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나에게 울타리인 엄마가 쓰러지신 악몽 같은 달이었다. 엄마는 6차례의 수술과 시술을 받으셨지만, 결과는 임종을 준비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뿐이었다.

지금 엄마는 이곳 자재요양병원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신다. 처음 이곳에 오실 때에는 겨우 몇 마디 말씀하실 수 있는 정도였고, 삼키는 기능도 떨어져 주사약에 의지해야 했었다.

그렇게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영적돌봄가 스님께서 엄마를 위한 이벤트를 마련해 주셨다. 행복했던 과거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보여 드렸고, 아버지에게 고운 꽃다발도 받으셨다. 그렇게 많이 웃고 눈물 흘린 시간을 보낸 뒤 엄마는 조금씩 음식을 삼키기 시작하셨고, 웃음도 보여주셨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이토록 큰 변화, 기적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곳은 불교재단 병원이지만, 엄마의 머리맡에는 성모님이 온화하게 자리하고 계신다. 천주교 신자인 엄마를 위해 영적돌봄가 스님께서 가져다주신 성모상이다. 종교를 불문한 따뜻하고 섬세한 돌봄이 우리 가족에게는 늘 큰 감동이 된다.

언제나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엄마. 엄마와 나는 휠체어를 타고 병원 앞 치유동산 약사여래 불상 앞에 가서 묵주 알을 돌리며 기도문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예쁜 가을을 바라보며 함께 노래도 부른다.

엄마가 쓰러졌을 때 우리 자매들이 마음 모아 기도했던 지향들이 있다. 엄마와 눈 마주치기, 함께 노래 부르기, 함께 걸었던 길을 다시 걷기... 비록 휠체어에 앉아 움직이시지만, 이 모든 기도가 이루어졌다.

이곳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의 따뜻한 돌봄과 스님들의 기도, 그리고 우리 가족들의 사랑이 모여 엄마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 것 같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은 외갓집에 가자고 한다. 병원 앞마당에서 아이들은 자전거와 씽씽카를 타고, 우리는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평온한 주말을 보낸다. 엄마가 평생 바라시던 넓은 정원에 손자 손녀들이 뛰어노는 외갓집. 바로 이곳이 엄마의 집이고, 아이들의 외갓집이며, 나의 친정이다.

(정토마을 2020.1월호 계간지에 실어주신 내용을 옮겨 싣습니다.)

김다운 │ 요양병동 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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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세계에서 행복지수 1위인 .. 세계에서 행복지수 1위인 부탄으로 성지순.. 201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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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동안은 교직 생활로 인해 종교나 봉사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던 2014년 5월, 저는 정토사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봉사활동을 통해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은 첫 만남부터 낯설지 않았고, 항상 푸근함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벌써 6년째 매월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으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정토 도량에서 열심히 복 지으라는 운명인가 봅니다. 

요양병동에 계시는 어르신들의 식사를 도와드리거나, 말벗이 될 때는 멀리 경기도 용인에 계시는 친정엄마 생각에 가슴이 찡해지기도 합니다.
조리실(공양간) 봉사할 때는 식자재 다듬기, 환경정비를 하며 건강식으로 준비한 점심을 먹고, 봉사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항상 뿌듯한 마음으로 마무리하고 도반들과 헤어지면서 또 만나길 기원합니다.

“과거 생의 내가 궁금하면 지금의 내 삶을 보고, 미래 생의 내가 궁금하면 지금의 내 행을 보라. 지금의 삶이 편안한 사람은 복을 까먹고 있는 중이니, 그럴수록 많은 선업을 쌓아야 미래 생도 편안하다.”
날마다 행(行)하는 삶이기를 되새기게 하는 글귀입니다.

주변에 봉사를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계시면 주저하지 말고 이곳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으로 오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전혜경 │ 울산 정토회 회장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어드리는 일,

함께하고 싶으시다면?

