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제시 다사|원네스 유니버스티

원네스란 다양한 차원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여러 차원에서 의 분리심과 경계심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분리심으로부터 언어별, 국가별 분리 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분리심이 없어지고 통합되면 하나됨이 이루 어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의 하나됨이란 내면적 인 경험이고 변화라고 보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바깥세상이 아니라, 내면의 상 태에서 세상을 어떠한 관점으로 보느냐 경험하느냐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됨이란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자신의 여러 가지 면을 수용하게 되면 그것이 하나됨으로 이루어질 때 다른 것을 보는 것이 달라집니다.
저는 12년간 수천 명의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고 또한 더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아 왔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싸우지 않게 되었으며, 더 이상 갈등 안에서 애쓰고 있지 않고, 갑작스럽게 자기 주변의 사람들과 세상과의 연결성을 맺는 것에 수월함을 느끼게 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원네스의 목표 중 하나는 인류에게 어떠한 조건도 없는 자유로움을 얻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모두가 그 자유를 향 해서 달려갑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 명상, 혹은 경전을 통해서, 또는 남을 도와주면서 우리는 달려왔습니다. 저 역시도……
자유라는 과정을 향해서 가게 되면 늘 시작은 고통의 시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 다. 그리고 우리는 고통에 친숙합니다.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인가요?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내 자신에 대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고 우리 삶에서 그것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를 다양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아가 있다면, 모든 사물을 그대로 봐줄 수 있는 것이 자유이며, 자신의 욕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도 자유입니다. 불교는 아싸바스(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철학적인 자아로부 터 해방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다시 말해 자유란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 니다. 그렇지만 공통적으로는 —자유로움을 얻게 된다면— 누구든지 모든 것들과의 연 결성이 깊어집니다. 자신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주변 사람들이나 세상과도 깊은 관계가 이루어지고, 자연과의 관계도 그리고 고차원의 의식과의 관계도 깊어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어떠한 길을 선택해서 그 행로를 갈 때 우리는 죄악의 성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마음으 로부터 해방을 얻어 간섭받지 않고 작용받지 않는 단계로 가기 위해서 그 행로를 진행 합니다.
마음이 중단되는 고요함까지 어떻게 가며, 또한 그 고요함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요? 자유로워지는 것은 누구나 중요하다고 느끼며 가능하다고도 여깁니다. 그런데 무 엇이 그것을 가로막나요? 가로막는 것은 바로 무지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에 주의를 기 울인다면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가능합니다. 자유로움을 성취하기 위한 핵심은 주시입 니다. 그리고 주시를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은 특정된 감정의 집착입니다.
감정의 집착을 원네스에서는 ‘충전’이라고 말합니다. 경험에 의한 집착에 충전이 남 아있으면 그것이 고통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주시하고 자각하게 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예를 들면 증오심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저 사람이 저렇게 하기 때문이야.”라고요. 그런데 상대방이 어떻게 해서 내가 화가 나는 것이 사실입니까?


고통은 관점에 있다.
자유라는 것을 향해가는 과정의 첫 출발은 고통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고통의 챔피언들입니다. 그 의미는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해 공부를 해왔다는 얘기입니 다. 고통은 무엇인가요? 육체적 심리적으로 아는 경험이며 불편한 경험들입니다. 그리 고 둑카라는 존재성의 고통이고 영적인 고통도 있습니다. 고통은 아주 아픕니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 방해를 주고 불편함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고통을 겪습니까? 고통을 겪는 이유는 무지에 빠져있기 때문입니 다. 가정하고 있는 무지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가정 중의 하나는 상대방이 책임요소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통이란 남 탓을 하는 과정입니다. 내면에 일어나는 ‘기분 나쁨’에 대해 남 탓을 하며 부연 설명하는 과정이 바로 고통입니다. 남에 대해서는 지배 하거나 해명하려 들고, 자신에게는 변명이라는 부연 설명들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고통을 멈추게 합니까? 그러한 과정 자체가 모두 고통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고통의 핵심은 아예 들여다보지도 못합니다. 그저 그 과정 속에 빠져 있게 됩니다.
고통이란 것은 끝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통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고통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상대방과 상황이 고통의 원인이라고 믿는 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상대방과 상황에게 주의가 묶여서 주의가 밖으로 빠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황을 바꾸고 사람을 끊임없이 바꾼다 고 우리의 고통이 종료됩니까?
바가완께서는 고통이란 ‘관점’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통은 ‘상대방이나 상황이 고통의 책임요소’라고 보는 무지 때문이며, 상대방이 책임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고통을 들여다보고 주시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상대는 고통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어떤 분에게 “당신은 매우 똑똑하시고 영리하십니다. 진리에 가까우십니다.”라고 했는데 그분은 그 말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 면 그분은 그 자신이 똑똑하고 진리에 맞다고 믿은 적이 없기 때문에 제 말을 놀린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 분의 고통은 저와 무관합니다. 고통이 사실 에 있다면 모든 사람에게 사실은 고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넌 바보 같다.”라고 말해도 기분이 좋은 사람도 있거든요. 고통이란 ‘바보 같다’라 는 말과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이란 우리가 그 상황과 사람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의해 일어납니 다. 이것을 자각하고 알아차리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습니 다.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순간 모든 외부요소가 잘라지듯이 주의가 더 이상 그리로 가 지 않습니다. 더 이상 밖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통이란 우리의 관점에 있으 니까요. 그런데 좋은 관점에 있다고 자유로운가요? 좋은 관점은 나쁜 관점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진실이 아닙니다. 관점 자체가 바로 고통입니다. 어떠한 관점이든 이것 은 주장이며, 주장을 하게 되는 순간 당신이 그것이 됩니다. 그것에 당신이 묶이고 당신 이 그 관점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고통이 됩니다.

