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누워 있는 어미에게 어린 딸이 꽃을 꺾어 손에 쥐여 준다.어린 딸을 홀로 이 땅에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어미. 그 어미의 식어가는 가슴에 어린 딸은 슬며시 함께 드러눕는다. 뼈만 앙상한 어미의 가슴을 만지며 식어가는 어미에게 자신의 따뜻한 체온을 나누어주고 있나보다. 강물 처럼 출렁이며 아이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있으니 나 역시 눈물 이 흐른다.

 

한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어미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죽어 누워있는 어미의 가슴팍에 온몸을 묻고 나란히 누워 있다. 아버지는 뜰에서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나뭇가지를 붙잡은 채 쪼그려 앉아 있다. 이 세상에 남은 가족은 이제남편과 딸 둘 뿐이다.

 

엄마 이제 그만 보내드리자고,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어린 저 딸에게 어떻게 이야기할까 망설이는데, 새들은 눈치도 없이 맑은 목소리로 지저귀고 산사의 풍경소리는 왜 이리도 청명한 것인지…….

 

"엄마, 엄마~."

 

아이는 조그마한 손으로 어미의 가슴을 만지며 흐느꼈다.

 

"울지 마라. 제발 울지 마라, 아가야! 너는 나의 그림 자요, 너는 내 삶의 의미요, 너는 나의 기쁨이요, 너는 나의 사랑이란다."

 

아내를 살리려고 애쓰던 남편이 아이에게 말했다.

서로의 그림자처럼 함께 살던 비둘기 부부가 정토에 온 것은 지난 늦은 가을이었다. 남편은 오직 아내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였고, 아내 역시 그런 남편을 홀로 두고 갈 수 없어 꼭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정토에서 추운 겨울을 보냈다. 어쩌면 그렇게도 두사람이 서로에게 지극 정성 일 수 있을까.

구녀산 자락에 참꽃이 붉게 타오르고 매화 향기 가득한 봄날, 보살님께서는 창문 너머 저만치 피어있는 대문지기 참꽃 두 그루를 보고 기뻐하셨다. 몸은 야윌대로 야위어 뼈와 가죽만 덮인 앙상한 모습이었지만 소녀처럼 아름다웠다. 기력이 떨어져 점점 처지는 두 손을 힘들게 모으고, "스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얼마 후, 볼 일이 있어 남편이 잠시 아내 곁을 비울 일이 생겼다. 남편은 영 불안했는지 가는 도중에도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결국 핏기 하나 없는 아내가 남편에게, 나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며 젖먹은 힘까지 다 해 힘겹게 말했다. 모처럼 남편이 자리를 비운 잠깐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스님, 저 안 울어요. 저 절대로 안 울어요."

 

마음속으로는 피보다 더 깊은 오열을 쏟아내면서도, “스님, 저 절대로 울지 않아요. 울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 울지 마요!"

"스님, 결혼생활 20여 년 동안 내 자신의 삶은 없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그냥 딸아이를 믿고, 그리고 아빠도 잘 살것이라 믿고 이젠 가렵니다. 이렇게 가도 되겠지요……? 전 요즘 꿈만 꾸면 웃고있는 제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잠이 들면 정말 행복 하답니다."

 

꿈 속에서 세 사람의 고운 소녀가 당신을 시봉하고, 당신이 걸어 다니는 곳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너무나 친절히 맞아주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보살님. 아마도 목숨이 다하면 그런 곳으로 갈 것 같다며 무척 행복해했다. 나는 부디 정신을 맑게 하시고, 떠나시면서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염송하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날 늦은 저녁 에 남편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수화기를 들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남편이 아내를 불러놓고 하염없이 우나 보다. 혹 당신 없는 사이에 아내가 저 세상으로 떠날까봐 무척 두려운가 보다. 밤이 새고 나면 부리나케 달려올 남편. 전화를 끊고나서 아내가 내게 말했다.