#자원봉사자 #재능기부자 가 되어 그들의 일상에 힘이 되어드릴 수도 있고

#후원자 로써 힘이 되는 활동들을 지지해주시는 방법도 있어요~!

함께 해주신다면 정말 행복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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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호스피스협, 10월25일
창립 10주년 기념식 개최
세미나·봉사자 시상식 등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가 지난 10년의 여정을 조명하고 앞으로 불교호스피스의 나아갈 길에 마음을 모으는 법석을 마련했다.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협회장 능행 스님)는 10월25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창립 10주년 기념식 및 호스피스 세미나 삶, 사람’<사진>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전국에서 활동하는 불교호스피스 봉사자들을 격려하고 불교호스피스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높이기 위한 토대로 마련됐다.

협회장 능행 스님은 “호스피스를 실천하는 우리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누군가의 종착역에서 삶을 놓고 떠나가는 이의 차가워지는 손을 잡아주며 식어가는 그의 마음을 품어안고 저녁마다 서쪽바다에서 피어나는 불꽃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며 “여러분이 실천하는 이 보살행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의 길이다. 누구나 갈수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이 길을 기꺼이 가고 있는 여러분의 고귀한 선행에 찬탄한다”고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스님은 이어 “불교호스피스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많은 스님들과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호스피스협회 10주년이라는 오늘을 맞이하게 됐다”며 “사회적 고통과 특히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질병으로 발생하는 다차원적인 영적고통을 완화하고 보다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불교호스피스협회의 노력에 격려와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협회 고문 지현 스님은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두려워하는 임종환자들 곁에서 그분들을 행복한 세계로 인도하는 호스피스 봉사자, 관계자 모두가 이 시대의 보살이자 꽃이며 생명의 희망”이라고 치하했다.

최윤선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이사장은 “불교호스피스는 우리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돌봄을 제공하고 있는 곳”이라며 “앞으로도 자비심과 사랑으로 환자를 돌보고 용기와 지혜로 모든 일들을 헤쳐나가 달라. 완화의료학회도 제도나 각종 세미나 등과 관련해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념식에 앞서 진행된 세미나 ‘삶, 사람’은 공연을 통해 불교호스피스를 이해하고 삶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백문 김기종의 찻잎, 대금, 소연주 등을 시작으로 살풀이춤(조현화), 연극하는사람들의 장작극 ‘무제-생으로부터의 침몰’ 등이 감동을 선사했다.

이어 진행된 시상식에서는 영적돌봄가팀이 조계종 포교원장상을, 부산지부 환희호스피스봉사단 부산대병원팀이 The아름다운사람 봉사상 단체부문을, 울산지부 최정순 봉사자가 개인부문에 선정돼 수상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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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자비와 지혜를 바탕으로 행복한 삶과 평온한 죽음을 돌봅니다.동행,돌봄,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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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돌봄가팀 포교원장상…부산지부 부산대병원팀 봉사상 단체부문 수상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10주년 기념식에서 포교원장 지홍스님이 협회 영적돌봄가팀으로 활동하는 능인스님 등 9명에게 포교원장상을 수여하고 있다.

말기암 환자들과 함께 해 온 불교호스피스협회 10주년을 자축하고 향후 협회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협회장 능행스님)는 10월2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공연장에서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조계종 포교원장 지홍스님, 초대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장 지현스님을 비롯해 전국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는 스님과 자원봉사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에서 포교원장 지홍스님은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영적돌봄가팀으로 활동 중인 능인스님 등 9명에게 포교원장상을 수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당부했다. 협회장 능행스님은 호스피스 현장에서 헌신한 부산지부 환희호스피스봉사단 부산대병원팀에 ‘The 아름다운 사람 봉사상’ 단체부문상을, 울산지부 최정순 봉사자와 부산지부 김명자 봉사자에 개인부문상을 수여하며 노고를 치하했다.

