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누워 있는 어미에게 어린 딸이 꽃을 꺾어 손에 쥐여 준다.어린 딸을 홀로 이 땅에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어미. 그 어미의 식어가는 가슴에 어린 딸은 슬며시 함께 드러눕는다. 뼈만 앙상한 어미의 가슴을 만지며 식어가는 어미에게 자신의 따뜻한 체온을 나누어주고 있나보다. 강물 처럼 출렁이며 아이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있으니 나 역시 눈물 이 흐른다.

 

한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어미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죽어 누워있는 어미의 가슴팍에 온몸을 묻고 나란히 누워 있다. 아버지는 뜰에서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나뭇가지를 붙잡은 채 쪼그려 앉아 있다. 이 세상에 남은 가족은 이제남편과 딸 둘 뿐이다.

 

엄마 이제 그만 보내드리자고,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어린 저 딸에게 어떻게 이야기할까 망설이는데, 새들은 눈치도 없이 맑은 목소리로 지저귀고 산사의 풍경소리는 왜 이리도 청명한 것인지…….

 

"엄마, 엄마~."

 

아이는 조그마한 손으로 어미의 가슴을 만지며 흐느꼈다.

 

"울지 마라. 제발 울지 마라, 아가야! 너는 나의 그림 자요, 너는 내 삶의 의미요, 너는 나의 기쁨이요, 너는 나의 사랑이란다."

 

아내를 살리려고 애쓰던 남편이 아이에게 말했다.

서로의 그림자처럼 함께 살던 비둘기 부부가 정토에 온 것은 지난 늦은 가을이었다. 남편은 오직 아내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였고, 아내 역시 그런 남편을 홀로 두고 갈 수 없어 꼭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정토에서 추운 겨울을 보냈다. 어쩌면 그렇게도 두사람이 서로에게 지극 정성 일 수 있을까.

구녀산 자락에 참꽃이 붉게 타오르고 매화 향기 가득한 봄날, 보살님께서는 창문 너머 저만치 피어있는 대문지기 참꽃 두 그루를 보고 기뻐하셨다. 몸은 야윌대로 야위어 뼈와 가죽만 덮인 앙상한 모습이었지만 소녀처럼 아름다웠다. 기력이 떨어져 점점 처지는 두 손을 힘들게 모으고, "스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얼마 후, 볼 일이 있어 남편이 잠시 아내 곁을 비울 일이 생겼다. 남편은 영 불안했는지 가는 도중에도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결국 핏기 하나 없는 아내가 남편에게, 나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며 젖먹은 힘까지 다 해 힘겹게 말했다. 모처럼 남편이 자리를 비운 잠깐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스님, 저 안 울어요. 저 절대로 안 울어요."

 

마음속으로는 피보다 더 깊은 오열을 쏟아내면서도, “스님, 저 절대로 울지 않아요. 울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 울지 마요!"

"스님, 결혼생활 20여 년 동안 내 자신의 삶은 없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그냥 딸아이를 믿고, 그리고 아빠도 잘 살것이라 믿고 이젠 가렵니다. 이렇게 가도 되겠지요……? 전 요즘 꿈만 꾸면 웃고있는 제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잠이 들면 정말 행복 하답니다."

 

꿈 속에서 세 사람의 고운 소녀가 당신을 시봉하고, 당신이 걸어 다니는 곳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너무나 친절히 맞아주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보살님. 아마도 목숨이 다하면 그런 곳으로 갈 것 같다며 무척 행복해했다. 나는 부디 정신을 맑게 하시고, 떠나시면서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염송하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날 늦은 저녁 에 남편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수화기를 들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남편이 아내를 불러놓고 하염없이 우나 보다. 혹 당신 없는 사이에 아내가 저 세상으로 떠날까봐 무척 두려운가 보다. 밤이 새고 나면 부리나케 달려올 남편. 전화를 끊고나서 아내가 내게 말했다.

 

"남편과 딸아이가 너무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어서 저를 죽게 해주세요. 제발……."