고통의 회피
어떻게 관점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우리 과거의 경험에 충전이 있는 한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충전은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일어납니다. 이 해결되지 않은 경험은 끊임없이 마무리 지으 려고 계속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부족하고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닌 사람은 그 지닌 상태로 삶을 이어가며, 색안경을 끼고 그것을 투사하게 됩니다. 그러면 서 그 색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리고 살면서 어떠한 이유를 들이대서라도 사랑을 못 느끼고 거부당했다고 호소합니다. 과거의 경험이 완전하게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어떠한 것이든 완전하게 완성되게 경험하면 그것은 아이처럼 깡충깡충 뛰고 싶을 정도의 기쁨과 환희로움을 줍니다. 상대방이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통을 지속 시킵니다. 그러나 어떠한 변화를 주려하지 않고 남의 탓도 하지 않고 부연 설명하지 않으면 그것이 고통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고통도 완전하게 경험하면 기쁨과 환희로 전환됩니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마음은 절대로 이렇게 해내기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부연 설명을 계속합니다. ‘분석하면 안 돼’도 분석이며 ‘비교하면 안 돼’도 비교입니다. 그리 고 ‘생각을 없애야 해’도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마음을 끝낼 수 있을까요? 고통을 온전히 경험하기 위해서는 도망하고 있는 그 자체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마음 의 성품은 ‘도망치기’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은 절대적으로 아픔을 경험하 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픔을 경험하면 그것이 환희를 주는 것이 사실입니 다. 고통이 다가오는 순간 즉각적인 반응은 회피입니다. 육체적 물리적 방법으로도 회 피하고, 영화과 음악 그리고 일로도 회피하고, 뿐만 아니라 철학을 사용하기까지 합니 다. ‘그래, 어차피 삶이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 모든 것을 똑같이 경험해야지. 고통이란 삶의 일부분이야. 고통이 있어야 성장하는 것이니까 더 많은 고통이 있어야 해.’라고 하면서요. 마인드가 하고 있는 것은 끊임없는 회피입니다. 주의를 몰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면 고통을 끝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회피함을 자각하면 고통 속에 있으면서 고통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통이다. 고통이다.’ 하면서 고통을 경험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회피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한마디 던지면 상처를 받고 가슴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이와 비슷한 배움을 통 해 ‘고통을 경험하면 환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마인드는 ‘경험해야 해.’라고 하며 마인드가 그 경험을 경험하려고 노력합니다. 마인드는 생각이 흐르고 있는 과정입니다. 다른 생각이 들어오면 마인드는 ‘지금 올 때가 아니야. 나는 고통을 경험해야 해.’라고 편집부 특집_라제시 다사 39 집착하고 놓질 않습니다.
아픔을 진정 경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픔은 육체적 아픔을 온전하게 일어나도록 허용하고 자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인드가 작용하여 ‘물 한잔을 경험해야 해.’라 고 생각하면 물이 경험이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애씀입니다. 온전히 마인드가 작용하 면 애씀이 일어나고 애씀은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멀어지게 합니다. 만약에 진실이 개념 으로 사용되고 철학으로 활용되면 그것은 아픔으로부터 멀어지는 수단인 동시에 회피 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인드는 아주 똑똑하기 때문에 회피를 잘합니다.
또한 마인드는 수용의 개념을 이용해서 회피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인도에서는 갠지스강을 향해서 여행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거기에 가서 자기의 성품을 바치는 것이 행사의 일부입니다. 
어떤 사람이 참여하고 와서 말합니다. “나는 분노를 버리고 왔어.”라고요. 그런데 사 람들이 자꾸 와서 묻습니다. “너 정말 분노를 버리고 왔니?” 그런데 그렇게 같은 질문이 계속되고 마침내 다섯 번째의 사람이 질문했을 때, 그 사람은 화를 내면서 말합니다. “내가 이미 말을 했잖아. 내가 분노를 버리고 왔다고!”

고통의 수용
수용이 개념으로 있는 한 마인드는 그것을 활용합니다. 이것이 회피가 아닌지 회피인 지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진정한 수용이 일어나면 어떠한 설명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삶은 그냥 흐르는 것이야.’라고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수용이 진정 일어나면 그때는 그 말 자체도 언급이 안 됩니다. 오로지 있는 것은 아픔뿐 어떠한 생각 이 붙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어나려면 자각의 힘이 엄청 강력해야 합니다.
고통으로부터 회피하는 과정이 고통입니다. 정당화시키고 틀에 맞추어 편안함을 받 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진정한 고통이 아니라 도망치는 과정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에 호랑이가 있다고 합시다.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그렇죠. 당연히 도망치는 거죠. 제가 제일 먼저 도망칠 겁니다. 호랑이가 쫒아오면 맨발로 옷도 챙겨 입지 못하고 30분, 40분, 엄청나게 뜁니다. 그때 누군가 “너 지금 어떠냐?”고 묻습니다. “나는 고통스럽 다.”고 대답하죠. 그가 또 묻습니다. “무엇이 고통스럽냐?” 나는 “저 호랑이 때문에 고 통스럽다.”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호랑이가 저를 건드렸습니까? 저를 먹었습니까? 때렸습니까? 한 번도 그런 사실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입니다. 호랑이는 언젠가 저를 먹을 것입니다. 어차피 먹힘을 당할 바에는 지금 먹히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고통은 우리 안에 있는 무엇이 무너질 때입니다. 그것을 직면하지 못하니까 방어하고 보호하려고 애씁니다. 호랑이가 당신을 바로 먹으면 당신은 죽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죽으면 그것이 당신 삶의 시작입니다. 우리 안에서 죽는 것은 아나만입니다. 아나만은 자신의 왜곡된 관점, 즉 가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자아의 일부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 면 자유로워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일부가 죽는 것을 허용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어적이고 공격적으로 나갑니다. 먹어버리게 허용한다면 호랑이는 제 할 일을 했기 때문에 없어집니다.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란 고통으로부터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경험하면 기쁨으로 전환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먹힘을 당하는 순간 완전히 끝납니다. 고통의 관점 자체가 끝납니다. 자신이 고통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자신을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도망가는 것을 자각 하십시오. 자각하는 순간 더 이상 뛰지 않습니다. 자각 자체가 고통을 경험하는 것입니 다. 그것이 온전한 경험입니다. 고통의 관점이 고통 경험을 가로막을 뿐입니다. 딱 한 번 먹힘을 당하면 호랑이가 올 때마다 가만히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경험 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것이든 온전히 경험하면 남는 여유는 환희와 기쁨입니다. 고통으로부터 성공 적으로 도망치면 한숨은 쉬지만 그것은 잠시 동안 잘 도망친 것입니다. 물론, 처음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려움 극복의 두 가지 방법은 첫째, 이 두려움이 마인드가 사용하는 회피 방법임을 통찰하는 것입니 다. 그리고 둘째, 이 과정에서 나는 홀로가 아니며, 나는 부처님의 가피를 받고 갈 수 있다는 용기와 가피를 경험하면서 극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마치 아이들이 엄마 뒤에 숨어서 강아지를 만지듯이 말입니다.

