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한편에 약 봉지가 수북했다. "웬 약이 이렇게 많으냐"고 묻자 능행(能行·49)스님이 말했다.

"2003년에 말기 암환자를 돌보다 감염됐어요. 환자가 뽑아놓은 주삿바늘에 찔렸거든요. 더러 있는 일이에요."

이 비구니는 작년 8월 급성 저혈압으로 쓰러져 심장이 멎을 뻔 했다. 올 5월까지 병원을 들락거렸다.

그는 "과로로 죽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느꼈다.

무슨 일을 하기에 스님이 과로사까지 생각했을까?

환자들은 그를 살아있는 '약사보살'이라 부른다. 1999년 그가 지은 호스피스 '정토마을'에서 1000명이 넘는 말기 암환자들이 생을 마쳤다. 11일 창단되는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의 2000여 호스피스 중 1500명이 그를 거쳐갔다.

"누가 시킨 일이었다면 그이와 원수가 됐을 거야. 일이 힘드니 중이 이렇게 늙었지." 그런데도 호스피스 일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나도 궁금해. 아마 전생(前生)에서부터 이 일을 해왔나 봐."

10년 전 충북 청원군 미원면에 정토마을이 생길 때 20가구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시설을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입구에 개 70마리를 키우고 트랙터로 길을 막기도 했다. 나중에는 군 주민들까지 확성기를 들고 쳐들어와 스님을 고소했다. 시위는 그 뒤로도 3년간 계속됐다. 스님은 30여 차례 경찰과 검찰에 불려갔다.

"혐오시설이라고 무조건 반대할 땐 화도 났지만 나중엔 '아,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죽음을 두려워 하는구나'하고 오히려 이해하게 됐어요." 1993년 서른셋의 나이로 출가한 그 역시 죽음이 두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이듬해 한 신도 남편을 병문안 갔다. 췌장암에 걸린 환자는 그 후 닷새 만에 사망했다. "복수(腹水)가 차 배만 불러 있고 새까맣게 타 있던 모습이 너무 무서웠어요.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본 거예요."

그때 그는 '세상은 고통의 바다(苦海)'라는 부처님 말씀을 이해했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암 환자들을 보며 그는 "'저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죽음의 질을 좀 더 나아지게 할 수 없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부처가 세상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었듯 그때부터 능행도 절 밖으로 나갔다. 첫 방문지는 소록도였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코가 으깨진 사람들도 웃더라고요. 이 안에서도 미소가 있고 행복이 있구나, 느낀 거예요."

알코올 중독자, 지체장애자, 불치병 환자를 찾아 오웅진 신부의 음성 꽃동네에 갔다. 그곳을 찾은 스님은 능행이 처음이었다. 더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찾아 부산 의료원 행려 병동까지 내려가 먹고 자며 환자들을 돌봤다.

얇디얇은 이불이라지만 말기 환자들에게는 그 무게감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진다. 스님은“세탁을 자주 하다보니 이불도 금세 헐어버린다”며 쌀쌀해지는 날씨를 걱정한다.

능행은 가난한 사람들은 편안하게 죽을 곳도 없다는 걸 알았다. 1997년 한 천주교 병원에서 폐암으로 숨져 가던 스님이 "스님들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 하나 세워달라"고 유언을 남기자 호스피스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한 편의 소설이었다"는 탁발(托鉢)이 그때 시작됐다. 동냥을 하러 혈혈단신 전국을 떠돈 것이다. "절에서 수행은 언제 하느냐"고 묻자 "동냥 다니는 게 나에게는 수행이었다"고 했다.

1년에 15만㎞씩 전국의 절과 기업인, 시장 바닥까지 가리지 않고 뛰었다. 1000원을 내놓는 상인들부터 100만원씩 도움을 주는 큰 스님들까지 우선 2200만원을 모아 지금의 땅 계약부터 했다. 2년에 한 대씩, 지금까지 5대를 폐차시켰다. 2000년 10월 조립식 건물로 정토마을을 개원할 때까지 들어간 3억원을 그렇게 모았다. 현재 15개 병상에 직원 10여명이 있는 정토마을은 환자 가족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1년이면 100여명의 말기 환자들이 이곳에서 마지막을 보낸다. 그 많은 죽음을 지켜보면 어떤 깨달음이 올까? 스님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모든 죽음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80이 돼도 난 아직 아니라고 하지 '그래, 나 이제 갈 때 됐다'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왜 지금 죽어야 하는지 모르고 조금만 더 살고 싶다고 울부짖을 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 아파요."

