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동안은 교직 생활로 인해 종교나 봉사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던 2014년 5월, 저는 정토사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봉사활동을 통해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은 첫 만남부터 낯설지 않았고, 항상 푸근함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벌써 6년째 매월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으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정토 도량에서 열심히 복 지으라는 운명인가 봅니다. 

요양병동에 계시는 어르신들의 식사를 도와드리거나, 말벗이 될 때는 멀리 경기도 용인에 계시는 친정엄마 생각에 가슴이 찡해지기도 합니다.
조리실(공양간) 봉사할 때는 식자재 다듬기, 환경정비를 하며 건강식으로 준비한 점심을 먹고, 봉사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항상 뿌듯한 마음으로 마무리하고 도반들과 헤어지면서 또 만나길 기원합니다.

“과거 생의 내가 궁금하면 지금의 내 삶을 보고, 미래 생의 내가 궁금하면 지금의 내 행을 보라. 지금의 삶이 편안한 사람은 복을 까먹고 있는 중이니, 그럴수록 많은 선업을 쌓아야 미래 생도 편안하다.”
날마다 행(行)하는 삶이기를 되새기게 하는 글귀입니다.

주변에 봉사를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계시면 주저하지 말고 이곳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으로 오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전혜경 │ 울산 정토회 회장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어드리는 일,

함께하고 싶으시다면?

#자원봉사자 #재능기부자 가 되어 그들의 일상에 힘이 되어드릴 수도 있고

#후원자 로써 힘이 되는 활동들을 지지해주시는 방법도 있어요~!

함께 해주신다면 정말 행복할 거예요.

http://www.jajae-hospital.com/

2015년이었다. 네팔지진으로 히말라야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작은 진료소가 무너져서 주변 지역 6개면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연락이 왔었다. 소식을 들은 그 길로 정토마을 사무국장님과 종무 팀장을 데리고 네팔로 날아갔고, 그때 정토마을에서 무너진 진료소 복구비를 지원한 인연이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차츰 잊어가던 중, 올봄에 진료소 운영비 마련을 위해 빵 만드는 시설을 마련하신다 하여 시설비를 지원해드렸었다. 그리고 4월쯤인가 페이스북을 통해 진료소를 운영하는 티벳 스님이 교통사고로 많이 다쳐서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지만, 딱히 깊이 사정을 알아볼 처지가 못 되어서 차츰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으로만 대신했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어느 날, 때아닌 비가 언양 간월산에 억수같이 쏟아졌다. 며칠 내내 내린 비로 인해 기온이 많이 떨어진 어느 날, 네팔에서 티벳 비구스님 한 분이 오셨다. 네팔 히말라야 산 중턱에서 진료소를 운영하는 그 비구스님이셨다.

건강이 많이 걱정되었는데 만나 뵈니 반가운 마음이 먼저 일어났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는지 당황스럽고 놀라웠다.

 

영어를 하는 정토마을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왕복 8시간 거리의 도시로 약을 사러 갔다가 벼랑에 굴러떨어져서 복부에 구멍이 나고, 오른팔과 손을 심하게 다쳐 사용하지 못하고, 두통이 심하다 하셨다.

사실상 진료소 운영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정토마을에 오신 날부터 나는 우리 자재요양병원에서 침 치료, 물리치료, 약물치료 등을 제공하면서 스님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도했다. 음식도 잘 드시게 하고, 따스한 옷도 마련해드리면서 스님을 돌보기 시작했다. 여권 비자 기간도 1개월 연장하여 정토마을에 조금 더 머무실 수 있도록 하였다.

 

스님과 나는 부처님 사리각에서 함께 기도했다. 나는 한국어로, 스님은 네팔어로...

그날 밤에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아픈 몸을 구부리고 내 곁에 앉아 경전을 독송하는 39살 비구스님 모습에서 나는 나의 39살을 보았다. 죽어가는 암 환자들과 함께 천지도 모르고 살던 그때, 너무나 외롭고 막막했으며 암담했던 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눈물이 났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스님이 진료소를 운영하지 않으면 네팔 그 산속에 살는 3만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아플 때 어떻게 하느냐고, 힘을 내셔야 한다고...

