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그림으로 나타낼 때는 흔히 둥근 원 또는 구로 그린다. 그것은 마음이란 물건이 원만하고 둥글다는 의미보다 가장자리에서부터 가운데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알 수 있는 얕은 표면의 마음이 있고 표면 아래로 들어가면 점점 더 깊은 마음 즉 자신이 알 수 없는 마음도 있다.

마음은 지구에 비유할 수 있다. 지구의 내부를 지표, 지각, 맨틀, 외핵, 내핵으로 구분하듯이 사람의 마음도 전 오식, 의식, 말라식, 아뢰야식 등으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것이 유식학이다. 전 오식이 가장 얕은 수준의 마음이라면 아뢰야식은 지구의 내핵에 해당하는 가장 깊은 마음이다. ‘내 마음은 내가 안다.’라고 할 때의 마음은 대부분 마음의 표피 정도이다. 깊은 속마음은 보통사람(범부)들은 알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나 하는 정도에 따라 인격자 또는 성숙한 사람의 기준을 삼을 수도 있다. 정신치료자 소암선생은 자신을 모르는 것을 정신장애로 설명하기도 했다. 수박껍데기를 보고 수박 속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은 것처럼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속마음을 짐작하기란 어렵다. 타인의 속마음을 짐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속마음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아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유식학에서는 사람의 가장 깊은 마음을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한다. 아뢰야식은 무시이래로 즉 시작을 알 수 없는 아득히 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과 정보들이 보관되어 있는 마음이 창고이다. 보관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아뢰야식을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아득히 먼 과거, 생명의 출현에서부터 사람으로 진화해 온 모든 과정의 정신적인 산물들과 개인의 모든 경험들이 총체적으로 보관된 곳이다. 융의 분석심리학에 대비하면 콤플렉스, 개인무의식, 집단무의식,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자기 등이 통합된 개념이다. 마음에 보관된 정보들은 화석처럼 생명을 잃은 것이 아니라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지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에서 종자, 씨앗이라고 부른다. 태어날 때 가지고 온 종자를 본유종자라 하고 태어나서 새롭게 만들어진 종자를 신훈종자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옛날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고 이 놈의 종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바로 인간의 선천적인 기질이나 소인을 지칭할 때 쓰였던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좋은 종자가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종자도 있다. 가장 최신 심리학에 해당하는 긍정심리학에서도 행복의 조건으로서 태어날 때의 행복지수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태어날 때 가지고 온다고 해서 반드시 숙명적으로 비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훈습에 의해서 종자는 변할 수도 있고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프로이드의 무의식의 개념과 아뢰야식은 자신이 모르는 마음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그 구성물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난다. 프로이드의 무의식 개념은 감당하기 힘들어서 억압한 것들, 외면한 것들, 트라우마 등 주로 병리적인 것들의 저장소라고 할 수 있지만 아뢰야식은 병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것, 생산적인 것, 종교적인 것 등 훨씬 다양한 것들의 저장소이다.
 
아뢰야식은 되살아날 수 있는 종자의 보따리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무수히 많은 종자들을 품고 산다. 언제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종자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으로 마치 물속에 잠겨있는 장애물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다.

학교로 출퇴근하는 길옆에 큰 저수지가 있었다. 항상 시퍼런 물이 가득 차 있어서 저수지 안에는 물고기들만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더니 저수지 물이 서서히 마르기 시작했다. 가장자리부터 바닥을 드러내더니 점점 깊은 바닥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저수지 바닥은 검은 색을 띤 진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상태로 열흘 정도 가뭄은 이어졌는데 무심하게 저수지 옆을 지나다니던 어느 날,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시커먼 모습의 저수지 바닥에 잔디처럼 새싹들이 파릇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것인가? 그 사이 어디에서 날아온 씨앗은 아닐 것이다. 진흙 속에 묻혀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오래 전부터 이미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바닥이 드러나고 햇빛을 받으면서 순식간에 싹을 틔웠다. 보통 때는 짐작할 수도 볼 수도 없었지만 씨앗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에도 자각할 수 없는 많은 씨앗(조건)들이 숨어 있다. 마치 암을 유발하는 DNA 인자가 잠복해 있다가 자라날 환경이 되면 암을 유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음을 살핀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아뢰야식을 통찰하는 작업이다. 단번에 깊은 심연을 알 수는 없다. 가까운 것부터 순서에 따라 자신의 내면을 살피게 된다. 흔히 말하는 알아차림 명상은 가장 자각하기 쉬운 것부터 자신을 살피는 작업이다.

유식삼심송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유식 3)
 
불가지집수(不可知執受), 처요상여촉(處了常與觸), 작의수상사(作意受想思), 상응유사수(相應唯捨受), “아뢰야식은 그 작용을 알 수 없고, 집수와 처()와 요()의 작용도 알 수 없다. 항상 촉()과 작의와 수()와 상()과 사()로 더불어 상응하되, 오직 사수(捨受)로만 한다.”
 
아뢰야식은 작용이 미세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범부의 식견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꾸준히 마음공부를 이어가면 조금씩 아뢰야식의 종자들을 통찰하게 되고 마침내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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