※2008년 5월 23~24일 마하보디교육원 주관으로 이루어진 ‘스님들을 위한 의식과 영성교육’의 내용을 게재합니다.

죽음에는 노소가 따로 있지 않다.
날짜가 한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차별도 없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65억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함께 있음을 자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죽음의 주인공이 나임을 인식하며, 삶 속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오늘날 죽음의 원인 중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암이다. 암 투병 중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평상시에 보험을 포함하여 많은 돈을 저축하는 이유 중에는 병이 나면 쓰기 위한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정작 죽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할까?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요소

 

심해지는 빈부의 격차
우리의 생활수준은 몇 년 전만 해도 몇 개의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격차가 더욱 심해져서 극부와 극빈의 상태로 나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빈부의 격차는 과도한 경쟁 심리를 유발시키고, 우리의 마음에서 풍요로움을 빼앗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정신은 더욱 황폐해지고 감정은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 더구나 불안한 현실은 사람들에게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마음 상태를 갖게 하고 있으며, 점점 더 돈에 의존하게 한다. 심지어는 자식도 믿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극도의 경쟁 심리와 그에 따른 압박감, 불신과 불안은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바쁠수록 수명이 단축된다
현대인들은 정말 바쁘게 살아간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정작 왜 바쁜지는 모르는 채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정말 바쁜 것이 아니고, 마음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외부의 경계에 끄들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왜 바쁜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살다보면 어느새 죽음이 눈앞에 와 있다. 마음이 바쁘고 불안해서 자신을 혹사시키고 괴롭히면서 몰아치다 보면, 자살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빨리 죽을 수도 있다.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은 육체적인 질병뿐만이 아니라, 바쁜 마음 때문에 몸과 마음의 균형이 깨지는 것도 큰 몫을 차지한다. 

죽음에 도달하는 지름길은 욕망과 집착
욕망이란 끝없이 얻으려 하고 움켜쥐려고 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욕망이 적당할 때에는 우리의 삶을 발전시키는 방편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칠 때에는 우리의 삶을 망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욕망을 잘 조절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활기차고 풍요로울 수 있을 것이다.
집착이란 한번 움켜잡으면 놓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다. 좋은 것은 좋기 때문에 놓치지 않으려고 움켜잡을 것이고, 싫은것은 그것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움켜 잡을 것이다. 이러한 욕망과 집착을 갈구하는 마음의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의 몸은 화장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타죽고 만다.
IMF의 경제위기를 넘기고 난 몇 년 뒤에 우리나라에는 암환자가 급증을 했었다. 이런 현상은 경제적인 위기상황에서 겪은 마음의 고통과 스트레스가 육체의 질병을 유발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통해 우리는 올해의 경제 위기가 2, 3년 뒤 암환자의 급증을 가져올 거란 예측을 할 수 있다. 즉 마음의 고통이 몸의 질병을 가져오는 것이다. 지금의 사회현상은 가까운 미래에 나타날 현상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럴 때 우리는 마음을 어떻게 내야 할 것인가?

 

내가 원하는 대로 죽기 위해 필요한 요소

 