자재요양병원 문채경 선생님의 통역을 도움받아 밤이 깊도록 법당에 앉아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어가면서 나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산을 넘고 보니 또다시 바다였고, 바다를 건넜다 싶어지면 어느새 또 다른 길 없는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절대 쉽지 않은 길, 누구나 갈 수 있을지언정 아무나 갈 수는 없는 길임을 말했다.

 

스님은 다친 팔과 손, 심한 두통은 차츰 좋아져 갔지만, 그동안 네팔에서는 언제 오시는지, 진료소 문은 언제 여시는지, 스님을 찾는 전화가 시간이 갈수록 많아져 갔다.

 

12월 7일, 스님은 네팔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나는 스님에게로 마음이 계속 쓰였다. 병원이 다시 운영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나는 스리랑카 의료봉사를 떠났고, 내가 의료봉사를 다녀올 동안 스님은 부처님 진신사리각에서 혼자 기도를 이어가셨다.

 

12월 6일, 정토마을 종무소에서 네팔스님 가방싸기 운력을 하였다. 아기들 옷과 사탕, 연고, 회충약, 파스, 라면, 커피, 아동 영양제 등등... 그리고 정토마을 국경없는 민들레에서 모금된 1천만 원과, 정토마을 직원 두 분이 마음 내어주신 2천만 원을 가지고 스님은 용기를 내서 진료소 운영을 다시 해보겠다며 네팔 산골 진료소로 돌아가셨다.

대형가방 세 개를 빌려 가면서, 내년에 또 오시겠다며 활짝 웃는 스님의 모습에 나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가슴은 또 왜 이리 시린지 모르겠다.

발덴라마 따시델레 기도하리다.

 

산골진료소 지원협약 체결 (발덴라마 따시델레 스님과 능행스님)

 

11월 11일, 저녁 인천공항에서

강산은 울긋불긋 황금빛 녹아들고 들판엔 나락들이 떠나고 빈자리에 미물들이 한철인 좋은 날, 가을도 붉게 익어가는 오늘 정토마을 국경없는민들레 40여 명이 의약품 가방 들고 의료 봉사를 떠납니다.

 

이번 스리랑카 여정은 돌봄의 대상자도 많지만, 스리랑카 정부가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기에 더 의미 깊은 캠프가 될 것 같습니다.

 

회충약 8천 개를 비롯하여 보청기 50, 아이들을 위해 영양제와 전지분유, 다양한 질병에 필요한 전문 의약품들을 섬세하게 챙겨서 떠납니다.

 

의료진(의사 4, 한의사 1, 간호사 7)들과, 진료를 도울 팀원들 모두 하나 되어 민들레로 꽃 피우고 오겠습니다.

 

한국의 경제사정이 어려움에도 많은 정토마을 후원자님들의 공덕으로 이번 의료봉사캠프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공덕 무량하여 건강한 수명과 복과 덕이 충만하시어 늘 안락하소서.

 

인천공항에서 인사드립니다. 다녀와서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정토마을 국경없는 민들레 능행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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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020 6 25일은 몽골 편입니다. ^^

2021 5월은 네팔로, 2022 5월은 캄보디아로 의료봉사가 예정되어있습니다. 기억해주시옵소서.


정토마을 국경없는 민들레 의료봉사, 후원 문의 : 052-255-8588, 010-2926-8500

불교호스피스협, 10월25일
창립 10주년 기념식 개최
세미나·봉사자 시상식 등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가 지난 10년의 여정을 조명하고 앞으로 불교호스피스의 나아갈 길에 마음을 모으는 법석을 마련했다.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협회장 능행 스님)는 10월25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창립 10주년 기념식 및 호스피스 세미나 삶, 사람’<사진>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전국에서 활동하는 불교호스피스 봉사자들을 격려하고 불교호스피스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높이기 위한 토대로 마련됐다.