 

"남편과 딸아이가 너무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어서 저를 죽게 해주세요. 제발……."

 

부처님, 이럴 땐 정말 어찌해야 좋습니까? 부처님! 굽어 살펴주소서. 남편과 딸아이가 자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빨리 죽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저 보살님을 제발 도와주소서.

 

며칠 후 나는 남편을 불러 차분하게 말했다. 부인께서 어느 날 혼수상태에 빠지면, 그땐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 부인 마음 편히 가시도록 이야기 하시라고. ‘여보! 잘 가거라. 나도 때가 되면 당신 곁으로 가마. 나 잘 살거다. 건강하게 아이랑 잘 살다가 당신 간 곳으로 나도 갈게. 그러니 아무 걱정 마라’하며 서로 행복을 빌어주는 작별인사를 해 주시길 부탁드렸다. 남편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네, 스님 올라가서 이야기 좀 해볼께요."

 

그분이 앉아 있던 바닥에는 눈물자국이 흥건했다.

사랑하는 어린 딸과 남편을 두고 세상을 떠날 것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짐에 피눈물을 흘리던 보살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울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몸이 앙상하게 야위어가는 죽음 앞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보살님. 엄마품에 매달려 그렁그렁 맺히던 아이의 눈물과, 헤어짐에 고통스러워 하던 남편의 눈물……. 이생에서의 이별과 슬픔은 얼마나 깊고 질기고 아픈 것일까.

 

저 대문 곁에 핀 참꽃이 제 아무리 예뻐도 열흘을 못 간다 하니, 우리 인생이라고 별수 있으리. '만나지 말아야지, 만나지 말아야지, 애달픈 인연일랑 만나지 말아야지.'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곱고도 아린 가족들의 눈물이 자꾸만 내 눈 속에 후두둑 참꽃으로 피었다가 진다.

 

[능행스님 저서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중에서]

결혼을 몇 달 앞둔 26세의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정토마을에 찾아왔다. 애인의 손을 잡고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 온 그녀. 며칠 전 친구랑 회를 먹고 급체한 것 같아 병원에 갔다가 급성 위암 말기라는 진단에 그것도 생존기간이 불과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았다.

 

"돈이면 다 되는 이 세상에 왜 돈을 준다고해도 저 아이를 못 살리는 거예요. 말도안 돼요. 이럴 순 없어요. 살려야 해요. 스님,제발 살려주세요."

 

며칠 후 검은 색 가방에 현금을 가득 넣고 찾아 온 어머니가 돈을 내 앞에 패대기치면서 두다리를 뻗고 통곡했다.

하루 이틀 환자의 몸은 점점 말라가고 물 한 모금 삼킬 수 없는 고통을 밤낮으로 겪으면서도, 죽음이 무엇이며 어떻게 죽는 것인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 듯했다. 부모는 아이를 살려보려고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었고,더욱이 아버지는 곡기마저 끊어버렸다. 자식의 병이 자기 잘못이라는 죄책감과 아버지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는 더 괴로워했다. 그리고 전국을 뒤지며 약과 의사를 찾아 헤매다가 어디서 구했는지 불로초란 것을 가지고 와서는 한 모금의 물도 넘기지 못하는 자식에게 조금만 삼켜보라며 빌고 또 빌었다.

 

"스님! 나는 병원 앞을 하루 두 번씩 매일같이 출퇴근하며 지나치면서 저 병원에 누가 있고 어떤사람이 입원해 있는지 한번도 관심을 가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시장 바닥에서 돈 버는 일에만 미치다 보니 병원 병실의 불이 왜 밤새 켜져 있는지 몰랐습니다. 뭐하느라 저렇게 불을 켜놓았나? 하는 생각만 했을 뿐, 세상에 암 환자가 병원에서 이토록 많이 죽어가고 있는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더욱이 내 새끼가 이렇게 죽을거라고는……."