그는 돌이켜 보기도 싫을 만큼 '힘든 죽음' 뒤에는 모두 돈이라는 욕망을 놓지 못한 공통점이 있다고도 했다. 스님은 "15년간 여유롭고 흔쾌하게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채 20명이 안 됐다"고 했다.

"평생 화장실 청소와 바느질로 자식을 키운 70대 할머니가 있었어요. 아름다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는지 손 흔들고 가시더라고요. 자제분들과 같이 손 흔들어 드렸어요. 경이로웠어요."

4년 전엔 40대 남자가 위암 3기 때 들어왔다. 치료비 부담으로 남은 가족에 누가 될까 아무 치료도 않고 마지막을 보내러 왔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수능을 앞둔 고3 딸에게 문병도 못 오게 하며 전화로 응원했다.

"우리 딸 파이팅! 우리 딸 잘할 수 있어! 아빠는 잘 있으니까 수능 끝나고 보자." 수능 당일 그는 죽어가면서도 사력(死力)을 다해 전화기를 붙잡았다. "우리 딸 오늘 힘내야 돼? 아빠는 괜찮으니까 수능 끝나면 바로 내려와."

내색하지 않고 딸을 응원한 그는 시험이 끝나갈 무렵 "스님, 제가 할 일은 이제 다 끝났네요"란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능행은 "자식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임을 다했기 때문인지 표정도 평온했다"고 했다.

스님의 바람은 한 가지다. 고통과 아픔으로 범벅된 죽음이 아닌 맑고 여유로운 죽음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2005년 베스트셀러가 된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라는 호스피스 사례집도 그래서 펴냈다.

청각 장애인 아버지를 뒀던 능행은 의사가 되려 했다. 아버지처럼 몸이 불편하고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을 가진 사람을 고쳐주고 싶었다. 그는 "의사는 아니지만 치유할 수 없는 환자를 돌봐주고 있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에서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다. 호스피스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과 함께 정토마을에서 수용할 수 없었던 더 많은 환자를 위해 병원을 지으려 한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09/2009100901302.html

매일매일 뿌연 서울하늘의 미세먼지와 겨울의 마지막의 아쉬움을 시기 하듯 매섭게 몰아치는 여분의 추위를 뒤로 하고 남쪽으로 달려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으로 향했다. 학인시절 능행스님께서 불교호스피스 병원 건립을 하시겠다고 운문사에 오셔서 홍보를 하시고, 많은 스님들이 마음을 모으던 그 시절의 회상이 내 앞을 지나가고 기대 이상으로 반듯하게 우뚝 자리잡은 정토마을 자재요양병원의 전경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7년간의 외국생활을 하고 너무나 빨리 변해버리는 한국이라는 사회에 적응도 못한 채 지난 늦여름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나는 병원 법당 소임을 맡았다. 소임을 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터 마주하게 된 세상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분의 처절함과 쓸쓸함을 바 라보면서 난 가슴이 턱 하니 막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어떤 마음과 말이 그분의 절망을 돌려 편안함을 줄 수 있을지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느껴온 모든 것을 동원해도 얻을 수 없는 그 해답에 난 죄스러웠다. 나의 무력함과 무능함에 좌절하고 그분들의 슬픔에 동화되어 한없는 우울함으로 퇴근 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그날 이후 난 병원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꼭 받아야겠다는 간절함이 생겼고 승려연수라는 형식을 빌려 호스피스교육에 동참했다. 

 

2박 3일이라는 승려연수 교육과정으로의 호스피스교육, 사람들의 죽음을 준비하는 호스피스라는 과정이 어찌 그 짧은 시간으로 충분하겠는가? 수없는 반문도 하였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내가 만나는 많은 분들은 목숨이 끊어지는 임종기도의 순간에도 생의 집착을 놓지 못하고 간절하게 마지막까지 스님의 기도에 의지하여 삶의 동아줄을 부여잡는 사람들인데 난 무엇을 배워야 할까?