 

부처님, 이럴 땐 정말 어찌해야 좋습니까? 부처님! 굽어 살펴주소서. 남편과 딸아이가 자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빨리 죽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저 보살님을 제발 도와주소서.

 

며칠 후 나는 남편을 불러 차분하게 말했다. 부인께서 어느 날 혼수상태에 빠지면, 그땐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 부인 마음 편히 가시도록 이야기 하시라고. ‘여보! 잘 가거라. 나도 때가 되면 당신 곁으로 가마. 나 잘 살거다. 건강하게 아이랑 잘 살다가 당신 간 곳으로 나도 갈게. 그러니 아무 걱정 마라’하며 서로 행복을 빌어주는 작별인사를 해 주시길 부탁드렸다. 남편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네, 스님 올라가서 이야기 좀 해볼께요."

 

그분이 앉아 있던 바닥에는 눈물자국이 흥건했다.

사랑하는 어린 딸과 남편을 두고 세상을 떠날 것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짐에 피눈물을 흘리던 보살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울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몸이 앙상하게 야위어가는 죽음 앞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보살님. 엄마품에 매달려 그렁그렁 맺히던 아이의 눈물과, 헤어짐에 고통스러워 하던 남편의 눈물……. 이생에서의 이별과 슬픔은 얼마나 깊고 질기고 아픈 것일까.

 

저 대문 곁에 핀 참꽃이 제 아무리 예뻐도 열흘을 못 간다 하니, 우리 인생이라고 별수 있으리. '만나지 말아야지, 만나지 말아야지, 애달픈 인연일랑 만나지 말아야지.'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곱고도 아린 가족들의 눈물이 자꾸만 내 눈 속에 후두둑 참꽃으로 피었다가 진다.

 

[능행스님 저서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중에서]

결혼을 몇 달 앞둔 26세의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정토마을에 찾아왔다. 애인의 손을 잡고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 온 그녀. 며칠 전 친구랑 회를 먹고 급체한 것 같아 병원에 갔다가 급성 위암 말기라는 진단에 그것도 생존기간이 불과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았다.

 

"돈이면 다 되는 이 세상에 왜 돈을 준다고해도 저 아이를 못 살리는 거예요. 말도안 돼요. 이럴 순 없어요. 살려야 해요. 스님,제발 살려주세요."

 

며칠 후 검은 색 가방에 현금을 가득 넣고 찾아 온 어머니가 돈을 내 앞에 패대기치면서 두다리를 뻗고 통곡했다.

하루 이틀 환자의 몸은 점점 말라가고 물 한 모금 삼킬 수 없는 고통을 밤낮으로 겪으면서도, 죽음이 무엇이며 어떻게 죽는 것인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 듯했다. 부모는 아이를 살려보려고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었고,더욱이 아버지는 곡기마저 끊어버렸다. 자식의 병이 자기 잘못이라는 죄책감과 아버지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는 더 괴로워했다. 그리고 전국을 뒤지며 약과 의사를 찾아 헤매다가 어디서 구했는지 불로초란 것을 가지고 와서는 한 모금의 물도 넘기지 못하는 자식에게 조금만 삼켜보라며 빌고 또 빌었다.

 

"스님! 나는 병원 앞을 하루 두 번씩 매일같이 출퇴근하며 지나치면서 저 병원에 누가 있고 어떤사람이 입원해 있는지 한번도 관심을 가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시장 바닥에서 돈 버는 일에만 미치다 보니 병원 병실의 불이 왜 밤새 켜져 있는지 몰랐습니다. 뭐하느라 저렇게 불을 켜놓았나? 하는 생각만 했을 뿐, 세상에 암 환자가 병원에서 이토록 많이 죽어가고 있는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더욱이 내 새끼가 이렇게 죽을거라고는……."

 

정원에 서 있는 작은 나무를 붙들고 주저 앉아 아버지는 아이가 들을까 소리 죽여 몸부림치며 통곡했다.