협회장 능행 스님은 “호스피스를 실천하는 우리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누군가의 종착역에서 삶을 놓고 떠나가는 이의 차가워지는 손을 잡아주며 식어가는 그의 마음을 품어안고 저녁마다 서쪽바다에서 피어나는 불꽃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며 “여러분이 실천하는 이 보살행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의 길이다. 누구나 갈수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이 길을 기꺼이 가고 있는 여러분의 고귀한 선행에 찬탄한다”고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스님은 이어 “불교호스피스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많은 스님들과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호스피스협회 10주년이라는 오늘을 맞이하게 됐다”며 “사회적 고통과 특히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질병으로 발생하는 다차원적인 영적고통을 완화하고 보다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불교호스피스협회의 노력에 격려와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협회 고문 지현 스님은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두려워하는 임종환자들 곁에서 그분들을 행복한 세계로 인도하는 호스피스 봉사자, 관계자 모두가 이 시대의 보살이자 꽃이며 생명의 희망”이라고 치하했다.

최윤선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이사장은 “불교호스피스는 우리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돌봄을 제공하고 있는 곳”이라며 “앞으로도 자비심과 사랑으로 환자를 돌보고 용기와 지혜로 모든 일들을 헤쳐나가 달라. 완화의료학회도 제도나 각종 세미나 등과 관련해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념식에 앞서 진행된 세미나 ‘삶, 사람’은 공연을 통해 불교호스피스를 이해하고 삶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백문 김기종의 찻잎, 대금, 소연주 등을 시작으로 살풀이춤(조현화), 연극하는사람들의 장작극 ‘무제-생으로부터의 침몰’ 등이 감동을 선사했다.

이어 진행된 시상식에서는 영적돌봄가팀이 조계종 포교원장상을, 부산지부 환희호스피스봉사단 부산대병원팀이 The아름다운사람 봉사상 단체부문을, 울산지부 최정순 봉사자가 개인부문에 선정돼 수상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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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자비와 지혜를 바탕으로 행복한 삶과 평온한 죽음을 돌봅니다.동행,돌봄,배웅

kbha.kr

 

 

영적돌봄가팀 포교원장상…부산지부 부산대병원팀 봉사상 단체부문 수상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10주년 기념식에서 포교원장 지홍스님이 협회 영적돌봄가팀으로 활동하는 능인스님 등 9명에게 포교원장상을 수여하고 있다.

말기암 환자들과 함께 해 온 불교호스피스협회 10주년을 자축하고 향후 협회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협회장 능행스님)는 10월2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공연장에서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조계종 포교원장 지홍스님, 초대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장 지현스님을 비롯해 전국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는 스님과 자원봉사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에서 포교원장 지홍스님은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영적돌봄가팀으로 활동 중인 능인스님 등 9명에게 포교원장상을 수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당부했다. 협회장 능행스님은 호스피스 현장에서 헌신한 부산지부 환희호스피스봉사단 부산대병원팀에 ‘The 아름다운 사람 봉사상’ 단체부문상을, 울산지부 최정순 봉사자와 부산지부 김명자 봉사자에 개인부문상을 수여하며 노고를 치하했다.

기념식에서 앞서 ‘삶, 사람’ 호스피스 세미나는 10주년을 축하하는 공연과 연극 등 문화행사로 펼쳐졌다. 대금연주와 살품이춤에 이어 호스피스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무대에 올라 연극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와 함께 한마음선원 한마음합창단도 음성공양을 선보이며 협회 10주년을 축하했다.