기념식에서 앞서 ‘삶, 사람’ 호스피스 세미나는 10주년을 축하하는 공연과 연극 등 문화행사로 펼쳐졌다. 대금연주와 살품이춤에 이어 호스피스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무대에 올라 연극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와 함께 한마음선원 한마음합창단도 음성공양을 선보이며 협회 10주년을 축하했다.

포교원장 지홍스님은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창립이 벌써 10년이 됐다. 1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지금은 연간 600여 명이 넘는 회원들이 호스피스 봉사를 하거나 협회를 지원하는 다양한 역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죽음을 앞둔 불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 뿐만 아니라 완화의료와 관련된 법과 제도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협회장 능행스님은 “호스피스를 실천하는 우리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누군가의 종착역에서 삶을 놓고 떠나가는 이의 차가워지는 그 손을 잡아주며 불꽃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10년의 여정을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사회적 고통과 더 이상 치유될 수 없는 질병으로 발생하는 다차원적인 영적고통을 완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협회장 능행스님이 부산지역 환희호스피스봉사단 부산대병원팀에 'The 아름다운 사람 봉사상' 단체부문상을 수상하고 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연극을 선보인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한마음선원 한마음합창단의 음성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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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규 기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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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자비와 지혜를 바탕으로 행복한 삶과 평온한 죽음을 돌봅니다.동행,돌봄,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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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요란한 정토마을에서 오늘은 개구리가 먼저 예불을 한다.

 

나 오늘 기도하기 싫어~”

스님아, 어여 하시소

못해~!”

 

봉사자랑 이야기가 길어져 예불시간을 10분 놓치신 스님께서는 늦은 것이 마음에 걸려 투정을 하시는 게다.

 

그럼 개구리보고 저녁 예불하라고 할까요?”

내 말에 우리 스님 웃으신다.

아이고 개구리가 어떻게...?”

그럼 어여 가서 예불 하세요.”

몰라~! 싫어 나 못 해 못 해~!”

 

그럼 오늘 예불은 하지 말지 뭐...”

...?”

기도하기 싫은 거 부처님께서 다 아시고 계실 테니까...”

오늘은 쉬세요.”

안돼~!”

큰소리로 말씀하시며 일어나시더니 가만 가만 법당으로 가신다. 그리고는 목탁 소리가 난다.

또르륵- 또르륵 똑 똑...

 

죽음 속에서 죽음을 돌보시는 분, 우리 성오스님, 당신은 환자가 아니란다.

 

우리 성오 스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4년 전으로 올라가야 한다.

스님께서는 아주 특별한 불치질환 판정을 받으셨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제방을 두루 다니시면서 공부를 하시었다. 그러다가 어느 여름안거를 들어가시었는데, 공양시간에 뇌혈관과 심장판막이 터져서 바루를 손에 든 채 대중방에서 쓰러지셨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얼마 동안 계셨는데, 의료진들이 `살릴 수가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어른 스님들께 전하셨다고 한다.

'카타야수 동맥염' 우리나라에 500명밖에 없는 생존기간 5년 선고형 불치병이다. 혈관이 이유 없이 뚝뚝 끓어지는 질병이다. 안거 중인 선방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정토마을로 오시었다.

 

그때 진단서에는, 1주 정도의 생존가능성이 기재되어 있었다. 식사로는 멀건 물죽을 호스를 통해 코로 주입되었고, 소변, 대변, 의식, 기억력, 인지능력, 사지불능, 신체적 정신적 모든 기능이 상실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스님의 임종 맞을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 일주일, 보름, 한달... 스님께서는 기적처럼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하시었다. 혈관이 터지는 병이라서 주사 한 대를 놓을 수가 없는 처지였다. 사그라지는 잿더미 속에 빨딱거리는 작은 불씨 하나 부채로 부치고 또 부치며 불꽃을 살려내기 시작하였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6개월 만에 코에서 줄을 빼고 입으로 식사를 드시는 연습을 하시기 시작하였다.

