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떠올리며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 정념회에 관한 원고를 쓰려니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다.

2005년도이었을 것이다. 큰 태풍과 폭우로 뒷산이 무너져 토사가 건물 안까지 밀려들어온 적이 있다. 지금은 병원 새 건물인데 당시에는 공장건물의 사무동이 있어서 일층은 호스피스 교육장과 숙소로 사용하고 2층은 법당과 집무실 그리고 공양간이 있었다. 그때 거사들이 모여 들어 토사를 며칠에 걸쳐 치웠던 기억이 난다.

 

대만의자제공덕회를 모델로 한 정념회

정념회는 2005930일 발족되었다.

원장스님이 당시 늘 다니던 봉사자들을 차 한 잔 하자고하여 많은 분이 저녁에 모여 들었다. 차를 마시다가 모임의 필요성을 말씀하시며 모임을 만들고 회칙을 정하게 되었다. 원장스님은 대만의자제공덕회를 잘 알고 있었고, ‘자제공덕회를 롤모델로 삼아 그런 봉사단체가 필요하다면서 단체를 만들게 된 것이다.

 

지금의 정념회가 있기까지

그때 모였던 사람들은 충북 청원의 정토마을까지 달려가서도 봉사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부산, 마산, 대구, 울산, 포항 등 각기 사는 곳이 달랐지만 정토마을 홈페이지에서 서로 만나 일이 생기면 달려가고는 하였다.

원장스님이 지금의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이 들어선 울산 언양의 병원부지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매입을 하였다 보니 늘 힘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멤버들은 청국장이나 메주 등을 만들어 팔아서 이익금을 보태기도 하고, 원장스님은 전국의 큰 행사가 있으면 다른 스님들과 함께 병원 건축에 대한 홍보를 위해 다녔다. 그럴때는 우리 회원들이 동참하여 스님이 쓰신 책도 판매하고 병원홍보 전단지도 돌리는 방법 등으로 후원자 발굴을 하기도 하였다. 그 회원들이 모여 지금의 정념회가 만들어졌고, 지금까지도 정토마을 병원의 각종 행사 등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정토마을의 모든 건물들이 난방이 되지만 그때는 드럼통에 나무를 넣어 난방을 하였다.

그래서 봄에는 공양간 앞의 텃밭을 일구고, 여름이면 비 피해가 있지 않도록 배수로를 정비하였고, 가을이면 뒷산에 올라가 땔감을 구해다가 장작을 만들어 쌓아 놓고, 겨울이면 김장을 하고, 장을 담그고……

한 해에 두 번 정도는 행사가 있었다. 산사음악회며 기공식 등등. 그때마다 밤을 새워가며 음식을 준비하고 다음날 배식과 정리정돈까지 하였다. 매월 둘째 일요일에는 법회를 보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원장스님이 직접 법문을 하였다. 모임 초기에는 회원이 60~70여명 정도 되어서 지금의 교육관이 꽉 찼었는데, 병원 건물의 건축이 시작되면서 공사기금을 마련하고자 원장스님은 차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전국을 다니시다 보니 법회를 챙기지 못하게 되었고, 그때의 회원들도 이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다 보니 지금의 활동인원은 크게 많지가 않다.

십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까닭

십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힘은 남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우리병원을 짓는다는 생각을 하였기에 꾸준히 이어져온 것이란 생각이 든다. 병원 준공과 개원이란 감격도 잠시 잠깐, 환자가 채워지지 않아 빈 병실이 많다는 소리에 안타까웠는데, 이제는 병실이 부족하다는 말에 안도하면서도 병실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분들이 시설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토마을은 앞으로 병원도 증축해야 하고 법당불사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다시 팔을 걷어붙여야 되겠다. 하지만 스님은 더 넓은 시야를 가지신 것 같다. “이제는 병원도 좋지만 아프리카나 물 없는 나라에 우물을 한 개라도 파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니 부응을 하도록 해야겠다.(2015.여름)

 

송봉관(현묵) 초대 정념회 간사, 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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