 대화를 나누려고 애쓰고 노력합니 다. 그런데 속으로는 저 사람이 눈치를 채고 빨리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 사람에게는 착하고 예의바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올바른 행동인가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예의이며 이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이 순간까지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시작되는 시점은 그가 나가고 문을 닫는 순간부터입니다. ‘나는 참 착한 사람이었어. 나는 그를 배려했고 나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바가 없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입니까?
상대방과 대화를 나눌 때 내면 안으로 주의를 기울인다면 보여주는 것과 다른 것이 내면 안에서 일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내면 안으로 주의를 기울이면 내면에 대화가 일어남을 우리는 흔히 보게 됩니다. ‘이 사람이 왜 찾아왔지? 내 시간 낭비하면 안 되는 데 빨리 갔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우리는 자신에게 진솔한 사람이 아니며 자신에게 거짓말을 늘어놓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에게 거짓말하는 경우보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 층계를 걷다가 앞의 사람이 미끄러지는 것을 넘어지지 않게 도와주었다면 사고적으로 그를 도와준 것일 뿐입니다. 만약 선택권이 있었다면 그를 돕지 않았을 겁니다. 그 사람을 돕는 순간 우리는 이렇게 느낍니다. ‘나는 참 자비로운 사람이야.’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입니까?

이미지 보존하기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대화가 일어남을 보게 됩니다. 즉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아름다운 이미지를 보전하고 노력하는 애씀에 대한 대화를 보게 되는 것이죠. 이 두 가지로 첫째는 나에 대해 남이 좋은 이미지를 받기를 바라며, 둘째는 내가 좋은 이미지를 보존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에너지는 이미지를 보존하고 유지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개척하기 위하여 소모되며 질주하게 됩니다.
왜 우리가 상처를 받습니까? 어떠한 상황이나 누군가가 나의 어떤 이미지를 무너뜨리려 할 때 우리는 상처를 받습니다. 
인도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정 중 삿상이라는 것이 진행되었습니다. 삿상에서는 노래도 부르고 여러 가지 세션을 하면서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인데, 참여자 중 어떤 여성이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스러운 노래를 부르는데 그녀는 눈을 감고 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잠이 왔습니다. 그녀는 잠 오는 것을 참다가 눈물이 살짝 나면서 눈물이 주루룩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이벤트가 끝난 후 그녀를 본 주변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우리는 성스러운 당신의 얼굴을 보았다. 당신은 너무 헌신적인 모습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 칭찬에 솔직하게 얘기할 수가 없었고 “감사하다.”고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이 자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네 번이나 이것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람들이 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게 자비심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 혼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반복성에 의해 그녀는 신성의 사랑의 상태로 자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녀는 세션 중에 정말 행동으로 꾸벅 졸고 말았습니다. 이를 본 주변의 사람들이 “너 잠을 자고 있었구나. 너 계속 이렇게 잠자고 있었니?”라고 말했고 그녀는 폭발적으로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희들이 헌신성에 대해 아느냐. 어떻게 나에게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서서히 믿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엔 내가 그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상황이든 이미지를 파괴시키는 것이 등장하면 우리는 고통스러워합니다.