돈을 운용하는 지혜
우리나라는 아직은 혈연을 중요시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랑 아니면 돈 때문에 병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죽음은 비참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 맑을 때 돈을 제대로 운용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우린 평생 돈을 벌어서 저축을 하기도 하고, 많은 보험을 들기도 한다. 그 이유는 늙어서 병이라도 들면 자식들에게 신세 지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돈에 모든 것을 의지하며 움켜쥐고 놓을 줄을 모른다. 그러나 병이 들면 내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 제대로 치료도 할 수 없게 되며, 중단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다. 거기에 보험금 마저도 보호자인 자식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돈은 언제 어떻게 없어지는지도 모르게 없어지고 남는 것은 질병과 외로움, 서러움과 원망, 죽음뿐이다. 그리고 죽은 뒤에는 자식들간의 의리마저도 끊어놓게 된다. 이렇게 봤을 때 돈은 가족과 나를 망치는 주범인 셈이다. 돈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인간성과 윤리마저도 상실하게 한다. 돈은 휘발유와 같다. 휘발유는 불이 나게도 하지만 자동차를 움직이게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돈에 대한 정치를 잘 해야 하며, 적절하게 운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당신의 삶, 죽음이 말한다
“죽을 때 보자.” 
이 말은 죽음이란 사건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재판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즉 죽은 뒤에 염라대왕 앞에 가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가 염라대왕인 것이며, 죽어가는 과정에서 현상으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면 그 미워하는 과보로 인해 죽을 때 깨끗한 눈으로 죽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남을 비난하고 욕하면, 죽음이 오기 전에 혓바닥이 마른 논바닥 갈라지듯 쭉쭉 갈라지고 부풀어 올라 움직일 수 없는 고통을 받는다. 여기에 물을 부어주면 아프지만, 혀가 입안에 꽉 차서 의사를 표현할 수가 없어 그 고통을 그대로 겪으며 죽게 된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지은 죄의 모습이 현상으로 눈앞에 떠올라 몸부림치기 때문에 온몸을 묶어놓아야 한다. 심한 잘못을 한 사람 은 죽을 때 자신이 저지른 현상을 그대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선하고 어질게 산 사람은 선하고 어진 과보를 받고, 악하고 모질고 나만 아는 이기적인 삶을 산 사람은 죽음의 여정에서 자신이 뿌린 그대로 겪게 된다.
병이 드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부처님도 생로병사를 여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몸은 물질이기 때문에 병들고 아프면서 죽는 것은 모두가 겪는 여정인 것이다. 그러나 병들고 죽어가는 여정,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 의 현상은 각각 살아온 모습으로 결정된다. 다시 말해 죽어가는 사람이 겪는 고통 과 외로움, 괴로움, 아픔, 서러움은 그 사람이 살아온 모습을 말해주는 것이다. 돈, 가족, 명예, 지위, 권위는 죽음의 여정 앞에서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 고,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것은 내 죽음의 질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은 그러한 현상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내 죽음의 모습이 어떻게 되길 원하는지 그 모습이 확정된다면 삶에 대한 대답 은 저절로 나오게 된다. 그 모습대로 삶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지고, 삶의 모습이 당당하게 되며 자유로워지고 아름다워진 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으면 삶이란 드라마도 혼란스런 모습 을 보이게 되고 제대로 된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의 드라마가, 극 본이 구체적으로 설정되면 삶의 드라마도 변하게 된다. 삶의 목표와 역할에 따라 극본과 시나리오 등이 제대로 정해지고 변하게 되며, 그 변화는 개인의 삶뿐만 18 보디사트바_겨울 아니라 사회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마음의 치유는 죽음의 질을 높인다
평상시에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을 보면 죽음도 잘 맞이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에 보이는 모습은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몸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속의 질병을 치유 해야 죽음의 질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갖가지의 돌덩어리를 올려놓고 살고 있다. 감정표현, 심정표현을 제대로 못하고 살고 있으며, 그것은 고스란히 가슴속에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대로 질병이 되고 악취가 되어 밖으로 표출된다. 따라서 가슴에 올려놓은 돌덩어리를 제거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것을 제거해야만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랑, 보살핌, 관심이 없는 삶, 아내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삶, 자식과의 불통의 삶이 노년을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게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의 병이 육신의 병이 되게 한다. 내가 타인에게 그러한 행위를 했다면 그 과보는 고스란히 내가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내가 행복하고 풍요로운 노년과 죽음을 맞고 싶다면 그러한 공덕을 쌓아야 함을 의미한다. 

타인의 죽음을 돌보는 행위
죽어가는 사람에게 다가가 잘 봉양하고 보살피며 도와주는 인연을 짓지 않으면, 내가 죽을 때 그러한 인연이 없기 때문에 나의 죽음자리도 지켜주는 이가 없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어떤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죽을 때 사랑받고 극진한 돌봄을 받으려면 그러한 종자를 심어놓아야만 한다. 아무리 자식이 많고 친척이 많아도 죽는 그 순간엔 모두 자리를 비우게 되는데, 그러한 종자를 심지 않은 인과의 법칙에 의한 것이다.
내 주변에 임상의 대상은 많다. 부모, 친척, 형제 등 그러한 사람들을 향해 죽는 그 순간만이 아니라 끝까지 도움을 줘야 한다. 내가 간호 받고 싶은대로 타인을 간호해야만 한다. 내가 죽은 뒤에 장지까지 오길 바란다면 타인에게 그렇게 베 어야 한다. 타인의 죽음을 돌보는 것은 바로 나의 죽음을 돌보는 행위인 것이다.