깨어나고 보니 막막한 것은 오른쪽 팔다리가 기능을 다 상실한 것이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것은 기억력 상실과 인지능력 상실이었다. 모든 기억력이 담긴 뇌신경 세포가 뇌혈관 출혈로 몽땅 제 기능을 상실한 것이었다. 오른쪽 전신마비로 더욱 불편하고 수시로 발작을 하시고 부정맥 등 심장판막도 터지고 상태는 늘 벼랑 끝이었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이파리가 되어 하루하루 그렇게 생명을 이어갔다. 말씀도 못 하시고 글자도 다 잊어버리시고 팔다리고 못 쓰시고, 기억력도 반 이상 상실된 채 또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차츰, 차츰, 차츰.... 인지능력이 살아나면서(분별심) 우울증과 조울증에 수시로 시달리면서 정신적인 고통까지 겸하게 되었다. 자신의 모습에서 사람으로서 그리고 승려로서 모든 역할과 관계가 상실되고 존재의 의미마저 퇴색되어가고 있음을 아시고는 비참한 당신의 처지가 너무나 서글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죽고 싶다. 죽어야 한다는 절망 속에서 우울증에 시달리시던 우리 성오 스님께서는 그래도 늘 나의 의지처였다. 상의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그래도 우리 둘은 참 좋은 도반이었다. 눈으로 말했고 마음으로 통했다. 생각과 튀어나오는 어설픈 말들은 늘 따로따로이지만 우리는 다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날 홀로 두시지 않으시고 좋은 스승을 곁에 두어 주시었다.

 

성오 스님~!

당신을 통하여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새로운 소임이 있음을 알게 하시었습니다. 스님의 모습을 통하여 장기적으로 투병이 필요한 스님들의 고통과 그들의 삶의 질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성오 스님이 내 곁에 계시지 않았다면 요양병원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기획, 시설방안, 심리적 정신적 이해, 운영에 대한 대책, 열정과 의무감, 이런 것들이 강하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장기적으로 긴 투병이 필요한 스님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구도자로서의 삶으로 끝까지 이어질 수 있는 대책과 방안으로 고심하게 되는 나를 봅니다.

"성오스님! 당신은 나에게 보살로 오시었구려." 스님의 여윈 몸을 감싸 안아봅니다.

 

여러 스님들의 장기 투병모습을 여기저기서 자주 보고 느끼면서 고심고심 끝에 '그래 천일기도를 해보자' 마음 먹었다.

그러나 천일기도 해주실 스님 오실까?’ 하고 1년을 기다려 보았지만 스님들께서는 오시면 떠나실 뿐이었다. 봉사를 오신 스님들도 사나흘만에 모두 바랑을 메고 떠나기 바빴고, 성오스님과 나는 그런 스님들의 뒷모습에 떠날 수 있음에, 부러운 눈길을 던지곤 했다.

어느 날 나는 성오스님께 매달렸다.

병원을 잘 건립해 보겠으니 스님께서 천일기도를 해달라고 말이다. 투정 반, 억지 반 그렇게 거듭 실랑이를 했다.

한글도 다 잊어버리고, 반야심경 한 구절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우리스님, 두돌박이 아기 말 배우듯이 더듬거리는 스님, “못해~”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성오 스님께 말씀드렸다.

이제 법당은 스님께서 맡아서 천 일 기도를 올려주세요.”

 

스님께서는 천일기도에 대한 부담감과 할 수 없다는 포기심리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한참을 괴로워하셨다. 나는 모르는 체 천일기도 입재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천일기도는 성오스님께서 하실거라고 발표하였다. “몰라~! 몰라~!” 아이처럼 왼쪽 손만 흔드셨다.

모두들 무리라고 했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커다란 좌목탁 하나를 샀다. 법당에 놓아드리고 어설픈 왼손에 목탁체를 쥐어드리면서 말했다.

나는 이제 법당에 천일 동안 들어오지 않을 테니 그리 아셔요.”

가슴이 저려오는 걸 참으면서 법당을 나왔다.

