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물질문명 시대에 정작 우리 인간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교수, 총장, 국회의원, 큰 기업 사장, 큰스님, 작은스님, 아이, 어른 등 수천수만 가지 사연을 안고 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그런 현상적인 요소들과 상관없이 각각 달랐습니다. 제가 본 많은 죽음들은 제게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주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꿈에서 꿈을 꾸면서 꿈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꿈은 죽음이 목전에 와서야 비로소 깨어지게 됩니다. 그 이전에는 꿈을 깰 수가 없어요. 내가 죽을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면서 살아요. 그렇지만 실제로 내가 죽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내가 오늘밤에 죽을 수 있어.’라고 인식하고 사는 분들은 과연 몇 분이나 있을까요?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인식해서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만약 우리가 ‘오늘 밤에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생활하는 관점이 달라지고, 나에게 주어지는 한순간을 대면하는 나의 의도가 달라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꿈속에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시간을 한정 없이 주면서 언제까지 살 것이라고 최면을 겁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같이 죽을 수 있습니다. 오늘밤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죽어지면 대우주는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도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욕망에 끄달려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원망하고, 애정으로 애욕으로 뒤범벅이 된 삶을 살다가 결국 죽을병에 걸리고, 병에 걸렸다 해도 죽을 거라는 걸 인식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죽음이 목전에 와서 숨을 헐떡이면서 사대가 무너질 때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꿈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그때는 우리 인생이 너무 늦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꿈을 꾸게 되다가 종착역에 가서야 만나게 되는데 그때는 너무나 조급하고 초라하고 비참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 앞에는 대기업의 회장도 소용없어요. 저는 돈이 많으면 죽을 때도 잘 죽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걸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죽음은 너무나 냉혹하고 정직하고 진실합니다. 죽음은 여러분이 죽어가는 3개월, 6개월, 1년 안에 여러분들이 살아온 일생의 결과를 오롯이 다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것은 내가 심어놓은 농작물과 같습니다. 돈이 많고, 권력이 있고, 명예가 있을수록 그 죽음은 더 외롭고 처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자식이 열 명이 있어도 죽음 앞에서는 소용없습니다.

하나, 사랑하면서 살아가기
우리나라에서 일 년에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8만 명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암으로 판명되는 사람은 12만 명입니다. 남성 환자의 3명에 한 사람, 여성 환자의 5명에 한 사람이 암환자입니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는지에 따라서 내가 고통스러울 때, 위기에 있을 때, 죽어갈 때에 삶을 마무리하는 결과가 달라지게 됩니다.
너무 잘살려고 애쓰지 마세요. 대충사세요. 좀 둥글둥글하고 소통이 가능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 되세요. 여러분 모두가 여러분의 자식도 품어주지만 남의 자식도 품어줄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살아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년에 100여 명의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인간 존재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말 한 마디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정직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내 자신을 사랑할 때 남도 사랑할 수 있습니 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가 없어요. 죽음의 순간에 많은 이들이 가장 후회스러워했던 것은 돈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야 할 수 있는 안타까운 그 말 한마디, “내가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다.” 였습니다. 온 가슴으로 나와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세상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 가장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머리로 사랑하지 말고 가슴으로 사랑하세요. 머리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에요. 그것은 그저 생각하는 거예요. 사랑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에요. 온 가슴으로 사랑을 하게 되면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고, 화해하지 못할 것이 없고, 꼴을 봐주지 못할 것이 없고, 감사하지 않을 것이 없고, 사랑하지 못하는 존재가 결코 없답니다. 가슴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세요. 그래서 죽을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 마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둘, 나누면서 살아가기
여러분들이 소유하고 공유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을, 그 중에서 1%만 세상으로 되돌려주세요. 왜냐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산소, 땅, 이 모든 현상이 공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티끌 하나도 공짜가 아니에요. 여러분은 여러분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천지만물이 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면서 천지만물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편안히 살고, 나 혼자만 생각하고, 내 가족만 생각하고, 내 인생만 생각하는 삶은 참 재미없고 빡빡한 삶이면서 동시에 여러분이 언젠가는 갚아야 할 많은 빚들이 그 속에 녹아 있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대가없는 사랑을 받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 못 갚으면 다음 생, 그 다음 생까지도 갚아야 되겠지요. 그렇다면 차라리 살면서 건강할 때 이 세상과 함께 공유하고, 여러분도 대가 없이 조건 없이 나눠줄 줄 아는 큰 가슴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에게 인색한 사람은 다른 이에게도 인색합니다.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건강할 때 이 세상과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살다가 죽음을 맞을 때 고통 없이 죽어가는 죽음은 겸허하기까지 합니다.