준비없는 죽음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다
죽음의 모습은 마음으로, 생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어느 날 죽음이 왔을 때, 비참하게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같은 신세가 된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모습은 눈을 부릅뜨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뒷걸음질을 친다. 안 끌려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그러나 결국엔 끌려가고 만다. 돌아설 수 없는 그 길을 돌아서려 하고 몸부림친다면 몸부림치는만큼 괴롭고 비참하며 고통만이 있게 된다. 이런 모습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현대인의 조급증을 반영이라도 한 듯, 요즘은 갑자기 발병하고 진행속도도 빠른 암이 많아지고 있다. 췌장암, 담도암, 폐암 등은 진행 속도도 빠르고, 발견한다 해도 치료할 시간도 없다. 그렇다면 언제 삶을 정리할 것인가. 돈이 많은 경우 그 돈을 정리하지 못했으면 자식들이 죽지도 못하게 한다. 치료라는 명분을 내세 워 현대 의학에 의존해서 목숨을 연장시키며 돈을 정리하도록 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할 때 해당되는 사람들 모두에게 돈이 있고 없음을 분명히 말해서 죽음을 준비해야만 때가 되었을 때 편안히 죽을 수 있다.
또한 마음의 돌덩이를 모두 내려놓고, 정말 가볍게 갈 수 있어야 한다. 미움도 원망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용서한다면 아주 가벼운 몸으로 가게 된다. 시신이 바짝 말랐어도 태산같이 무거운 경우가 있고, 뚱뚱해도 깃털처럼 가벼운 경우가 있다. 이것은 우리 삶의 모습인 것이다. 죽음만큼 살아온 모습을 정직하게 대변해 주는 것은 없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모습을 직면한다면 함부로 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지금 같아선 죽음의 길을 누구나 잘 갈수 있고,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죽음이 앞에 와 있으면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병이 들었을 때 원망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그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자식 낳고 농사짓고 하는 것은 내 삶이 아니다. 이러한 삶을 90살을 살았더라도 그것은 산 것이 아니다. “얼마나 살았다고…….” 이 말은 아무리 긴 시간을 살았 더라도 내 삶을 산 것은 얼마 안 되었다는 말이다. 자식을 위한 삶은 내 삶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80이 되어서도 ‘얼마나 살았다구.’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앞에 와서 가자고 하기 전에 내 삶과 내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죽음을 상실한 삶 자체는 죽음이다
오늘날 우리는 죽음을 상실해 가고 있다. 우리의 문화가 죽음을 외면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집에서 죽은 사람도 병원으로 실려 가게 하며, 시신에 대한 부가가 치까지 생겨나서 시신 쟁탈이 일어나기도 한다. 병원에서 죽게 되면 숨 떨어지자마자 실려 나가 냉동고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는 평생 쌓아온 공덕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정신을 안 차리고 죽으면 누구나 그러한 처지가 될 것이다.
죽음이란 지(地)․수(水)․화(火)․풍(風) 순서대로 무너지는 과정이다. 사대가 차례로 무너질 때는 의식을 온전히 집중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문소리나 발자국소리 하나도 없이 절대적인 적정의 상태에서 염불소리와 화두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혼식이 고요하고 적정한 상태에서 염불소리를 들으며 화두만 잡고 육체를 빠져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혼식이 모두 빠져 나간 뒤에도 5~6시간 정도는 조용하게 시신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그 순간은 다음 생을 결정짓는 절대 절명의 순간이며,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사후의 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원은 건강하게 살다가 남의 신세 지지 않고 자듯 죽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임상의 현장에서 직면한 진실은 수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제대로 죽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수행을 했어도 현상적인 수행은 했을지언정 실제적 으로 영적인 성장을 이룬 수행이 되지 못했기에 잘 죽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삶 속에 죽음이 함께 있음을 자각하면서 순간순간을 살아가야 할 이유이 기도하다.

능행스님 │재단법인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
(채록자|변은숙, 24기 호스피스)
출처 :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 계간지 ‘정토마을’ 2018.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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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 능행스님 : 네이버 포스트

행복한 삶이란? 온전한 죽음이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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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감스님

올해는 텃밭과 함께 씨름하고 땀을 흘리며 산 획기적인 한해였다. 농사짓는 것에 익숙지 못한 만큼 에피소드도 많았다. 특히 나를 만나 너무 고생스러웠을 무시(무)의 삶을 생각하니 비죽이 웃음이 난다. 하기야 그도 내 생각이다. 내가 고생스러웠고 간이 조마조마했고 부끄러워서 쥐구멍에 숨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김장을 하려보니 무시가 얼마나 잘되었는지 부끄러웠던 일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만 북태산만큼 커진 때문이다.

 

지난여름에 겨울 김장 준비로 무씨를 젊은 스님들과 함께 뿌렸다. 삼십 센티 간격으로 무씨를 두서너 개씩 넣고 새싹이 나길 아무리 기다려도 새싹이 올라오질 않았다. 나는 씨를 너무 깊이 넣었거나 아니면, 너무 얕게 넣어서 새가 다 물어간 것 같다면서 스님들과 함께 앉아서 걱정을 하였다. 그래서 다시 씨를 뿌리기로 마음먹고 있는데, 마침 어떤 분이 오시더니 “비닐을 씌우고 씨를 뿌려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젊은 스님들을 데리고 나가서 비닐을 씌우고 구멍을 뚫어 씨를 넣었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누군가 오더니 “무밭에 비닐 씌운 것은 생전 처음 봤다.”고 하면서 “북(흙을 북돋움)은 어떻게 주려고 하느냐?”고 물으며 허허 웃는 것이 아닌가. 저녁에 다시 젊은 스님들을 데리고 나가서 비닐을 벗기느라 그날은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부끄러워서 “무” 소리만 들어도 경기(驚氣)를 할 지경이었다. 손님이 와도 밭에 갈까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손님이 오는 소리만 나면 밭에 올까 무서워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거기 계세요. 내 나갈 테니…….” 하고는 정신없이 밭에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할 짓이 아니다 싶어서 곰곰이 생각을 하였다. 무를 어떻게든 크게 만들어서 밭이 시퍼렇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나의 화두였다.

결국 고민 끝에 무를 모종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또 젊은 스님들을 데리고 나가서 삼십 센티 간격으로 퍼져 있는 사이사이에 무를 모종해서 심었다. 심고 나니 푸릇푸릇한 것이 풍성해 보여서 왠지 안심이 되었다. 그랬는데, 이번엔 누군가가, “스님, 무는 모종하는 게 아니래요. 모종하면 죽는 다네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절망했고 이젠 정말로 무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밭에 가지 않기만을 부처님 전에 기도했다.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원장스님께서 가끔 무밭에 물을 주시며 나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소가 뒷걸음질 치다 뭐를 밟는다더니……. 공을 들인 것이 없는데 무가 저 혼자서 그냥 쑥 커버린 것이었다. 원장스님이 밭에 갔다 오시더니 깜짝 놀라며 나를 찾으셨다. 단지 삼십 센티 간격을 준 것밖에 없는데 무가 사람 넓적다리보다 더 크게 자라 있었다.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무시야! 잘 자라줘서 고맙다."

 

그렇게 잘 자라준 무를 뽑아서 크기별로 분류해 놓았다. 넓적다리만한 것은 저장도 해놓고 오그락지(무말랭이)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중간치는 동치미를 담으려고 한다. 크기가 얼마나 적당한지 동치미에 맞춤형 무시가 되었다. 그리고 제일 작은 것은 다싯물 내는 용으로 쓰려고 금강지 보살님과 의논 중이다.

“스님, 시장에 가보니 우리 무시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디더.”

금강지 보살의 말에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 같았다.

“무시야!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맙다."