 

정원에 서 있는 작은 나무를 붙들고 주저 앉아 아버지는 아이가 들을까 소리 죽여 몸부림치며 통곡했다.

 

"실려야 해요. 꼭 살릴 겁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곁에 앉아 휴지를 잘라주다가도 몇 번씩이나 쓰러졌다.

 

"엄마! 아프지 마. 나는 어떻게 해? 선생님, 우리 엄마 주사 좀 놔주세요."

 

아무 것도 먹지 못하면서도 딸아이는 늘 밝게 웃었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죽음을 준비시키는 일보다 곤혹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어느 조용한 오후,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사랑하는 저 사람은 어쩔래?"

 

그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떳다가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스님! 나 못 살아?"

"최선은 다해보겠지만... 너는 요즘 너의 증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네, 저도 조금 알 것 같아요. 어렵다는 것...."

"그렇게 생각했어?"

"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빠 그리고 엄마, 동생, 또 네가 사랑하는 저 사람들 말이야.

"모르겠어요. 그런데 스님!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이예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엄마는 절에 다니시지만 저는 종교에 대해 잘 몰라요. 하지만 난 요즘 내가 정말 살 수 없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 되나요?"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은데?"

"네, 다시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리고 여섯 살이 되면 스님에게 와서 스님 제자 될래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는 그녀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웠다.

 

"저 정토마을에 와도 되죠?"

"그럼"

"스님, 제가 어떻게 해야 다시 태어날 수 있죠?"

"자, 봐라. 극락이라는 세계. 들어봤지? 그 세계의 부처님이시지. 우리 같은 중생들을 죽음이 없는 극락세계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셔. 그곳에는 아미타불 부처님이 계시고 관세음보살님도 계시지. 아름다운 연꽃 속에서 태어난단다. 지금부터 네가 부처님께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고 극락에 태어난다는 지극한 믿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계속부른다면 고통 없이 부처님의 자비로운 품에 안겨 극락에 태어났다가 네가 원하면 다시 이 땅에 태어날 수 있단다. 우리 한번 부처님 불러 볼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삼귀오계三歸五戒를 주고 염주도 하나 선물로 손에 쥐어주었다.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는 딸아이에게 새로운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면서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가 날 찾는다는 전화가 왔다. 부랴부랴 서둘러 갔더니 어느 중국 한의사가 그녀의 병을 낫게 해준다고 아버지에게 약속했다며 그녀의 온몸에 뜸을 뜨고 한 뼘이나 되는 침을 놓는 바람에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방의 온도는 35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딸아이를 살려보고 싶은 아비의 마지막 몸부림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녀가 날 보자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나 극락으로 가야 하는데,스님이 곁에 없어서 너무 걱정했어요 스님이 아미타불 노래를 불러줘야 제가 따라 부르죠."

 

나는 그녀를 무릎에 누이고 아미타불 노래를 들려주었다. 온 식구가 초주검 상태였고, 어머니는 애를 죽인다며 펄펄 뛰었다, 오! 지옥이 어찌 죽어서만 있으랴...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구급차를 부른 후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입원한지 나흘째 되던 날,그녀는 비로소 나와 함께 삶의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다. 예쁜 발찌도 빼고 옷이랑 그림, 그리고 종이학 천 마리 등등... 하지만 예쁜 백금 귀고리는 여전히 걸고 있었다.

 

"귀고리는?"

"스님, 귀고리는 빼지 마세요."

"왜?"

"다음에 제가 정토에 찾아오면 스님이 날 어떻게 알아봐요. 귀고리를 하고 와야 저인 줄 알지요."

"그래, 그게 좋겠구나!"

"우리 그때 다시 만나요."

"그래, 이놈아! 아미타부처님 만나서 극락에 가거든 잘 갔다고 꼭 전해줘야 해. 알았지?"