절도 못 하시고, 합장도 안 되고, 다리도 말 안 듣고, 말도 제대로 안 나오고, 글도 모르는데 어찌 기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왜 나라고 무리인 줄을 몰랐을까. 그러나 억지를 부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성오스님에게는 환자로서의 생존보다는 승려로서의 생존에 대한 의미가 더욱 크기에, 나는 그 이후로부터 특별한 날이 아니면 법당에 들어가지 않았다. 힘없는 손에 목탁을 들려놓고 처음에는 사시기도 때마다 문 뒤에 숨어 서서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부모나 형제였더라면, 그 가슴은 더욱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아픔이 되었으리라. 문 뒤에 숨어 혼자 눈물을 눌러 닦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흩어져 버린 쪼가리 기억들, 오만가지 문구들이 더듬거리는 소리에 튀어나왔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지만 그래도 목탁소리는 똑딱 똑딱 흘러나왔다.

 

환자복으로 법당에 가시어 그 목탁 채 몇 번이고 집어던지시며 울며불며 기억을 찾아 헤매시던 우리 스님, 정토마을 가족들은 성오 스님께서 기도하고 나오시면 아낌없는 격려와 칭찬을 해드렸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스님과 함께 기도 동행에 나서주시는 순주 보살님...

 

성오 스님과 순주 보살님 두 분은 신체 증상이 비슷하시다.

그래도 순주보살님은 기도하시는 스님 뒷등에 눕기도 하시고 벽을 기대고 앉기도 하시며 기도 동행이 되어주신다. 그 이후로 우리 스님은 할 수 없이 많은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기도 끝나시면 천수경 반야심경 사경 하시고 ----부터 읽고 쓰기 공부를 시작하였다. 한 마디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도 스님 기도에 우리는 만족스러웠다. 세월이 흘러갔다. 눈물과 고통들 속에서 어느새 800일 기도 천도의식 날짜를 함께 의논할 수 있게 된 우리는 서로 너무 행복하다.

 

이제 성오스님께서는 법당에 가시면 가사를 걸치시고 기도할 수 있으며, 천수경 반야심경 그리고 영단에 법성계까지 치신다. 제사를 지내야 할 때는 곁에서 한쪽 손으로 목탁을 쳐주시며, 하루 두 번 기도시간은 꼭 법당에 계신다.. 초도 갈고, 자원봉사자들에게 법당청소 지시도 하시는 스님이시다.

 

혜란씨- 청수물 주세요-” 이렇게 말씀도 하신다.

이제는 천수경 소리도 제법 옛 소리를 찾아가고, 아랫방에 내려오시어 옛날, 차 우려내시던 솜씨로 차도 한 잔 만들어 건네주시며 살포시 웃어주시는 그 미소에 나는 너무 큰 행복을 느낀다.

 

우리는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태산이다. 늦은 밤 귀가하게 되면 스님 방에는 불이 밝혀져 있다. 내 차 소리가 들려야 비로소 불을 끄시고 잠자리에 드시는 고마운 도반 성오스님! 기도 중에도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시면서 목탁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엊그제는 늦은 밤 내 방으로 내려오시었다.

빨간 봉투 2매에 십만 원씩을 담아서, 삐뚤삐뚤 글씨로 이렇게 쓰시어 보관하라신다.

1) 성오 스님 입관할 때 수고하시는 분께 보시해 주세요.

2) 해동사문 비구니 성오, 아미타 부처님 전에 불전 올립니다.

 

이러실 때마다 나는 슬펐다.

`왜 저렇게 서두르실까?'

이렇게 쓴 글씨봉투가 벌써 3개째다.

`날 혼자 이렇게 버려두시고 당신 혼자 먼저 가시면 알아서 하라'고 협박도 하지만, 그때마다 웃음을 허공으로 날리신다. `관자재병원 다 지을 때까지 내 곁에 있어 달라'고 늘 애원한다.

 

이 산중에 이라곤 당신과 나 둘뿐인데...