셋, 돌보면서 살아가기
지금 이 시대는 죽음의 문화가 상실되어 가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삶의 가치도 생명의 존엄성도 상실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부모가 밖에서 돌아가시고 하면 업고 집으로 뛰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서 죽고 싶어도 병원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어떻게 죽어야 하고, 죽은 사람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봅시다.
적어도 죽음은 안전해야 합니다. 죽음이 안전하게 보호받는 사회가 삶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입니다. 내 죽음이 안전하지 못한 것은 우리가 죽음을 안전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죽어가는 사람을 돌볼 때 죽어가는 사람이 온전히 깨어서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에 산파가 돕는 것보다 100배 이상 더 깊이, 더 섬세하게 죽어가는 사람을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을 전혀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의 부모나 누구라도 죽음이 안전하도록 깨어서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가르치는 선생님도 어른들도 없습니다. 죽음이 안전하도록 죽음을 바로 알고 나와 내 주변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죽음의 가치가 바로서야 삶의 가치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봅니다.
살 가능성보다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많은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사랑하지 못해서 후회하면서 죽지 않도록 지금부터 가슴으로 사랑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이 세상에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아주 조금이라도 나누면서 살아가면 참 아름다운 삶이 될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 모든 이들의 안전한 죽음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 계간지 정토마을 2009.겨울호)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좀처럼 카메라를 내려놓지 않는다. 약속된 방송날짜, 방송시간에 반드시 프로그램을 송출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다. 그 업계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어라도 찍어서 무어라도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호시탐탐 무언가를 담기 위해 늘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방송분량’을 어떻게든 카메라에 담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CJB 청주방송 창사11주년 특집 휴먼기획 <호스피스 병동에서 삶을 만나다>를 촬영하기 위해 정토마을을 처음 찾았을 때도 당연히 우리 손에는 배터리가 가득 충전된 카메라가 두 대씩이나 들려 있었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찾아든 낯선 방송국 손님들에게 정토마을이 처음으로 베푼 것은 방송 분량이 될 법한 그 무언가가 아니었다. 마침 그날은 정토마을의 거실을 넓히는 공사를 하기 위해 거실의 짐을 밖으로 옮겨 나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우리는 바로 카메라를 내려놓고 무거운 짐들을 밖으로 나르는 일부터 해야만 했다. 초여름 날씨에 온몸이 구슬땀에 젖었다. 당시에는 적잖게 당황스러운 기분이었으나 그렇게 정토마을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훗날 오히려 감사했다. 정토마을을 찾고 정토마을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체험 하게 되는 이라면 그 누구라도 나의 이 감사하는 마음을 공감할 수 있으리라.

그날부터 시작해서 수 개월에 걸친 정토마을 취재를 끝낼 때까지 결국 우리의 카메라는 평소의 부지런을 별로 발휘하지 못했다. 우린 정토마을을 취재하고 촬영하기보다는 정토마을에있는 마지막 가는 이들의 아름다운 마지막 삶을 함께 살아보고자 했다. 카메라는 스위치 한번 제대로 켜지지 않은 채로 거실 한쪽 구석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로서 그런 무모함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정토마을의 환자들이 겪어내는 삶의 마지막 길이 결국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길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취재의 대상이기보다는 함께 하고 함께 겪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이었다.

