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닥을 간다고 하니 지인들은 말합니다. 고산지역이고 건강을 생각할 나이에 어렵지 않겠냐고요. 저는 자신한다고, 마라톤 뛰는 사람은 고산을 덜 느낀다고 마음을 다잡고 가벼운 마음으로 자원봉사길에 올랐습니다.
긴 시간 비행을 하고 라다크에 내리니 가슴이 흥분되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보이는 설산과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미루나무 그늘과 소박한 집들의 풍경은 새로운 감동으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심장재단 이동 후 고산 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모두가 의약품 정리에 분주한 움직임을 보며 우리 식당팀도 움직여 봅니다. 이번엔 밥솥과 냄비도 준비해주시고 찹쌀, 무청 시래기, 김치, 된장, 고추장, 기본양념 등등 보기만 해도 배부른 든든함에 우리도 분주히 움직여 봅니다. 주방장 형수님, 고산 적응 실패로 괴로워하시지만, 의지의 엄마 포스를 보이시며 준비를 시작합니다.
도착 후 첫 진료 시작부터 어디서 본 듯한 이웃사촌 같은 주민들의 친근감에 모두가 환희심을 느끼며 의료봉사 기간 내내 웃음과 사랑으로 열심히 하시는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심성 착한 라닥 주민들을 보며 60여 명의 식사 준비와 정리를 하면서 종교적인 신앙심까지 생기며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라다크 심장재단병원 초겔스님의 진정함과 장엄한 자연과 멀리 보이는 설산을 보며 라닥인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감히 봉사자들의 심성에 대해 생각하는 봉사 기간이었습니다.
“대붕에서 능행스님과 약속했던 삼세번의 의료봉사, 앞으로 열번의 의료봉사로 함께 하겠습니다.”
-2019년 8월 동암 이진희의 약속
이진희 │정토마을 국경없는 민들레 라다크 의료봉사 단원
※이진희 님은 2017년 정토마을 국경없는 민들레의 첫 해외 의료봉사 인도보드가야 의료봉사를 시작으로, 남인도 대붕로셀사원의 봉사와 이번 인도 라다크 의료봉사 단원으로서, 식사준비팀에서 자원봉사를 이어가고 계십니다.
"몸이 아픈 이들을 돌보는 것은 붓다인 나를 돌보는 것이며 몸이 아픈 이들에게 약을 공양을 올리는 것은 나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 중에서
[정토마을 능행스님과 함께하는 국경없는 민들레 스리랑카 의료봉사] 스리랑카 의료봉사는 2003년과 2017년 두차례의 쓰나미로인한 산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한 마타라 데니야야 지역으로 갑니다. 함께해주세요. 많은 분들의 동참은 어려운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또한 선착순 60여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합니다. 가정의학과 및 일반외과, 그리고 내과를 봐주실 수 있는 의사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으며,
한국 아유르베다(한방) 의사선생님도 2분 이상 모시고자합니다. 간호인력도 매번 부족합니다.
198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곳이다. 그것도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통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 이전에는 그들만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이어 왔다. 티벳불교가 그들의 정신적 기둥이 되고, 강력한 공동체 정신이 그들의 삶을 이끌어 왔다. 어디를 가나 마니차가 설치되어 있고 사람들은 수시로 마니차를 돌리면서 모든 생명체가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기원하는 불보살의 땅이다. 일 년 중, 4개월 정도만 농사가 가능하고 나머지 8개월은 영하 이삼십 도의 추위가 이어지고 강우량도 거의 없는 척박한 땅이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서로 협동하며 검소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지금은 산업화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오고 있지만, 아직도 그들의 표정은 밝고 맑고 아름다웠으며 항상 웃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능행스님의 원력으로 보살도를 실천하는 정토마을 공동체에서는 지난 7월 8일, 10일간 일정으로 불보살의 땅, 라다크로 의료봉사 활동을 떠났다. 전국에서 자원해서 모인 39명의 봉사단원은 각자의 소임에 따라 철저한 준비와 각오를 다졌다. 의료진은 인도 의사들과 한국 의사로 구성되었고 간호사들도 분야별로 배치하였다. 의약품은 법규 내에서 영양제, 구충제, 칼슘제, 오메 가, 비타민, 파스, 한방소화제, 마스크 등 최대한 많이 한국의 의약품을 준비하였고 환자들에게 나누어 줄 다양한 생필품도 마련하였다. 