(2008. 겨울 정토마을 계간지)

 

도운 │정토마을 도감

1998년 12월 28일, 청주 정토마을 기공식을 시작으로 1999년 1월,조립식 60평의 독립형 호스피스 시설이 마련되었다.

나를 어여삐 보아 당신 며느리로 받아주신 시아버님을 폐암이라는 무서운 병으로 아무 준비 없이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허전하고 슬픈 마음을 달래기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능행스님을 만나 병원 중환자실 봉사도 하고 독거노인도 돕고 결식아동도 도우며 다른 사람을 위해 마음과 시간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꽃동네로 실습과 견학을 가서 만난 호스피스병동의 환자가 반가워하며 자주 오라는 말과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빨리 호스피스병동을 마련하여 스님과 헤어지기 싫어하시는 환자를 모시고 살아야지.’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그해 초파일 컵등(cup燈)을 만들어 법주사, 동학사 입구에서 불자들에게 나누어주면서 호스피스요양원 필요성을 홍보하던 일, 호스피스환자를 위한 바자회에서 미역과 다시마 김 젓갈을 팔아 기금을 마련하던 일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어렵사리 부지 매입하고, 차가운 초겨울 날씨에 물도 전기도 없는 산자락에서 스님은 어디서 용케 컨테이너 한대 끌어다 놓으시고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나이는 거꾸로 먹었는지……, 아직도 철이 덜 든 저는 눈물이 핑 돌도록 스님이 안쓰러워도 철야기도 한번 동참할 마음을 내지 못했습니다. 십여 년 능행스님과 함께한 세월 가운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고 후회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스님의 기도 원력과 피나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정토마을, 지금이 있기까지의 어려웠던 사연을 어떻게 제 짧은 글재주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조립식으로 대충 건물이 세워지고 첫 환자가 입소할 때만 해도 우리는 해냈다는 환희로움에 가슴이 떨렸습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환희로움이 공포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을 마감하는 환자 들과의 생활은 정말 내 마음을 삭막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죽음, 저런 죽음, 또 죽음……,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뛰쳐나가고 싶었습니다. 활기와 희망이 넘치는 사람 속에서 나도 생동감 있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 갈등 속에 괴로워하던 어느 날이었습니 다. 능행스님께서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부장님, 시내를 다 돌아도 석류가 없대요. 도공스님이 석류가 잡숫고 싶다는데 국산은 철이 아니라 없고, 수입은 과수농가 시위로 중지되었다네요. 어쩌면 좋아요?

먼 곳에서 세미나 참석에 지치시고 하루 종일 운전하시고 힘드실 텐데도 불구하고 편찬으신 도공스님 드릴 석류를 사신다고 시내를 헤매고 계실 스님을 생각하니 정신이 번뜩 났습니다. ‘내가 너무 나만 생각했구나. 나만 이곳에서 탈출하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정말로 어려워도 참고 묵묵히 견디는 정토식구들과 능행스님이 눈에 안 밟히고 살 수 있을까?’ 이러한 자책감과 번뇌와 갈등이 저를 보이지 않는 사슬로 얽어매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정토의 환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스님을 두고 떠난다 하더라도 정토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제일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1993년, 호스피스교육이 시작되었고, 교육수료생들과 독거노인과 결식아동을 돕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래, 여기서 행복을 찾자. 이곳에 몸과 마음을 의지하는 환자들에게 내가 조그마한 힘이 되어보자.'

건강한 이가 죽음을 기다리는 이의 하루하루를 생각하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마음도 몸도 지치고 힘든 환자들의 안식처가 되어보고자 하는 의지는 저에게 큰 버팀목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는 행복하길 추구하고 죽을 때는 아름답게 죽기를 희망할 것입니다. 사랑 속에 살면서도 행복을 모르고 자신이 하는 일을 스스로 낮게 만들어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행복하게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밝고 따뜻한 기운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즐겁고 재미있게 하면서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행복주머니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행복의 진리는 지극히 단순한데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제 자신을 사랑하고 저를 아는 모든 이가 저를 사랑해 주는 것 같다고 느낄 때 행복합니다. 지금 저는 매우 행복합니다. 언제든지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는 도량 안에서 생활할 수 있어 감사하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환자를 보면 나 스스로 호흡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봄․여름․가을․겨울 변화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정토를 아끼는 많은 후원가족 여러분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이 많아 너무너무 행복합니다.(2008년 겨울, 정토마을 계간지)

 

김희자(무량심) │청주 정토마을 팀장

 

사는 것은 무엇이며, 죽는 것은 무엇인가?
일찍이 붓다께서는 사는 것도 고통[生苦]이고 죽는 것도 고통[死苦]이라고 하셨다.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반이 있고, 열반으로 가기 위한 수행이 있는 것이다. 삶은 연기법에 의해 인연의 조건과 환경에 영향을 받으면서 그 무엇을 학습하는 여정이다. 그 학습 결과에 따라서 맞이하는 죽음의 질이 다르고, 시작하는 죽음의 질이 다르다.
사람들은 흔히 죽음이란 나이가 들거나 심각한 병이 들었을 때 찾아오는 손님 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2008년 이 시점에서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죽음이나 질병은 연령과 성별을 구별하지 않고 다가온다. 그래서 아주 두렵고 공포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손님이긴 하지만 반갑지 않은 손님임에는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애써 회피하고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재수 없거나, 마음 상하게 하는’ 부정적인 주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죽음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미리 준비하고 극복해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다면 삶의 여정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죽음이 찾아왔을 때, 두 손 들어 환영은 못할지라도 당황하지 않고 허둥대지도 않으면서 담담히 맞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죽음에 대한 인식의 부족
요즘 젊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나 지식,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매일의 생활 가운데 죽음을 염두에 둔다거나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한 생각을 하는 일은 결코 없다고 할 정도이다. 더구나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부분을 부모에게 의지하기 때문에 갑자기 병이 들거나 죽음에 임박해서도 부모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때로 젊은이들에게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어떻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지요?’ 라고 질문을 하면 그런 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는 대답을 들을 때 막막함을 느낀다. 이런 인식과 무지와는 달리 현실적으로 죽음은 우리와 훨씬 가까이에서 삶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반영하듯,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청소년, 소아를 위한 암병동은 서울대병원 등 대형 병원 몇 개에만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각 대학병원마다 소아암병동이 생겨났다.
더 이상 젊은이들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직면해야 하며,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