 

"실려야 해요. 꼭 살릴 겁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곁에 앉아 휴지를 잘라주다가도 몇 번씩이나 쓰러졌다.

 

"엄마! 아프지 마. 나는 어떻게 해? 선생님, 우리 엄마 주사 좀 놔주세요."

 

아무 것도 먹지 못하면서도 딸아이는 늘 밝게 웃었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죽음을 준비시키는 일보다 곤혹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어느 조용한 오후,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사랑하는 저 사람은 어쩔래?"

 

그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떳다가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스님! 나 못 살아?"

"최선은 다해보겠지만... 너는 요즘 너의 증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네, 저도 조금 알 것 같아요. 어렵다는 것...."

"그렇게 생각했어?"

"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빠 그리고 엄마, 동생, 또 네가 사랑하는 저 사람들 말이야.

"모르겠어요. 그런데 스님!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이예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엄마는 절에 다니시지만 저는 종교에 대해 잘 몰라요. 하지만 난 요즘 내가 정말 살 수 없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 되나요?"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은데?"

"네, 다시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리고 여섯 살이 되면 스님에게 와서 스님 제자 될래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는 그녀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웠다.

 

"저 정토마을에 와도 되죠?"

"그럼"

"스님, 제가 어떻게 해야 다시 태어날 수 있죠?"

"자, 봐라. 극락이라는 세계. 들어봤지? 그 세계의 부처님이시지. 우리 같은 중생들을 죽음이 없는 극락세계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셔. 그곳에는 아미타불 부처님이 계시고 관세음보살님도 계시지. 아름다운 연꽃 속에서 태어난단다. 지금부터 네가 부처님께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고 극락에 태어난다는 지극한 믿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계속부른다면 고통 없이 부처님의 자비로운 품에 안겨 극락에 태어났다가 네가 원하면 다시 이 땅에 태어날 수 있단다. 우리 한번 부처님 불러 볼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삼귀오계三歸五戒를 주고 염주도 하나 선물로 손에 쥐어주었다.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는 딸아이에게 새로운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면서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가 날 찾는다는 전화가 왔다. 부랴부랴 서둘러 갔더니 어느 중국 한의사가 그녀의 병을 낫게 해준다고 아버지에게 약속했다며 그녀의 온몸에 뜸을 뜨고 한 뼘이나 되는 침을 놓는 바람에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방의 온도는 35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딸아이를 살려보고 싶은 아비의 마지막 몸부림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녀가 날 보자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나 극락으로 가야 하는데,스님이 곁에 없어서 너무 걱정했어요 스님이 아미타불 노래를 불러줘야 제가 따라 부르죠."

 

나는 그녀를 무릎에 누이고 아미타불 노래를 들려주었다. 온 식구가 초주검 상태였고, 어머니는 애를 죽인다며 펄펄 뛰었다, 오! 지옥이 어찌 죽어서만 있으랴...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구급차를 부른 후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입원한지 나흘째 되던 날,그녀는 비로소 나와 함께 삶의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다. 예쁜 발찌도 빼고 옷이랑 그림, 그리고 종이학 천 마리 등등... 하지만 예쁜 백금 귀고리는 여전히 걸고 있었다.

 

"귀고리는?"

"스님, 귀고리는 빼지 마세요."

"왜?"

"다음에 제가 정토에 찾아오면 스님이 날 어떻게 알아봐요. 귀고리를 하고 와야 저인 줄 알지요."

"그래, 그게 좋겠구나!"

"우리 그때 다시 만나요."

"그래, 이놈아! 아미타부처님 만나서 극락에 가거든 잘 갔다고 꼭 전해줘야 해. 알았지?"

 

그녀는 오후부터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무릎에 누이고 함께 아미타불 노래를 불렀다. 의식은 초롱초롱 맑았지만 어느새 혀는 점점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미타불을 부르는 모습이 안타까워 나지막이 그녀의 귀에대고 말했다.