그곳은 햇볕이 워낙 강한 곳이어서 선글라스를 500여 개나 준비하였다. 분야별로 관련자들이 모여서 여러 차례 사전점검도 모두 마치고, 엄청난 화물들은 각자 15kg에서 25kg까지를 나누어 담았다. 따라서 개인 소지품은 최소화했다. 라다크 사정이 열악한 곳임을 고려하여 각자 침낭과 물을 끓이는 포트까지도 준비했다. 7월 8일 인천공항에서 마주한 얼굴들은 모두가 환하고 밝았다. 자비행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우쭐대거나 교만해서는 자비행이 될 수가 없다. 한없이 자신을 내려놓고 텅텅 비울 때 비로소 무량심이 일어나고 자비행이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델리 공항에서 라다크행 국내선으로 갈아탄 비행기는 무려 4시간이나 늦게 출발하였지만, 인도인의 문화는 그리 대수로운 것은 아니었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가는 오랜 그들의 삶의 태도는 무엇이나 수용하는 자세였다. 비행기는 단숨에 히말라야산맥을 넘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온통 돌산이거나 설산이었다. 계곡 깊은 아래로 실오라기처럼 이어지는 푸른빛의 수목들은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산맥을 넘은 비행기는 급격한 경사를 피해 오른쪽으로 멀리 우회해서 활주로로 접근한다. 해발 3,500m, 사람이 사는 곳으로는 대단히 높은 고도이다. 산소량은 평지보다 40% 정도가 부족한 곳이니 조금만 급히 움직여도 산소가 부족하여 맥박은 분당 100회 정도로 오르내린다. 눈길을 걷듯이 모두 서두르지 않고 조심조심 움직인다. 5분 정도 차를 타고 드디어 우리의 목적 라다크 심장재단에 도착하였다. 고산 적응을 위해 그다음 날도 휴식을 취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7월 11일 드디어 우리의 목적인 의료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수백 명의 사람이 8시 이전에 이미 병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대중교통이 없는 곳이 많아서 진료를 받기 위해 2박 3일 동안 달려온 분들도 있었고 100km 거리를 새벽에 출발해서 도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진료는 질서 있게 잘 이루어졌다. 의료진 5명은 많은 환자를 진료하느라 잠시 쉴 틈도 없었고, 약제팀, 안내팀을 비롯한 6개로 구성된 팀원들도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며 진료 활동을 도왔다. 라다크 사람들은 만트라 수행이 생활의 기본이다. 오랜 수행 탓인지 모두가 환한 얼굴이 었다. 선물도 욕심내지 않고 한 가족이 한 개만 받아 갔다. 진료를 마친 사람들은 병원 마당에서 소풍 온 아이들처럼 가지고 온 음식들을 나누어 먹는다. 봉사자가 다가가면 자리도 권하고 보리빵도 권하며 친절하게 맞아준다. 그들의 천성처럼 보였다.
아무 탈 없이 모든 진료 일정을 종료하였다. 120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필요한 의약품들을 처방하였다. 산부인과 진료에서는 124명이 자궁암 환자로 의심된다는 진료 결과가 나왔다. 그들에게는 인도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고 치료받도록 안내하였다. 암 환자는 조기 발견과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가족들과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길 기원하였다. 특히 이종진 원장(한의사)이 진료를 맡은 한방과는 환자가 가장 많아서 보람도 있었지만, 수고도 많았다.
범망경(梵網經)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만약에 불자가 일체의 앓는 사람을 볼 때에는 언제나 정성껏 공양할(보살필) 것이며 부처님을 대하듯 해야 한다. 여덟 가지 복전(福田) 중에 환자를 보살피는 복전이 제1의 복전이다. 사찰이나 성읍, 광야, 산속, 도로 등에서 병자를 보고 구제하지 않으면 경구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아픈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만큼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토마을의 의료봉사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라다크는 지금은 해발 3,500m가 넘는 히말라야 산속에 위치하지만 오랜 옛날에는 바다 밑이었다고 한다. 지각판의 이동으로 인해 융기 해서 만들어진 땅이다. 몇 군데 사원을 참배하면서 지금은 세계에서 최고 높은 산맥이지만 과거에는 바닷속이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동글동글한 주먹 돌과 모래들이 쌓여서 산을 이루고 있다. 삼법인은 불교의 근본진리이다. 첫 번째가 제행무상의 진리인데 이번 봉사활동에서는 바다가 산으로 변한 것을 보면서 그 진리를 생생하게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봉사활동과 더불어 소중한 공부였다.