변화된 죽음의 환경
예전에는 집에서 태어나 집에서 죽는 것이 다반사였다. 심지어는 안방에서 죽지 않으면 객사(客死)라고 하여 그 시신을 집안에 들이지 않을 정도로 죽음을 존중하였다.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보더라도, 잘못 행해졌을 때 다시 고칠 수 없는 일이 장례에 대한 일이기 때문에 정성을 다하여 실수하지 않고자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태어나는 것도 병원이고 죽는 곳도 병원이다. 대개 병이 들거나 죽음에 임박해서는 집에 있다가도 죽을 때는 다시 병원으로 가서 죽는다. 이는 죽는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 위주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아파트라는 주거환경은 사람의 주검조차도 물건으로 치부해 버리곤 한다. 주변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극도의 이기주의에서 죽음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즉 죽음이 상실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이나 친지, 친구 등 주변의 사람들이 죽어도 그 여정을 함께하지 못하고 죽음 뒤에도 충분히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 
죽음을 상실한다는 것은, 죽음이 결핍된다는 것은, 죽음을 외면하는 것은 온전한 삶이라 할 수 없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죽음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죽음을 외면하게 한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회피는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면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며, 부모는 자녀들에게 이러한 환경을 제공하는 주인공이다.
어른들은, 부모들은 젊은이들이 죽음에 대해 직면하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젊은이가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삶의 요소보다 훨씬 많은 죽음의 요소
우리 주변에는 삶을 영위하게 하는 요인보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요소가 훨씬 많다. 정신 차리고 보면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 만큼 위험 요소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죽을 일이 많다.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는 매일 매일의 사건 사고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어제까지도 웃던 사람이 오늘 생사가 나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는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온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그 많은 죽음의 요소를 견뎌내고 살아온 사람들이 맞이하는 죽음의 여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죽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무지에 대해서도 별 의식이 없다. 평소에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기며 그 이후의 경과에 대해서는 경시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우리의 마음은 목마르고 영혼은 메말라 있다. 죽음을 보는 시각이나 사후 처리 과정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죽음이 경시되는 결핍된 사회에서의 삶은 정신적인 황폐함이 난무한다. 정신의 황폐함은 물질적인 욕구만을 채우기 위한 살게 한다. 그것만이 성공된 삶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삶에 있어서 양적인 극대는 있을지 몰라도 질적인 풍요는 존재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이 동반하지 않는 삶은 온전한 삶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토에 오는 사람 누구에게나 묻는다. ‘지금 이 순간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지금 이 순간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거의 모든 사람의 첫 번째 대답은 ‘해도 될까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말 해도 될까요?’이다. 
그리곤 이어 말한다. “죽음이 이렇게 오는 것이라면, 삶이란 것이 이렇게 끝나는 것이라면 내게 죽음에 대해 왜 이야기해주지 않았나요? 왜 가르쳐주지 않았나요? 죽음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라고 왜 미리 가르쳐주지 않았나요? 너무나 중요한 죽음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 당혹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 자신의 삶과 죽음에 세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호스피스교육이란 무엇인가
삶 가운데 죽어가는 과정을 공부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공부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스피스 교육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도와주는 봉사가 아니라,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죽음을 바라보고 준비하는 수행의 여정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죽음인 임상체험을 통해 평생 살아오면서 잘 살아왔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 죽음의 진실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공부할 수 있다.
호스피스는 수행이다.
우리는 생과 멸의 사이에 서서 직면하고 싶지 않은 사실들에 직면하게 된다. 탐진치에서 비롯되는 형상 없는 생각과 감정들이 고통, 두려움, 이별, 아픔, 상실 의 질을 바탕으로 윤회를 창조하게 하는 사실에 깨어있도록 우리의 의식을 흔든 다. 팔정도를 통해서 실상을 알 수 있는 사실적인 통찰이 온다. 떠나는 자와 떠나 려는 자들이 서로의 모습을 통해 진실에 면하게 되면서 서로에게 높은 의식의 성장과 빛이 된다. 이 수행은 죽음과 삶을 통해 얻는 바른 경험이 있을 뿐이다.
죽음에 끌려가지 않는 죽음, 죽음을 통해 더 높은 의식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현상적인 풍요보다 영적인 풍요가 더욱 중요하다. 시선을 내면으로 거두고 달리 기를 멈추라. 그리고 지금 여기에 깨어 있으라.

능행스님 │재단법인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
2008년 마하보디교육원 호스피스교육 중 능행스님의 법문을 채록하여 싣습니다.
(채록자|변은숙, 24기 호스피스) 

https://youtu.be/wFgX-RfCOTs

 

https://youtu.be/AaGuDqJrCMI

 

 

책상 한편에 약 봉지가 수북했다. "웬 약이 이렇게 많으냐"고 묻자 능행(能行·49)스님이 말했다.

"2003년에 말기 암환자를 돌보다 감염됐어요. 환자가 뽑아놓은 주삿바늘에 찔렸거든요. 더러 있는 일이에요."

이 비구니는 작년 8월 급성 저혈압으로 쓰러져 심장이 멎을 뻔 했다. 올 5월까지 병원을 들락거렸다.

그는 "과로로 죽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느꼈다.

무슨 일을 하기에 스님이 과로사까지 생각했을까?