 

"마음 속으로 해도 된단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극락세계에 가고싶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부처님! 어서 이 곳으로 강림하소서! 당신의 나라에 태어나기를 이토록 서원하는 이 아이를 당신의 감미로운 능라로 감싸 안아 주시옵고, 당신의 품에 편히 안기어 정토에 태어날 수 있도록 대자비를 베푸소서. 이 맑은 영혼을 당신의 손에맡기나이다. 거룩한 님이시여! 사십팔원四十八願 원력願力 바다로 돌아가 당신의 자비를 구하오며 이 몸 던져 비옵니다. 나무아미타불"

 

그녀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부처님 오셨니?"

 

그녀는 아주 아름다운 모습으로 웃었다. 잠시 병실을 비웠던 어머니가 들어오자, 두 손을 벌려 제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았다.

 

"엄마!"

"여기 있어."

 

나무아미타불 염불과 함께 조금 후 숨소리가 멈추었다.

 

"잘 가거라"

 

어미는 한참동안 죽은 딸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울다 지쳐 쓰러진 어머니의 꿈에 그녀가 나타났다.

 

"엄마! 나 부처님이 안고 갔다. 병원에 올 때는 걸어서 왔는데 부처님이 날 안고 극락으로 가셨다. (뜸 뜬자리를 보여주며) 엄마, 이것 봐. 부처님이 다 없어지게 해주셨어. 나 이제 하나도 안 아프고 흉터도 없어. 아빠 용서해 주고 잘 살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나는 너무너무 좋아! 스님께도 꼭 말해줘. 나 극락세계 갔다고. 그리고 부처님이 날 안고 있다고. 엄마 가게 장부 저기 있는데, 불쌍한 사람들 것은 받지 마. 응? 내 차로 운전 배우고. 엄마! 나 이제 간다" 

 

미친 사람처럼 허둥대던 어머니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내 새끼야,잘가거라."

 

 

자재병원을 소망하신 스님의 이야기

밤하늘에 별이 된 스님

무더운 어느 여름날, 호스피스 관계로 잘 알고 지내는 수녀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짐을 보면 스님 같은데 가족이 없고 임 종이 임박한 상태라면서 한번 다녀가길 원했다.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나는 서울로 향했다.

 

수녀님의 안내로 잠시 작은 방에서 여러 가지 기본적인 임상 자료를 브리핑 받고 호스피스 병실로 들어갔다. 날이 너무 더워 병실 공기가 탁하고 습했다. 창 옆 침상에는 뼈만 남은 남자분이 누워 있었는데, 수녀님이 저 분이라고 눈짓으로 말해주었다. 살포시 다가가 깡마른 손을 살며시 잡아드려도 환자는 눈도 뜨지 않았다. 느낌이 스님 같았다. 그래서 귓전에 대고 “스님!” 하고 불렀더니 그제야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셨다. 웬 비구니가 비구 손을 잡고서 있으니 ‘누구?’ 하며 놀라면서도 반가운 눈빛이었다.

 

스님이라는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 억장이 무너져 할 말을 잃어버렸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제멋대로 길어 엉망이고, 목욕은 언제 했는지 옷 속에 비늘이 뚝뚝 떨어지고, 손톱과 발톱은 길어 살을 파고들어갈 정도였다 차마 바라볼 수 없는 그 모습, 대명천지 밝은 하늘 아래 어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하나 막막한 심정이었다. 밖에 나가 속옷, 바리깡, 면도기, 수건 등을 사왔다. 휠체어로 모시고 간신히 병실 목욕탕에서 삭발 면도하고 깨끗한 새 속옷으로 갈아입혔더니 병원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타 종교 봉사자가 나를 찾아와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저희는 스님인 줄도 모르고, 기독교인 천주교인 할 것 없이 찾아와 찬송가 부르고 성경 읽어드리고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왜 그렇게 해야 했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에…….’

 

나는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다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자리에 눕혀 놓고 바라보니 얼마나 거룩하고 맑으신지……. 옛말에 한 다리가 천리라고 그래도 부처님의 한 제자로, 비구니에게 당신 몸을 맡기시는게 덜 서글프고 덜 비참했으리라.