포교원장 지홍스님은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창립이 벌써 10년이 됐다. 1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지금은 연간 600여 명이 넘는 회원들이 호스피스 봉사를 하거나 협회를 지원하는 다양한 역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죽음을 앞둔 불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 뿐만 아니라 완화의료와 관련된 법과 제도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협회장 능행스님은 “호스피스를 실천하는 우리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누군가의 종착역에서 삶을 놓고 떠나가는 이의 차가워지는 그 손을 잡아주며 불꽃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10년의 여정을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사회적 고통과 더 이상 치유될 수 없는 질병으로 발생하는 다차원적인 영적고통을 완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협회장 능행스님이 부산지역 환희호스피스봉사단 부산대병원팀에 'The 아름다운 사람 봉사상' 단체부문상을 수상하고 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연극을 선보인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한마음선원 한마음합창단의 음성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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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규 기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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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자비와 지혜를 바탕으로 행복한 삶과 평온한 죽음을 돌봅니다.동행,돌봄,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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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보리행론 제1장 보리심 공덕 찬탄품

보리심을 일으키면 성불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원력만이 아닌 진실된 마음으로 보리심을 일으키면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짐은 물론 인생 자체가 의미 있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고통이라는 이름마저도 소멸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보리심은 궁극적으로 성불의 일체종지를 증득할 수 있는 인과의 종자가 되는 것입니다. 무량한 세월 동안 깊은 사유를 행하신 모든 부처님들께서 이 보리심의 유익함을 보시고, 이것으로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아주 쉽게 궁극의 안락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중생들은 고통을 여의기를 바라지만 오히려 고통 자체로 내달리고, 안락을 원하지만 무지로 인해 스스로 자기 안락을 원수처럼 부수어 버립니다.

축생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중생들은 고통을 싫어하고, 행복을 바라며 불행은 누구도 원치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번뇌의 힘에 의해 이끌려 다니기 때문에 한 가지 번뇌를 간신히 조복 받고 나면 그 다음에 또 다른 번뇌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노력을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고통 속으로 내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탐욕을 내고 화를 내게 되면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화를 냄으로써 새로운 마음이 일어나 더욱 더 용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를 내는 원인 때문에 또 다른 업을 짓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탐욕과 욕심을 내다보면 이것쯤이야 내가 취해도 되지 않는가, 욕심을 좀 내도 되지 않겠는가 하고 자기 자신에게 자비로워지고 자신을 합리화 시킵니다. 탐욕으로 인해 또 다른 업을 짓게 되는 그런 원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도는 내가 자만을 가져도 된다는 자만심과 이 정도라면 괜찮지 않나 하는 자신을 북돋아 주는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질투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질투심을 내게 되면 누가 뒤에서 등을 떠미는 것처럼 더욱 더 질투의 힘이 커지고, 더욱더 그 마음을 크게 일으켜주는 번뇌의 도우미가 반드시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경쟁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경쟁하는 라이벌 의식을 가지게 되면 더 정진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들은 번뇌가 번뇌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고통을 원하지 않지만 악업에 의해 고통으로 내달리게 되는데 그런 악업의 힘에 의해 번뇌가 번뇌를 낳아 오히려 우리를 더 고통 자체로 내달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단 보리심을 일으키고 난 후 자신이 악업과 번뇌로 인해서 고통 받은 경험들을 잘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아집이 오히려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업의 뿌리는 바로 아집과 악연이라고 했습니다.

 

입보리행론 제1장 보리심 공덕 찬탄품12

보리심이란 무량한 허공과 같이 무한한 중생들을 그 중생들 모두 나의 부모처럼 보고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해줘야 되겠다는 마음을 내기 때문에 그 생각 자체는 한계가 없고, 선업은 끝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간에 한계가 있는 선업의 마음을 가지고 선행을 쌓게 되면 그 과보가 한 번으로 끝이 나지만, 보리심의 나무는 항상 푸르러 끊임없이 열매를 맺고 시들지 않으며 잘 커나갑니다.

 

보리심 기도문

 

지극한 마음으로

··승 삼보에 귀의하오며,

무지무명으로 지었던 지난 과거의 모든 잘못들을 진정으로 참회하오며,

앞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반야의 지혜와 자비의 방편으로,

보리심을 일구며, 세세생생 보살도의 삶을 살겠습니다.

참회진언 :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3)

발보리심 진언 : 옴 보디지땀 우뜨 빠다야미 (3)

원하옵나니,

이러한 공덕이 일체에 두루 하여

나와 모든 중생들이 극락세계에 왕생하고,

무량수 무량광 아미타 부처님을 뵈어,

다 함께 성불하여 지이다.