환자들은 그를 살아있는 '약사보살'이라 부른다. 1999년 그가 지은 호스피스 '정토마을'에서 1000명이 넘는 말기 암환자들이 생을 마쳤다. 11일 창단되는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의 2000여 호스피스 중 1500명이 그를 거쳐갔다.

"누가 시킨 일이었다면 그이와 원수가 됐을 거야. 일이 힘드니 중이 이렇게 늙었지." 그런데도 호스피스 일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나도 궁금해. 아마 전생(前生)에서부터 이 일을 해왔나 봐."

10년 전 충북 청원군 미원면에 정토마을이 생길 때 20가구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시설을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입구에 개 70마리를 키우고 트랙터로 길을 막기도 했다. 나중에는 군 주민들까지 확성기를 들고 쳐들어와 스님을 고소했다. 시위는 그 뒤로도 3년간 계속됐다. 스님은 30여 차례 경찰과 검찰에 불려갔다.

"혐오시설이라고 무조건 반대할 땐 화도 났지만 나중엔 '아,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죽음을 두려워 하는구나'하고 오히려 이해하게 됐어요." 1993년 서른셋의 나이로 출가한 그 역시 죽음이 두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이듬해 한 신도 남편을 병문안 갔다. 췌장암에 걸린 환자는 그 후 닷새 만에 사망했다. "복수(腹水)가 차 배만 불러 있고 새까맣게 타 있던 모습이 너무 무서웠어요.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본 거예요."

그때 그는 '세상은 고통의 바다(苦海)'라는 부처님 말씀을 이해했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암 환자들을 보며 그는 "'저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죽음의 질을 좀 더 나아지게 할 수 없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부처가 세상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었듯 그때부터 능행도 절 밖으로 나갔다. 첫 방문지는 소록도였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코가 으깨진 사람들도 웃더라고요. 이 안에서도 미소가 있고 행복이 있구나, 느낀 거예요."

알코올 중독자, 지체장애자, 불치병 환자를 찾아 오웅진 신부의 음성 꽃동네에 갔다. 그곳을 찾은 스님은 능행이 처음이었다. 더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찾아 부산 의료원 행려 병동까지 내려가 먹고 자며 환자들을 돌봤다.

얇디얇은 이불이라지만 말기 환자들에게는 그 무게감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진다. 스님은“세탁을 자주 하다보니 이불도 금세 헐어버린다”며 쌀쌀해지는 날씨를 걱정한다.

능행은 가난한 사람들은 편안하게 죽을 곳도 없다는 걸 알았다. 1997년 한 천주교 병원에서 폐암으로 숨져 가던 스님이 "스님들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 하나 세워달라"고 유언을 남기자 호스피스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한 편의 소설이었다"는 탁발(托鉢)이 그때 시작됐다. 동냥을 하러 혈혈단신 전국을 떠돈 것이다. "절에서 수행은 언제 하느냐"고 묻자 "동냥 다니는 게 나에게는 수행이었다"고 했다.

1년에 15만㎞씩 전국의 절과 기업인, 시장 바닥까지 가리지 않고 뛰었다. 1000원을 내놓는 상인들부터 100만원씩 도움을 주는 큰 스님들까지 우선 2200만원을 모아 지금의 땅 계약부터 했다. 2년에 한 대씩, 지금까지 5대를 폐차시켰다. 2000년 10월 조립식 건물로 정토마을을 개원할 때까지 들어간 3억원을 그렇게 모았다. 현재 15개 병상에 직원 10여명이 있는 정토마을은 환자 가족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1년이면 100여명의 말기 환자들이 이곳에서 마지막을 보낸다. 그 많은 죽음을 지켜보면 어떤 깨달음이 올까? 스님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모든 죽음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80이 돼도 난 아직 아니라고 하지 '그래, 나 이제 갈 때 됐다'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왜 지금 죽어야 하는지 모르고 조금만 더 살고 싶다고 울부짖을 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 아파요."

그는 돌이켜 보기도 싫을 만큼 '힘든 죽음' 뒤에는 모두 돈이라는 욕망을 놓지 못한 공통점이 있다고도 했다. 스님은 "15년간 여유롭고 흔쾌하게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채 20명이 안 됐다"고 했다.

"평생 화장실 청소와 바느질로 자식을 키운 70대 할머니가 있었어요. 아름다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는지 손 흔들고 가시더라고요. 자제분들과 같이 손 흔들어 드렸어요. 경이로웠어요."

4년 전엔 40대 남자가 위암 3기 때 들어왔다. 치료비 부담으로 남은 가족에 누가 될까 아무 치료도 않고 마지막을 보내러 왔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수능을 앞둔 고3 딸에게 문병도 못 오게 하며 전화로 응원했다.

"우리 딸 파이팅! 우리 딸 잘할 수 있어! 아빠는 잘 있으니까 수능 끝나고 보자." 수능 당일 그는 죽어가면서도 사력(死力)을 다해 전화기를 붙잡았다. "우리 딸 오늘 힘내야 돼? 아빠는 괜찮으니까 수능 끝나면 바로 내려와."

내색하지 않고 딸을 응원한 그는 시험이 끝나갈 무렵 "스님, 제가 할 일은 이제 다 끝났네요"란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능행은 "자식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임을 다했기 때문인지 표정도 평온했다"고 했다.

스님의 바람은 한 가지다. 고통과 아픔으로 범벅된 죽음이 아닌 맑고 여유로운 죽음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2005년 베스트셀러가 된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라는 호스피스 사례집도 그래서 펴냈다.

청각 장애인 아버지를 뒀던 능행은 의사가 되려 했다. 아버지처럼 몸이 불편하고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을 가진 사람을 고쳐주고 싶었다. 그는 "의사는 아니지만 치유할 수 없는 환자를 돌봐주고 있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에서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다. 호스피스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과 함께 정토마을에서 수용할 수 없었던 더 많은 환자를 위해 병원을 지으려 한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09/20091009013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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