 

그녀는 오후부터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무릎에 누이고 함께 아미타불 노래를 불렀다. 의식은 초롱초롱 맑았지만 어느새 혀는 점점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미타불을 부르는 모습이 안타까워 나지막이 그녀의 귀에대고 말했다.

 

"마음 속으로 해도 된단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극락세계에 가고싶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부처님! 어서 이 곳으로 강림하소서! 당신의 나라에 태어나기를 이토록 서원하는 이 아이를 당신의 감미로운 능라로 감싸 안아 주시옵고, 당신의 품에 편히 안기어 정토에 태어날 수 있도록 대자비를 베푸소서. 이 맑은 영혼을 당신의 손에맡기나이다. 거룩한 님이시여! 사십팔원四十八願 원력願力 바다로 돌아가 당신의 자비를 구하오며 이 몸 던져 비옵니다. 나무아미타불"

 

그녀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부처님 오셨니?"

 

그녀는 아주 아름다운 모습으로 웃었다. 잠시 병실을 비웠던 어머니가 들어오자, 두 손을 벌려 제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았다.

 

"엄마!"

"여기 있어."

 

나무아미타불 염불과 함께 조금 후 숨소리가 멈추었다.

 

"잘 가거라"

 

어미는 한참동안 죽은 딸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울다 지쳐 쓰러진 어머니의 꿈에 그녀가 나타났다.

 

"엄마! 나 부처님이 안고 갔다. 병원에 올 때는 걸어서 왔는데 부처님이 날 안고 극락으로 가셨다. (뜸 뜬자리를 보여주며) 엄마, 이것 봐. 부처님이 다 없어지게 해주셨어. 나 이제 하나도 안 아프고 흉터도 없어. 아빠 용서해 주고 잘 살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나는 너무너무 좋아! 스님께도 꼭 말해줘. 나 극락세계 갔다고. 그리고 부처님이 날 안고 있다고. 엄마 가게 장부 저기 있는데, 불쌍한 사람들 것은 받지 마. 응? 내 차로 운전 배우고. 엄마! 나 이제 간다" 

 

미친 사람처럼 허둥대던 어머니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내 새끼야,잘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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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딱지’라는 상실의 여정을 잘 표현한 그림책이 있다. 그림책의 주인공인 아이는 엄마를 잃고 아빠와 단둘이 살아 가는 과정에서 우리를 두고 간 엄마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 엄마 냄새가 새어 나가지 않게 집 안의 창문을 다 닫아 놓고, 엄마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귀를 막고 입을 다문다. 엄마 목소리를 듣기 위해 무릎에 난 상처를 자꾸 뜯는다. 그러다 할머니가 오셔서 엄마는 네 가슴 오목한 곳에 영원히 있다고 가르쳐 준다. 비로소 아이는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게 되고 무릎딱지엔 새 살이 돋아나 매끈해진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한 죽음을 맞는 환자의 5단계(부정, 분노, 우울, 타협, 수용)가 상실의 과정을 겪는 아이에게서도 거의 그대로 나타난다. 아이의 눈을 빌려 쓴 그림책 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감동이다.

죽음은 어찌 보면 남은 사람의 몫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별가족의 모임인 ‘별아람’이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다시 오고 싶지 않을 장소이기도 하겠지만, 어느 분에겐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할 것이고 비슷한 상처를 서로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할 것이다.

제11회 ‘별아람’모임에서 이 책을 읽어 드렸다. 모두의 마음이 먹먹해졌고 사별가족은 눈물을 흘리셨다. 눈물을 시작으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저녁에 내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없는 것이 제일 쓸쓸해요.’ ‘지금도 어디 여행 가신 것 같아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릅니다.’ ‘부모보다 남편을 잃었을 때가 더 힘든 것 같아요.’ 등등 이 곳에서 자신의 상실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내 소중한 사람을 위해 같이 기도해 주고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곳.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편안한 곳.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따뜻한 곳. 그래서 ‘별아람’ 사별가족모임은 참 소중하다. 그리고 그 곳에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