다른 스님들께서는 오고 싶을 때 왔다가 가고 싶을 때 언제라도 떠나가시지만 우리 둘은 이 모든 것 버리고 떠날 길이 없다.

 

어젯밤에는 둘이서 차 한 잔 하면서 감사드렸다. 성오 스님께서도 자신의 기도 원력으로 모든 것이 잘 되어가노라고 좋아하신다.

이제는 내가 없어도, 병실 환자를 위해 힘없이 아래로 처지는 오른손을 잡아 쥐고 기도해 주신다.

매일 힘들어 하시는 환자 곁에 가시어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기도하실 때 축원도 잘 해주신다. 사지 말짱한 어느 스님 못지않게 당신의 자리를 이렇게 채워 가신다.

 

출가 승려는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수행자로서의 역할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병중에 있을 때라도 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하시면서(이것이 정진이다) 존재하는 것(생명의 존엄성을 상실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에는 혼자 살살 산책도 하시고 봉사자들하고 담소도 나누어 주신다.

 

성오스님.

그는 역시 구도자였다. 언제까지나...

800, 우리 성오스님 기도하시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항상 경상 옆에는 커다란 손수건 하나가 놓여 있다.

그래도 나는 늘 모르는 척 지나쳐 나온다.

아무리 힘들어 해도 기도품을 덜어주지 않는 내가 미울 때도 있겠지만 환자이기 이전에 당신은 승려이기에...

 

요번 800일 기도 축제 때는 우리 성오 스님께서 아마도 4년 만에 처음으로 장삼에 가사를 수하시고 여러분을 반겨 맞아 주실 겁니다. 너무나 장하시고 거룩하시지요.

당신께서는 `한 오년 더 살아 병원 다 짓는 것 보시고 떠나시겠다'고 하시지만 여러분 기도해 주세요. 스님이 성오 스님을 정말 편안히 모시고 오늘의 고생스러움에 보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서둘러 준비하시는 모습에... 늘 걱정입니다.

그래도 천진한 웃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천도재에서 성오 스님을 만나는 분들께서는 붓다를 만나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죽음을 돌보아 주시는 분...

 

 

성오 스님!

당신께 정례를 올립니다.

금생에 모두 성불하옵소서.

오늘 저녁에는 성오스님과 둘이서 따뜻한 차 한 잔 나누어야지...

 

-2004, 어느 날 능행 합장

입보리행론 제1장 보리심 공덕 찬탄품

보리심을 일으키면 성불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원력만이 아닌 진실된 마음으로 보리심을 일으키면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짐은 물론 인생 자체가 의미 있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고통이라는 이름마저도 소멸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보리심은 궁극적으로 성불의 일체종지를 증득할 수 있는 인과의 종자가 되는 것입니다. 무량한 세월 동안 깊은 사유를 행하신 모든 부처님들께서 이 보리심의 유익함을 보시고, 이것으로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아주 쉽게 궁극의 안락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중생들은 고통을 여의기를 바라지만 오히려 고통 자체로 내달리고, 안락을 원하지만 무지로 인해 스스로 자기 안락을 원수처럼 부수어 버립니다.

