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토마을에 상담을 받으러 온 환자분이 있었다. 그 환자분의 허탈한 웃음 소리가 아직까지 내 귓가에 맴돌며 지워지지 않고 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상담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너무 젊고 생생했다. 게다가 잘 생기고 총명해 보였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신가요?"

물음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아픕니다."

"아니, 어디가요?"

"아……. 저, 그게……. 지난 금요일 날에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적잖게 놀랐지만 본인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 레절레 흔들었다.

"어디가 많이 아프세요?"

"아~ 얼마 전부터 만사가 피곤하고 소화도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병원에 갔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의뢰서를 써주었어요."

"저기, 올해 몇 살이세요?"

"경자생이에요, 마흔다섯 됐어요."

‘어이구,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노.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난 속으로 큰 한숨을 쉬었다.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니, 글쎄 췌장암 말기라네요. 그는 ‘허허’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혹시 암이 다른 데로 전이됐나요?"

"간도 이상이 있다고 하네요. 지금은 수술, 방사선, 항암제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합니다."

 

"가족은요?"

"아내와 아들 둘에 딸 하나가 있고, 부모님을 모시고 삽니다. 제가 외동아들이거 든요."

외동아들이란 말에 나의 가슴은 더욱 아팠다.

 

"가족 중에는 누가 알지요?"

"아직 아무도 몰라요. 특히 아내는 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이제 겨우 서른일곱밖에 안 됐어요."

 

"제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사실은, 제가 무작정 찾아왔습니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어서요. 휴가를 냈습니다. 여기서 좀 있으면서 계획을 잡아보려고요."

 

"생존 기간은 얼마나 되시는지요?"

"의사가 오래가면 6개월이고 아니면 3개월 정도라고 하네요. 저는 아직 그 누구도 죽는 것을 실제로 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을 계획하시려고요?"

"글쎄요, 아직 아무것도. 제가 무엇을 계획해야 하나요?"

 

입술이 하얗게 말라서 타들어가던 환자는 뜨거운 차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나서 중얼거렸다.

 

"이럴 경우엔 어떻게 하면 되나요?"

"가족들에게 말씀드려야지요."

"스님, 아직은 안 됩니다. 정말 이런 병 걸리면 죽기는 죽는 겁니까? 정말 고칠 수 없나요? 3일 동안 인터넷을 다 찾아봤는데 모르겠어요.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전 어떻게 하면 되나요, 네? 죽는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돼요. 안 그래요 스님?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몇 살인가요?"

"제가 공부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하나는 초등학생, 또 하나는 유치원생입니다. 여기서 좀 머물면 안 될까요?"

 

정말 사형 선고를 받고 곧바로 달려온 환자 같지 않은 환자. 우리는 두 시간 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가족들에게도 보내드릴 수 있는 준비가 필요했기에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도록 서울에 있는 대체의학 전문 시설로 보내드렸다. 침착하게 투병하기로 약속하고 그는 서둘러 서울로 떠났다. 그 잘 생긴 눈에 눈물을 흘리며 웃는 웃음소리.

 

"허~허~허~허~허~"

"거사님, 우리 만나지 맙시다. 꼭 성공하세요. 그리고 제가 필요할 때엔 언제든 전화 주세요. 거사님은 이제 혼자가 아니랍니다. 아시죠?"

 

나는 그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했다. 어디까지 함께 가주어야 할까. 그를 보내고 났는데도 자꾸만 그의 씁쓸하고도 허허로운 웃음이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 그 친구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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