 

정토마을 후원 가족들과 저희들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귀의하여 배우고 선업을 닦아서

나의 생각 가는대로 착각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이며, 나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을 것이며, 나의 양심을 속이고 다른 사람이 상처받는 나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비록 가진 것이 많지 않다 하더라도 마음을 가난하고 인색하게 내지 않을 것이며, 내가 바르게 노력한 만큼 필요한 것을 적절히 취할 것입니다.

이러한 서원의 기도를 부처님 전에 올립니다.

 

-능행 합장

 

얼마 전 정토마을에 상담을 받으러 온 환자분이 있었다. 그 환자분의 허탈한 웃음 소리가 아직까지 내 귓가에 맴돌며 지워지지 않고 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상담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너무 젊고 생생했다. 게다가 잘 생기고 총명해 보였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신가요?"

물음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아픕니다."

"아니, 어디가요?"

"아……. 저, 그게……. 지난 금요일 날에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적잖게 놀랐지만 본인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 레절레 흔들었다.

"어디가 많이 아프세요?"

"아~ 얼마 전부터 만사가 피곤하고 소화도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병원에 갔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의뢰서를 써주었어요."

"저기, 올해 몇 살이세요?"

"경자생이에요, 마흔다섯 됐어요."

‘어이구,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노.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난 속으로 큰 한숨을 쉬었다.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니, 글쎄 췌장암 말기라네요. 그는 ‘허허’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혹시 암이 다른 데로 전이됐나요?"

"간도 이상이 있다고 하네요. 지금은 수술, 방사선, 항암제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합니다."

 

"가족은요?"

"아내와 아들 둘에 딸 하나가 있고, 부모님을 모시고 삽니다. 제가 외동아들이거 든요."

외동아들이란 말에 나의 가슴은 더욱 아팠다.

 

"가족 중에는 누가 알지요?"

"아직 아무도 몰라요. 특히 아내는 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이제 겨우 서른일곱밖에 안 됐어요."

 

"제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사실은, 제가 무작정 찾아왔습니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어서요. 휴가를 냈습니다. 여기서 좀 있으면서 계획을 잡아보려고요."

 

"생존 기간은 얼마나 되시는지요?"

"의사가 오래가면 6개월이고 아니면 3개월 정도라고 하네요. 저는 아직 그 누구도 죽는 것을 실제로 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을 계획하시려고요?"

"글쎄요, 아직 아무것도. 제가 무엇을 계획해야 하나요?"

 

입술이 하얗게 말라서 타들어가던 환자는 뜨거운 차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나서 중얼거렸다.

 

"이럴 경우엔 어떻게 하면 되나요?"

"가족들에게 말씀드려야지요."

"스님, 아직은 안 됩니다. 정말 이런 병 걸리면 죽기는 죽는 겁니까? 정말 고칠 수 없나요? 3일 동안 인터넷을 다 찾아봤는데 모르겠어요.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전 어떻게 하면 되나요, 네? 죽는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돼요. 안 그래요 스님?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몇 살인가요?"

"제가 공부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하나는 초등학생, 또 하나는 유치원생입니다. 여기서 좀 머물면 안 될까요?"

 

정말 사형 선고를 받고 곧바로 달려온 환자 같지 않은 환자. 우리는 두 시간 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가족들에게도 보내드릴 수 있는 준비가 필요했기에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도록 서울에 있는 대체의학 전문 시설로 보내드렸다. 침착하게 투병하기로 약속하고 그는 서둘러 서울로 떠났다. 그 잘 생긴 눈에 눈물을 흘리며 웃는 웃음소리.

 

"허~허~허~허~허~"

"거사님, 우리 만나지 맙시다. 꼭 성공하세요. 그리고 제가 필요할 때엔 언제든 전화 주세요. 거사님은 이제 혼자가 아니랍니다. 아시죠?"