윤정숙 독서치유사


독서치유사 윤정숙님은 정기적으로 호스피스병동 환자 및 보호자들에게 책과 시를 통해 당신들의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시는 호스피스전문봉사자이자 요법치료사입니다. 윤정숙님처럼 환자와 보호자들의 상실감을 어루만지고 삶의 의미를 함께 찾아가는 역할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정토마을호스피스병동에선 연2회 호스피스전문자원봉사자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나의 시간과 재능을 다른 이와 나누는 경험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의 의미를 가져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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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원무부장 채용 합니다... 직책 : 원무부장 2. 원무행정 경력자.. 201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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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인가 싶더니 벌써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사계절은 삶이란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선물과도 같다. 나에게 있어 사계절은 계절마다 만나는 환자분들이 다르다는 것이다.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환자분들과의 추억도 지나가고 슬픔도 상실도 지나간다. 그러나 지나간 자리에 언제나 흔적이 남는다. 그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간직한 채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게 된다. 사별가족 마음 안에 상실과 슬픔의 여정이 있듯이 나에게도 환자와의 만남에서 슬픔과 상실의 여정이 있다. 일상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임상영적돌봄가라는 역할이 때로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어느 날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부터 흥미로움을 유발하게 되었고 얇은 책 두께가 마음에 들었다. 책 내용에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내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스승이 말하기를, 기억하시오.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말이오. 왜 지금이 가장 중요하겠소? 우린는 오직 '지금'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오. 오직 지금 이순간만이 우리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말이지요. 또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오. 앞으로 그 어떤 상황에서 그 누구와 자신이 인간관계를 맺을지 모르므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하는 사람이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있는 그 사람에게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이지요. 그를 위해 이 세상에 인간이 보내졌고 오직 이를 위해 인간이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위 세가지 질문은 삶의 회고와 용서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다. 죽음이 임박해져 왔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혼돈 속에서 살다가 급작스럽게 마무리를 한다.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듯이 매일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삶을 살아간다면 마지막 여정 또한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행복한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능인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영적돌봄연구실장

매일매일 뿌연 서울하늘의 미세먼지와 겨울의 마지막의 아쉬움을 시기 하듯 매섭게 몰아치는 여분의 추위를 뒤로 하고 남쪽으로 달려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으로 향했다. 학인시절 능행스님께서 불교호스피스 병원 건립을 하시겠다고 운문사에 오셔서 홍보를 하시고, 많은 스님들이 마음을 모으던 그 시절의 회상이 내 앞을 지나가고 기대 이상으로 반듯하게 우뚝 자리잡은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의 전경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7년간의 외국생활을 하고 너무나 빨리 변해버리는 한국이라는 사회에 적응도 못한 채 지난 늦여름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나는 병원 법당 소임을 맡았다. 소임을 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터 마주하게 된 세상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분의 처절함과 쓸쓸함을 바 라보면서 난 가슴이 턱 하니 막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어떤 마음과 말이 그분의 절망을 돌려 편안함을 줄 수 있을지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느껴온 모든 것을 동원해도 얻을 수 없는 그 해답에 난 죄스러웠다. 나의 무력함과 무능함에 좌절하고 그분들의 슬픔에 동화되어 한없는 우울함으로 퇴근 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그날 이후 난 병원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꼭 받아야겠다는 간절함이 생겼고 승려연수라는 형식을 빌려 호스피스교육에 동참했다. 

 

2박 3일이라는 승려연수 교육과정으로의 호스피스교육, 사람들의 죽음을 준비하는 호스피스라는 과정이 어찌 그 짧은 시간으로 충분하겠는가? 수없는 반문도 하였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내가 만나는 많은 분들은 목숨이 끊어지는 임종기도의 순간에도 생의 집착을 놓지 못하고 간절하게 마지막까지 스님의 기도에 의지하여 삶의 동아줄을 부여잡는 사람들인데 난 무엇을 배워야 할까?