 

하지만, 이번 교육의 인연으로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웠다. 이 호스피스교육은 내가 배워서 누군가를 위해서, 어떤 소임을 살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임을 깨달았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고통, 모든 이는 죽음에 이른다는 문제에 대하여 난 과연 어떻게 죽어갈 것이고, 수행자로서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배우는 것이 이 교육이었다. 부처님께서 그리고 수많은 선지식들께서 고구정녕하게 제시하신 그 최후의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이 교육이고 나뿐만이 아니라 불자의 수행으로서 이생에서의 마지막 수행으로서 그 회향의 순간을 직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되새기고 정리하게 되는 시간이 되었음에 감사하다. 인간의 삶에서 생노병사라는 가장 기본적인 과정에서 불제자로서 어떻게 바라보고 다스리고 정진해 갈 것인지에 대한 공부를 그 동안 잊고 있었음을 반성했다. 

 

우리 불자들, 아니 우리들 모두 잘 살고자 기도에 매달리지만 잘 죽는 것에는 기도의 마음을 내지 못한다. 모두가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으로 많은 종교적 가치관과 관념들이 생겼고 사람들은 그것에 의지해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죽음에 대한 준비로써 이 교육은 절대로 간과되어서는 안 될 교육이라고 모든 분들에게 최대한 많이 알리고 싶다. 

난 오늘도 겨울을 지나 또 다른 봄으로 죽을 날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선봉 │ 승려연수교육 불교호스피스 영적돌봄 2기 교육을 수료하신 선봉스님의 후기 글을 옮겨 싣습니다.

책소개

이 책은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뿐 아니라,  임종을 준비하는 모든 불자와 스님들, 그리고 사찰, 병원, 각 가정 등, 누구나 늘 간직하며 일상의 기도집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또한 불교 호스피스의 신앙적 토대인 정토신앙에 대한 이해, 돌보는 이를 위한 신앙심 고취, 임종환자를 위한 기도에 세심한 배려를 기울였습니다. 

 

 

목차

삼귀의 
발간사 
일러두기 

제1부 독송요집 

염불송 
기도송 

제2부 기도문 

투병환자를 위한 기도문 
투병환자의 기도문 

제3부 수계 및 임종의식 

한자의 수계의식 
임종 명심문 
임종의식 준비 및 순서 
임종후 수계의식 
임종의식 
임종시 기도문 
장염염불 
왕생 극락발원 문.기도문 
바르도 기도문 

제4부 부처님 말씀 

보리심 
돌봄 
무상 
수행 

제5부 정토신앙 
정토교리 
생사해탈을 위한 보리심 
삶과 함께하는 정토세계 

부록

 

 

저자소개

 

"죽음도 삶의 한 여정"이라는 신념으로 모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한 채 마지막 순간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지난 15년간 1천여 명이 넘는 죽음을 배웅한 능행 스님. 우리나라 불교계에 제대로 된 호스피스 시설이 없음에 가슴 아파하던 그는 서원을 세운 후 탁발과 모금을 통해 정토마을을 건립,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도록 심리적, 영적 신체적 치유와 돌봄에 힘쓰고 있다. 

부산의료원 행려병동에서부터 시작해 소록도 음성 꽃동네 등등을 전전하다 보니 이 사바세계에 신음하는 고통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을 제치고 중생들의 고통을 찾아 나서며 살기로 마음먹었지만 한 사람이 고통 속에서 사라질 때마다 한 우주가 사라지는 것 같은 큰 절망을 느끼며 스스로 자책에 빠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기도 힘겨운데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다 보니 그들의 마지막을 위한 여비까지 마련하려고 걱정해야 했기에 더 힘들기만 했다. 

어느 분을 끔찍하고도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보내고 능행은 그 길로 도망을 갔다. 가능하면 멀리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하필이면 내가 왜 이런 길을 택했을까. 사흘 동안 돌아다녔다. 사흘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능행은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내가 왜 이 일을 둘로 보았을까. 이 멋진 수행을 두고 왜 다른 수행을 그리워했을까. 이 일을 하면서 받은 은혜가 너무도 큰데 나는 또 다른 그 무엇이 있는 줄 알고 방황했구나. 그는 다시 돌아와 인간의 고통만 본 것이 아니라 고통 중에서도 사랑과 희망과 자비심을 보았다. 

그 희망의 서원을 모아 불교계에서는 처음인 독립형 호스피스 정토마을을 세웠다. 그렇게 10여 년, 능행은 이승과 저승의 간이역 정토마을에서 병으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과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선고받은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죽을 것인지, 그 마무리를 준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환자를 위한 불교 기도집』『불교 임상 기도집』『이 순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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