진실과 직면하기
여정을 해가는 과정에서 바라볼 것은 ‘정말 내가 진솔한가.’입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붙들고 있는 이미지를 보기 시작하면, 얼마나 우리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려 하는지를 보게 되며 우리의 진정한 나를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주변의 ‘늘 남을 돕는 사람들’은 남의 요청에 대해 거절을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난 참 좋은 사람이야. 잘 도와주고 자비로운 사람이야.’ 그런데 그게 사실입니까? 
이럴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거절하면 그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끊임없이 거절을 못하고 남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자신 안에 들어가 진솔하다면 이는 자비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바탕으로 한 자비라는 것임을 그는 보게 될 것입니다. 사실은 두렵기 때문에 남을 돕는 것인데, 그 사람이 ‘나는 자비로운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진실이 아닌 이미지를 붙잡고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하면 삶, 상황이나 사람이 위협하고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 들이닥칠 수도 있습니다. 바깥세상의 사람들은 당연히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성을 추구하는 자로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더 많은 고통을 만드는 것입니다.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섬기고 위로 바라보니까요. 
우리 자신과 접촉하고 자신에 대해서 진솔해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진솔해지면 보이는 것은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보호하려는 엄청난 애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때 두 번째 단계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진솔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내 모습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진솔한 나와 진솔하지 못한 나가 있습니다. 이 둘은 내면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교육관 안으로 들어와서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우리의 마인드는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오늘 저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무슨 얘기를 할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다른 생각은 흔히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현상 입니다. 그리고 이때의 진실은, 육체적인 절일 뿐 진정 우리가 절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직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이 사실을 직면하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이것을 직면하는 순간 이러한 것이 나타납니다. ‘내가 진솔하지 않았다면 나는 좋지 않은 스님이라는 뜻인가? 나의 모든 노력과 수련이 다 쓸모없는 행동이라는 것인가?’라는 소리들이 들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낸 수많은 이미지들이 파괴될까봐 그 진실을 바라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이면 나는 진솔하게 절을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러한 우리 자신에 대한 사실을 수용해야 이 여정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낸 사실이 아닌 이미지의 세계에 막히게 됩니다. 막히면 노력과 애씀은 이미지를 보존하고 지키는 것에만 사용될 것입니다. 그래서 진솔한 나는 그 사실을 밝혀내려 하고, 진솔하지 않은 나는 그 사실을 덮어두고 억누르려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진솔하지 못한 내가 진솔한 나를 억누르게 되고 우리 안의 억눌려진 나가 나로서 남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솔한 나에게 주의를 기울입니다. 우리가 지키려는 이미지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갖고 있는 근본적 두려움은 이미지들이 파괴될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지를 통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지가 없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미지가 모두 파괴되면 그 자리에 뭐가 남나요? 이미지들 밑바탕에는 뭐가 남나요?
만약 이미지들 하나하나를 파괴시키고 그것을 초월한 상태의 우리를 본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뭔가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그냥 있는 그 상태입니다.
삶은 우리가 0(제로, 無)가 될 때까지 이미지를 파괴시키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싸우고 저항합니다. 우리는 생존하려고 하고 지키려는 메커니즘이 작동해서 이미지들을 방어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진솔해지면 이미지들이 생존하려고 하는 그 실행 과정을 보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무지는 ‘나는 이 이미지들이다.’ 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각하기 시작하면 이미지가 생존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기존의 지키려는 이미지들도 수없이 있지만 우리는 살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끝 없이 생성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이미지에 묶여 있거나 막혀 있으면 결과적으로 더 이상 아무런 배움이 일어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묶여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은 ‘지금 내가 무엇이냐.’입니다. 그러나 도대체 우리가 찾는 진실 은 무엇인가요? 절대적인 진실이 있습니까? 이 순간의 사실(진실)은 무엇일까요?
만약 지금 현재 이기적인 느낌이 있다면 그것이 사실이고 진실입니다.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진실을 넘어서서 더 대단한 무슨 진실을 찾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가 진솔해진다면, 내면을 진솔하게 들여다본다면, 그러면 대부분 하고 있는 작업, 보이게 되는 것은 이미지를 애쓰면서 보호하고 지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잠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무엇이고 어떤 이미지를 지키려고 애쓰는지 들여다보십시오. 이것을 찾는 방법은 쉽습니다. 상황과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것은 지키려는 이미지 때문입니다. 불편을 느끼거나 상처를 받을 때는 어떠한 이미지가 위협을 받았을 때입니다. 
묶여 있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주의를 기울여보세요. 착한 사람, 사랑스런 사람의 이미지를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늘 사실은 아닙니다. 때로는 착한 사람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착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이미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은 이미지를 지키려는 애씀에서 옵니다. 나는 똑똑한 사람이라는 이미지일 수도 있고, 나는 진솔한 사람이라는 이미지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를 지키는 데 우리의 대부분의 에너지는 소모됩니다.
이미지를 정당화시키는 여러 가지 설명거리를 마인드는 늘어놓을 것입니다. 그러면 마인드는 애써서 우리 자신에게 보여주려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착하고 똑똑한 사람인가에 대한 예제와 상황들을 보여주며 이미지를 보호하려 애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키려는 이미지들을 누군가 위협할 때 우리는 화를 내고 상처를 받습니다.