'이 약을 먹은 아기 부처님들께서는 건강회복과 기력회복으로 문수의 지혜가 충만해져서 구경에 꼭 성불하여지이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미소약국을 운영하시는 김연옥 님께서 어린이 영양제를 후원해 주시면서 함께 올린 발원문입니다.
“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지요?”
“해 본 경험이 없는데도 참여 할 수 있나요?”
나의 답변은 대략 이렇습니다.
“보살님 건강하신가요?”
“나눠주는 일은 잘하실 수 있으시죠?” 그러하시다면 당연히 함께하셔야지요. 건강한 육체엔 건강한 정신이 깃들어있고, 빵도 나누고 사탕도 나누고 선물도 나누고 사랑도 나누고 희망도 나누고 웃음도 나누고 그렇게 나눌 수 있다면 만사 오케이지요.
그리고 나는 한 가지를 더 여쭈어봅니다.
“제일 잘하는 건 무엇인가요?"
“보살님 나는 잘하는 게 웃는 거예요. 이런 사람도 쓸데가 있나요?”
“그럼요! 가장 필요한 분이시네요. 당첨입니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늘 웃을 수 있는 분, 우리 봉사 팀 안에서는 그런 에너지가 꼭 필요합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연을 가진 39명의 의료봉사단이 꾸려졌습니다.
7월 1일, 의료봉사에 쓰일 의약품과 열악한 조건에 사시는 현지인들에게 선물로 전해질 겨울용품을 포장하는 날이다. 50여 명의 봉사자들의 손놀림은 분주하기만 하다.
대법당에서는 스님들과 봉사자들이 약 포장을, 야외천막에서는 산더미처럼 쌓인 겨울옷, 장갑, 넥워머 등이 진공 포장되어 몸무게 줄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39명의 가방에 넣어갈 15kg의 약과 선물들이 개별 포장되었다.
7월 8일, 아침 11시 인천 제1 터미널 K 카운터 앞에 정토마을 의료봉사단이 집합하였다.
들고 온 개인 가방을 펼쳐놓고 준비된 약과 선물을 채워 총 23kg를 맞추는 과정은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개인 짐을 최소화하고 불편함을 무릅쓰고라도 약을 더 가지고 가려는 마음은 타인을 배려하는 대자비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세상에서 가장 오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히말라야 3,500고지로 10시간을 날아가 민들레를 꽃 피우게 될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 창밖을 보면 벌써 문밖에 줄을 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2~3일씩 걸어서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도 있다 하니 한 분, 한 분이 소중하기만 하다.
진료 과정은 이러했다. 가장 먼저는 순서대로 문진표를 작성하고 체온, 혈압, 혈당을 체크하는 검사팀을 대면해야 한다. 그렇게 검사를 받고 나면 해당 치료를 받을 과 앞에서 기다리게 된다. 진료를 받은 후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서 약을 받게 되면 돌아가는 길에 간식과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매일 350개의 간식 봉투를 만들어 일일이 나눠주었고, 후원에서는 식사와 간식을 준비했다. 매끼, 현지인을 포함해 약 50인 분의 식사를 담당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고산증에 좋다는 마늘을 볶아 반찬으로 내려고 후원에서 장을 봐왔는데 정말 갑갑했다. 한국에서는 6쪽 마늘도 까기가 싫어서 깐마늘을 사다 먹는 실정인데 6쪽이기는커녕 60쪽은 되는 것 같아 보였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후원에서 가지고 나와 펼쳐놓고 하나, 둘 까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잔잔한 마늘을 다 깔 수 있었다.
봉사 마지막 날에는 김경일 단장님으로부터 국제 의료봉사증서를 전달받고 3일 동안 진행되었던 의료봉사를 마무리하였다.
39명의 정토마을 국경없는 민들레들과 함께했던 9박 10일의 여정을 곰곰이 떠올려 봅니다. 몸은 고산병으로 지치고 힘들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함께한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일행들을 보며 참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한 생을 살면서 큰 추억이 될 여정이었습니다. 국경없는 민들레,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일입니다. 정말 어느 수행보다도 큰 수행이고 많은 공부 거리가 있는 공덕이 무량한 여정입니다. 우리들의 사치스러운 환경에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고 또 복된 삶을 감사하게 여기게도 되었습니 다. 늘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길 발원하며 고산병을 감당할 정도의 건강을 지켜주신 부처님께 감사드리고 우리들의 원만 회향을 위해 출발부터 기도해주신 어른 스님들의 기도의 힘에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동행은 하지 못했지만, 물심양면으로 동참해주시고 후원해주신 분들의 덕분임을 지면을 빌어 감사함을 전합니다.