 

어느 날 정토마을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땅바닥을 기어가는 개미를 너무나도 환하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위암말기의 환자라는 사실을 접하고 난 뒤에도 그를 결코 환자로 대할 수 없었다. 건강하기도 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구만리인 나마저도 짓지 못할 그 환하고 천진난만한 표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표정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지금도 이따금 고민을 한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 나는 과연 그런 아름다운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일생을 살면서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리석음이 우리 삶의 필연적 배경 중 하나인 이상 수많은 실수를 짓고 남기면서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지나온 삶을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들로 돌아보고 기억할 수 있다면 그 죽음은 슬픈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정토마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에게서 가슴속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마치 소설에나 나올 법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지나온 삶이 과연 어떠했는지 낱낱이 알 수는 없었으나 편안한 표정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려줄 땐 사실 부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인생의 목표라 해서 뭐 거창할 필요가 있겠는가. 죽음에 임박해서 나 참 행복하게 살았노라고 회고해도 좋을 만큼 살아내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을 만하지는 않은가.

정토마을을 찾은 어떤 자원봉사자는 그를 만나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정토마을에서 조금 더 지내보면 그 눈물을 거둘 수 있으리라. 삶의 진실에 보다 가까워지고 행복의 비결과 만나는 기쁨에 점점 더 익숙해질 테니까 말이다. 나 역시 그를 보며 눈물지은 적 있었으나 그것은 그가 안쓰러워서가 아니라 그 아름다운 사람과 영원히 작별하는 것이 안타까워서였고, 그 아름다운 사람이 사랑했던 모든 것들과 영원히 작별을 고하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그 무엇이든 욕심낼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 그걸 구별하지 못해 어리석고 삶이 아프다. 지혜롭게 잘 살고 싶은 마음이다. 빛깔 곱던 어느 가을날 그는 떠났다. 소원대로 극락에 갔으리라 믿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결국 찾아든다. 누구나 무조건 겪게 된다. 그게 두려워서 대부분 자신의 삶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밀어내려고만 한다. 삶의 입장에서 볼 때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삶이 제대로 보인다. 삶은 준비할 틈이 주어지지 않은 채로 시작되지만 다행히도(?) 죽음은 준비하고 공부할 시간이 주어지기도 한다. 살기도 바쁜데 죽음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운 죽음은 품질이 다르다. 또한 죽음을 배우면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그 삶이 많이 남았던 짧게 남았던 관계없다. 나는 정토마을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삶을 배웠다.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이 모여사는 호스피스 시설에서 삶을 배웠다니 이러한 기막힌 역설을 믿을 수 있을까.

지금도 정토마을 마당 어딘가에는 자그마한 개미가 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 개미를 바라보며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정토마을이다. 그 행복의 비결이 함께하는 곳이 바로 정토마을이다. 그 비결은 죽음을 바로 보고 바로 대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록 삶이 바쁠지라도 정토마을에서 살아볼 일이다. 비록 늘 일손이 부족한 곳이지만 무언가를 도우려 발을 들여놓기보다는 그들의 마지막 삶을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머물러 볼 일이다. 그 얼마 되지 않는 경험으로 모든 삶의 순간들이 행복해지는 기적이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분명 일생을 통해 삶이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들은 더욱 많아지리라. 참고로 작년 여름보다 넓어진 정토마을의 거실에는 새로 들여놓은 고화질 TV가 있다. 그 TV를 환자들과 함께 시청해볼 것을 추천한다. 부쩍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가슴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정토마을을 나설 때는 마당 어디에선가 기어다니고 있을 개미 한 마리를 반드시 찾아볼 일이다. 그리고 이전과는 변화된 자신의 표정을 반드시 살필 것. 이쯤 되면 세상에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 어디 개미 한 마리뿐이겠는가.(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 정토마을 계간지 2009. 여름호)


 

김한기|CJB 청주방송 프로듀서

※CJB 청주방송 창사 11주년 특집 휴먼기획, <호스피스 병동에서 삶을 만나다>(2008년 11월 28일 방영)로 한국PD연합회(회장 김영희)가 주는 제105회 이달의 PD상을 수상하였다.

 

http://www.jajae-hospital.com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원무부장 채용 합니다... 직책 : 원무부장 2. 원무행정 경력자.. 2017.07.28

www.jajae-hospital.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