 

"스님! 제가 이제 곁에 있을 거예요. 아무 염려 마세요."

 

우리는 서로 마주 눕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법랍法臘 24년 출가 이후 지금까지 선방에서만 정진하느라 토굴 하나 장만하지 못 한 구도자였다. 지난 겨울 결제結制때 자주 잔 기침이 나서 해제하면 병원에 한 번 가봐야지 하다가 해제 후 주위에서 병원은 서울로 가야 한다고 해서 도반들이랑 함께 이곳을 왔는데 진찰 결과 폐암 말기로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도반 스님들이 해제비를 털어 입원했고, 도반들이 오가곤 했는데, 몸이 그저 그래서 모두 결제 들어가라고 했지. 그런데 이렇게 빨리 병이 깊어질 줄이야……."

 

올해 세속 나이가 47세. 속가에는 여동생 하나 달랑 살아 있어 가끔 왔다 가곤 했는데, 어렵게 살다 보니 요즘에는 통 못 온다고 말씀하셨다. 커다란 키에 뼈만 남은 육체의 고통……. 숨이 가빠 온몸의 땀구멍 마다 식은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전신은 산소 부족으로 청색증이 와서 피부는 파랗게 죽어가고 물 한 모금 제대로 떠 넣어주는 이가 없어 혀는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었다. 거즈에 물을 묻혀 입속에 넣어드리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나를 찾았다. 병원비 문제로 직원이 올라온 것이다.

 

"450만원인데 스님 병원비는 어디로  구하면 되나요?"

 

대답이 퍼뜩 떠오르지 않았지만  "걱정 마세요. 해결할 테니……." 한 칸 토굴 형편에 이렇게 대답을 했다.

 

450만원. 시간은 없고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할까? 생각나는 대로 전화를 돌렸다. 차마 스님 병원비가 없어 그런다는 사정 이야기는 체면상 빼놓고 일곱 군데 전화를 해서 돈을 마련했다. 그리고 착한 어느 보살님께 스님 떠날 때 입혀줄 수의 한 벌 값까지……. 이 모든게 스님의 청정한 수행공덕이었으리라.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님. 왜 저 사람들이 와서 무례하게 굴면 나무라시지 가만히 계셨어요?"

 

스님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서 말씀하셨다.

 

"우리나라에서 땅을 제일 많이 가진 종교가 불교인데, 중이 지 죽을 자리 하나 없어 남의 병원에 와서, 그것도 이렇게 큰 십자가 아래 누워 죽는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겠노? 허! 허! 내가 이래 큰 십자가 아래서 죽어나갈 줄 우예 알았노? 내가 중이믄 뭐 하겠노? 부끄러바서 눈도 뜰 수가 없었제."

 

스님의 부끄러운 마음이나 지금 내가 부끄러운 이 마음이나 같을까?

 

"스님! 제가 저 바랑 열어봐도 되지요?"

 

눈으로 그러라고 허락하셨다. 바랑을 열어 보니 가사, 장삼, 지갑, 승려증, 8만원, 통장 (120만원 들어 있었음)이 스님의 생활을 반영하듯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스님! 그동안 살아오신 짐들은요?"

 

내 물음에 고개를 흔든다. 20년 세월을 수행자로 살아온 마지막 모습이 이토록 비참할 수가……. 숨이 차서 좌불안석인 스님이 푹 꺼진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시더니, 붉은 눈 속에서 눈물을 토해내셨다. 닦아도 닦아도 흘러내리던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스님을 모시고 내 토굴로 내려오고 싶었지만 형편이 그러질 못해서 더욱 죄송스럽고 안쓰러웠다. 하필이면 그 병원 십자가가 유독 컸다. 게다가 스님 머리 바로 위에 걸려 있어 마음이 더욱 불편했으리라. 침대 위로 올라가 한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스님을 끌어안아 무릎에 누이고 작은 소리로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가는 혼자 남아……." 노래를 들려주었더니 힘없는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주시며, 

 

"시님! 내 부탁 하나 들어주소, 꼭!"