김현아 │정토마을 법인사무국 자원개발부 팀장
"몸이 아픈 이들을 돌보는 것은 붓다인 나를 돌보는 것이며 몸이 아픈 이들에게 약을 공양을 올리는 것은 나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 중에서
정토마을 능행스님과 함께하는 국경없는 민들레에서 올해 11월에는 스리랑카로 다시 의료봉사를 떠납니다.
스리랑카 의료봉사는 2003년과 2017년 두차례의 쓰나미로인한 산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한 마타라 데니야야 지역으로 갑니다.
함께해주세요.
많은 분들의 동참은 어려운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또한 선착순 60여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합니다. 가정의학과 및 일반외과, 그리고 내과를 봐주실 수 있는 의사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으며, 한국 아유르베다(한방) 의사선생님도 2분 이상 모시고자합니다. 간호인력도 매번 부족합니다. 정토마을과 인연있는 간호사 선생님들께서도 함께해주시면 참 고맙겠습니다.
마음을 그림으로 나타낼 때는 흔히 둥근 원 또는 구로 그린다.그것은 마음이란 물건이 원만하고 둥글다는 의미보다 가장자리에서부터 가운데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자신이 알 수 있는 얕은 표면의 마음이 있고 표면 아래로 들어가면 점점 더 깊은 마음 즉 자신이 알 수 없는 마음도 있다.
마음은 지구에 비유할 수 있다.지구의 내부를 지표,지각,맨틀,외핵,내핵으로 구분하듯이 사람의 마음도 전 오식,의식,말라식,아뢰야식 등으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것이 유식학이다.전 오식이 가장 얕은 수준의 마음이라면 아뢰야식은 지구의 내핵에 해당하는 가장 깊은 마음이다. ‘내 마음은 내가 안다.’라고 할 때의 마음은 대부분 마음의 표피 정도이다.깊은 속마음은 보통사람(범부)들은 알지 못한다.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나 하는 정도에 따라 인격자 또는 성숙한 사람의 기준을 삼을 수도 있다.정신치료자 소암선생은 자신을 모르는 것을 정신장애로 설명하기도 했다.수박껍데기를 보고 수박 속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은 것처럼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속마음을 짐작하기란 어렵다.타인의 속마음을 짐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속마음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자신을 아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유식학에서는 사람의 가장 깊은 마음을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한다.아뢰야식은 무시이래로 즉 시작을 알 수 없는 아득히 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과 정보들이 보관되어 있는 마음이 창고이다.보관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아뢰야식을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아득히 먼 과거,생명의 출현에서부터 사람으로 진화해 온 모든 과정의 정신적인 산물들과 개인의 모든 경험들이 총체적으로 보관된 곳이다.융의 분석심리학에 대비하면 콤플렉스,개인무의식,집단무의식,아니마,아니무스,원형,자기 등이 통합된 개념이다.마음에 보관된 정보들은 화석처럼 생명을 잃은 것이 아니라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지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에서 종자,씨앗이라고 부른다.태어날 때 가지고 온 종자를 본유종자라 하고 태어나서 새롭게 만들어진 종자를 신훈종자라고 구분하기도 한다.옛날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고‘이 놈의 종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바로 인간의 선천적인 기질이나 소인을 지칭할 때 쓰였던 말이다.태어날 때부터 좋은 종자가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종자도 있다.가장 최신 심리학에 해당하는 긍정심리학에서도 행복의 조건으로서 태어날 때의 행복지수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물론 태어날 때 가지고 온다고 해서 반드시 숙명적으로 비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훈습에 의해서 종자는 변할 수도 있고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프로이드의 무의식의 개념과 아뢰야식은 자신이 모르는 마음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그 구성물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난다.프로이드의 무의식 개념은 감당하기 힘들어서 억압한 것들,외면한 것들,트라우마 등 주로 병리적인 것들의 저장소라고 할 수 있지만 아뢰야식은 병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것,생산적인 것,종교적인 것 등 훨씬 다양한 것들의 저장소이다.