 

나는 그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했다. 어디까지 함께 가주어야 할까. 그를 보내고 났는데도 자꾸만 그의 씁쓸하고도 허허로운 웃음이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 그 친구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결혼을 몇 달 앞둔 26세의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정토마을에 찾아왔다. 애인의 손을 잡고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 온 그녀. 며칠 전 친구랑 회를 먹고 급체한 것 같아 병원에 갔다가 급성 위암 말기라는 진단에 그것도 생존기간이 불과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았다.

 

"돈이면 다 되는 이 세상에 왜 돈을 준다고해도 저 아이를 못 살리는 거예요. 말도안 돼요. 이럴 순 없어요. 살려야 해요. 스님,제발 살려주세요."

 

며칠 후 검은 색 가방에 현금을 가득 넣고 찾아 온 어머니가 돈을 내 앞에 패대기치면서 두다리를 뻗고 통곡했다.

하루 이틀 환자의 몸은 점점 말라가고 물 한 모금 삼킬 수 없는 고통을 밤낮으로 겪으면서도, 죽음이 무엇이며 어떻게 죽는 것인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 듯했다. 부모는 아이를 살려보려고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었고,더욱이 아버지는 곡기마저 끊어버렸다. 자식의 병이 자기 잘못이라는 죄책감과 아버지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는 더 괴로워했다. 그리고 전국을 뒤지며 약과 의사를 찾아 헤매다가 어디서 구했는지 불로초란 것을 가지고 와서는 한 모금의 물도 넘기지 못하는 자식에게 조금만 삼켜보라며 빌고 또 빌었다.

 

"스님! 나는 병원 앞을 하루 두 번씩 매일같이 출퇴근하며 지나치면서 저 병원에 누가 있고 어떤사람이 입원해 있는지 한번도 관심을 가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시장 바닥에서 돈 버는 일에만 미치다 보니 병원 병실의 불이 왜 밤새 켜져 있는지 몰랐습니다. 뭐하느라 저렇게 불을 켜놓았나? 하는 생각만 했을 뿐, 세상에 암 환자가 병원에서 이토록 많이 죽어가고 있는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더욱이 내 새끼가 이렇게 죽을거라고는……."

 

정원에 서 있는 작은 나무를 붙들고 주저 앉아 아버지는 아이가 들을까 소리 죽여 몸부림치며 통곡했다.

 

"실려야 해요. 꼭 살릴 겁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곁에 앉아 휴지를 잘라주다가도 몇 번씩이나 쓰러졌다.

 

"엄마! 아프지 마. 나는 어떻게 해? 선생님, 우리 엄마 주사 좀 놔주세요."

 

아무 것도 먹지 못하면서도 딸아이는 늘 밝게 웃었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죽음을 준비시키는 일보다 곤혹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어느 조용한 오후,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사랑하는 저 사람은 어쩔래?"

 

그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떳다가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스님! 나 못 살아?"

"최선은 다해보겠지만... 너는 요즘 너의 증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네, 저도 조금 알 것 같아요. 어렵다는 것...."

"그렇게 생각했어?"

"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빠 그리고 엄마, 동생, 또 네가 사랑하는 저 사람들 말이야.

"모르겠어요. 그런데 스님!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이예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엄마는 절에 다니시지만 저는 종교에 대해 잘 몰라요. 하지만 난 요즘 내가 정말 살 수 없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 되나요?"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은데?"

"네, 다시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리고 여섯 살이 되면 스님에게 와서 스님 제자 될래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는 그녀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웠다.

 

"저 정토마을에 와도 되죠?"

"그럼"

"스님, 제가 어떻게 해야 다시 태어날 수 있죠?"