 

"네~ 말씀하세요."

 

"나는 이렇게 십자가 아래 누워 죽지만, 우리 시님들 늙거나 병들면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 하나 지어주소. 시님은 할 수 있어."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나는 너무 놀랐다.

 

"스님, 난 못해요. 내가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안돼요! 스님! 병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닐 거예요."

 

그러자, 스님은 내 손을 더욱 힘주어 잡으시며,

 

"원願을 세워요, 부처님이 계시니까. 내가 죽어서라도 도와줄게. 원만 세워! 원만 세우면 다 돼."

스님의 눈물이 내 승복 바지에 젖어들었다. 스님은 공부 중에 있는 도반들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알리지 말기를 당부하며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 후 뿌려주길 당부하셨다.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던 오후 4시에 스님은 내 체온에 의지한 채 병든 육신을 여의고 그렇게 떠나셨다.

스님! 저 하늘에 뜬 저 별이 스님 아니신가요?

스님! 스님의 영전에 맑은 향 사루어 공양 올리오니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사바를 밝혀주소서! 나무아미타불.

 

[능행스님 저서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중에서]

책소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선고받은 사람들이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10년 넘게 해온 비구니 능행스님. 천여 명이 넘는 죽음을 배웅하면서 그는 사람들에게 잘 먹고 잘사는 법이 아니라 잘 죽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이 세상을 살다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갈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선물은 무엇일까요?" 그는 언제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미소로 답하고 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죽음일까요. 삶을 누렸듯이 죽음도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도록 불교계 최초의 독립형 호스피스 정토마을을 세워 오늘도 봉사자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

 

목차

1장 삶의 마지막은 언제나 살아온 모습과 닮았습니다 

백금 귀고리를 하고 떠난 소녀 
대문 옆에 피어난 참꽃 
다이아몬드 반지가 담긴 보따리 
고통없는 죽음을 준비하자 
다시 태어나면 아기 낳고 살아볼래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 
아름다운 뒷모습 
백구두 네 켤레 
응급실도 웃는 날 
너무도 그립고 그리운 그리움이여! 

2장 하늘로 간 이들이 별빛으로 내려오는 정토마을

시님! 나 여거서 죽어도 되지라? 
새털처럼 가벼운 인생 
부처님! 행복하게 조금 더 살고 싶답니다 
마니주 
오직 나의 팬 
할매의 담배 연기 
구녀산 도라지 
진리의 태양은 하나입니다 
호스피스 교육 

3장 저녁노을 닮은 당신의 아름다운 동행이고 싶습니다 

밤하늘에 별이 된 스님 
입 있는 사람 다 말해보시오 
어느 수행자의 텅 빈 아름다움 
행복한 여행을 시작하신 울 할배 
극락의 즐거움은 어떠십니까, 스님! 
천지의 주인이 되신 스님 
극락에는 치과가 없소? 
죽음 앞에서 죽음을 돌봐주시는 내 도반 

4장 거세게 일어나는 저 파도처럼 거듭나소서

도반과 함께 걷는 길 
잠 못 드는 밤 
동해 바다에서 
아버지 묘지에서 
정토마을 물러가라! 환자가 웬 말이냐! 
연꽃 피우는 사람들 
우리는 왜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가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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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 이야기] 능행 스님 "최상의 죽음 얻을 수 있는 방법은..." - 『이순간』 능행 스님 | YES24 문화웹진 채널예스

지난 5월 26일 서울 조계사 극락전 법당, YES24와 한겨레출판이 마련한 작가와의 만남 가 열렸습니다. 이날의 는 능행 스님.『이 순간』(능행 지음|한겨레출판 펴냄)의 저자이시며, 지난 15년 구도의 길에서 만난 1천여 명이 넘는 죽음을 배웅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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