아뢰야식은 되살아날 수 있는 종자의 보따리이다.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무수히 많은 종자들을 품고 산다.언제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종자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으로 마치 물속에 잠겨있는 장애물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다.
학교로 출퇴근하는 길옆에 큰 저수지가 있었다.항상 시퍼런 물이 가득 차 있어서 저수지 안에는 물고기들만 살고 있는 줄 알았다.그런데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더니 저수지 물이 서서히 마르기 시작했다.가장자리부터 바닥을 드러내더니 점점 깊은 바닥까지 모습을 드러냈다.저수지 바닥은 검은 색을 띤 진흙으로 뒤덮여 있었다.그 상태로 열흘 정도 가뭄은 이어졌는데 무심하게 저수지 옆을 지나다니던 어느 날,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시커먼 모습의 저수지 바닥에 잔디처럼 새싹들이 파릇하게 자라나고 있었다.깜짝 놀랐다.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것인가?그 사이 어디에서 날아온 씨앗은 아닐 것이다.진흙 속에 묻혀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오래 전부터 이미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다가 바닥이 드러나고 햇빛을 받으면서 순식간에 싹을 틔웠다.보통 때는 짐작할 수도 볼 수도 없었지만 씨앗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우리의 마음에도 자각할 수 없는 많은 씨앗(조건)들이 숨어 있다.마치 암을 유발하는DNA인자가 잠복해 있다가 자라날 환경이 되면 암을 유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음을 살핀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아뢰야식을 통찰하는 작업이다.단번에 깊은 심연을 알 수는 없다.가까운 것부터 순서에 따라 자신의 내면을 살피게 된다.흔히 말하는 알아차림 명상은 가장 자각하기 쉬운 것부터 자신을 살피는 작업이다.
유식삼심송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유식3頌)
불가지집수(不可知執受),처요상여촉(處了常與觸),작의수상사(作意受想思),상응유사수(相應唯捨受), “아뢰야식은 그 작용을 알 수 없고,집수와 처(處)와 요(了)의 작용도 알 수 없다.항상 촉(觸)과 작의와 수(受)와 상(想)과 사(思)로 더불어 상응하되,오직 사수(捨受)로만 한다.”
아뢰야식은 작용이 미세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범부의 식견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그러나 꾸준히 마음공부를 이어가면 조금씩 아뢰야식의 종자들을 통찰하게 되고 마침내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무릎딱지’라는 상실의 여정을 잘 표현한 그림책이 있다. 그림책의 주인공인 아이는 엄마를 잃고 아빠와 단둘이 살아 가는 과정에서 우리를 두고 간 엄마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 엄마 냄새가 새어 나가지 않게 집 안의 창문을 다 닫아 놓고, 엄마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귀를 막고 입을 다문다. 엄마 목소리를 듣기 위해 무릎에 난 상처를 자꾸 뜯는다. 그러다 할머니가 오셔서 엄마는 네 가슴 오목한 곳에 영원히 있다고 가르쳐 준다. 비로소 아이는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게 되고 무릎딱지엔 새 살이 돋아나 매끈해진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한 죽음을 맞는 환자의 5단계(부정, 분노, 우울, 타협, 수용)가 상실의 과정을 겪는 아이에게서도 거의 그대로 나타난다. 아이의 눈을 빌려 쓴 그림책 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감동이다.
죽음은 어찌 보면 남은 사람의 몫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별가족의 모임인 ‘별아람’이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다시 오고 싶지 않을 장소이기도 하겠지만, 어느 분에겐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할 것이고 비슷한 상처를 서로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할 것이다.
