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늦은 가을 선배로부터 책을한권 선물 받았다. 능행스님이 쓰신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불심이 깊은 선배라 “또 스님이 지은 책이네~”하고 별 호기심 없이 책장을 넘기다가 가슴을 벅차게 만든 무언가에 한바탕 울며, 간호사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간호대학을 졸업 후 종합병원에서 보냈던 3년 동안 조직사회의 치열하고 삭막함에 실망하였고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게 되면서, ‘다시는 간호사 일을 하지 않으리라’다짐했다. 그리고 언어 치료사로서의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다.

자폐, 구순구개파열, 뇌성마비, 정서장애, 지능지체 아동에게 언어를 가르치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서울, 대구 등 배움의 기회도 찾아다니면서, 조그마한 성과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보냈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했으나, 내 인생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충만하고 행복한 5년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경제적 독립이 필요했고,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봉사가 아닌 직업이 필요했다. 다시 시작된 간호사 일은 뚜렷한 방향의식 없이 단지 직업인으로서의 생활이었다.

 

매너리즘이란 마약에 중독되어 살아온 16년은 안락함만 추구하며 살았었다. 맛있는 것을 찾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곳만 돌아다니며, 지금 이 순간 행복하게 지내는게 최선이라 여기며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접고 현재의 시간을 즐겼다.

문득 고개 드는 허허로움……

과감히 종지부를 찍는다. 내가 무얼 하고 싶었는지 기억이 났다.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내 맘을 충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윤이 목적이 아닌 병원.

후원자의 손길로 15년 동안의 염원이 이루어진 곳.

18년 동안 능행스님의 원력으로 세워진 곳.

 

이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일하는 직원이 행복해야 한다며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부족한 기자재나 임금을 마련하기 위해 탁발을 떠나시는 원장스님의 뒷모습에서 경이로움이 느껴지고 후원자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라며 휴지 한 조각, 물 한 방울, 전기 하나 라도 아끼려는 직원들에게서 감사하는 마음이 느껴지고, 먼 곳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깨끗이 청소를 하고, 환자의 식사, 목욕수발, 산책을 도와주는 봉사자들에게서 행복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난 하염없이 마음이 수그러든다.

 

이제 나는 호스피스를 담당하는 간호사 생활을 준비 중이다. 이 병원을 선택한 목적이고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은 너무 부족하고 배울게 많은 준비생이지만, 내가 살아가는 나머지 생의 보람이기를 바라며 이 길을 시작했다.

 

나는 간호사로서 그 분들의 남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멀리 가시는 그날까지 그 때를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안위를 도모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가지게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분들에게 동반자가 되어 무섭지도 외롭지도 않게 하고 싶다.

 

호스피스는 진정 구도의 길이며 수행의 길이어서 멋진 수행자가 되는 것이라는 능행스님의 말씀처럼 이 길을 통하여 내가 그 분들을 돕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 분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멀리 가는 그날을 편안하게 안식과 함께 맞을 수 있기를 바란다.

주위 모든 사람들이 함께 웃으며 이 길을 걸었으면 한다.

 

오늘도 환자들은 암이라는 무거운 병을 지니고 어쩌면 마지막 입원이 될 수 있는 인생의 마지막 묵어가는 여관에 속속 도착한다. 자재요양병원으로……[2013.가을]

 

이경화 님은 현재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 팀장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위에 글은 병원이 개원한 2013년 호스피스병동을 준비하며 정토마을 계간지에 실어주신 글을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옮겨 실었습니다.

 


「간호사로서 환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주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며 큰 사명이기도 합니다. 2013년 병원 개원당시부터 현재 요양병원 호스피스시범사업기관으로 선정되어 10병상을 운영하기 까지 떠나는 이와 떠나보내야 할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로 함께 상실감을 경험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임종 후 8시간, 엄숙하며 애틋한 그 시간까지 그동안의 삶의 의미를 담아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함께 동행하겠습니다.」

 

 

이경화(수간호사)│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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