 

하지만, 이번 교육의 인연으로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웠다. 이 호스피스교육은 내가 배워서 누군가를 위해서, 어떤 소임을 살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임을 깨달았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고통, 모든 이는 죽음에 이른다는 문제에 대하여 난 과연 어떻게 죽어갈 것이고, 수행자로서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배우는 것이 이 교육이었다. 부처님께서 그리고 수많은 선지식들께서 고구정녕하게 제시하신 그 최후의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이 교육이고 나뿐만이 아니라 불자의 수행으로서 이생에서의 마지막 수행으로서 그 회향의 순간을 직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되새기고 정리하게 되는 시간이 되었음에 감사하다. 인간의 삶에서 생노병사라는 가장 기본적인 과정에서 불제자로서 어떻게 바라보고 다스리고 정진해 갈 것인지에 대한 공부를 그 동안 잊고 있었음을 반성했다. 

 

우리 불자들, 아니 우리들 모두 잘 살고자 기도에 매달리지만 잘 죽는 것에는 기도의 마음을 내지 못한다. 모두가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으로 많은 종교적 가치관과 관념들이 생겼고 사람들은 그것에 의지해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죽음에 대한 준비로써 이 교육은 절대로 간과되어서는 안 될 교육이라고 모든 분들에게 최대한 많이 알리고 싶다. 

난 오늘도 겨울을 지나 또 다른 봄으로 죽을 날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선봉 │ 승려연수교육 불교호스피스 영적돌봄 2기 교육을 수료하신 선봉스님의 후기 글을 옮겨 싣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는 수많은 별들이 존재한다.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별들이 사라졌다 나타난다.

말기 암환자가 통증과 고통 안에서 쉼표를 찍고 방문하는 곳이 호스피스 병동이다. 말기암 환자들은 진단 받은 후 육체적 치료에 몰입하다 보니 마음은 뒷전 이었다는 말씀을 종종 하신다. 그러나 몸과 마음은 실과 바늘처럼 따라다닌다. 어찌 육체만 돌본다고 마음까지 치유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에서는 몸과 마음을 모두 돌보는 곳이다. 몸에 집중하느라 삶의 의미를 놓쳐 버린 상실된 마음과 그동안 “왜 하필 나인가?”에 대한 분풀이도 이곳에서는 충분히 토해 낼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은 위기에 처한 분들을 사랑으로 품어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작가가 이런 글을 써 내려갔다. “말기암 진단을 받은 한 여성이 충격을 받고 심한 슬픔과 분노에 사로 잡혔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방문한 영적 스승에게 조언을 청하자 스승이 말했다. “그것을 그렇게 큰일로 만들지 말아요.” 암에 걸린 것은 불행한 사건이지만, 그것을 스스로 더 크게 확대시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다. 암은 자신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암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자 두려움과 싸우던 에너지가 생명력으로 바뀌어 스스로 치유하기 시작한다.

 

위 글을 읽고 많은 생각에 잠겼다. 그토록 고통에만 중점을 두고 해결하려 했던 지난 시간에 대하여 깊이 사유 할 수 있었던 글이었다. 호스피스팀원들은 위기에 처한 환자와 그의 가족들이 안정감을 갖고 혼란스럽고 힘든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학제팀으로 구성된 호스피스팀(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영적돌봄가, 자원봉사자)은 전문성을 갖추고 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증상과 마음의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그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뤄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있어 좀 더 희망을 가져 보려하는 환자에게는 희망의 요구를 있는 그대로 경청하려 노력한다. 이곳은 자신의 삶 자체를 인생수업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수업은 참으로 값지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문득 살아있는 나에게 답을 알렸다. 누군가 나를 고통으로 상상하기 이전에 나는 오늘 무척 행복하다. 우리 모두 주문처럼 매일 외워야 할 문장인 것 같다. 

 

능인 │ 자재요양병원 영적돌봄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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