제11회 ‘별아람’모임에서 이 책을 읽어 드렸다. 모두의 마음이 먹먹해졌고 사별가족은 눈물을 흘리셨다. 눈물을 시작으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저녁에 내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없는 것이 제일 쓸쓸해요.’ ‘지금도 어디 여행 가신 것 같아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릅니다.’ ‘부모보다 남편을 잃었을 때가 더 힘든 것 같아요.’ 등등 이 곳에서 자신의 상실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내 소중한 사람을 위해 같이 기도해 주고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곳.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편안한 곳.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따뜻한 곳. 그래서 ‘별아람’ 사별가족모임은 참 소중하다. 그리고 그 곳에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
윤정숙 독서치유사
독서치유사 윤정숙님은 정기적으로 호스피스병동 환자 및 보호자들에게 책과 시를 통해 당신들의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시는 호스피스전문봉사자이자 요법치료사입니다. 윤정숙님처럼 환자와 보호자들의 상실감을 어루만지고 삶의 의미를 함께 찾아가는 역할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정토마을호스피스병동에선 연2회 호스피스전문자원봉사자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나의 시간과 재능을 다른 이와 나누는 경험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의 의미를 가져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봄인가 싶더니 벌써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사계절은 삶이란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선물과도 같다. 나에게 있어 사계절은 계절마다 만나는 환자분들이 다르다는 것이다.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환자분들과의 추억도 지나가고 슬픔도 상실도 지나간다. 그러나 지나간 자리에 언제나 흔적이 남는다. 그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간직한 채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게 된다. 사별가족 마음 안에 상실과 슬픔의 여정이 있듯이 나에게도 환자와의 만남에서 슬픔과 상실의 여정이 있다. 일상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임상영적돌봄가라는 역할이 때로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어느 날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부터 흥미로움을 유발하게 되었고 얇은 책 두께가 마음에 들었다. 책 내용에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내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스승이 말하기를, 기억하시오.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말이오. 왜 지금이 가장 중요하겠소? 우린는 오직 '지금'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오. 오직 지금 이순간만이 우리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말이지요. 또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오. 앞으로 그 어떤 상황에서 그 누구와 자신이 인간관계를 맺을지 모르므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하는 사람이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있는 그 사람에게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이지요. 그를 위해 이 세상에 인간이 보내졌고 오직 이를 위해 인간이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위 세가지 질문은 삶의 회고와 용서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다. 죽음이 임박해져 왔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혼돈 속에서 살다가 급작스럽게 마무리를 한다.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듯이 매일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삶을 살아간다면 마지막 여정 또한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행복한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호스피스 관계로 잘 알고 지내는 수녀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짐을 보면 스님 같은데 가족이 없고 임 종이 임박한 상태라면서 한번 다녀가길 원했다.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나는 서울로 향했다.
수녀님의 안내로 잠시 작은 방에서 여러 가지 기본적인 임상 자료를 브리핑 받고 호스피스 병실로 들어갔다. 날이 너무 더워 병실 공기가 탁하고 습했다. 창 옆 침상에는 뼈만 남은 남자분이 누워 있었는데, 수녀님이 저 분이라고 눈짓으로 말해주었다. 살포시 다가가 깡마른 손을 살며시 잡아드려도 환자는 눈도 뜨지 않았다. 느낌이 스님 같았다. 그래서 귓전에 대고 “스님!” 하고 불렀더니 그제야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셨다. 웬 비구니가 비구 손을 잡고서 있으니 ‘누구?’ 하며 놀라면서도 반가운 눈빛이었다.
스님이라는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 억장이 무너져 할 말을 잃어버렸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제멋대로 길어 엉망이고, 목욕은 언제 했는지 옷 속에 비늘이 뚝뚝 떨어지고, 손톱과 발톱은 길어 살을 파고들어갈 정도였다 차마 바라볼 수 없는 그 모습, 대명천지 밝은 하늘 아래 어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하나 막막한 심정이었다. 밖에 나가 속옷, 바리깡, 면도기, 수건 등을 사왔다. 휠체어로 모시고 간신히 병실 목욕탕에서 삭발 면도하고 깨끗한 새 속옷으로 갈아입혔더니 병원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타 종교 봉사자가 나를 찾아와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저희는 스님인 줄도 모르고, 기독교인 천주교인 할 것 없이 찾아와 찬송가 부르고 성경 읽어드리고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왜 그렇게 해야 했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에…….’
나는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다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자리에 눕혀 놓고 바라보니 얼마나 거룩하고 맑으신지……. 옛말에 한 다리가 천리라고 그래도 부처님의 한 제자로, 비구니에게 당신 몸을 맡기시는게 덜 서글프고 덜 비참했으리라.
"스님! 제가 이제 곁에 있을 거예요. 아무 염려 마세요."
우리는 서로 마주 눕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법랍法臘 24년 출가 이후 지금까지 선방에서만 정진하느라 토굴 하나 장만하지 못 한 구도자였다. 지난 겨울 결제結制때 자주 잔 기침이 나서 해제하면 병원에 한 번 가봐야지 하다가 해제 후 주위에서 병원은 서울로 가야 한다고 해서 도반들이랑 함께 이곳을 왔는데 진찰 결과 폐암 말기로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도반 스님들이 해제비를 털어 입원했고, 도반들이 오가곤 했는데, 몸이 그저 그래서 모두 결제 들어가라고 했지. 그런데 이렇게 빨리 병이 깊어질 줄이야……."