참나 알기
지키고 방어하고자 하는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면, 더 깊이 들어가서 이미지들 뒤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보게 되며, 결국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게 되면 그것이 아픔을 줍니다. 이때 마인드는 회피하려고 여러 가지 철학을 늘어 놓고 부연설명을 할 것입니다. 이 이미지들 뒤 배경에 숨어있는 것과 접촉을 하게 되면 그것이 진실입니다. 
저는 12년 전 다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직자로서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매우 화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화를 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직자로서 좋은 모양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일 ‘화를 없애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관찰한 것은 분노로부터 벗어나려고 기도를 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화가 난 이유는 아무도 나에게 도움을 안 주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 더 화가 났고, 제 자신이 화가 많은 것에 또 화가 났습니다. 
그날도 분노로부터 자유롭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기도 과정에서 물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화를 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스스로 통찰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왜 화를 내면 안 되는 거지? 화가 나면 그게 어떻다는 거야?’ 그리고 그 다음 저는 이완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완하게 된 것은 분노가 많은 사람임을 알고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화를 많이 가지고 있음을 알고도 싸우지 않으면 고통과 갈등은 없습니다. 그 전에는 이렇게 생각 했습니다. ‘나는 화를 내는 그런 사람의 이미지가 있으면 안 돼. 이러한 성품은 버려야 돼.’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제 자신과 싸우고 세상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화가 없는 척하는 이미지를 계속 지켜나가면서 남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제 자신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보호하고 지키려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화가 많은 나는 이것 외에 무슨 다른 것이 될 수 있을까요? ‘이게 나다. 화가 많은 내가 나다.’임을 인정하는 것이 수용입니다. 
자신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기를 바라는 애씀과의 싸움이 있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다른 것이 되기 위해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주 미묘하게 그 작업이 일어납니다. 마인드는 조용히 당신에게 속삭입니다. ‘조금만 더하면 자유로워질 거야. 이건 가능하다. 변화란 가능해.’ 그것이 마인드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재잘 거리는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마인드는 변화를 통해서 생존하기 때문입니다. 마인드는 ‘여기까지 갈 수 있다.’고 끊임없이 이상적인 미래를 보여줍니다. 마인드는 ‘자유로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끊임없이 상상합니다. 마인드가 우리를 붙잡고 있는 마지막 밧줄은 “너 바뀔 수 있어. 내가 널 도와줄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걸 믿고 자유를 향해 한 스텝 가려 하고 마인드는 우리를 지배합니다. 마인드는 우리의 진실과 직면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마인드는 사실로부터 우리를 점점 더 멀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참나를 찾아서
자유란 지금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수용할 때입니다. 수용이란 무엇인가요? 수용을 한다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요? ‘그래, 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수용해.’ 이것이 수용인가요? 성품이 나타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용일까요?
우리가 심리적으로 뭔가 되려는 과정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을 하고자 하는 필요성이고, 둘째는 사랑을 받고자 하는 필요성입니다. 다시 말해, 남들을 사랑해야 하는 필요성과 그리고 남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의 필요성입니다. 남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선한 모습을 보이고 ‘좋다 나쁘다’는 마인드 차원의 형성입니다. 내면에서는 좋은 쪽을 선택하려 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좋은 사람이 되려 하나요? 그것은 칭찬받고 사랑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칭찬받고 사랑받으면 우리 자신을 사랑할 가능성이 생긴다고 믿기 때문입니 다. 상대방이 칭찬해주면 우리는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칭찬해줘서 기분 좋은 게 사실입니까? 상대방이 인정해줄 때 그때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오로지 우리는 자신이 자신을 사랑했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칭찬 할 때 ‘나도 괜찮은 인간이구나. 나 자신에게 사랑을 줘도 되겠구나.’ 하고 사랑을 주기 때문에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사랑해주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남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는 끊임없는 욕망만 지속하게 됩니다. 즉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을 때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도움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한 남자가 여성에게 “난 너를 사랑한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진짜 그 여자를 사랑하는 겁니까? 