축생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중생들은 고통을 싫어하고, 행복을 바라며 불행은 누구도 원치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번뇌의 힘에 의해 이끌려 다니기 때문에 한 가지 번뇌를 간신히 조복 받고 나면 그 다음에 또 다른 번뇌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노력을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고통 속으로 내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탐욕을 내고 화를 내게 되면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화를 냄으로써 새로운 마음이 일어나 더욱 더 용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를 내는 원인 때문에 또 다른 업을 짓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탐욕과 욕심을 내다보면 이것쯤이야 내가 취해도 되지 않는가, 욕심을 좀 내도 되지 않겠는가 하고 자기 자신에게 자비로워지고 자신을 합리화 시킵니다. 탐욕으로 인해 또 다른 업을 짓게 되는 그런 원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도는 내가 자만을 가져도 된다는 자만심과 이 정도라면 괜찮지 않나 하는 자신을 북돋아 주는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질투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질투심을 내게 되면 누가 뒤에서 등을 떠미는 것처럼 더욱 더 질투의 힘이 커지고, 더욱더 그 마음을 크게 일으켜주는 번뇌의 도우미가 반드시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경쟁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경쟁하는 라이벌 의식을 가지게 되면 더 정진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들은 번뇌가 번뇌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고통을 원하지 않지만 악업에 의해 고통으로 내달리게 되는데 그런 악업의 힘에 의해 번뇌가 번뇌를 낳아 오히려 우리를 더 고통 자체로 내달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단 보리심을 일으키고 난 후 자신이 악업과 번뇌로 인해서 고통 받은 경험들을 잘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아집이 오히려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업의 뿌리는 바로 아집과 악연이라고 했습니다.

 

입보리행론 제1장 보리심 공덕 찬탄품12

보리심이란 무량한 허공과 같이 무한한 중생들을 그 중생들 모두 나의 부모처럼 보고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해줘야 되겠다는 마음을 내기 때문에 그 생각 자체는 한계가 없고, 선업은 끝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간에 한계가 있는 선업의 마음을 가지고 선행을 쌓게 되면 그 과보가 한 번으로 끝이 나지만, 보리심의 나무는 항상 푸르러 끊임없이 열매를 맺고 시들지 않으며 잘 커나갑니다.

 

보리심 기도문

 

지극한 마음으로

··승 삼보에 귀의하오며,

무지무명으로 지었던 지난 과거의 모든 잘못들을 진정으로 참회하오며,

앞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반야의 지혜와 자비의 방편으로,

보리심을 일구며, 세세생생 보살도의 삶을 살겠습니다.

참회진언 :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3)

발보리심 진언 : 옴 보디지땀 우뜨 빠다야미 (3)

원하옵나니,

이러한 공덕이 일체에 두루 하여

나와 모든 중생들이 극락세계에 왕생하고,

무량수 무량광 아미타 부처님을 뵈어,

다 함께 성불하여 지이다.

 

정토마을 후원 가족들과 저희들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귀의하여 배우고 선업을 닦아서

나의 생각 가는대로 착각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이며, 나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을 것이며, 나의 양심을 속이고 다른 사람이 상처받는 나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비록 가진 것이 많지 않다 하더라도 마음을 가난하고 인색하게 내지 않을 것이며, 내가 바르게 노력한 만큼 필요한 것을 적절히 취할 것입니다.

이러한 서원의 기도를 부처님 전에 올립니다.

 

-능행 합장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어떤 모습이 아름다운노년의 모습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만난 것이호스피스라는 것이다.

살아내면서 가장 두렵고도 알기 어려운 것이 죽음이다. 죽음이란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하고 놀랍고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댈 것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런 당황스런 죽음의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놀라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고 죽음의 옆에서도 여유로울 수 있는 마음그릇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호스피스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지난여름 호스피스교육을 받았다. 그러면서 자재요양병원에서 3일간의 실습 을 하게 되었다. 우린 먼저 중환자실로 향했고, 도울 거리를 찾게 되었다. 중환자실 환자들의 목욕날,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환자를 씻기는 데 손을 보탰다. 그렇게 3일간 환자목욕 시키는 일을 도울 수 있었다. 구석구석 문질러 드렸더니 어르신들이 시원하고 때가 싹 씻긴 것 같아 좋다고 해주셨다. 그런 칭찬에 더 힘을 내어 정성껏 어르신들의 몸을 닦아 드렸다. 아직 서툴렀지만 몸을 맡겨주시는 분들께 듣는 칭찬에 뿌듯함을 느끼며 힘든 줄 모르고 하게 되었다.