올해 세속 나이가 47세. 속가에는 여동생 하나 달랑 살아 있어 가끔 왔다 가곤 했는데, 어렵게 살다 보니 요즘에는 통 못 온다고 말씀하셨다. 커다란 키에 뼈만 남은 육체의 고통……. 숨이 가빠 온몸의 땀구멍 마다 식은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전신은 산소 부족으로 청색증이 와서 피부는 파랗게 죽어가고 물 한 모금 제대로 떠 넣어주는 이가 없어 혀는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었다. 거즈에 물을 묻혀 입속에 넣어드리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나를 찾았다. 병원비 문제로 직원이 올라온 것이다.
"450만원인데 스님 병원비는 어디로 구하면 되나요?"
대답이 퍼뜩 떠오르지 않았지만 "걱정 마세요. 해결할 테니……." 한 칸 토굴 형편에 이렇게 대답을 했다.
450만원. 시간은 없고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할까? 생각나는 대로 전화를 돌렸다. 차마 스님 병원비가 없어 그런다는 사정 이야기는 체면상 빼놓고 일곱 군데 전화를 해서 돈을 마련했다. 그리고 착한 어느 보살님께 스님 떠날 때 입혀줄 수의 한 벌 값까지……. 이 모든게 스님의 청정한 수행공덕이었으리라.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님. 왜 저 사람들이 와서 무례하게 굴면 나무라시지 가만히 계셨어요?"
스님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서 말씀하셨다.
"우리나라에서 땅을 제일 많이 가진 종교가 불교인데, 중이 지 죽을 자리 하나 없어 남의 병원에 와서, 그것도 이렇게 큰 십자가 아래 누워 죽는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겠노? 허! 허! 내가 이래 큰 십자가 아래서 죽어나갈 줄 우예 알았노? 내가 중이믄 뭐 하겠노? 부끄러바서 눈도 뜰 수가 없었제."
스님의 부끄러운 마음이나 지금 내가 부끄러운 이 마음이나 같을까?
"스님! 제가 저 바랑 열어봐도 되지요?"
눈으로 그러라고 허락하셨다. 바랑을 열어 보니 가사, 장삼, 지갑, 승려증, 8만원, 통장 (120만원 들어 있었음)이 스님의 생활을 반영하듯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스님! 그동안 살아오신 짐들은요?"
내 물음에 고개를 흔든다. 20년 세월을 수행자로 살아온 마지막 모습이 이토록 비참할 수가……. 숨이 차서 좌불안석인 스님이 푹 꺼진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시더니, 붉은 눈 속에서 눈물을 토해내셨다. 닦아도 닦아도 흘러내리던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스님을 모시고 내 토굴로 내려오고 싶었지만 형편이 그러질 못해서 더욱 죄송스럽고 안쓰러웠다. 하필이면 그 병원 십자가가 유독 컸다. 게다가 스님 머리 바로 위에 걸려 있어 마음이 더욱 불편했으리라. 침대 위로 올라가 한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스님을 끌어안아 무릎에 누이고 작은 소리로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가는 혼자 남아……." 노래를 들려주었더니 힘없는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주시며,
"시님! 내 부탁 하나 들어주소, 꼭!"
"네~ 말씀하세요."
"나는 이렇게 십자가 아래 누워 죽지만, 우리 시님들 늙거나 병들면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 하나 지어주소. 시님은 할 수 있어."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나는 너무 놀랐다.
"스님, 난 못해요. 내가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안돼요! 스님! 병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닐 거예요."
그러자, 스님은 내 손을 더욱 힘주어 잡으시며,
"원願을 세워요, 부처님이 계시니까. 내가 죽어서라도 도와줄게. 원만 세워! 원만 세우면 다 돼."
스님의 눈물이 내 승복 바지에 젖어들었다. 스님은 공부 중에 있는 도반들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알리지 말기를 당부하며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 후 뿌려주길 당부하셨다.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던 오후 4시에 스님은 내 체온에 의지한 채 병든 육신을 여의고 그렇게 떠나셨다.
스님! 저 하늘에 뜬 저 별이 스님 아니신가요?
스님! 스님의 영전에 맑은 향 사루어 공양 올리오니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사바를 밝혀주소서!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