"자, 봐라. 극락이라는 세계. 들어봤지? 그 세계의 부처님이시지. 우리 같은 중생들을 죽음이 없는 극락세계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셔. 그곳에는 아미타불 부처님이 계시고 관세음보살님도 계시지. 아름다운 연꽃 속에서 태어난단다. 지금부터 네가 부처님께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고 극락에 태어난다는 지극한 믿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계속부른다면 고통 없이 부처님의 자비로운 품에 안겨 극락에 태어났다가 네가 원하면 다시 이 땅에 태어날 수 있단다. 우리 한번 부처님 불러 볼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삼귀오계三歸五戒를 주고 염주도 하나 선물로 손에 쥐어주었다.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는 딸아이에게 새로운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면서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가 날 찾는다는 전화가 왔다. 부랴부랴 서둘러 갔더니 어느 중국 한의사가 그녀의 병을 낫게 해준다고 아버지에게 약속했다며 그녀의 온몸에 뜸을 뜨고 한 뼘이나 되는 침을 놓는 바람에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방의 온도는 35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딸아이를 살려보고 싶은 아비의 마지막 몸부림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녀가 날 보자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나 극락으로 가야 하는데,스님이 곁에 없어서 너무 걱정했어요 스님이 아미타불 노래를 불러줘야 제가 따라 부르죠."

 

나는 그녀를 무릎에 누이고 아미타불 노래를 들려주었다. 온 식구가 초주검 상태였고, 어머니는 애를 죽인다며 펄펄 뛰었다, 오! 지옥이 어찌 죽어서만 있으랴...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구급차를 부른 후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입원한지 나흘째 되던 날,그녀는 비로소 나와 함께 삶의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다. 예쁜 발찌도 빼고 옷이랑 그림, 그리고 종이학 천 마리 등등... 하지만 예쁜 백금 귀고리는 여전히 걸고 있었다.

 

"귀고리는?"

"스님, 귀고리는 빼지 마세요."

"왜?"

"다음에 제가 정토에 찾아오면 스님이 날 어떻게 알아봐요. 귀고리를 하고 와야 저인 줄 알지요."

"그래, 그게 좋겠구나!"

"우리 그때 다시 만나요."

"그래, 이놈아! 아미타부처님 만나서 극락에 가거든 잘 갔다고 꼭 전해줘야 해. 알았지?"

 

그녀는 오후부터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무릎에 누이고 함께 아미타불 노래를 불렀다. 의식은 초롱초롱 맑았지만 어느새 혀는 점점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미타불을 부르는 모습이 안타까워 나지막이 그녀의 귀에대고 말했다.

 

"마음 속으로 해도 된단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극락세계에 가고싶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부처님! 어서 이 곳으로 강림하소서! 당신의 나라에 태어나기를 이토록 서원하는 이 아이를 당신의 감미로운 능라로 감싸 안아 주시옵고, 당신의 품에 편히 안기어 정토에 태어날 수 있도록 대자비를 베푸소서. 이 맑은 영혼을 당신의 손에맡기나이다. 거룩한 님이시여! 사십팔원四十八願 원력願力 바다로 돌아가 당신의 자비를 구하오며 이 몸 던져 비옵니다. 나무아미타불"

 

그녀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부처님 오셨니?"

 

그녀는 아주 아름다운 모습으로 웃었다. 잠시 병실을 비웠던 어머니가 들어오자, 두 손을 벌려 제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았다.

 

"엄마!"

"여기 있어."

 

나무아미타불 염불과 함께 조금 후 숨소리가 멈추었다.

 

"잘 가거라"

 

어미는 한참동안 죽은 딸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울다 지쳐 쓰러진 어머니의 꿈에 그녀가 나타났다.

 

"엄마! 나 부처님이 안고 갔다. 병원에 올 때는 걸어서 왔는데 부처님이 날 안고 극락으로 가셨다. (뜸 뜬자리를 보여주며) 엄마, 이것 봐. 부처님이 다 없어지게 해주셨어. 나 이제 하나도 안 아프고 흉터도 없어. 아빠 용서해 주고 잘 살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나는 너무너무 좋아! 스님께도 꼭 말해줘. 나 극락세계 갔다고. 그리고 부처님이 날 안고 있다고. 엄마 가게 장부 저기 있는데, 불쌍한 사람들 것은 받지 마. 응? 내 차로 운전 배우고. 엄마! 나 이제 간다" 

 

미친 사람처럼 허둥대던 어머니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내 새끼야,잘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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