목욕봉사를 하면서 늙어 가면서 내 몸 하나 내 힘으로 건사하지 못하고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어떨까?’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봉사라는 것은 남보다도 나 자신을 위한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를 위한 것이 남을 위한 것이며,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임을 이번 자재병원에서의 실습을 통해 다시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네 인생은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이렇게 조금이나마 보태게 된 힘이, 결국 내 인생의 막바지에 누군가의 도움으로 내게 다가오게 될 거란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서로의 공간을 조금씩 내어줄수 있는 마음씨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렇게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 힘을 보탤 수 있을 때 충분히 정성껏 돌보아 드리도록 해야겠다. 그것이 내 노년을 위한 저축이며,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준비가 될 것이다.

 

이상필│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호스피스 봉사자

 


http://www.jajae-hospital.com/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세계에서 행복지수 1위인 .. 세계에서 행복지수 1위인 부탄으로 성지순.. 2017.05.25

www.jajae-hospital.com

 

어느 한 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때가 없었노라

불교 호스피스교육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 정토마을 공동체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정토마을 공동체는 돌봄과 수행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의료와 교육으로 사회에 공헌하려는 비영리 단체다. 정토마을 공동체는 1988년 불교 봉사단체 ‘자비회’라는 15명의 봉사자로 시작하여 1989년 5월 말기환자를 대상으로 호스피스활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임종까지 동행 하는 호스피스 영적 돌봄은 전문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고, 그리하여 4년 후 1993년 5월 아미타호스피스회를 창립하여 불교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불교전문 호스피스교육을 실시 하면서 현재까지 2,000명의 수료생을 배출하였다.

교육에 있어 정통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인기에 편승하지 않고 교육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때문에 불교 호스피스교육에 함께 했던 강사진, 진행요원, 수료생 모두 20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한 사람으로서 서로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교육생을 지지하러 방문한 선배는 “어느 한 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때가 없었노라”고 회상에 잠긴 말을 간혹 남기고 간다. 그 순간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은 듯하다.

 

Are you happy ?

불교호스피스를 처음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스피스=네가티브(부정적)로 인식한다. 죽음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한 지점이다.

불교 호스피스교육 20년 역사를 이끌어 오신 능행스님(정토마을 재단이사장)께서는 언제부터인가 대중들에게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하신다.

수없이 많은 환자들을 통해 죽음을 지켜보신 스님께서 행복하냐고 물으시면, 사람들은 멈칫 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은 “행복은 무지개 너머에 있다.”라는 보편적인 결론을 잘 알고 있지만 멈칫하게 되고 끝내는 다양한 답을 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불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답하지 못한다.

2010년 11월, H 대학교에서 능행스님께서 ‘행복’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되었다. 그날 스님은 청년들에게 불교적 관점에서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강연 내용을 일부 요약하여 실어 보았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일시적이고 감상적인 관심만 보일 뿐 죽음을 대화의 주제로 삼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며, 또 그런 주제를 입에 담는 것조차 민망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무관심이 이미 죽음에 대해 확고하고 초연한 자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보기도 어렵다. 사람들이 죽음의 문제를 외면하는 이유는 죽음에 대해 초연하기 때문이 아니라 4층을 F층이라 부르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죽음은 부정이요, 금기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죽음을 꺼리고 혐오하거나 죽음에 대한 언급조차 금기시 할 것이 아니라, 인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을 대비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여 죽음에 대한 지식과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과 그 가족들을 돕는 방법 등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교육은 노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죽음이란 바탕 위에 삶이란 집을 짓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과 동행하는 삶 위에 눈부신 빛이 있다. 이것은 자신의 삶에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긍정적 사고의 관점이다.”(능행스님 강연 내용中)

 

강의가 끝나고 스님은 다시 청년들에게 물었다.

 

“행복하십니까?”

 

질문에 죽음이 배제되지 않기를 바라며 함께 강연장을 나왔다. 불교호스피스교육 20년 호스피스를 하고 있는 혹은 경험했던 우리에게 다시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행복하십니까?” 

 

[2013.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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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로 보는 호스피스교육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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