그가 실제로 전달하려고 하는 것은 뭡니까? 그것은 “나를 사랑해줘.”입니다. 소위 말하는 모든 사랑은 사랑을 받으려는 욕망일 뿐입니다. 사랑과 인정 을 받으려는 욕망, 내가 중요한 인물이 되려는 욕망, 그리고 이러한 욕망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좋은 이미지들을 형성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스럽게 만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화장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화장한 얼굴만 보면서 그 예쁜 얼굴이 자신이라고 믿기 시작합니다. 이미지라고 불리는 것은 내면에 화장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용은 있는 그대로 내가 다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게 합니다.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한 욕망은 끝을 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분노가 있는 사람인데 분노가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고통스럽습니다. 분노가 없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것이 수용입니다. 여기서는 적극 적인 수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 이기심을 인정해.’ 하는 것은 수용이 아닙니 다. 말을 통해 선언을 하면서 일어나는 것은 수용이 아닙니다. 내가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싸우지 않을 때 그게 수용입니다. 
수용이란 ‘그저 그렇다.’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보기 위해서 우선 봐야 하는 것은 얼마나 내가 끊임없이 이미지를 만들며 지키려 하는지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과 남을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도 옵니다. 남을 사랑하면 나 자신을 사랑할 가능성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남을 사랑하려는 애씀 속에서 실패를 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조건 없이 상대방을 사랑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통이란 사이클에 묶이는 것입니 다. 우리는 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아름다움은 나를 사랑하게 되면 밖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평온이 있습니다. 자신과 평온이 있으면 세상 전체와 평온을 느끼게 됩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려고 애쓰고 노력하는한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나 자신의 이미지만 형성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분만을 사랑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사랑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바꾸려고 합니다.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갈등이 일어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 부분만 바뀐다면 나는 사랑을 받을 값어치가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사랑스럽게 바뀌게끔 하는 노력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주변에 있는 영성적인 수련 자체가 우리 자신을 바꾸려는 데 치중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끝이 있습니까?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건이 붙어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수용하기 위해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수용이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절대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 자신과 싸우고 있고 바꾸려고 애쓰는지 자각하게 되면 그것이 수용의 시작입니 다. 우리 자신을 얼마나 사랑해주지 않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입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수용하든 안 하든 어차피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8년 5월 23~24일 마하보디교육원 주관으로 이루어진 ‘스님들 을 위한 의식과 영성교육’의 내용을 게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 엄마.

엄마의 죽음으로 상처를 입은 소년이 그 상처를 #치유 해나가는 과정을,

그 아이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그림책 #무릎딱지

"

나는 엄마의 냄새를 잊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엄마 냄새는 자꾸 사라진다.

나는 엄마 냄새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집 안의 창문들을 꼭꼭 닫았다.

아빠는 투덜댔다. 지금은 여름이고, 날씨가 너무 더우니까.

거기다 아빠는 이제 나한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니까.

"

- 책 '무릎딱지' 중에서...-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호스피스병동에는

떠날, 그리고 남겨질 소중한 가족이

지나온 삶을 회고하고,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하며

함께 삶의 의미를 찾는 여정 중에 있답니다.

우리의 삶에서 #상실 은 누구나 겪게되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과정은 고통과 슬픔이 동반하지요.

무더운 여름날에 엄마냄새를 잊지 않기위해 창문을 꼭 닫아버린 남자아이.

소년의 앞으로의 여정이 궁금하시다면?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로비에 들려

무더위도 식히고 무릎딱지 그림책도 읽어보아요.

2019년 7월 22일 부터 7월 30일 까지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로비 입구에서 무릎딱지 그림책 전시회를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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